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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더 큰 해방을 위해 꿈을 꾸어라 (시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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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해방을 위해 꿈을 꾸어라 (시 126:1-6)

어제 올림픽 경기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이 3, 4위전을 치뤘습니다. 브라질과 멕시코의 결승전 경기 못지않게 많은 나라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한국과 일본 국민들은 라이벌 의식이 있습니다. 그 라이벌 의식은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역사의 아픔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이 1905년에 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맺으며 우리나라를 실질적으로 40년간 지배했었습니다. 그 억압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며 겪었던 역사의 상처가 거의 7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이면 그 상처가 다시 덧나서 두 나라 국민들의 감정이 격하게 대립을 합니다. 경제, 스포츠, 문화 모든 면에 있어서 경쟁의식이 강합니다. 

어제 축구 경기에서 이겨서 온 국민이 금메달을 딴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시기적으로도 8.15 광복절을 눈앞에 두고 이긴 것이기에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이 된지 67년이 되는 해입니다. 1905년에 일본과 을사조약을 맺어 40년간 실질적인 일본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졌습니다. 수십만 명이 죽는 참사를 겪은 일본은 8월 14일에 항복하기로 작정하고 8월 15일 12시에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았던 40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 된 것입니다.

해방이 된지 3년이 지난 1948년 5월 10일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선거가 이뤄졌습니다. 남과 북이 갈라진 상태에서 치러지는 갈등이 깊은 총선이었습니다. 이때 139명의 제헌 국회의원이 선출되었습니다. 그때 국회의원 30명, 법학자 10명 총 40명이 모여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1948년 7월 12일에 완성해서 17일에 헌법을 공포했습니다. 그날이 제헌절입니다. 한 달 후인 그해 1948년 8월 15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을 하고 국회가 개원되어 1948년 8월 15일에 건국했습니다. 해방 후 3년이 지난 후에 건국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광복절이 곧 건국기념일입니다.

8월 15일이 되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67년이 됩니다. 광복절 67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는 해방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26편이 지어진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곳에서 온갖 수모와 수치를 당하며 생활했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70년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 아래에서 40년 만에 해방되었지만 이스라엘은 70년 만에 해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힘을 키워 독립을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페르시아 왕인 고레스가 지배자가 되었고 그가 유화정책을 쓰면서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이스라엘로 돌아가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습니다. 70년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 땅으로 돌아오면서 감격하여 지어 불렀던 노래가 바로 시편 126편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감사, 소망, 결단이라는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1-3절을 읽어보면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바벨론의 강력한 군사력과 싸워 독립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독립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그들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새로운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했고 그 황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해방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급하게 짐을 꾸려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면서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과 고레스 왕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뒤에서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해방되는 과정과 우리나라가 해방되는 과정에 공동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강대국들의 전쟁을 통해서 해방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세계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했습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한 페르시아 황제인 고레스가 이스라엘의 해방을 선포해 준 것입니다.

일본의 식만지 지배에 있던 우리나라를 보면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과 미국의 세계의 패권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이 미국에 패망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에 의해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다른 나라의 힘에 의해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차이점은 우리는 한 나라를 찬양하고 그 힘에 의해 해방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지를 않습니다. 그것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들은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정신적, 경제적, 정치적인 속국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남한도 북한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이시시며 해방자되심을 고백할 때 그 분의 정신과 생각을 중심으로 이 나라와 민족을 바르게 세워 나갈 수가 있습니다. 광복 67주년을 맞아 이와 같은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오면서 그들의 소망을 4절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여기에서 ‘남방’이라는 지역은 이스라엘의 남부지역을 말합니다. 네게브 지역으로 대부분이 사막지역입니다. 그곳에 비가 오면 그 빗물이 한 곳으로 모여 큰 강을 이룹니다. 이것을 와디라고 합니다만 깊은 계곡을 이룰 정도로 급물살이 흘러 내려갑니다. 지형을 바꾸어 놓을 만큼 굉장한 힘을 가지고 흐릅니다. 

지금은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빈약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고국을 향하고 있지만 남부지역에 비가 오면 그 비가 모여 큰 강물을 이루어 지형을 바꿀 만큼 힘이 있는 것처럼 그런 모습으로 우리를 세워주옵소서 라는 소망을 담은 기도입니다.

또 다르게 해석을 하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수십만이었습니다. 그중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약 5만 명 정도입니다. 이 기도는 바벨론에 여러 가지 이유로 고국으로 향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도 하나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함께 하나가 되어 이스라엘을 다시 재건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 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생각의 차이로 인해 하나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아픔을 하나님께 고하며 그런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소망을 품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45년에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련을 중심으로 한 북한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남한의 이념 차이로 인해 극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소련과 미국이 만든 3.8선을 중심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 으르릉 거렸습니다. 그것을 하나로 묶어 보겠다고 온 힘을 기울였던 사람들은 암살되었습니다. 결국은 두 동강이가 나고 남과 북은 갈라섰습니다. 해방을 얻었지만 온전한 해방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반쪽이 된 아픔의 해방이었습니다. 이것이 6.25 전쟁을 통해 더 확고하게 굳어졌습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소련에 고려 족으로, 중국에 조선족으로, 일본에 조센징으로, 남과 북으로 흩어졌습니다. 하나의 민족이지만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분열의 아픔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쓴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돌아오면서 기도하는 소망의 첫 번째가 온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조국을 위해서는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의 첫 번째가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조건보다도 하나가 된다는 가치를 뛰어 넘을 수 없었습니다.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고자 하는 속성보다 나눠지는 속성이 더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역, 계층, 학연, 이념의 갈등들이 우리 사회가 하나가 되는 데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남과 북의 이념의 갈등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민족이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이념의 갈등이 하나님 안에서 치유될 때 민족이 하나로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신과 가치를 중심으로 생각을 나누면 그 안에서는 분명히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열과 갈등도 각 자의 생각과 습관을 중심으로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정신을 중심으로 서로 생각을 나누고 습관을 조절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영적 예배이고 신앙인의 삶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해 5-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1-3절까지는 웃음이 가득하고 찬양이 충만한 그런 기쁨을 노래하는데, 왜 갑자기 5,6절 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고 반대로 이야기합니까? 그것은 돌아온 사람들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해방과 자유를 감사해야 할 일이고, 두 번째 남아있는 사람들을 돌려보내주도록 기도할 일이지만, 오늘 우리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노래하고 기도만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소망하는 바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큰 꿈을 품었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고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복의 개념은 요행이 아니라 성실함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더 크고 귀한 꿈을 꿉니다. 그러나 그 꿈이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지혜를 가지고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애쓰는 수고의 뒤에 이루어집니다.

통일은 그냥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만큼 땀과 눈물로 뿌리는 수고와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통일의 정신을 가지고 수고하고 애쓰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을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며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이 한 주간도 주 안에서 승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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