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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는 자의 복 (행 20: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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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자의 복 (행 20:25-38)


내 용 

바울 사도는 그의 선교 일정에서 아주 확실히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교회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가 데살로니가에 가니까 데살로니가 교회가 생겼고 고린도에 가니까 고린도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가 빌립보에 가니까 빌립보 교회가 생겼고 에베소에 가니까 에베소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거룩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가는 곳마다 이루어졌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 신학교 다닌 사람들은 신학교 때 다 이런 생각을 하고 기도도 하고 결심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세운 것만큼 나도 세상에 교회를 세우고 바울이 선교를 다닌 것만큼 나도 선교를 다닐 것이다.’ 

그때는 모두 선교자적으로 불타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런 결심들을 다 합니다. 한 가지 좋은 것은 바울이 다닐 때는 자동차도 비행기도 없었던 시절인데 지금은 문명의 기구가 생겨서 바울보다도 열배 더 다닐 수가 있습니다. 저도 신학교 시절에 그렇게 기도하고 마음먹은 것이 제 목회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다가 떠나는 장면의 기록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있었던 기간이 31절에 3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 중에 제일 오래 있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에베소 교우들과 작별하면서 또 다른 곳에 가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마지막 석별의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떠난 다음에 교회가 훌륭하게 계속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희망을 교인들에게 부탁합니다.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객관성 있게 평가를 해보면 에베소 교인들은 참 훌륭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은 지 3년 밖에 안 된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가 떠난 다음에 마땅한 담임 목사가 없는 상태에서도 평신도들이 흩어지지 않고 똘똘 뭉쳐서 교회를 잘 운영해 나간 아주 성숙한 크리스천들이었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나 교회를 다녀야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 의문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도 과거를 돌아보면 이 동네에 제가 5살 때 복음이 처음 들어와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수를 믿었으니까 65년 믿음의 생활을 했고, 목회한 것만 해도 48년째 접어들었으니까 지금쯤은 예수님의 그림자같이 제가 보여야 되는데 자신을 보면 어떤 때 아직도 어린애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태신앙이라면 평생 예수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신앙은 아기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오늘 말씀에 3년 동안 눈물의 목회를 했다는 말을 자신이 했는데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에베소 교인들이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서 교회를 잘 운영해 나갈 것을 바라는 그 희망 때문에 그렇게 했고, 33절에 보면 자신이 본을 보인 몇 가지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물질 욕심을 부린 것이 단 한건이라도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3년 동안 신앙 교육 받은 여러분이 나와 같이 사심을 버리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서 이 교회를 잘 운영해 나가는 작은 사도들이 되십시오.”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교회 나오는 사람들은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 위하는 일에만 마음을 쓰십시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본받는 자 되십시오.” 이런 자신감 있는 결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위한 눈물의 3년 목회를 여러분이 인정해 주시고 나를 따라서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마지막 신앙적 복에 대한 교훈 하나를 선물해 주고 눈물의 이별을 하게 됩니다. 이 말이 35절입니다. “범사에 여러분에 모범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시고 또,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자기만 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나누어 주는 교회가 되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길러보면 갓난아기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만 알고 이기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을 뭐든지 자기 것으로 다 생각하고 마음대로 잡아당겨서 입에 갖다 대고 먹으려는 소유 본능적 행동을 합니다. 남의 집, 남의 상점, 남의 물건…. 비싸고 싸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막 행동합니다.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집어던지고 먹고 망가뜨리고 마음대로 합니다. 지금 이렇게 조용히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데, 이 예배 시간에도 울고 싶으면 예배고 엄마 체면이고 낯짝이고 없습니다. 엉엉 웁니다. 다른 아이가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 자리에서 달라고 떼를 쓰고 성경책도 쭉쭉 찢어버립니다. 

