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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과 아는 것 (행 1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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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과 아는 것 (행 19:8-20) 
 
여러분도 매 주일 보셔서 아시지만 우리교회 강단 꽃꽂이가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백합으로 장식이 되었는데요. 앞에 계신 분들은 이 백합 향기를 맡으실 수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여기 앉아 있으니까 이 백합향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교회에서는 조화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조화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조화는 모양은 있지만 생명이 없는 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이 강단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혼의 말씀이 전달되는 곳, 그래서 생명이 있는 꽃으로 강단을 장식합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조화를 만들어 장식을 한다 할지라도 그 조화는 생명력이 없기 때문에 향기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생화는 조금 투박해도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꽃도 그런데,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인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데 실제로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던 사람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났던 사람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많으면 얼마나 엄청난 다른 결과를 가져오느냐! 이것을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본문의 배경을 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증언하기 시작합니다. 에베소! 지금의 터키 동 중부 지방의 해변에 있는 큰 도시지요. 지금은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지만 예수님 당시에 에베소는 로마가 세운 3대 도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에베소 이 세 도시가 로마가 지배하는 가장 커다란 3개 도시였고요, 그 당시 인구가 3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학자들에 의하면 1,50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뉴욕 정도의 도시였을 거라고 봅니다. 이 도시에는 우상이 많고 철학이나 문화나 산업이 발달했던 당대 최고의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어서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따라서 사도바울이 이곳 도시에서 복음을 증언하는데, 연일 장소와 같이 사도바울이 그곳에 도착해서 처음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증언하는 것은 유대인 회당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유대인 회당에서 3개월 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강론했더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마음이 굳어져서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하나님의 도를 비방했더라.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도바울이 그곳에서 더 이상 복음을 증언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다른 제자들을 세우고 사도바울은 두란노서원으로 가서 이제 복음을 증언합니다. 

사도바울이 증언했던 두란노서원은 지금으로 치면 어떤 강연장소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강연도 하고 집회를 하고 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지금도 우리고 이 에베소 성지순례를 가면, 두란노서원이 3층으로 되어 있는, 돌로 되어 있는 건물의 잔해가 나오는데 굉장히 큽니다. 그곳에 도서관도 있고요. 그리고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2만 명이 들어가는 원형 경기장이 나오는데 지금도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곳에서 2년 넘게 복음을 증언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아무런 방해 없이 그곳에서 복음을 증언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이 번역본인데요, 그 중에 다른 번역본에 의하면, 사도바울이 그곳 두란노에서 복음을 증언할 때 아침 11시부터 오후4시까지 하루에 다섯 시간씩 말씀을 가지고 강론을 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이곳이 굉장히 더운 지방입니다. 사람들이 점심때부터 오후 4시까지는 일을 안 합니다. 점심 먹고 낮잠 자고 쉬는데 그 시간에 사도바울이 하루에 다섯 시간 동안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을 증언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곳에서 복음을 증언하는데 복음을 듣고 돌아오는 것 못지않게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사람들의 몸에 손을 얹게 되면, 병자들이 낫게 되고 귀신들린 사람들이 낫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이 사도바울이 얼굴을 닦던 손수건이나 사도바울이 둘렀던 앞치마, 이런 것을 병자들의 몸에 얹기만 하면, 귀신들린 사람들의 몸에 얹기만 하면, 병자가 낫고 귀신들린 자들이 정상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앞치마를 둘렀다는 것은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있었을 때에 천막 업을 했습니다. 아마 이곳 에베소에 와서도 이런 천막 부업을 했을 때 입었던 옷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을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에베소에 마술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마술하는 사람이 가만히 보니까 사도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이 여러 복음을 증언하다가 특별히 병자나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줄 때 꼭 사용하는 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갈지어다. 병마야 물러갈 지어다. 이런 명령 기도를 하는 것을 이 사람들이 들은 것입니다.

