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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족하는 은혜 (빌 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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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하는 은혜 (빌 4:10-20)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 나는 작아지고 상대방은 커집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 나는 중요하지 않고 상대방이 중요해집니다.

옛날 가난할 때 흉년이 들면 이런 말을 했답니다.
“아이들은 배가 터져 죽고 어른들은 배가 고파 죽는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배고플까 봐 자기 먹을 것까지 자꾸 먹이는 바람에 자식들은 과식을 하게 됩니다.
대신 부모들은 굶게 됩니다.
그래서 흉년이 들면 아이들은 배가 터져죽고 어른들은 배가 고파죽는다는 거지요. 
사랑하면 그렇게 된다는 거지요.

바울 사도는 에바브로 디도 편으로 보낸 빌립보 교우들의 헌금을 받아들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함은!’(빌4:10)
그래서 본문을 읽고 묵상하다보면 그 위대한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우들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빌립보 교우들의 사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배경설명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빌립보 교우들은 몇 차례 바울 사도에게 선교헌금을 보낸 후 한동안 그 일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빌립보교회의 지도자인 에바브로 디도를 옥중에 있는 바울 사도에게 보내면서 헌금을 다시 보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일을 “이제 다시 싹이 났다.(10절)”고 표현했습니다.

겨울 내내 얼어붙은 대지에 봄이 되면 다시 싹이 나오듯이 빌립보 교우들의 바울 사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일어났다는 말이지요. 
바울 사도는 진심으로 빌립보 교우들의 사랑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손상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1-13절에 다음과 같이 간증하고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성도들의 삶에서 너무도 중요한, 금싸라기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1. 바울 사도의 간증

이제 그의 간증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11-12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자족’이라고 번역된 희랍어 ‘아우타르케스’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대명사 ‘아우토스’와 ‘넉넉하다’를 나타내는 동사 ‘아르케오’의 합성어로서 ‘자기 스스로 충분히 만족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환경에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태도를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없어도 비굴하지 않았고, 있어도 교만하지 않았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 행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체포되어 매를 맞고 차꼬에 발을 묶인 채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환경을 따져보면 두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천성적으로 활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꼼짝 못하게 옥에 가둬놨으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했습니다.
행16: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바울 사도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여러분, 비천할 때 자족하기 어려울까요? 아니면 풍부할 때 자족하기 어려울까요?
언뜻 생각하면 비천할 때 자족하기 어렵고, 풍부할 때 자족할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둘 다 어렵습니다.

당장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가 없는데 자족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일을 당할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짜증내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할 때 자족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이만하면 됐지!’라고 자족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능력이 안 되어서 포기할 뿐이지 다들 숨이 넘어갈 때까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갑니다.
바울 사도는 가난하다고 침체되지 않았고, 부하다고 들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내가 잠이 너무 많아 불만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밥을 얻어먹고 출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잠이 많은 아내는 남편보다 항상 늦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에 사는 어느 부인이 불면증으로 입원을 하더랍니다.
이것을 본 남편은 ‘불면증보다는 잠 많은 편이 차라리 낫구나.’하고 생각을 고쳐먹고 자족했다는 거지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족하시길 축원합니다.
바울 사도처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막9:23절의 말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와 함께 성도들의 담대한 신앙생활을 고백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의 뜻을 바로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내게 계속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 있어 나는 강하다.’입니다.
바울 사도가 하려고 하는 말은, 자기 힘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 때에도 싸이지 않았음을 고백했습니다.
고후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약할 때에도 강할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어떤 학자는 이것을 일종의 영적 수혈을 받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피를 많이 흘리고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빈혈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하늘이 노래지고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영적인 빈혈상태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수혈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 사도에게 해 주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백합니다.
“나는 정말 연약하다. 기운도 빠지고, ‘번 아웉’ 되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이 힘을 불어 넣어주시는 것을 느낀다. 그는 내 상태와 형편을 아신다. 내 필요를 정확히 아신다. 오! 그가 얼마나 넘치게 공급해주시는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바울 사도의 고백,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가 여러분의 담대한 고백이 되길 축원합니다.