옆에서는 밥을 먹고 있는데 똥을 싸며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이게 어린아이입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 큰 어른이 그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철이 들면서 인간은 자기 밖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고 자기 욕구에 대한 절제를 하며 받을 줄만 알았던 단계에서 주는 자가 되어져 갑니다. 프로이드 심리학 가운데 “나르시시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나르시소스”라는 사람은 희랍 신화에 나오는 미남 청년인데 어느 날 호숫가에 서서 호수 물에 비치는 자기 얼굴 모습을 바라보면서 황홀 지경에 빠집니다. ‘어떻게 내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자기도취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도 그 자리를 떠날 줄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 사고마저도 가장 올바른 판단이라고 착각을 하고 결국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침식을 잊고 황홀지경에 빠져 자기 모습을 보다가 죽어서 한포기의 수선화로 변해서 연못물에 떠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바라보는 눈이 밖으로 향해있지 않고 자기만을 향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극도의 이기주의자가 되어서, 자신이 좋은 대로 갓난아기와 같이 행동해 버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능력이 환자스러울만치 없는 사람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약간의 정신질환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현실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업주의 원리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어떤 일도 손해를 안보는 행동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많이 배웠지 않습니까? 투자성의 상업 원리를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공부한 그 지식 때문에 어떤 일에도 손익 계산이 확실한 것에 대해서만 투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식물원에 가서 관리인에게 들은 소리입니다. 예쁘게 꾸며 놓았는데 사람들이 오면 제일 먼저 묻는 소리가 “이거 하는데 얼마 들었느냐?” 랍니다. 

이것은 보라고 해놓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와서 얼마 들었는데 하루에 손님이 몇 명 오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오는 사람들마다 전부 손익 계산을 합니다. 우리가 이런 문화 속에서 삽니다. 그렇게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해서 손실 계산부터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손해가 안 날까?’ 
오늘 성경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바울이 인용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말씀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마지막 3년 눈물의 목회를 하고 이제 다시는 나를 볼 길이 없다고 석별의 정을 나눈 그 날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이여, 당신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이렇게 믿고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그들과 헤어졌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한번 찾아가 보십시오. 제자들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라온 것에 손익 계산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따랐으니 무엇을 얻으리까?” 그것을 계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도 계산이 나고 저렇게 해도 계산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손익 계산에서 절대로 손해를 안보고 남보다도 더 좋은 이익이나 위치를 차지하고 자기가 투자한 것만큼의 상업적 이익을 계산하고 온갖 싸움을 벌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들을 바라보면서 마지막에 결론 내리신 것이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주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나와 같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주려고 우리는 사는 것이다. 만약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주인이 와서 볼 때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로다.” 이렇게 결론해 주셨습니다. 또, 바울 사도는 자기의 사명에 대해서 언제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이방 사람에게나 빚진 자다.” 이 사람이 무슨 빚을 졌습니까? 아무 빚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갚아야 될 사람이라고, 많은 것을 주어야 될 사람이라고 자신을 그렇게 정의했지 않습니까? 잠언에 보시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풍성케 하는 자는 풍성케 되리라.” 우리 사회에 기업인들을 평가하는 것이 신문에 가끔 나옵니다. ‘모범 기업체’, ‘모범 기업인’이라는 말도 쓰고, 나쁜 말로 ‘악덕 기업주’이라는 말도 씁니다. 모범 기업은 누구입니까? 분명히 자기가 피땀 흘려 돈을 벌었습니다. 

정말 그 돈 번 과정을 생각하면 단 돈 1불도 함부로 쓸 수가 없는 피땀 어린 돈입니다. 그런데 그 자신의 피 땀이 섞인 그것을 소위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이름 아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짜로 주어 버리는 것입니다. “학교에 장학금을 보내주고, 고아 사업을 위해서 후원해주고, 선교 사업을 해서 헌금을 하고, 교회를 건축하고, 노인 아파트를 짓고, 병을 세워서 진료를 하고 100퍼센트 지출하는 모범 기업이다.” 이렇게 평가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아무 죄도 없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자기가 쓰는데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쓸 때 “훌륭하지 못하다.” 이런 평가를 합니다. 

제가 리버사이드 교회에 가서 목사 안수식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거기 역사가 쓰여 있습니다. “롱펠로우가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하리라.” 자기 사재를 털어서 그 교회를 건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와서 예배를 드리는 많은 사람의 행복을 바라볼 때 ‘아! 내가 할 일은 교회 건축을 많이 하는 것이로구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배드릴 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을 내 기업의 목적으로 하자.’ 그는 5천 교회를 혼자서 세웠습니다. 롱펠로우가 그렇게 하니까 그 다음에 카네기가 ‘나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 그 사람도 돈 벌어서 5천 교회를 혼자서 건축했습니다. 제 주변에 계신 집사님은 항상 이 이야기를 하십니다. 

