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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이 있는 삶 (창 3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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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삶
                                                                                                                    
창세기 37:1-11 

음악을 너무나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음악을 공부할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소년시절 그의 희망은 피아노를 갖는 것이었지만, 산골 농부였던 아버지에겐 벅찬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먼 곳에서 피아노를 싸게 판다는 얘기를 들은, 아버지가 수레를 끌고 나가서 그 피아노를 직접 사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한 마디 들려주었습니다. “아들아, 인생이란 단 한번뿐이다.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포기하지 말아라.”라고 하셨답니다. 그런 환경에서 음악을 사랑하며 성장한 소년이, 바로 보스턴 교향악단의 지휘자인 오자오 세이지라고 합니다. 오자오 세이지는 음악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렵게 아들을 위하여 피아노를 구해다 주면서, 그 날 들려주신 아버지의 말씀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꼭 하고 싶은 일은 기다릴 수도 있고, 늦출 수도 있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 창세기 37:1-11절의 말씀에서 창세기 기자는 표현하기를, 족장 야곱이 자기 아버지가 몸 붙여 살던, 가나안 땅에 살았다고 했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거듭거듭 약속을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인류역사 가운데서도 가나안 땅은 가나안 땅이 지니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언제나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요충지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큰 배가 없었고, 하늘 길을 이용하는 비행기가 없었던 당시로서는, 가장 안전한 여행이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형편으로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든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나 유럽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곳이 바로 가나안땅이었기 때문에 가나안 지역을 세계의 길목이라고 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점에서도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펼쳐지는 무대가 가나안 땅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들의 적은 숫자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맡기에 힘이 모자랐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아도, 족장 아브라함 한 사람에서 이스마엘과 이삭이 났고, 그 후에 그두라를 통해서 낳은 후손들과 에서와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이 있지만, 이들만 가지고 세 개의 대륙 사람들이 늘상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들의 힘만 가지고는 힘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숫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나안의 원주민과 혼합이 되어서, 야훼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백성다운 구분이 흐려지게 될 염려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큰 민족으로 만들고, 큰 힘을 주어서 가나안 땅의 주인으로 불러들여야겠다고, 결정을 하시고, 족장 야곱의 후손들이 큰 민족으로 이루는 자리로 이집트라고 하는 비옥한 땅으로 야곱의 일족을 이주하게 한 것입니다. 족장 야곱의 일족을 모두, 그들에게 주기로 약속한 가나안 땅에서 떠나서, 파라오가 지배하는 나라인 이집트 땅으로 이사하게 하고는,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고센이라 하는 지역에 정착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곳은 양식이 풍부하고, 목축을 하기에 적합하여 자손이 번성하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인큐베이터란 것이 있습니다. 이 기계는 어머니 뱃속에서 제달을 채우지 못하고 출생한 미숙아의 경우, 인큐베이터에서 어머니 뱃속에서처럼 안전하게 영양을 공급받으면서 필요한 기간 동안을 성장하도록 합니다. 그 후에 아기가 인큐베이터밖에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직 미미한 부족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큰 민족을 이루기까지 이집트라는 인큐베이터 곧 비옥한 땅에서 거주하게 하신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는 다른 나라보다는 개명한 문명국가였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가 이집트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일족을 이집트로 보낼 때에, 가족들보다 먼저 가족들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인 요셉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특별히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달리말한다면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자기의 역할을 감당하는데 신실한 사람입니다.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야곱의 일족은 이집트땅으로 이주하였고, 이집트에서 야곱의 일족은 이스라엘이란 정치적인 집단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에, 이집트는 이미 오랜 전통과 발달한 문명사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수학, 천문학, 의학, 건축술이 발달한 나라였고,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도 매우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여기서 야훼 하나님의 계획은 당신의 자녀인 아브라함의 자손을, 이집트라고 하는  융성한 발전을 한 대 제국의 문화 속으로 옮겨다 놓고, 이집트의 고센이란 인큐베이터에 넣어서, 430년 동안을 양육하신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결국은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에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장정만 60만 명이라는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야곱의 일족의 이집트 이주의 발판을 마련한 ‘꿈의 사람’요셉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요셉은 형제들 가운데서 질투의 대상이었습니다.

