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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이 땅을 고치소서! (대하 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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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이 땅을 고치소서! (대하 7:11-16)


요즘 주말농장이 인기가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메마른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흙을 밟고, 농사를 지어보는 재미를 즐깁니다. 얼마 전에 성도 한분이 주일에 교회를 나오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막상 심방을 가서 들은 이야기는 집사님이 가꾸고 있는 텃밭 때문에 교회를 못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텃밭이 원래는 돌이 있는 버려진 땅이었는데 돌을 골라내고, 땅을 파고, 거름을 주어서 옥토로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온갖 야채를 심었습니다. 

각종 채소들이 너무나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텃밭을 자랑하는 집사님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보시지만 텃밭 옆에 버려진 땅을 볼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다가 힘이 들었는지 포기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돌맹이가 굴러다니고, 온갖 잡초들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똑같은 땅이라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주인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고, 반대로 염려와 근심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농사가 잘되느냐 안되느냐는 바로 땅에 달려 있습니다. 

땅이 비옥하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서 추수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농부는 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봄철에 농부가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땅을 갈아엎는 일입니다. 그것을 기경(起耕-일어날 기, 밭갈경)이라고 합니다. 땅이 딱딱하면 씨앗이 자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쟁기나 트랙터를 가지고 땅을 갈아엎습니다. 그래야 땅속 깊은 곳까지 산소가 공급되고, 흙이 부드러워집니다. 부드러운 흙에 씨앗을 심어야 싹이 나고,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땅을 갈아엎으라는 것입니다. 기경하라는 것입니다. 갈아엎으라(break up), 파서 일구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완악해지고 죄악과 욕심의 잡초가 무성하니 완전히 갈아엎으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 3가지를 제시합니다. 1) 악한 길에서 떠나라 2) 스스로 낮추어 기도하라 3)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번 런던 올림픽을 보시면 알지만, 영국을 위시한 유럽의 나라들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스위스,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페인 등 다 기독교 국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몇 천 년 동안 축복받은 민족이 몇 십 년 전부터 영적으로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렀습니다. 

지금 유럽은 얼마나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금융위기로 인해 도산에 직면한 나라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모든 면에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저들이 교회를 귀히 여기고 기도를 귀히 여겨야 하는데 교회는 텅텅 비고, 축구경기장에는 함성이 진동하는데 기도소리는 모기소리보다 못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유럽은 병에 걸렸습니다. 유럽의 병이 지금 세계적인 재난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파는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금한국 교회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교회의 성장은 멈췄고,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타종교와 이단의 공격은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넘어뜨리는 세력들이 너무 많이 한국 교회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교회가 잠들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전에는 미신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은 본인들이 아주 부끄러워했습니다. 자기들도 아주 사람이 하면 안 될 짓을 하고 있다고 모두 스스로 그렇게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당하게 아주 이름을 바꿔서 당당하게 나왔습니다. 온 나라가 무당 데려다 굿하고 점하고 사주팔자, 관상 오늘 이렇게 나라가 영적으로 어지러워지고 혼탁해졌습니다. 한국 교회가 잠들어 있는 사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종자연(종교자유 정책연구원)’이라는 단체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조금만 잘못을 저질러도 적극적으로 공격해 옵니다. 이들은 시민단체를 표방하여 1999년 설립된 참여불교 재가연대 산하 기간입니다. 2005년 대광고 강의석 사건을 시작으로 미션스쿨 내에 종교 교육은 물론 사랑의 교회 건축, 교회 내 투표소 설치, 기도 세레머니, 고려은단 광고판에 이르기까지 200여 차례 논평과 기자 회견, 캠페인 등을 이용해 한국 교회를 무차별로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종교에 의한 차별 실태와 개선 방안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과정 속에서 기독교 학교 내에서의 종교자유 보장을 주장하여 기독교 학교의 설립 이념을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 소환, 국가 조찬기도회 및 각종 조찬기도회에 공직자들의 참여를 금지하는 법안 제정을 촉구하는 등 반기독교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기에 대해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성장만을 중시하다 성숙이라는 이 신앙의 핵심을 놓쳐 버렸습니다. 혹시 주전자 속의 개구리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조지 바나’라는 분이 쓴 책 중에 “주전자속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주전자속에 미지근한 물을 넣고 개구리를 집어넣은 다음 서서히 열을 가하면 개구리는 자기가 죽는 것도 모르고 기분 좋게 천천히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것, 이것은 정말 심각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저는 오늘 이 시대가 겪는 가장 커다란 위기가 바로 풍요 속에 젖어 있어서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랗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주여! 이 땅을 고쳐 주옵소서!! 주여 내 마음 밭을 이 묵은 땅을 고쳐 주옵소서!! 여러분, 오늘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도 세계도 경제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외에 정치위기 안보위기 등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만 보고 위기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헛다리짚는 겁니다. 오늘 이 시대의 근본 위기는 경제 위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 정말로 큰 위기는 영적 위기입니다. 개인의 차원이든, 나라의 차원이든 모든 문제들은 영적인 차원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의 상태가 만사를 결정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배경은 성전 낙성식을 하는 장면입니다. 성전 낙성식때 솔로몬이 기도를 하니까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했다고 7장 1절에서 그 분위기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세운 성전을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받으실 곳으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번제물 그리고 제물들을 살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 주십니다. 감격의 사건, 감격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 배려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아 비가 내리지 않게 하거나, 메뚜기 때를 보내서 온 땅에 남김 없이 갉아먹게 하거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려 보내거든, 다시 말하면, 땅이 황폐가 되거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닫고, 메뚜기 때를 보내서 온 땅을 남김없이 갉아먹어 기갈에 처하게 하고,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려 보내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들에게 적용시키면, 이 땅이 이렇게 황폐되었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황무케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전 낙성식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번제물을 살라 주셨습니다.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게 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순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전 낙성식때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바라봤던 태도가 달라지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게 되고, 그렇게 될 때 땅은 황폐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14절의 말씀처럼 회개해야 합니다. 1) 악한 길에서 떠나라 2) 스스로 낮추어 기도하라 3)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내 삶의 밭을 갈아엎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갈아엎을 수 있을까요? 렘23;29절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 하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마치 방망이 같습니다. 완악한 마음을 깨뜨려야 합니다. 마치 불과 같습니다. 마음을 녹여 새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 마음을 바꾸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깨뜨리십니다. 성령을 통해 녹여 주십니다.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죄성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경계해야 됩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 속의 죄악을 찾아내고 깨뜨리고 녹여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이런 영적 싸움이 매일 계속되어야 겨우 우리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시대가 악하기 때문에 이런 싸움을 더욱 치열하게 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이런 경계심을 갖지 않고 대충 살아가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해지기 쉬운지 모릅니다. 스펄전 목사는 심지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5분만 방치하면 마귀 만드는 공장이 되고 만다.” 위대한 설교자요 신앙인이었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자기 안에도 그런 속성이 있음을 고백한 겁니다.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습니다. 조심하고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여기 이런 우리의 변화가 일어날 때 14절 하반절에 하나님 앞에 나와 진정한 회개의 기도가 일어날 때, 세 가지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땅을 고칠지라" 첫 번째로 듣고 입니다. 두 번째로 죄를 사하고, 세 번째로 그 땅을 고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십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땅을 고쳐주십니다. 회복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우리가 오늘의 이 민족의 아픔을 보고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는 이 문제를 가슴 깊이 통증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기 힘을 믿던지, 자기 돈을 믿던지, 자기 경험이나 지식을 믿던지 해서 하나님께 기댈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척척 다 해낼 수 있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바쁘게 삽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회복입니다. 회개를 통한 회복이 중요합니다. 지금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사업 때문에, 질병 때문에, 관계 때문에 삶에 아픔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징계인가 판단해보십시오. 생각해 보세요. 왜 13절의 일이 일어납니까?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 같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저들의 위기를 만나도 위기로 모르는 그 어리석음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앞에서 조심해야 할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징계를 경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계속 죄에 머무르다가 징계를 받아도 이를 가볍게 여기고 여전히 제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신약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금방 내려왔지만,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징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날 소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회초리를 드시는 것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징조를 보아도 그냥 '어쩌다가 일어난 일이겠지. 오늘 재수가 없었나봐. 남들도 다 당하는 일인데 뭐' 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어리석고 멸망을 자초하는 삶입니다. 