마술하는 사람이 가만히 보니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하기만 하면, 병자가 낫고 귀신 들린 사람이 정상이 되는 것을 보고, 시험 삼아, 어떤 성경에는 “망령되어” 라고도 번역합니다. 이 사람이 자기도 한 번 해 봐야 하겠다. 해서 병자나 귀신 들린 사람 앞에 가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갈지어다.” 나갔을까요? 성경에 그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스게와 라고 하는 제사장이 있었는데 이 제사장에게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이 일곱 아들도 마술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하면, 귀신도 나가고 병자도 고쳐지네. 우리도 한 번 해보자.” 해서 어떤 귀신들린 사람에게 일곱 아들이 가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라가.” 하니 이 귀신들린 자가 하는 말이 “야 우리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도대체 너는 누구냐?” 라고 귀신이 일어나 말하면서 귀신들이 나와서 스게와의 아들을 덮어서 죽이려고 하니까, 이 일곱 아들이 벗은 몸으로 상한 채 도망을 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이 있고 난 다음에 에베소에는 복음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게 아니구나. 많은 믿는 사람들이 와서 자복하여 자기들이 행한 일을 고하고, 마술 하던 사람들이 자기들이 사용하던 책이나 마술도구를 다 가지고 와서 불을 태웠는데 그것이 은 5만이나 되었고, 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이 힘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흥왕하게 세력이 펼쳐지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행했던 사역이 아름답게 열매가 맺혀지는 장면을 오늘 우리가 읽은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가만히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했는데, 어떤 사람이 하면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왜 사도바울이 하면 능력이 나타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먼저 이 내용을 보기에 앞에서 앞부분에 나와 있는 내용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오늘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증언하는데, 반대자들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언하러 누군가에게 갔는데, 또 어떤 장소에 갔는데 그 사람들이 다 “아, 정말 그렇군요.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예수님 없이 살아왔군요. 제가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다 그렇게 고백할까요?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건 고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박해하고 방해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사도바울이 3개월 동안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증언했는데, 본문에 보면, 이 사람들이 마음이 굳어져서, 두 번째는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를 무리들 앞에서 비방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 마음이 굳어졌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비가 오고 난 다음에 땅이 점점 굳습니다. 오늘까지 비가 오고 내일 아침에 해가 떴다고 해서 내일 아침에 땅이 한꺼번에 완벽하게 굳지 않습니다. 서서히 굳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단에 마음이 굳어져서라고 하는 ‘스캐루나’ 라고 하는 동사는 미완료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미완료라는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서서히 굳어져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굳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의 복음이 전달이 되는데 사람의 마음이 굳어지면, 처음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난 안 믿어! 말도 안돼! 무슨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고 물 위를 걷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말도 안돼! 이런 단계를 가다가 조금 더 마음이 점점 굳어지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순전히 거짓말이야 그거 다 사기꾼이야, 하나님이 어디 계셔. 이렇게 가다가 맨 마지막에는 기독교는 순전히 엉터리야. 기독교는 사람들의 영혼과 사람에게 무슨 잘못된 희망을 가져다주는 완전히 사이비라고.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굳어지면, 기독교에 대해 점차적으로 미완료 형태적으로 진행형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집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요, 처음부터 단계적으로 마음이 굳어집니다.

두 번째 나타나는 현상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잘못은 이것이다. 네가 어둠 가운데 살고 네가 죄를 범했고, 그러니 마음을 갈아엎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 이런 말씀을 가슴에 담게 되면, 마음의 밭을 갈아엎습니다. 그것이 순종하는 거지요. 그런데 마음이 굳어진 사람에게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도 가슴으로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귀가 어두워지고 눈이 어두워지고 판단이 어두워지게 되면, 마음이 굳어지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들어가도 튕겨 나갑니다.

딱딱한 밭에 무슨 씨앗을 심는다고 해서 그 씨앗이 땅 속으로 들어갑니까? 절대 들어가지 않습니다. 들어가야, 뿌리를 내려야 열매도 맺고 꽃도 피고 잎도 나는데, 애당초 들어가지 않으니까 그 위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음이 굳어져 있는 사람, 마음이 딱딱한 사람, 아무에게서도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모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유대사람들이 사도바울이 복음을 증언하는데도 마음이 굳어져서 순종하지 않고, 마지막 세 번째는 여러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도를 비방했다고 했습니다.