2. 빌립보 교우들의 헌금의 의미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우들이 드린 헌금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1) 헌금은 하나님이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이다.

18절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 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립보 교우들의 헌금은 바울 사도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감리교 세계선교협의회’ 모임이 강서구 성현교회에서 있었습니다.
담임목사이신 이영태 목사님의 간증이 저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신월동에 개척을 해서 상가 건물을 4억 5천만 원 은행대출을 받아 매입했습니다.
그 당시 은행에서 각 가정 당 300만원씩 가계대출해주는 제도가 있어 전교인이 300만원씩 대출을 받았습니다.

매달 500만 원 정도 이자를 갚는데 너무 힘이 들더랍니다.
교우들이 한 달 애써 헌금하면 몽땅 이자로 나가고........
그 와중에 선교지 필리핀에서 교회건축에 대한 협조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선교이니까 5억 가까이 빚이 있지만 3,800만 원 들여 필리핀교회 성전건축을 완료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싹싹 쓸어 봉헌했답니다.

성전봉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네가 나를 기쁘게 했다.”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인천 공항에 올 때까지 눈물을 펑펑 쏟았답니다.
교회에 돌아왔습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5억 빚이 없어진 것은 아니잖아요.
그 해 가을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하는데 그 21일 동안 4억 5천만 원의 헌금이 들어오더라는 거지요.

별일이 다 일어나더랍니다.
알지도 못하는 어떤 집사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갖다 주라고 해서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2천만 원을 헌금하고 갔습니다.
결국 선교지 필리핀 교회를 짓고 5억 원의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 체험 후 그 분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선교에 매진한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자. 그게 우선이다. 그러면 다른 걱정거리는 잽도 되지 않는다.”
“선교하는 일에 있어서 결코 공짜가 없더라.”
헌금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3) 헌금은 놀라운 투자이다. 

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헌금은 놀라운 투자라는 말은 조심해서 말해야할 헌금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울 사도가 아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원리이며, 성경에 일관되게 흐르는 헌금의 원리입니다.
잠19:17절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헌금은 하나님이 상환하실 원금과 이자를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이랍니다.
겉보기에는 남에게 베풀어 준 것 같지만 사실은 신비하고 놀랍게도 본인을 위해 재물을 쌓는 일이 된다고 말합니다.
시37:25절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려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 모든 쓸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필요(need)'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욕심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허영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필요를 너무도 잘 아시고 그것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본문을 해석하면서 ‘천국은행’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은행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OK' 결재를 하시면 다 된 것이 아닙니까?
누가 그 결재를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아멘.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이 찬송은 여류 맹인 작가인 ‘화니 제인 크로스비(F.J. Crosby:1820-1915)'가 작사한 것입니다.
이 찬송 가사를 작시하게 된 작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5불이 곡 필요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적은 금액이지요?
우리도 단돈 1원이 없을 때가 있잖아요?

찬송시를 쓰려고 묵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크로스비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혼을 축복하시길!”라고 인사하면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낯선 손님은 크로스비와 악수를 하면서 손에 무엇인가를 쥐어주고 말없이 돌아갔습니다.

손을 펴보니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요청한 5불이었습니다. 
너무 이상하잖아요? 
너무 신기하잖아요?
방안을 서성거리며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하면서 혼잣말을 되뇌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삶을 뒤돌아보니 하나님은 그를 늘 그렇게 대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정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섬세하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정확하신 하나님, 섬세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하면서 펜을 들어 써내려간 내용이 본 찬송가입니다.

1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2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주시네.
3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십시오.
주님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여러분에게 힘을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2) 먼저 하나님의 기쁨이 되려고 애쓰십시오. 
그러면 다른 걱정거리는 잽도 되지 않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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