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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드락 땅에 임한 경고 (슥 9: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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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락 땅에 임한 경고 (슥 9:1-10 )

이 세상에는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강한 나라도 있고 약한 나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과연 무엇이 진짜 강한 것인가에 대해 혼동이 올 때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10). 

바울은 자신이 약한 것이 실제로는 강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강한 것이 사실은 약한 것이고 약한 것이 사실은 강한 것이라고 하니 혼동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까지 살펴본 스가랴 1~8장은 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묵시적입니다. 그런데 스가랴 9~14장은 시적인 서술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가랴서 전반부와 후반부의 문장 기록형태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스가랴 1~8장을 기록한 사람과 9~14장을 기록한 사람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실 때는 묵시형태로 주실 수도 있고 서술형태로 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묵시형태로 주시면 묵시로 기록하고 서술형태로 주시면 서술로 기록하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이기 때문에 문장의 기록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기록자가 다르다고 보는 것은 논리가 빈약한 것입니다. 

어떤 문장형태로 기록되었든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마

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물어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마 13:10).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마 13:11).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들도 가끔 만나면 성경을 읽고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깨달으려면 우선 믿고 순종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깨달아봐야 괜히 아는 척만 하고 더 교만해져서 믿음을 갖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스가랴 9장 1절은 오늘 말씀의 표제어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슥 9:1). 그런데 스가랴 12장 1절에도 이와 비슷한 경고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슥 12:1).

스가랴 9장 1절은 경고의 대상이 하드락 땅이고 스가랴 12장 1절은 이스라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드락 땅이 일단 어딘지는 잘 몰라도 이방 나라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8~14장은 스가랴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이방 나라와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여기서 경고라는 말은 영어로 ‘warning’이 아니라 ‘burden’(부담, 짐)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이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Ⅰ. ‘하드락 땅’이란 무슨 의미인가? 

스가랴 9장 1~10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단어는 ‘하드락 땅’입니다. 하드락 땅은 스가랴 9장 1절에서 단 한 번 나옵니다. 이 지명은 다른 성경이나 문헌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주석들을 참조해보니까 하드락 땅을 대부분 시리아에 있는 한 도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첫째, 하드락 땅이라는 지명이 성경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 하드락 땅의 정확한 위치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드락의 어원적 의미를 정확하게 밝힌 사람은 A.D. 4~5세기에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Jerome)이라는 사람입니다. 제롬이 번역한 성경을 벌게이트(Vulgate)라고 합니다. 제롬이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라틴어는 그 위상이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헬라어가 지배적인 언어였는데 벌게이트가 나오면서 라틴어가 중요한 언어로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라틴어가 현재 영어, 독일어, 불어 같은 언어의 기원이 라틴어가 된 것입니다. 

제롬의 견해에 따르면 하드락이라는 단어는 스가랴 선지자가 만들어 낸 상징적인 언어라는 것입니다. ‘하드’는 ‘strong’(강한)이란 뜻이고 ‘락’은 ‘weak’(약한)이란 뜻으로 결국 ‘하드락’은 강하면서도 약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드락은 세 가지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강하면서도 약한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강한 자는 약해질 것이고 약한 자는 강해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셋째,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약한 분이지만 강한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세 가지 의미가 하드락에 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하던 시대는 B.C. 520~518년인데 이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나라는 “메대와 바사”입니다. 바벨론 마지막 왕인 벨사살은 선왕인 느부갓네살이 가지고 온 성전그릇을 가지고 술을 마시는데 담벼락에 글자가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결국 바벨론은 메대 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그런데 메대 바사는 페르시아와 메대 연합군을 의미하는데 페르시아가 메대보다 더 강했습니다.

다니엘 7장 5절을 보면 바다에서 나온 짐승 넷이 있는데 그 가운데 두 번째 짐승이 곰이라고 했습니다. 이 곰은 어깨가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어깨가 기울어진 곰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메대 바사입니다. 어깨가 올라간 쪽은 힘이 강한 페르시아이고 어깨가 내려간 쪽은 힘이 약한 메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다니엘 8장 3절을 보면 강가에 두 뿔을 가진 수양이 섰는데 한 뿔은 크고 다른 뿔은 작았습니다. 큰 뿔은 페르시아를 의미하고 작은 뿔은 메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드락이 의미하는 강하고도 약한 나라는 메대와 파사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스가랴 선지자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메대 바사를 향해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언하는 사람들이 현재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이나 나라를 향해서는 은밀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메대 바사가 망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하드락 땅에 심판이 임하는 경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메대 바사는 결국 B.C. 333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젊은 나이에 죽고 그의 네 장군들이 나라를 나눠서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메대 바사는 강했지만 그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들을 멸망시키고 결국 약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가 강하고 믿는 사람이 약해도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를 끌어내려 약하게 만드시고 약한 자는 높여서 강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드락이라는 것은 우리가 약해도 기죽지 말라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강하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매우 약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에 나가보면 모니터 상표 대부분이 LG입니다. 그리고 길거리 간판에는 삼성로고가 크게 붙어 있습니다. 자동차도 이제는 현대 자동차를 길거리를 누비고 다닙니다. 벤츠나 BMW와 같은 독일 자동차를 제외하면 한국 자동차가 세계적으로 알아줍니다. 

