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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출발, 유월절 (출 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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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발, 유월절 (출 12:1-14)


경건한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모세가 전해 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잘 지킨다는 것은 너무 범위가 넓고 또 막연하지 않습니까? 그 범위를 좀 좁혀 볼 것 같으면 안식일이나 절기를 잘 지키는 것이 특히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해서 실제로 하나뿐인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는 역사의 기록을 볼 것 같으면 그들이 안식일 지키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안식일 지키는 것 못지않게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유월절을 항상 잘 지켰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유월절을 잘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특별히 유월절 식사 자리를 마련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떡은 자신의 몸이요 포도주는 자신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 교회는 그 전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월절에 잡는 어린 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유월절의 배경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오랫동안 소수 민족으로 지냈습니다. 단지 소수 민족으로 지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비참한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간절한 소원은 애굽을 탈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등장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바로에게 이스라엘을 풀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마지막 재앙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애굽의 모든 장자와 또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을 죽이는 재앙이 준비되었습니다. 그 무서운 재앙이 내린 후 비로소 바로는 이스라엘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마지막 재앙이 내리기 전에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월절 의식이었습니다. 유월이란 넘어간다는 말입니다. 무서운 재앙이 이스라엘의 집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모든 이스라엘은 어린 양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나흘 뒤 저녁때 그 양을 죽이고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왜 양의 피를 발랐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출 12:13~14) 

그렇습니다! 유월절 의식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의식입니다. 그들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만든 사건이 바로 출애굽 사건이요 또한 유월절 의식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매년 첫 달 열나흗날 저녁이 되면 양과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마치 우리가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 흥겹게 먹고 마시는 것처럼... 그들은 유월절 의식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인 까닭은 바로 그 사건을 통해서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그들을 피해갔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던 애굽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이 모두 다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마침내 이스라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애굽의 모든 신이란 온갖 우상을 가리킨다고도 할 수 있고 신격화된 바로를 가리킨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의 그런 고백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애굽과 이스라엘을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애굽은 누가 뭐래도 당시 최고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자랑하는 정말 강한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애굽은 매력적인 나라였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별 볼일 없는 나라였습니다. 아니 나라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습니다. 소수 민족에 불과했습니다. 바로의 말 한 마디면 공사 현장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만 놓고 비교해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신다는 말은 말도 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째서 말도 되지 않는 말을 했습니까?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큰 소리를 쳤습니까?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계시를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신다는 고백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역사관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의 진행을 다른 차원에서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것이 세상을 끌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확실히 믿었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제국이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똑똑히 보았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애굽의 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지켜 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애굽의 신을 심판하십니까? 이스라엘은 선민이고 애굽은 이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적도 많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대상은 자기를 절대화하는 세력입니다. 자기를 절대화하고 자기를 신격화하는 세력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자기가 이미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애굽의 바로는 신이었습니다. 죽은 바로가 피라미드 지하 무덤에서 영원히 살아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무덤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약자를 억누르고 착취하며 자기 스스로 신격화하는 세력들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애굽의 신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애굽의 신은 과연 누구입니까? 아니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애굽의 신은 과연 무엇입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이 다른 종교나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여러 가지 충격적인 행사를 통해서 다른 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애굽의 모든 신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오늘도 자기를 절대화하는 세력은 우리 주위에, 아니 우리 안에도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인들은 권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재벌들도 돈의 힘을 가지고 우쭐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무한 경쟁이 우리의 영혼,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조차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애굽의 모든 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니 한국 교회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대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얼마나 교만해졌습니까? 작은 교회들, 특히 자립하기 힘든 농어촌 교회들과 한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수천억 원이 드는 예배당이나 건축하고 있는 교회들이 바로 애굽의 모든 신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절대화하는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화려한 건물이 능력이 아니요 또한 세상의 재물과 권세가 결코 능력이 될 수 없다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비록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지만... 바로 그 십자가에서 참된 심판과 구원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는 담대히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해방 기념 주일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유월절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 옛날 히브리 노예들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우리 크리스천들만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이 해방 사건을 기념하여 하나님의 절기를 늘 지키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해방을 주시기 위해서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유월절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유월절을 지키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은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새 출발을 가능하게 합니다. 바로 그 새 출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셔서 친히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습니까? 받은 바 주님의 대속의 은총을 가슴 깊이 새기고 그 주님과 동행하며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새롭게 출발하는 참으로 복되고 충성스러운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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