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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달라져야 합니다 (엡 4: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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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져야 합니다 (엡 4:21-32)

전 세계적으로  한 때 웰 빙(well-being)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웰 빙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한 번 쓸고 지나가더니 다음으로 웰 다잉(well-dying)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행복하게 맞이하자는 웰 다잉 정신이 일어났습니다. 

요즘은 웰 빙, 웰 다잉의 시대를 지나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사는 가운데 입은 온갖 상처들을 치유하지 않으면 웰 빙도, 웰 다잉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힐링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부쩍 눈에 많이 뜨입니다. 

모든 음식과 사회 프로그램도 힐링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힐링 캠프라는 프로그램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 교회 이름을 치유의 교회로 변경시키는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기도 합니다. 음악 치유, 미술 치유, 댄스 치유, 향기 치유 등 모든 것 뒤에 치유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로 치유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종교에서도 탬플 스테이든지, 내적 치유를 위한 영성 훈련이라든지 하는 모든 것의 주제가 힐링, 즉 치유에 있습니다.

내적 치유라는 것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자라는 과정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느냐에 따라 성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에 받은 상처로 인해 일그러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은 성인이지만 그 몸을 이끄는 정신은 상처를 받은 아이의 정신이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를 성인 아이라고 말합니다. 성인 아이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건강하게 만들 때 그제서야 진정으로 영과 육적으로 사회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상처들을 하나하나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내적치유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우리 마음의 밭에 있는 돌과 가시들을 말씀과 성령의 쟁기로 갈아엎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골라내어 옥토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옥토에 뿌려진 씨앗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본다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들이 사단의 종노릇을 할 때에 가지고 있었던 나쁜 습관을 벗어 버리고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좋은 습관으로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나쁜 습관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영적으로 치유하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한 순간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세 가지 옛 사람의 옛 습관을 새 사람의 습관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첫 번째가 언어의 습관을 거룩하게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가 감정의 습관을 거룩하게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한 주간을 살면서 여러분의 감정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잘 조절하면서 사셨습니까? 노력을 한다고 했지만 실패하신 분이 있으십니까? 한두 번 시도해 보고 실망하며 나는 안 돼! 이 사람은 안 돼! 우리는 안 돼!! 라고 스스로 포기한 분은 없으십니까? 평생 동안 익숙해진 나쁜 습관을 한 두 번의 시도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병도 병의 증상에 따라 처방을 달리합니다. 병세가 약하면 주사를 한 번 맞고, 약을 며칠만 먹으면 낫는 병도 있습니다. 그러나 병세가 깊어서 오랜 시간 치료를 요하는 병도 있습니다. 어느 병은 평생 동안 정성을 기울여 관리를 해야 하는 병도 있습니다. 

우리가 감정을 표현하는 증세를 병으로 본다면 악화되고 고질적인 습관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 그것을 고치기 위해 무던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 스스로 관리가 되지 않으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으며 치료를 받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으며 꾸준한 관심과 노력 속에서 옛 사람의 나쁜 감정의 표현들이 좋은 감정의 표현으로 변화되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행위의 습관이 거룩하게 변해야 함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28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하는 못된 습관을 벗어 버리고 땀 흘려 수고한 댓가를 감사하며 그것으로 약한 자를 돕는 좋은 습관으로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얻는 것을 복이라고 말합니다. ‘대박’이라는 말은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우연하게 많은 물질을 얻게 되었을 때 하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대박이 나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기본적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 질서를 기본적으로 존중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대박이 난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 편에서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공의로우심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정직과 공의의 개념이 사라진 사회는 결국은 무질서 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십니다. 땀 흘리는 것만큼 거두는 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제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과 계획이 있으셔서 몇몇 사람에게 기적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실 때입니다. 하지만 매 순간에 우리들이 원하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우리 사회는 도리어 더 무질서해질 것입니다. 그곳에는 정직과 공의의 개념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둑질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 좀 도둑이 2층에 들어와 사무실과 제 방의 문을 다 부쉈습니다. 몇 만원 모아 놓은 돼지 저금통을 뜯어 갔습니다. 몇 만원 가져가기 위해 두 개의 문을 다 부숴 놓았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큽니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도둑질입니다. 정당한 노동의 수고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남의 것을 훔치는 것만이 도둑이 아니라 땀 흘리지 않고 일확천금을 얻기 원하는 마음도 도둑 심보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정직한 믿음의 사람은 일을 하면서 땀을 흘리지 않고 한 순간에 어떤 요행과 행운을 통해 큰돈을 벌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도리어 노동의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그 노동의 대가로 거둔 것을 가지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는 일을 할 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일하지 말고 그것보다 더 귀한 뜻을 품고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새 사람이 된 우리들에게 더 적극적인 경제관을 말씀하십니다. 먹고 사는 것을 위해 일을 하지만 더 아름다운 노동의 가치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우리 교회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청년이 공익요원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공익요원에게 10만이 조금 넘는 월급이 나온다고 합니다. 청년이 그 월급에서 매달 10만원씩을 모으고 있답니다. 공익요원이 22개월인데 그것을 모으면 제대할 때 220만원의 돈이 모아집니다. 그것을 모으는 이유가 캄보디아에 어려운 마을에 우물을 하나 파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쓰고 싶은 것이 많겠지만 그것을 정성스럽게 모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마음입니다.