요즘의 기독교가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먹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제일 나서서 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영혼과 마음이 굳어진 사람!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들, 소경들, 이런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비방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지금 이것을 이 유대인 회당에서 경험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언하러 세상에 나갈 때, 우리가 만나는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이렇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절망하고 포기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복음에 방해를 받자 다른 방향으로 사도바울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다가 절망을 경험하고 아픔을 경험하고 문제를 경험하고 고통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늘 새로운 길,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좋은 완벽한 길을 하나님은 또 다시 만들어 주십니다. 

본문에도 두란노 서원으로 사도바울에게 방향을 틀게 하십니다. 반대 없이 2년 동안 하루에 다섯 시간씩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언하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이 그곳에서 전도할 때,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반대에 부딪쳤지만,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절망케 하지 않으시고 그를 들어 다른 길로 여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직장이 잘 안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거기서 빼내서 더 좋은 곳, 완벽한 곳으로 보내시려고 하나님이 좋은 길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믿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다른 길을 여시는구나! 두란노! 훨씬 더 좋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도바울에게 다른 길을 주시면서 이제는 손에 능력까지 주십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듣고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행하는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사람들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사도바울의 기적이 강했는지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던 손수건이나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대기만 하면, 병자들이 귀신들린 사람들이 벌떡 벌떡 일어나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날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나요? 

유명한 교회 성경학자인 피처 와그너 박사가 오지, 비 문명국, 아프리카나 밀림지대, 진짜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 선교 하시는 선교사님에게서 나타나는 놀라운 기적을 보고, 반대로 유럽이나 미주 같은 이런 문명사회에서 복음이 전달되는데, 그곳에서는 왜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 

이 두 가지를 놓고 비교하다가 어떤 결론을 내렸냐 하면, 이천 년 전에 사도바울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했을 때, 함께 역사했던 성령은 그 때 성령이나 지금의 성령이 똑같은데, 문제는 지금 이 문명사회에서 예수를 믿는 다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믿음의 성향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밀림에서, 비 문명지대, 못 배우고 못 살고 가난한 그런 오지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를 통해서는 왜 기적이 일어나는 거냐는 거죠? 지금도.... .

문제는 순수하게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성령을 주셨고, 내게 주신 이 성령은 사도바울에게 주신 성령이나 똑 같은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런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령의 이름으로 무엇인가 행할 때,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연출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증언할 때, 또는 기적을 행할 때 나타나는 많은 이적들, 우리는 행할 수 없나요? 우리가 믿고 있는 성령님! 그렇게 약하신 분인가요? 아닙니다. 똑같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과 저를 통해 얼마든지 귀신에게 손을 대면 귀신이 나가고 병든 자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안수하면 충분히 지금도 병자가 나아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런 똑같은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몇 해 전, 한 4,5년 전입니다. 우리교회 어느 새 부부가 등록을 했습니다. 제가 심방을 갔는데요. 보니까 결혼 한지 7년이 됐는데 아직 아기가 없었습니다. 기도 제목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 여자분 얘기가 “목사님, 애가 갖게 좀 해주세요.”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그런 기도 제목을 받으면, 조금 난감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무슨 제주로 그 분 뱃속에 아기를 가져다줍니까?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그 기도 제목을 적으면서 제가 기도하겠어요. 우리 자매님의 기도 제목을 중보기도실에 내서 많은 교우들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말씀을 증언했어요. 

