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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땅에 계신 그리스도 (엡 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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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계신 그리스도 (엡 1:22-23)


이솝 우화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강아지와 당나귀가 한집에 살고 있었는데, 당나귀가 보기에는 주인은 유독 강아지만 사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나귀는 “왜 주인은 강아지만 사랑할까?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강아지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강아지는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면 꼬리를 치면서 주인에게 안기거나 뛰어 올라 주인을 핥아가며 반가워했습니다. “바로 저거구나” 하고 당나귀는 다음날 주인이 밖에서 돌아오자 우리를 뛰어 넘어 주인 앞으로 달려가 팔짝팔짝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주인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재롱을 부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칭찬하기는커녕 기둥으로 끌고 가더니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회초리로 마구 때렸습니다. 

자신의 본문 즉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은 당나귀와 같습니다. 강아지가 할 일이 있고, 당나귀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 법입니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고,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은 소중한 삶의 지혜입니다. 엉뚱한 일에 정신이 팔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거나 당나귀처럼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면 칭찬이 아닌 화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사상가요 법률가인 칼 힐티(Carl Hilty)라는 사람은 말하기를“내 인생의 최고의 날은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사명을 위해 살면서 사명을 성취하고, 사명을 위해 죽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는 보람된 삶의 발자취를 남깁니다. 후손들의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명은 행복의 절정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깨닫고 이를 위해 헌신하며, 하나하나 성취해 나갈 때, 때로는 시련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그는 기뻐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백낙준 박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기를“평생 몸 바쳐 일할 것과 평생 몸 바쳐 일할 장소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평생 몸 바쳐 일할 것과 평생 몸 바쳐 일할 장소가 있습니다. 평생 몸 바쳐 해야 할 일은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증거입니다. 평생 몸 바쳐 일할 장소, 그곳은 교회입니다. 생명을 바쳐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고, 세상 떠나는 날까지 함께 울고 웃을 곳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는 참된 신앙생활의 지름길입니다.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는 지름길입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1. 교회는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신앙공동체입니다. 

본문 23절에“교회는 그의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현재 이 땅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도“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교회를 가리켜“교회는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존 칼빈은 말하기를“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 불효하는 못된 신자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함부로 비판하고, 비난하고, 분열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4절에 예수님께서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을 향해“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울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교회를 박해했을 뿐입니다. 

교회를 박해한 사울의 행적을 사도행전 8장 3절에 기록하기를“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교회를 박해한 사울을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교회 박해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자신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 칼빈이 말한“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다.”라는 말은 교회에 대한 아주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공동체입니다. 

본문 23절에“교회는 그의 몸이니...”라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뜻을 실현하는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영혼구원입니다. 민족복음화입니다. 세계선교입니다. 영혼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에 대하여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죄악의 물결에 휩싸여 죽어가는 불신영혼들을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공동체입니다. 교회를 통해 불신 영혼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습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험한 세상을 이길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령 씨가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에서 그는 교회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교회에 가는가라고 비난조로 묻는 사람들이 있지요. “당신은 지성인인데 집에서 찬송가 부르고 성서 읽고 기도하면서 책 읽으면 되지 무엇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서 예수 믿는 티를 내느냐?”는 겁니다. 그럴 때 제가 하는 말이 있죠.
“배가 고프면 어디에 가지?”“식당에.”
“뭔가 알고 싶을 때는 어디에 가지?”“도서관 가면 되지.”
“심심하면 어디에 가지?”“극장가서 영화 보면 돼.”
“몸이 아프면 어디에 가지?”“병원에 가지.”
“그럼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갈증 나고, 놀아도 심심하고, 배워도 답답하면, 어디를 가나?”“그건 뭔데?”
“배고픈 것처럼, 갈증나는 것처럼, 영혼이 굶주려 있을 때 말이야.”
그러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그런 때 가는 곳이 교회란 말이야!”

그러면 또 교회에 대한 욕을 합니다. 싸우고 소송하고 사교 같은 이상한 짓을 한다는 교회를 예를 들어 그런데 왜 가느냐고 합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식당이라고 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던가? 병원 간다고 다 의사가 명의라 병이 낫던가? 극장가면 꼭 재미있는 명화만 보여주던가? 그래도 배고프면 식당을 찾고, 병나면 병원 가드시, 모든 교회가 다 탈속하고 영적인 것은 아니지만 역시 영혼이 메마른 사람이 찾아갈 곳은 교회가 아닌가? 부패한 교회가 있다고 해서 교회를 가지 말라는 것은 병원 의사가 오진하여 죽었으니 앞으로 병이 나도 병원 가지 말라는 말과 같은 거지.”

