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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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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3일 후에 있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36년간 노예처럼 살다가 해방된지 67년이 되는 날입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우리민족은 인간 이하의 처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공출해야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전쟁터와 강제노역으로 끌려갔고, 여자들은 종군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우리의 말과 글을 없애려했습니다. 일본의 잔악상은 이뿐만 아닙니다. 

중국 하얼빈시 근처에 위치한 일본 관동군 세균전 부대인 731부대(일명 이시이 부대)에서 저질러진 잔악함은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는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일본은 1932년 육군 관동군 소속으로 생화학전 연구를 위해 731부대를 하얼빈에 설립해 1945년 패망할 때까지 13년간 치명적인 대량 살상 생화학 무기를 연구하면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극악한 인간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암호명“마루타(통나무)”특별계획은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인근 국가 민간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고, 잔인하게 영아, 노인, 임산부까지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부대를“이시이 부대”라고 하는 이유는 교토제국대학 의과대 출신 군의관 이시이 시로 중장이 초대 사령관으로 부임해 부대를 운영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대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1만 명 이상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처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일본군은 이 부대에서 살아있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해부, 동상 실험, 전염병 실험 등 30여 가지 생체실험을 했습니다.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하고, 출혈 연구를 위해 팔다리를 절단하고, 그 잘라낸 것을 다른 쪽에 붙여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뇌, 폐, 간 등을 자라내기도 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화염방사기를 사용하기도 했고, 각종 세균을 주사하고, 벼룩을 이용해 세균을 대량으로 감염시키기도 했습니다. 

팔다리를 몽둥이로 내리쳐 골절시킨 후 얼마나 견디는가를 보기도 했고, 영하 50도의 추위에 발가벗겨 밖에서 걷게 했고, 인체 부위마다 피부를 도려내고 콜레라균, 탄저균, 매독균을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또한 목을 매달아 죽기까지의 시간을 쟀고, 신장(콩팥)에 말 소변을 집어넣기도 했고, 극저온과 고압의 방에 마루타를 넣어 관찰하고, 온도와 화상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불이나 뜨거운 물에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원심불리기에 사람을 넣어 죽을 때까지 돌리기도 했습니다. 

바닷물을 혈액에 직접 주사하여 반응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영하 40~50도의 추위에 발가벗긴 다음 일렬로 세워놓고 총을 쏘아 몇 명까지 죽는가를 관찰하는 실험도 했습니다. 이러한 생체실험을 위해 베이징, 장충, 난징, 광저우를 비롯해 싱가포르까지 생체실험부대를 만든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731부대에서 배양한 세균을 가지고 세균폭탄을 만들어 하얼빈 근처 마을을 대상으로 생체 피폭실험을 한 뒤, 저장성 닝보, 산시성 허베이, 산동성, 허난성 등에 투하해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균탄이 미군을 대상으로 실전에 활용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마루타로 희생된 사람의 숫자는 1만 여명으로 추정되는데 중국의 노력으로 명단이 밝혀진 희생자는 1463명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한국인 희생자는 심득룡, 이청천, 이기수, 한성진, 김성서, 고창율 씨등 6명입니다. 
인간백정 이시이 시로가 전후 도쿄 국제군사법정에서 밝힌 마루타는 총 3850명으로 그 가운데 중국인 3034명, 러시아인 562명, 한국인 254명이라고 했습니다. 
더욱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731부대에 근무했던 많은 일본 사람들은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며 눈물로 용서를 빌었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할 왕이나 일본총리는 이 부대의 존재와 만행에 대해“그런 일 없다.”는 말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 없는 나라, 자유 없는 인간의 처지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생명입니다. 자유 없는 삶은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를 누리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만약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결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고, 마치 동물이나 기계처럼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유 없이는 생존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는 말이 있게 된 것입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15살 난 침팬지에게 언어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 침팬지는 140개의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배가 부르다.”혹은“즐겁다.”라는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계속 훈련을 시키니까 나중에는“밖으로 내보내 주세요.”라고 자기의 의사를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물도 먹고 자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크신 은혜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전쟁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2차 세계대전의 원흉 일본을 꺾으신 결과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습니다. 만일 대동아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면 광복이 있었겠습니까? 일본은 미국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엄청난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본 군부는 천황에게“절대로 항복하면 안 됩니다. 아직도 전쟁터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일본 군사들이 많습니다. 