저도 캄보디아에 다녀와서 한 가지 꿈이 생겼습니다. 제가 목회에서 은퇴할 때에 캄보디아 오지 마을에 우리 가족의 이름으로 학교를 하나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저희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5천만 원이면 오지 마을에 학교를 하나 지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서 그들에게 복음의 씨앗이 심겨지고 그 아이들이 성장해 몇 명이라도 캄보디아의 귀한 일꾼으로 자란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놀라운 사역이 될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제 힘으로 이룰 수 없다면 우리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그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교회만을 지은 것이 아니라 학교와 병원을 지어 주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그 학교에서 배운 우리의 선배들이 이 나라를 깨웠고 오늘의 한국을 이루는데 앞장 섰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통해 한 나라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먼 장래를 위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정도 규모의 재물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 생각해 볼만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땀을 흘리며 재물을 모을 때 그 재물을 가지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리어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타인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매우 인색합니다. 그 옛 습관에서 벗어나 타인과 하나님 나라의 위해 헌신하는 새 습관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행의 습관입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자기의 제자 알리피우스의 나쁜 버릇 문제를 언급합니다. 그는 착하고 학식도 있고 덕성도 좋은 젊은이였으나 원형극장에서 벌어지는 검투사 경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거스틴이 강의를 할 때 투사 경기에 미친 사람들을 비웃는 말을 했을 때 알리피우스가 깨닫고 나쁜 버릇을 뉘우쳤습니다. 즉시 이와 같은 투기적 오락경기를 떨쳐내고 다시는 원형극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이었습니다. 알리피우스가 로마로 유학을 갔을 때 또 다시 투사 경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이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그는 친구들에게 끌려가면서도 큰 소리를 쳤습니다. ‘너희들이 내 몸을 거기에 끌고 간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과 내 눈을 결단코 그 경기로 향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알리피우스는 두 눈을 딱 감고 초연해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한 선수가 칼에 찔려 넘어져 우레와 같은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 때 자기도 모르게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피 흘리며 쓰러진 검투사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며 군중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옛날 습관이 다시 도져서 이제는 자기가 친구들을 충동질해서 앞장 서 이끌고 원형경기장으로 갔습니다.

어거스틴은 이와 같은 실화를 소개하면서 못된 습관을 끊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습관의 폭력’이라는 말까지 쓰고 있습니다. 나쁜 습관이 거기에서부터 우리를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폭력을 행사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알리피우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참 중요한 말을 하나 던집니다. 비록 친구들의 강요로 경기장까지 끌려왔던 알리피우스가 자기는 절대로 검투사 경기에 흥분하거나 그 어떤 동요도 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어이없이 실패한 이유를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을 더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옛날의 나쁜 습관을 끊고 새롭고 거룩한 습관을 기르는 일은 우리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며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의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이 있을 때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좋은 영적인 습관을 가지고 세워질 수가 있습니다. 한 주간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는 가운데 나쁜 옛 습관을 벗어 버리고 좋은 새 습관을 입어 하나님의 영광된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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