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거룩함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 (빌 2:12-16)

첨부 1


거룩함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 (빌 2:12-16)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의미가 모호하다. 구원에서 떨어질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뜻인지? 아니면 구원 받기 위해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하란 뜻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알미니안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알미니안주의란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신학사상으로 신인협력의 구원관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구원관과는 배치되는 사상이다. 성경의 구원관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치고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렇다면 본문 12절b의 진의는 무엇인가? “구원”이란 단어를 “성화” 곧 “거룩함”이란 단어로 바꿀 때 그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성화를 이루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거룩함을 이루라!” 이 부분이 오늘 본문의 가장 중심적 주제가 된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빌립보교회 안에 “불일치” 곧 영적 미성숙함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유오디와 순두게 사이의 불화

빌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권면하면서 예수님의 모범을 소개하고 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에 이어서 오늘 본문 12절로 이어지는 접속사 “그러므로”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결론적인 메시지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본 받는 것이 성도의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요, 성화라는 것이다. 

성화는 초기 기독교시대 그리스도인들 뿐 아니라 오늘날 이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매우 중요하게 요구되어지는 경건의 목표가 된다. 이 목표를 위해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강하게 권면하고 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렇다면 어떻게 거룩함에 이를 수 있는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거룩함에 이르는 방법

1.신앙의 독립심을 키워야 한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에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의 요구는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똑같이 거룩함을 위해 열심을 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예)감독관의 유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감독관과 관계 없이 거룩함을 위해 노력한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거룩함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의존하는 신앙은 속히 독립해야 한다.
예)기는 신앙, 끌려가는 신앙, 스스로 걷는 신앙.

2.항상 복종하는 자세

“복종”이란 말은 “순종”이란 말보다 더 강한 순종의 태도를 “복종”이라 한다. 이 복종은 타의적이 아니라 자의적 자발적 복종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복종의 모범이기도 하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께서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던 것처럼, 빌립보교회 성도들도 복종을 통해서 거룩함에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다. 홍해를 건넌 것을 과거적 구원이라 한다면 가나안 땅에 도달하는 것은 미래적 구원이고 광야에서의 삶은 현재적 구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이뤄가는 과정 가운데 있다고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거룩함의 과정이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복종을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이자 도구였다. 40년 동안 그들은 복종의 훈련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복종의 대상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이것은 종합적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사도의 가르침 앞에, 그리고 성도 간에 서로 복종하는 것이다. 복종은 자아와 자존심을 깨뜨리는 것이며, 고통의 결단이며 자기 희생에 근거하는 것이다.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3.두렵고 떨림으로

성화를 이루는 것은 일생의 과업이다. 이것은 너무 중요한 일이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야 한다. 예)사격 권총 25M 부분에 출전한 김장미 선수 - 경기장에 나갈 때 두려워서 심장이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종이 상전에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갖는 거룩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전의식 없이 의심과 무례함으로는 거룩함에 이를 수 없다. 
예)아합왕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왕상 18:21)

주석가 헨드릭슨은 “구원은 추구이며, 뒤따르는 것이며 단단히 붙잡는 것이며, 경쟁이며, 싸움이며, 경주이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거룩함에 이르게 된다.

4.성령의 도우심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번 런던 올림픽을 보면서 메달을 향한 선수들의 인내와 수고는 감동적이다. 그러나 그 금메달을 따는 데는 운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양궁 개인전의 오진혁선수, 준결승전에서 중국선수에 밀렸다가 연장전에서 승리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진정한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이 성화로 나가는 것에 하나님과 밀착된 생활을 유지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어떤 것인가?

1)성령의 내주하심
요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소원을 두심
이 말씀의 의미는 신자의 마음 속에 의욕을 품게 하시고, 활동하게도 하신다는 뜻이다.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열심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향한 소원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거룩함이다. 그 거룩함이 구체적인 내용은 성령의 열매이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성화의 목적

1.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그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표현,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세대 예)로마의 폼페이 롬1장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어두움을 밝히는 존재.

2.복음전파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효과적인 복음전파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의 삶, 생활로 증거해야 한다. 그럴 때 효과적인 전도가 가능하다. 예)오이코스.

3.자랑거리

16하,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과 관계 없이 살던 인생들, 죄와 저주와 심판 아래 있었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풍요함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했다.

엡 3: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나다나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

시골 어느 마을에 큰 바위 산이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바위들이 마치 조각을 한 것 같은 인자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 마을에 어네스트라는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는데 그 소년의 어머니가 큰 바위 얼굴에 얽힌 전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주었다. 큰 바위와 같은 인자하고 훌륭한 인물이 그 마을에 나온다는 것이다. 어린 소년은 날마다 그 바위를 바라보면서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인물을 만나보길 기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설의 주인공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사람의 이름은 게더 골드, 그 마을 출신의 큰 부자였는데 남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의 얼굴을 보니 좁은 이마에 매서운 눈과 얇은 입술의 잔주름이 많은 왜소한 노인이었다. 

시간이 흘러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전설의 주인공이 온다는 소식이 마을에 퍼졌다. 그는 백전의 용사 그 마을 출신 장군이었다. 그의 이름은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동네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격전의 용사로서 철석같은 의지를 가진 모습이었으나 인자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네스트는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전도자로서 그 마을에서 존경 받는 인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전설의 주인공이 나타났다는 소시이 들려왔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를 보기 위해 나갔다. 그는 성공한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출마를 천거 받고 고향을 찾은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환호하면서 큰 바위 얼굴과 쌍둥이 같다고 외쳤다. 어네스트는 그 정치인의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이제 어느덧 어네스트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서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도 여전히 그는 자신의 일과 전도자로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있었다. 그의 가르침은 진실했고 마을 주민들은 그를 존경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마을 출신으로 큰 바위 얼굴을 주제로 시를 썼던 유명한 시인이 고향을 방문하려 왔다가 어네스트의 집에 묵게 되었다. 그의 시는 너무나 유명해서 어네스트는 그 시인이야 말로 전설의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인은 극구 부인하였다. 세속에 물든 시인에 불과하다고 고백했다.

저녁 때가 되면 어네스트는 마을 광장에서 강연을 하곤 했는데 그날도 나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연설을 했다. 함께 갔던 그 시인은 어네스트의 이야기와 그 인자하고 겸손한 자태에 빠져 들어갔다. 그리곤 외쳤다. “여러분, 바로 저 분이 우리가 기다렸던 전설의 주인공입니다!” 어네스트의 모습은 황혼에 더욱 인자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빛이 났다. 그의 모습은 정말 큰 바위 얼굴과 같았다. 그러나 어네스트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지혜롭고 인자한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원하였다. 

소설 속의 주인공 어네스트가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생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그는 매일 매일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그 주인공을 만나보길 기대했다. 그리고 그렇게 닮아가기를 소망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도 평생의 과업이다. 그리고 우리의 큰 바위 얼굴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을 만나고자 하는 소망 가운데 매일 매일 경건의 삶에 힘쓸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어질 것이다. 

우리는 거룩함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거룩함을 향한 열망과 복종과 떨림이 있어야 한다. 왜 그런가? 거룩함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