본문 3-4절은 증거하기를,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기자의 증거를 따르면,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1) 족장 야곱의 요셉에 대한 편애 때문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노년에 사랑하는 여인인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며, 야곱은 요셉에게만 화려한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2) 본문 2절에 보면, ‘ 열일곱 살 된 요셉이 아버지의 첩들인 빌하와 실바가 낳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데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라고 했으니, 열 일곱살 된,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보고는 덮어주거나, 모른채 하지를 않고, 아버지 아곱에게 고한 것입니다. 그러니 형들의 입장에서 보면, 요셉이 얼마나 얄미웠겠습니까?  

3) 야곱이 요셉에게 입혀준 채색 옷은, 당시 왕족이나 귀족의 자녀가 입는 옷을 말합니다. 소매나 발목을 덮을 수 있도록, 길게 내려오는 일종의 망토 같은 옷인데, 여러 가지 색상으로 수를 놓아서 보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옷입니다. 족장 야곱이 요셉에게만 이런 채색 옷을 지어 입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을 족장 야곱의 후계자로 삼겠다는 간접적인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채색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요셉을 바라보는 형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창세기 기자는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하였다고 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질투입니다. 질투는 사랑의 타락입니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면, 급기야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요셉이 형들의 질투의 대상이 된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남다른 꿈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전한 것 뿐이지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꿈 이야기 때문에, 질투하게 되고, 마침내 기회가 오자 요셉을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여기서부터 요셉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하여, 참으로 험난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인생길에는 보이지 않게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히브리 청년이 당시 세계의 패자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란 제국의 국무총리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요셉 자신으로 보면 참으로 파란곡절이 있는 험난한 인생여정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이집트 땅에서 걸어간 인생길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당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요셉처럼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왕따를 당할 수도 있으며, 멀리 쫓겨가는 경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꿈이 있는 사람은 요셉처럼 낙심하거나, 당한 형편을 시비하거나, 요동하지 않고, 자기 믿음을 지키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시기 와 질투를 당해도 원망하지를 않고, 소망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요셉처럼 환란의 때를 잘 견디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진 사람은, 누군가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4-5절에서 창세기 기자는 증거하기를,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한 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서,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형들은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요셉을 아주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요셉의 형들은 가축을 데리고 들판에 나갔다가, 그곳에까지 먹을 것을 가지고 심부름을 온 요셉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다가 먼저는 물없는 구덩이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꼼짝없이 변을 당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거기서 죽지 않고, 형 르우벤을 통해서 목숨을 부지하고는, 형들에 의해서 지나가는 이스마엘 상인에게 노예로 팔렸고, 이스마엘 상인에 의해서 이집트 땅까지 끌려가서 먼저는 파라오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이란 사람의 집, 가정노예가 됩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유념할 사항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진 사람’이 위기를 만날 때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주변에 누군가 돕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요셉이 생명을 부지하는 과정을 보면, 형 유다의 의견 때문에, 은 20냥에 이스마엘 장삿꾼에게 팔립니다. 이때에 유다는 ‘동생을 죽여서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으니,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는 요셉에게 손을 대지 말자.’라고 다른 형제를 설득합니다. 그 결과 죽임을 당할 뻔 했던 요셉이, 이스마엘 장사꾼에게 팔려서 이집트까지 가게 됩니다. 여기서 본래 형 유다는 요셉의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통해서, 요셉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일을 감당하게 하기 위하여, 가나안을 떠나서 더 중요한 곳으로 가도록, 요셉의 갈길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 8:28절에서 로마교인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자 보세요, 원수 같은 열 명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지만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을 보호하는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죽지 않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간섭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역경이, 어려움이, 실패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내 편이시냐? 하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지금 하나님 편에 서 있습니까? 주님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의 신령상 형편을 겸손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눈으로 보면, 요셉은 혈혈단신이 아니라 그 어떤 인간의 손보다 크신, 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요셉을 붙잡고 계십니다.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께서 요셉의 갈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여정이 마치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처럼 사방으로 에워싸임을 당하셨습니까? 사업적으로 답답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집안에서,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형제간에, 친구에게 쓰라린 배신을 당하셨습니까? 세상에서 거꾸러뜨림을 당하셨습니까?
 