“우리 집안은 예수 믿다가 망한 집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 집은 예수 믿다가 진짜 망했습니다. 왜?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은 것만 있으면 다 교회에 가져다 바쳤기 때문에 집안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랬으면 정신을 차려야 되는데 더 합니다. 조상이 물려준 논과 밭을 가지고 겨우 먹고 사는데 싹 다 팔아서 교회 세 개를 짓느라 빈털터리 거지가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저 집은 예수 믿다가 다 망했다. 예수 믿으면 부자로 잘 살아야 우리도 예수를 믿지 저 집은 날마다 망해가는 집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그 집사님은 자기가 손자인데 중고등학교 다닐 때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침을 굶고 학교 가야 해서 자기가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예수 잘 믿고 다 팔아서 하나님 좋으신 것을 모두 했으면 복을 좀 주셔야지 왜 점점 못살게 하시나요?” 그래서 하나님은 안계시다고 자기가 기도하던 자리에다 가래침을 뱉고 안 나갔다고 하십니다. 그 분이 저에게 오셔서 다 고백하셨습니다. 제가 그분께 “지금도 돈이 없으십니까?” 여쭤보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 재벌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항상 말씀하십니다. “나는 김우중과 친하고 항상 같이 돌아다닙니다. 그 사람이나 나나 정주영 씨나 나나 비슷합니다.” 재산이 얼마신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재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냉수 한 그릇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성경에 약속하셨습니다. “당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때문에 이렇게 잘 사시는지 아십시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 할아버지보다 더 많은 일을 하셔야지요.” “네,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똑같이 기뻐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는 제가 온 다음에 지난 10년은 주는 교회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어제 재정부 직원 불러서 지난 10년 동안 우리 선교비 얼마를 썼는지 한번 대략 계산해서 뽑아볼 수 있느냐고 했더니 10년 동안 250억 세계 선교비로 사용했습니다. 얼마나 온 세상에 나누어 주었느냐? 은행에 빚을 내서 가져다주었습니다. 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갈보리 교회는 선교 하다가 망한 교회 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런 소리 들어도 괜찮습니다. 다른 것을 하다 망해야 창피하지 그 교회는 세계에 퍼주는 교회로 선교를 많이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순복음교회에서 저를 불러서 장로라는 분들이 “목사님 교회가 하는 선교를 오늘 저녁에 우리 교회에 한 2천여 명 오실 테니까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부탁을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가서 모두 이야기를 했더니 갈보리교회 성도님들은 이렇게 안 놀라시는데 그곳 성도님들은 제가 설교 하는 동안 박수를 10번이나 치셨습니다. 주는 교회 괜찮습니다. 저는 아이다호 감자 농장에 갔을 때 그 밭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설명을 듣고 찾아간 것입니다. 아이다호 감자 농장 주인들은 성경대로 감자를 수확할 때 마지막 한 고랑은 가난한 사람들 캐다 먹으라고 수확을 안했습니다. 감자 농장이 아주 깁니다. 끝이 없습니다. 한 도랑만 파도 자동차에 감자를 가득 채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 캐 먹으라고 남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밭에 가면 한 고랑의 감자가 언제나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가난한 주민들이 언제나 호미를 가지고 가서 그 밭의 감자를 캐다가 먹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 세계의 맥도널드 후렌치 프라이드 만드는 감자는 아이다호 감자 아니면 안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다호 감자가 팔려서 감자 농장 주인들이 모두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제가 가 본 것입니다. 주는 자는 망할 것 같지만 패러독스 진리라는 반대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주는 교회가 망할 것 같으십니까? 선교하다 망한 교회라고 소문날 만큼 해보십시오. 제가 일본 교회에도 가끔 가서 집회를 하는데 갈 때마다 제가 메시지를 세게 합니다. “왜 일본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습니까? 도요다 자동차, 소니 TV 세계 시장 다 석권하고 온 세계 돈이 다 일본으로 들어오는데 왜 보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일본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것입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그게 뭡니까? 동남아를 피로 물들인 것이 일본인데 지금쯤 선한 사업을 많이 해야지 잘 나가는 나라가 뭐하는 것입니까?” 내가 일본 교회 담임 목사로 나갈 것도 아니고 막 혼냈습니다. 여러분! 요즘에 영적으로 감각이 없으신데 왜 유럽이 망해갑니까? 유럽은 지금 세계 경제학자들이 가라앉는 배라고 했습니다. 세계 경제 문제가 다 유럽에서 터져서 세계가 혼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처음 사랑을 잊어버려서 그렇습니다. 교회를 모두 나가지 않습니다. 1980년부터 지금 올림픽 하는 영국도 30년 동안에 9천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됩니까?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세계를 구원하는 주는 나라가 되고 주는 교회가 되라. 주는 자가 되라.” 성경의 진리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실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잘 살고 있는 갈대아 우르의 아브라함을 빼내서 인간들이 살기에 가장 부적합한 조건이 많은 가나안 땅에 “너 거기 가서 살아라.”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세계인이 오고 가는 그 삼각주에 서서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가르쳐주어라.” 그래서 거기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바로 그 이스라엘 국민들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사명을 왜곡해 버렸습니다. 국수주의, 내셔널리즘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는 백성은 택한 백성인데 그 택한 백성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을 말한다.” 남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유대인들이 세상에 전도합니까? 전도하지 않습니다. 전도하라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과 그 사람들이 마찰을 겪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 내셔널리즘을 모두 깨어서 “너희는 땅 끝까지 가서 이 복음을 전하라.” 그들의 생각과 정반대인 것입니다. 주는 자가 복이 되는 패러독스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이여! 내가 당신들과 목회할 때 물질 욕심 부린 적 있습니까? 말해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3년 동안 눈물의 목회를 하였는지 당신들이 다 알지 않습니까? 당신들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래서 이 교회를 잘 지키십시오. 내 얼굴 다시는 못 볼 것입니다.” 이런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주지 않는 교회, 주지 않는 사람, 주지 않는 나라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제 사무실에 사진이 있고 여러분 가정에도 더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길거리에 5불, 10불로 팝니다. 인공위성에서 한 나라를 사진 찍어서 확대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일렬로 세 가지 색깔이 나옵니다. 맨 위에 만년설, 헐몬산입니다. 하얗게 덮여 있습니다. 그 눈이 녹아 내려서 갈릴리 호수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사랑받는 헐몬산입니다. “헐몬의 이슬의 시온의 산들을 적심 같도다.” 이런 시가 나오고 그 물을 받은 갈릴리 호수는 123종의 고기를 생산해서 유대인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거기에서 뱃놀이를 하고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그 물을 다시 흘려서 내보내지 않습니까? 요단강에서 아이들이 목욕을 하고 고기를 잡고 농업용수로 사용을 해서 생명의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에는 맨 아래 갈릴리보다도 5배나 물량이 더 많은 큰 바다가 있습니다. 바로 사해 바다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물은 한 방울도 쓸 데가 없습니다. 그렇게 아열대 기후의 이스라엘 땅에서 그 물은 버려진 물입니다. 사해 바다, 죽음의 바다로 고기 한 마리도 못삽니다. 사해 바다 들어가실 때 조심하십시오. 제 친구 목사는 사해 바다 들어가서 1분 만에 죽었습니다.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래서 사해 바다입니다. 

