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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 없는 구덩이에서 두 배의 축복으로 (슥 9: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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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는 구덩이에서 두 배의 축복으로 (슥 9:9-17)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은 사복음서에 전부 인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심으로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이 실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스가랴 9장 9~17절까지의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첫째, 우리에게는 왕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의 큰 왕이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데 그 중 성자 예수님께서 인간사회에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슥 9:9). 

그런데 그 왕은 교만한 왕이 아니라 겸손하며 수수한 왕입니다. 보통 왕들은 말 중에서도 가장 좋은 말을 타고 다니는데 그 왕은 나귀를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공의로운 분이시며 그분의 손에는 구원이 있어 구원을 베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왕국이 있어야 됩니다. 겸손하시며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어떤 왕국입니까?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슥 9:10). 

예수님의 왕국은 병거나 말이나 활로 유지되는 왕국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왕국들은 군사적인 무기로 유지됩니다. 그래서 저마다 핵무기를 보유하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무력적인 방법으로 왕국을 통치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적인 것이고 말씀으로 세워지며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포함하는 왕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9장 9절에는 왕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10절에서는 왕국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스가랴 9장 11~17절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왕국의 백성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왕국의 백성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예표이며 그림자입니다. 그 실체는 신약시대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교회를 향한 것입니다. 

Ⅰ. 왕국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진 포로”들이었다 

왕국의 백성들은 구원받기 이전에 비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슥 9:11~12). 

왕국의 백성들은 물 없는 구덩이에 빠져있던 죄수들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의 피로 인하여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일차적인 의미는 유다 백성들이 B.C. 587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약의 피로 인하여 물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은 B.C. 538년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고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바벨론에 포로로 있던 유다 백성들을 건져주셨느냐? 그 이유는 언약의 피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4장에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언약을 맺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잘 지키면 너희가 복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포로가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가 짐승의 피로 언약을 인준하고 언약의 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내용 가운데 유다 백성들이 언약을 어겨 포로가 되어도 잘못을 깨달아 뉘우치고 마음을 돌이키면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네 포로를 돌리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신 30:3). 

너희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70년 동안 했지만 언약의 피로 인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였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것은 일차적인 의미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멸망과 지옥에서 건짐 받는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짐승의 피로 언약을 맺는 것은 그림자이고 예표에 불과하며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써 언약을 맺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부활하게 되며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성령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결코 어기지 아니하시는 언약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물 없는 구덩이에 빠져있다가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 없는 구덩이는 옛날 동방의 왕들이 사람을 죽일 때 빠뜨린 곳입니다. 

요셉의 형들도 요셉을 물 없는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할 때도 물 없는 구덩이에 빠뜨렸습니다. 물 없는 구덩이에는 물도 없고 먹을 음식도 없습니다. 너무 깊어서 자기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 없는 구덩이에 있다는 것은 3일만 지나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식기도를 해도 물을 마시고 하면 40일까지도 할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3일 이상 못합니다. 이처럼 물 없는 구덩이는 왕들이 죄수를 죽이려고 만든 장소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불신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 없는 구덩이에 빠지면 아무리 돈이 많고 쾌락을 즐기면서 기분이 좋아도 3일이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 없는 구덩이에 빠져있는 죄수들 가운데에도 소망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슥 9:12). 어떻게 이 사람들이 소망을 갖게 되었느냐?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물 없는 구덩이에 빠져있는 죄수들을 살려주겠다고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스가랴 9장 12절을 보면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장이란 단어의 뜻은 피난처입니다. 하나님께서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마련해주셨고 구덩이 속에서 꺼내주시겠다는 언약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죄수들은 소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마련해주신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피난처가 없습니다. 부처님, 알라, 귀신에게 피하면 완전히 망합니다. 구덩이에서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시 61:3). 

이렇게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물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내시고 그 발을 반석 위에 두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무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피로 죄사함을 받으며 언약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Ⅱ. 왕국의 백성들은 두 배의 축복을 누린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슨 축복을 주시느냐?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슥 9:12). 과거에 당했던 슬픔의 두 배로 복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보통사람들과 다릅니다. 갑절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갑절로 복을 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 원수들을 물리치는 승리를 주십니다. 원수와 싸워서 진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무조건 이겨야 됩니다. 탁구를 쳐도 축구를 해도 이겨야 됩니다.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슥 9:13~15). 

그냥 봐서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원수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다를 활로 삼으시고 에브라임을 화살로 삼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B.C. 167년에 일어난 마카비 혁명을 뜻합니다. 
 