반드시 천황폐하를 위하여 승리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원자폭탄을 천황 황실이 있는 곳에 투하해버리겠다고 위협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일본 천황이 항복하므로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때 미국에 원자폭탄이 두 개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미 그 두 개의 원자폭탄을 다 써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의 원자폭탄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태평양전쟁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하나님 앞에 매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독실한 신앙인 맥아더 장군입니다. 그는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연합군에 대한 항복문서에 조인할 때 맥아더 원수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이 사실은 정치적 문제도, 경제적 문제도, 군사적인 문제도 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신학적인 문제이다.”이 말은 일본 패전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고 신앙적인 교훈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해방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하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 후 6.25전쟁이라는 처참한 민족상잔의 비극을 당하면서 조국 강산은 폐허가 되었고, 봄이 되면 먹을 것이 없어서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처참한 굶주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OECD 국가가운데 11위의 경제대국으로 G20 정상회의 개최국이 될 정도로 세계 중심에 우뚝 섰습니다. 우리는 지금 마음껏 자유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자유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본문인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에“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시는 사탄의 미혹을 받아 죄의 종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복절을 맞이한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다시는 나라를 빼앗겨 다른 나라의 종이 되지 않도록 올바로 살아가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절~2절에“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국가의 모든 결정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나라가 발전하고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면 누가 하겠습니까? 지금은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일본은 다시 군사대국으로 일어섰습니다. 독도까지 자기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북한은 격동기를 맞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진보라는 명목으로 국가정체성과 헌법, 태극기, 심지어 애국가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합법적으로 국회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결코 태평한 시대가 아닙니다. 위험한 시대입니다. 불안한 시대입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가 지금입니다. 

한국교회가 80년대만 해도 새벽마다 예배당의 차디찬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까? 기도원 골짜기마다 간구의 절규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3.1절, 6.25, 8.15 때는 기도원마다 구국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휴일이라 여행이나 피서가기 분주할 뿐 기도원은 텅텅 비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은 후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호세아서 13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안타까운 하나님의 탄식이 오늘 우리들과는 상관이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2.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어머니 품처럼 우리를 받아주고 지켜줄 땅은 오직 우리의 조국대한민국뿐입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절규하기를“나는 위대한 나라 대영제국! 그대를 사랑한다. 비록 그대에게 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했습니다. 어찌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나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흠이 없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바이런처럼 외쳐야 합니다.“위대한 나라 대한민국! 나는 그대를 사랑하노라! 그대에게 비록 흠과 주름과 티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위해, 우리들의 후손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금수강산을 위해, 이 땅의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까지 아끼며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종이 한 장까지 절약해야 하겠습니다. 일본은 발전하는 한국을 두고 평가절하 하여 말하기를“절약하지 않는 한국은 일본을 따라올 수가 없다. 그 증거로 식당에서 먹지 않고 버리는 음식쓰레기가 얼마인가 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12절~13절에 말씀하시기를“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고 했습니다. 5병 2어 기적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한번 기도하시고 나면 어린아이 도시락 하나가 5천명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부스러기를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부스러기를 모았더니 열 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물질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절약정신을 알 수 있습니다.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버릴 것을 모았더니 열 두 광주나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절약하여 유용한 곳에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학생이 스위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하숙하던 주인집 아주머니가 가방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이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더니 “학생이 신다가 버린 양말입니다. 한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부유한지는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는 스위스만큼은 넉넉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양말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떨어진 것을 깨끗하게 씻어 기웠습니다. 한국에 가져가셔서 한 번 더 신고 버리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절약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이요, 또한 그리스도를 섬기는 성도들이 본받아야할 생활정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약하되 명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절약정신은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절약하라고 하셨지 인색하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다. 부스러기를 버리는 것이 없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 38절에 말씀하시기를“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하셨습니다. 절약하여 함께 나누며 모두가 더불어 넉넉하게 살아가는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나라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지나온 역사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염려스러운 것은 우리는 역사를 너무 쉽게 잊는 것 같습니다. 행정안전부 등 각종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56.6%가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답했고, 중,고생의 절반 이상이 북한의 남침인 것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육군사관학교 신입생도의 34%가 우리의 주적이 미국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몇 년 전에 인천 자유공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6.25동란에서 우리나라를 건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야단한 적이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통일의 방해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본의 만행은 기억하겠습니까?