남편 분은 교회를 안 다니시는 분이예요. 여자 분은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다녔는데 결혼 때까지는 안다니다 결혼하고 아기가 생기지 않으니까 이제 다급한 마음에 교회를 나오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두 분이 열심히 기도하시고 말씀 듣고 신앙생활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적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배를 마치고 나왔어요. 그리고 나서 제가 중보기도 카드를 쓰고 그 분을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7,8개월 지났을 때, 나가시다가 제 손을 꼭 잡고 목사님 저 아기 가졌어요. 두 달 됐어요. 아, 제가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아기를 갖게 했나요? 아닙니다. 본인이 열심히 기도했고 저도 기도했고 중보기도실에 있는 많은 중보기도 헌신 자들이 기도했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지금도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에게 주셨던 놀라운 기적의 역사 지금도 여러분과 저를 통해 하십니다. 때때로 우리의 손을 통해, 때때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통해, 우리의 입술을 통해, 우리의 눈가를 통해, 우리의 만짐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기적을 일으키면서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사회에서 믿음생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누구를 통해 역사하시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 예수를 경험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람,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담고 경험해 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 역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사람 가지고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사실이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이는 마술하는 사람, 또 스게와의 아들들! 이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이렇게 귀신을 내쫓고 병자를 고칠 때 사용했던 단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아갈지어다. 병마야 나갈지어다.” 라고 명령기도를 할 때 사용했던 단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것을 이 마술하는 사람들과 제사장의 아들들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하기에 “야, 우리도 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면 기적이 나타나겠구나!” 라고 귀신 위에 올라가서 얘기 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갈지어다.” 백날 소리를 질렀는데 귀신이 갑자기 나타나 하는 말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

귀신은 예수님이 누군가 압니다. 귀신은 믿음의 사람들을 분명히 압니다. 그러니 이 귀신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뭐냐? 너는 거짓말 짝퉁 아니냐? 너는 거짓 아니냐?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아무리 들어도 아무리 사용해도, 예수님의 이름에 대하여 박사가 되어 안다 할지라도 예수를 만난 경험이 없으면 그 예수의 이름 사용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능력 없습니다. 세상에는 진품이 있고 짝퉁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짝퉁들이 어떻게 보면, 진품보다 더 멋있어요.

우리 교인 가운데서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이렇게 가짜 모조품 짝퉁 가방을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퍼가 고장이 나서 이것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실제로 진품을 파는 가게에 갔답니다. 고쳐달라고. 자기는 이것을 가져다주면서 이 사람들이 혹시 이거 가짜 아니냐고 하면, 창피 당할 텐데 그래도 혹시 한 번 해보지! 그랬는데 진품만 취급하는 그 집에서 이 가방을 받고 지퍼를 진짜로, 지퍼만 진짜가 됐습니다. 실제로 고쳐가지고 왔답니다. 그러니 진품을 취급하는 사람도 얼마나 짝퉁이 진짜와 같았으면 그걸 감쪽같이 속았을까요?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병마야 나가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 아무리 멋있는 기도를 한다 해도, 예수를 만난 적 없고 예수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은 가짜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마술하는 사람, 또 여기 나타난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 다 가짜입니다. 다 짝퉁들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에게서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오히려 귀신이 나타나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을 쳐들어 죽이려고 하니까 이 일곱 아들이 상한 몸으로 옷을 두고 맨 몸으로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진품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를 만난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그리스도인에게서는 능력이 나타나지만, 겉은 멀쩡하지만 짝퉁에게서는 아무리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진품인가요? 여러분은 짝퉁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야기하십니다. 본문 하반 절에 보면, 이 사건이 있고 난 다음에 많은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자복하고 또 사람들이 자기의 물건을 가지고 와서 불태우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말씀에 점점 흥왕해 지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짝퉁들에 의해서 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거짓 사람들에 의해 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이 있는 뜨거운 영성을 가진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름답게 확장이 됩니다.

짝퉁 되지 마시고 거짓 모조품 되지 마시고 진품 되시기 바랍니다.

꽃의 얘기로 다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름다운 꽃을 마련해 주셨는데, 이 꽃은 향기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잘 만든 조화 옆에 사람들은 가지 않습니다. 진품!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만나, 여러분이 말 한마디를 하게 되면,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을 듣고 눈빛을 보고 여러분의 손 하나하나를 보고 그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 기적 아닙니까? 여러분을 통해 그런 놀라운 진품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을 통해 아름답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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