헬라에는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유명한 왕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점령할 나라가 없어서 억울하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왕이었습니다. B.C. 336년에 왕이 되어서 20살에 전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를 점령하고 10년 만에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의 부하로 있던 네 명의 장군들 중심으로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마케도니아는 카산더가 갖고 터키 쪽은 리시마코스가 갖고 팔레스타인 땅을 중심으로 북쪽 시리아는 셀류시드가 장악하고 남쪽 애굽은 톨레미가 장악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땅을 가지고 셀류시드와 톨레미가 전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다니엘 11장에 이 전쟁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팔레스타인 땅은 톨레미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톨레미는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핍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셀류시드 왕조의 사람들이 톨레미를 밀어내고 B.C. 200년에 팔레스타인을 차지하자 유다 백성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B.C. 175~164년까지 통치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가장 악했는데 이 사람이 애굽을 치다가 실패하자 돌아오는 길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성경을 불태우고 유대인의 절기를 금하며 성전에는 제우스 신상을 세워서 돼지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모독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티오코스에게 잘 보여서 대제사장이 되려고 했던 제사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집안을 격동시켜 이들과 맞서 싸우게 하십니다. 모딘이라는 동네의 제사장이었던 맛다디아스(Mattathias)는 아들이 5명 있었습니다. 이들이 유대인 중에서 돼지의 피로 제우스 신에게 희생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을 죽이면서 일으킨 혁명을 마카비 혁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맛다디아스의 집안을 하스몬이라고 부릅니다. 

맛다디아스는 1년 만에 죽고 5명의 아들들이 중심이 되어서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마카비 혁명에 가담하게 됩니다.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단 11:32).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은 신앙의 핍박이 올 때 강하고 용맹을 발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3년 만에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고 시리아 군대를 쫓아내고 독립 국가를 이루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건을 마카비 행전에 기록해놓고 수전절에 이것을 읽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작은 숫자로 큰 왕국인 시리아를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팔을 불어 군대를 소집하고 번개처럼 화살을 쏘아 시리아 군대를 멸망시킨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슥 9:15). 

우리 성도들에게는 원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마귀와 귀신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와 귀신들은 거짓된 종교와 사상을 퍼뜨려서 사람들을 부패시키고 타락시켜 마약을 먹게 하고 동성연애를 하게 하며 우상숭배를 하게 합니다. 그들은 영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호위하심과 신속하신 활동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우리는 원수를 이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사람들을 이용해서 공격합니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원수가 생기고 가정에서도 원수가 생깁니다. 하지만 어떤 원수라도 우리는 이길 줄로 믿습니다. 
 
둘째, 특별한 사랑을 주십니다. “이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슥 9:16). 

면류관도 좋은 것인데 면류관에 박힌 보석은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는 면류관에 박힌 보석처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들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어보면 우리는 면류관의 보석이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셋째, 대를 이을수록 번영하는 축복을 주십니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 (슥 9:17). 저는 목사지만 제일 걱정되는 것이 자녀들 문제입니다. 제 자녀들이 잘못되면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서 자녀들이 저러냐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자녀들이 어떻게 하면 바르게 자랄까?’가 목회자들의 가장 큰 고민인데 저는 스가랴 9장 17절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소년과 처녀는 자라나는 신세대를 가리킵니다. 자라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니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원수를 이기게 하시고 면류관의 보석처럼 사랑해주시며 우리 자녀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Ⅲ. 왕국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 승리와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반응을 보여야 됩니까? 스가랴 9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슥 9:15). 

동이라는 것은 커다란 양동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생제사를 드리면 그 피를 동이에 받는데 그 피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제물을 많이 드리고 감사가 많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감사를 입에 달고 다녀야 됩니다. 요즘 날씨가 상당히 더운데 덥다고 짜증을 내면 다른 사람과 싸우게 됩니다. 더워도 감사하고 자녀가 대학에 떨어져도 감사하고 남편이 술 먹고 들어와도 감사하면 흑암이 물러가고 축복이 오게 됩니다. 
 
번제단이 사각으로 되어있는데 모퉁이에 뿔이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이 뿔에 피가 묻어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헌신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피묻은 제단 모퉁이는 헌신하는 일꾼들이 많아졌고 백성들이 속죄하며 경건하게 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감사하고 헌신하고 경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지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슥 9:17). “For how great is his goodness, and how great is his beauty” (ZEC 9:17, KJV).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을 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자기 허물과 잘못을 어려움이 온 것이지 왜 하나님을 욕하십니까? 우리의 허물과 잘못으로 인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이것을 찬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우리는 물 없는 구덩이에 살면서 조만간 죽어 지옥에 떨어질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주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우리에게 승리와 사랑과 축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감사하고 헌신하며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을 찬양하고 자랑하며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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