우리는 역사의식을 유태인에게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겪었던 출애굽의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초막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에게 600만 동포가 희생당한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까지 종려나무 600만 구루를 가로수로 심어놓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바드야샘이라는 600만 동포의 희생자 추모관을 세워 놓고 해마다 유치원 어린이들부터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그곳을 찾도록 하여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에 대한 최후의 항전지인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요새 마사다에 중학생 이상의 학생들은 1년에 한 차래씩 반드시 그곳을 찾도록 하여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우리 역시 잊으면 아니 됩니다. 

3.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때 우리의 조상들은 양반과 쌍놈이라는 계급사회를 만들어 놓고, 남인북인, 노론소론하면서 백성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당쟁을 일삼던 부패한 지도자들로 인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가 빼앗겼습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아직도 남북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동서로 나눠져 있습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2절에“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라고 하셨습니다.“마음을 같이하여”“같은 사랑을 가지고”“뜻을 합하며”“한마음을 품어”거듭 네 번씩이나 하나가 되길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민족은 이 부분이 취약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징기스칸이 세상을 떠나기 전 일곱 아들을 불러놓고 나무 막대기 14개를 가져왔습니다. 아들들에게 막대기 한 개씩을 나눠주며 부러뜨리라고 했습니다. 아들들은 모두가 장군들인지라 쉽게 막대기를 부러뜨렸습니다. 다음에는 나머지 7개의 막대기를 함께 모아서 새끼줄로 동여맨 후 큰 아들에게 부러뜨리라고 했습니다. 부러뜨리지 못했습니다. 막내인 일곱째 아들에게까지 내려갔지만 아무도 부러뜨리지 못했습니다. 징기스칸은 이때 아들들에게 말하기를“바로 이것이다. 너희들이 뭉치면 아무도 건드릴 사람이 없다. 그러나 뿔뿔이 흩어지면 너희들은 다 부러지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로 뭉친 곳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33편 1절~3절에 말씀하시기를“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가 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2장 3절에 말씀하시기를“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했습니다. 겸손하여 각각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것이 하나 되어 화목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일화가 있습니다. 유럽의 종교개혁자 루터와 쯔윙글리는 각자가 추구하는 종교개혁의 방향이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종교개혁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의견충돌로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스위스의 산길을 함께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상한 관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두 마리의 염소가 외나무다리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염소들은 다리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곧 한판 싸움이 붙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염소 한 마리가 다리 위에 납작하게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마리가 엎드린 염소의 등을 밟고 유유히 다리를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루터와 쯔윙글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염소에게서 스스로 낮추는 겸손과 양보를 배운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독립투사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대동아전쟁에서 침략자 일본을 대항하여 싸우다가 얼마나 많은 연합군들이 죽었겠습니까?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지금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가 있기까지 독재자와 싸우다 피를 흘린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처럼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피를 먹고 자란 소중한 자유를 길이길이 누리며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려면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더욱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이 나라 금수강산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로 뭉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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