왜 그런 무시무시한 죽음의 바다가 되었습니까? 이기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물을 받기만 하지 내보내지 않습니다. 주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죽음의 바다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거저 받았다. 거저 주어라. 주다가 망해도 괜찮다. 나는 헬라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야만인에게 빚진 자로다.” 아무 빚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나는 생명이 주어지는 한 빨리 빨리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 복을 나눠주어야 될 사람입니다. 내가 3년이나 여러분과 함께 있었으니 이 교회는 여러분에게 맡기고 나를 부르는 새로운 사명의 장소를 향해서 내가 떠납니다. 주는 교회가 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복을 받습니다.” 주는 손, 주는 교회, 주는 나라! 우리 갈보리교회가 지난 10년 동안 약 250억의 선교비를 외국에 보냈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는 우리 교인보다 외부에 교인이 몇 배가 됩니다. 

아마 비판적인 교인들이 저를 향해 목회를 잘못했다고 책망할 교인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아닙니다. 내가 있는 한은 계속 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이 교회 나오십시오.” 제가 할 말은 이것입니다. 3년 밖에 안 되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예수님의 말씀도 기억 못하느냐? 주는 자가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나도 똑같이 바란다.” 양보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신학 사상을 끝까지 그들에게 선물해주고 작별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주는 손이 되고 하나님께는 받는 손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에베소 교회를 떠나는 바울의 마지막 설교가 주는 교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갈보리 교회가 계속해서 온 세계에 주님의 뜻대로 주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고 또 이렇게 열심히 주는 자의 손이 하나님께로 받는 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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