두 번째 조심해야 할 태도는 낙심입니다. 징계를 가벼이 여기는 것도 잘못지만 낙심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려움이 올 때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임을 압니다. 문제는 그 목적과 의도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저 징계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낙심합니다. 

평생을 지내면서 하나님께 한 번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잘나서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일까요? 천만에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만 봐도 그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사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가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징계를 받을 때 낙심해도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 니다. 

히 12:5-8절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부모에게 늘 근심거리인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무절제하고 방탕하게 살다가 네 번이나 경찰에 입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끈질긴 기도 덕분에 마침내 주님께 돌아와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이 시대의 믿음의 거장, 네비게이토를 창설한 ‘도슨 트로트맨’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와서 정말 정말 엄청난 집회를 인도했던 프랭클린 그레이엄 역시 하나님 곁을 떠나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버지 빌리 그레이엄의 근심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여행 도중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산산 조각난 제 삶을 다시 묶어 주신다면 평생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아버지 못지않게 복음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 그냥 주저앉으신 분이 계십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운명이려니 하고 그렇게 살겠습니까? 아니면 다시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다시 주신 사명 감당하시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간은 그 누구라도 불구하고 저 전능하신 여호와의 손길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한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 그렇습니다 다 괜찮은 모습으로 앉아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 상처가 있어요, 질 그릇 같은 연약함이 있습니다. 

이 시간,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 힘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장벽이 있다고 할지라도 기도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 장벽이 무너집니다. 기억할 것은 응답 받는 기도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걸어가면서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도 하고 누워서도 한다는 그런 한가한 기도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그런 식으로 기도하다가 응답 받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사실 기도의 자리를 나가기가 선뜻 그렇게 쉬운 것만이 아닙니다. 왜일까요? 

기도의 자리는 영적인 전쟁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을 피하면 평생을 살아도 영적인 풍요를 한번 누리지 못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한 번만이라도 승리하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이 민족 사랑하십니다. 이 백성을 통해 하실 일이 있습니다. 이제 좀 살만하다고 하나님 멀리하지 마십시오. 더 가까이 나와 무릎을 드리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이 무더운 여름 산과 들로 바다로만 갈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겸손하게 내려 놓고 기도의 밀실을 자주 찾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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