비록 여러분이 질그릇 같이 연약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 예수를 모시고 살면, 선하고 자비하고, 약한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던 38년 된 중풍병자를 찾아가시듯이, 여러분을 찾아가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부르짖음과 간절한 간구를 듣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걸음을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앙인은 말하기를, “승리를 희망하지 않는다면 벌써 패배한 사람이요, 성공에 대하여 야망이 없는 사람은 이미 낙오자다.”라고 했고, “꿈은 인생의 시금석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어려움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만을 의지한 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진 꿈을 놓지 않고, 이루고자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3) 꿈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요셉이 꾼 꿈은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곡식단에 절을 했다는 꿈과 해와 달과 열 한개의 별이 요셉에게 절을 했다는 꿈입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더욱 요셉을 미워하게 되었지만, 족장 야곱은 그 이야기를 마음에 두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꿈을 무산시키려고, 요셉을 제거하려고 했고, 결국은 동생을 노예로 팔았습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됩니다. 

꿈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길이 있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길이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환경이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좋은 환경은 좋은 환경대로 역경은 역경대로 이용하는 법입니다. 꿈은 인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 나가는 나침반이 됩니다. 꿈이 인생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표준이 됩니다. 

꿈을 이루어 가는 길은 멀고 험합니다. 누구든지 낙심하지 않고, 꾸준히 가노라면,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은 십 칠세 때입니다. 그리고 꿈이 이루어진 것은 십 삼년 후인, 요셉의 나이 서른 살때입니다.  “빨리 뛰는 토끼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길로 가야만 합니다. 처지는 것 같더라도 정확하게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늦을지라도 끝까지 변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도 없고, 흉내 낼 필요도 없습니다. 

요셉의 고난은 적당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넓은 이집트 땅에서 놀랍게도 파라오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다가, 그 집에서 집사장까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요셉은 소망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입니다. 보디발의 집의 집사장이 되었지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사단의 세력은 이처럼 잠시도 하나님의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낙심하게 만들고, 실족하게 만듭니다. 주님 마님의 유혹을 거절한 결과 강간미수범으로 몰려서 옥살이를 합니다. 요셉은 2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환경을 당하면 얼굴이 찌푸려지고, 마음이 찌그러지고, 인격이 찌그러집니다. 반면에 같은 환경 속에서도 밝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에 꿈이 있는 사람과 꿈이 없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요셉이 당한 역경을 보세요,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그것이 저주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버리셨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역경 속에서도 여일하게 하나님을 모시고 갔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동행을 했기 때문에 다른 이가 볼 때, ‘저 사람이 저렇게 잘되나’라고, 부러워할 만큼 남을 복 받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목조 건물은 지붕을 떠받치는 서까래가 있고, 집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 있는데, 서까래는 한두 개 빠져도 건물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 그렇지 견딥니다. 하지만 기둥이 빠지면 당장 집이 무너집니다. 아람드리 나무를 깎아서 서까래를 만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람드리 나무는 다듬어서 기둥으로 사용합니다. 아람드리 나무의 특징은 오랜 세월동안 온갖 풍상을 견딘 마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8:16-17절에서 말하기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요셉의 생애는 복을 누리기 전에, 먼저 고난의 과정을 통과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스케줄을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요셉의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토 아무리 어렵고 혼란스러워도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스케줄만을 따라서 살고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4) 요셉은 미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시킨 사람입니다.

열 일곱 살 소년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다가, 말씀을 읽다가, 듣다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절대로 파기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신실한 신자가 꿈을 가지고 날마다 보람 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과 대화의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렘 33:3절에서 예언하기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삶의 의욕이 있고, 열정이 있고, 뜨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영안이 열린 삶을 감당하고자 노력하고 기도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족장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는 분명한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꿈이 금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꿈을 이루는 과정이 평탄하지도 않았습니다. 
십 삼년 간의 기다림의 시간은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요셉은 꿈이 있었기에, 시련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요셉을 도와주셨습니다.(아멘) 
    
여러분에게는 각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통해서, 성경공부를 통해서, 꿈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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