이제는 외국에 나가서 괜히 모르는 영어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터키나 중국에 가보면 시장상인들이 한국말을 정말 잘합니다. 약했던 나라가 복음을 받아들이자 하나님께서 강한 나라가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전에 강했던 러시아나 이집트도 요즘은 많이 약해졌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몇 개 못 따지 않았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이 이끌던 그리스도 복지를 한다고 하더니 결국 경제가 무너져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강한 자는 낮추시고 약한 자는 높이십니다. 그런데 아무나 높이시는 것이 아니라 약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 있는 자를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Ⅱ. 강한 자는 약해지고 약한 자는 강해진 구체적인 예 

스가랴 9장 1~8절까지는 그 실제적인 예를 말하고 있습니다. 메대 바사의 지배 아래 있던 이스라엘 주변 세 나라가 있는데 시리아(Syria), 페니키아(Phoenicia), 블레셋(Philistine)입니다. 

시리아의 중요한 도시는 다메섹과 하맛인데 다메섹은 시리아의 수도이고 하맛은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국경지대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다메섹과 하맛이 지금은 번창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너희를 약하게 만드실 것이고 너희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페니키아는 이스라엘 서북쪽의 지중해에 붙어있는 나라입니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두로와 시돈이라는 유명한 도시국가를 건설했는데 이 사람들이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은즉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지라” (슥 9:2~4) 

페니키아는 얼마나 놀라운 나라인지 지혜가 많아서 무역을 통해 은을 티끌같이 벌고 정금을 거리에 진흙같이 쌓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로는 자기를 위해 보장을 세웠다고 나와 있는데 큰 요새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원래 두로가 지중해 연안에 붙어있었는데 침략을 많이 당하니까 지중해 한 가운데 있는 섬을 사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높은 성벽을 쌓고 신두로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은 배가 없으면 공격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 것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이곳은 멸망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배가 없으니까 육지에서부터 흙으로 길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성벽 앞에다가 성벽보다 더 높게 흙으로 담을 쌓아 공격하여 B.C. 333년에 그곳에 살던 1만 명을 죽이고 3만 명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페니키아는 아프리카 북부에 카르타고라는 도시도 만들었습니다. 카르타고에는 한니발이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B.C. 3세기에 일어난 포에니전쟁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게 알프스산을 넘어 로마를 압박했던 유명한 장군입니다. 그런 장군이 있던 나라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가랴 9장 5절 이하에는 블레셋 도시들이 나옵니다. 아스글론, 가사, 에글론, 아스돗 이 네 도시들이 항상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도덕적으로 부패시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알렉산더 대왕을 보내 그들에게서 임금을 제하여 버리고 거민들을 사라지게 하고 잡족이 거하는 도시가 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블레셋은 망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가고 그 땅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시리아도 망하고 페니키아도 망하고 블레셋도 망했습니다. 강한 나라들이였지만 하나님께서 알렉산더 대왕을 보내 모두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못살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올림픽에 나가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우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이 강한 나라가 되었느냐? 바로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는 약해지고 약한 자는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슥 9:8). 

알렉산더 대왕이 B.C. 333년에 예루살렘을 침공했겠습니까? 하지 않았겠습니까? 침공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침공하려 했던 알렉산더 대왕에게 대제사장이 제사장복을 입고 알현한 것입니다.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에게 와서 절을 하며 여호와를 섬기는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하자 예루살렘을 그냥 지나갔다고 요세푸스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는 약하지만 하나님께서 강하게 해주셨고 메대 바사는 강했지만 약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Ⅲ. 메시야는 약하나 강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겉으로 보면 약한 분이시지만 사실은 강한 분이십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슥 9:9) 

마태복음 21장 1~1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흔들며 옷을 길거리에 깔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가랴 9장 9절의 내용이 마태복음 21장에서 문자 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결국 스가랴 9장 9절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국가의 어느 왕이 나귀를 타고 다닙니까? 왕들은 말 중에서도 준마를 타고 다니지 나귀를 타고 다니는 왕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매우 약해보이는 존재로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메시야는 약해보여도 약한 분이 아닙니다.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슥 9:10). 당나귀 타고 들어가는 예수님 앞에 칼도 물러가고 병거도 물러가며 활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 세계적이고 범우주적인 통치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교회만큼 큰 나라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만큼 큰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약해보이고 목사들이 약해보여도 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다에서 바다 끝까지 통치하는 참된 왕이시고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분은 무기를 가지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복음을 가지고 정복하시는데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슥 9:10). 

심지어는 블레셋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슥 9:6~7). 여부스 사람은 원래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민족인데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이스라엘에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성전을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세웠다고 나옵니다. 약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메시야가 약한 모습으로 오신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론 

오늘날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강해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은 약해보입니다. 하지만 참된 진리는 하드락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대적하는 강한 자를 끌어내릴 것이고 당신을 섬기는 약한 자를 높이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렇게 강한 자가 약해지고 약한 자가 강해지는 표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흥하고 망하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능력을 힘입는 자는 약해도 강해지고 가난해도 부자가 될 것입니다. 또한 병들어도 건강해지며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죽겠지만 다시 생명의 부활을 하여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숭배를 하며 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지금 아무리 강해도 조금 있으면 죽을 것이고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간의 참된 강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약하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강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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