그리고 시편 42장 1절~3절까지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이 갈급함이 없는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영원히 감상할 수 없을 겁니다. 사슴이 목마를 때 골짜기에서 간절히 물을 찾듯이 우리는 영혼의 목마름을 적시기 위해서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종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때로는 조롱까지 하지요. 그때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이 시에서는 눈물로 화답합니다.“주야로 흘리는 내 눈물”이 나의 양식, 나의 음식이 된다는 것이지요. 눈물 속에서 영혼이 그렇게 자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완전한 교회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 완전한 교회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까닭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첫 교회를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는 성미가 급하고 배운 것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명예와 권세의 야망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는 부당한 세금 갈취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같이 허물과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구원의 거룩한 역사를 맡기셨습니다. 

신약성경가운데 편지 형식으로 쓰여 진 성경이 여럿 있습니다. 고린도전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에베소소서, 빌립보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등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성경이 쓰여 진 동기는 모두가 문제 있는 교회, 말썽 많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쓰여 진 것입니다. 교회란 이렇게 불완전한 인간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로 알려진 새들백교회 릭워렌 목사는 말하기를“하나님은 비범한 역사를 위해 평범한 사람을 사용하신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란 비록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3. 교회는 세상을 풍성하게 하는 축복공동체입니다. 

본문 23절에“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세상을 위한 축복공동체라는 뜻입니다. 본문 22절에 보면“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아래에서 그리스도께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물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밝히는 교회의 위치가 어디입니까?“만물 위에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왜 교회가 축복의 근원일까요?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주의 몸이고,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주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축복하시고, 그 축복이 가득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축복의 근원인 것입니다. 

시편 122편 6절~9절 말씀에“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즉 교회를 사랑하면 형통하고, 교회를 사랑하면 평안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이유는“하나님의 집”즉 교회를 위해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소중한 삶의 진리를 설명하고자 기록된 성경이 구약성경가운데 역대상하서입니다. 성전을 중심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을 때에는 반드시 나라가 흥왕한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기록된 성경이 역대상하서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명저 <역사의 연구>에서 말하기를“성경은 인류의 모든 문화와 문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교회는 인류의 모든 문화와 문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학자가 인류역사를 비교분석하여 교회가 부흥될 때에 나라도 부흥되고 안정되었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오늘 미국이 세계리더국가가 된 것은 교회를 먼저 사랑하는 청교도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는 한국역사에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를 아편으로 여겨 교회를 없이했던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이 허물어졌는데도 교회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구약성경 학개서 1장 6절~11절 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대해 무관심하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성전에 대한 무관심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경고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성을 다해 허물어진 성전을 복원시켰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시 선지자 학개에게 말씀하시를“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개 2:19)하셨습니다. 성전은 축복의 기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면 개인이 살고, 가정이 복을 받고, 민족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인 존 와나메이커는 초등학교밖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남달리 교회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훗날 그는 크게 성공하여 미국의 백화점 왕이 되었고, 체신부 장관까지 지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은 재산으로 교육사업과 사회사업에 투자를 했고, YMCA를 창설하여 온 세계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며 헌금과 구제와 봉사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절대 의무이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로서 헌금과 구제와 봉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존 와나메이커가 중국에 시찰을 갔을 때, 어느 시골에서 밭을 가는 농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쟁기를 보니까 왼편에는 소가 끌고, 오른편에는 청년이 끄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상한 광경을 본 와나메이커는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왜 사람이 소와 함께 밭을 갈게 합니까? 그 청년이 힘들어 견디겠소?”그러자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저 청년은 내 아들입니다. 

내 아들은 예수를 잘 믿는 주일학교 교사인데 작년에 저기 보이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소 한 마리를 팔아 예배당에 건축헌금을 하고 자신이 소를 대신하여 밭을 갈기로 약속했습니다.” 마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걸어가시던 주님처럼 그 청년은 소와 함께 멍에를 메고 자신의 약속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와나메이커는 크게 감동을 받고 그 청년을 미국으로 데리고 와서 신학공부를 시켰습니다. 그가 바로 중국 복음화의 기수인 성문삼 목사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현존하시는 신앙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풍성하게 하는 축복공동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이외에 세상 그 어디에서 이런 복된 곳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 말고 세상 어디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병든 영혼이 회복되며, 개인과 민족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때론 그리스도인들의 미성숙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교회답지 못한 교회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교회 이외에 달리 어디에 이러한 복된 처소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이외에는 해답이 없습니다. 교회 이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어렵고 힘들지라도, 때로는 절망스러워 보일지라도, 교회다운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일에 힘을 보태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통해 영혼구원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에 동참하는 성도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시편 122편 6절~9절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예루살렘을(교회를)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몸인 교회를 내 몸처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이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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