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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소중한 헌신 (고후 11: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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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헌신 (고후 11:16-30)

캄보디아 단기선교훈련을 은혜가운데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캄보디아 단기선교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 많은 은혜와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한 일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 캄보디아 땅을 향해 역사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면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번 단기선교훈련을 위하여 지원해주신 당회와 기도와 물질로 협력해 주신 모든 성도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무사히 선교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같이해서 기도해주신 중보기도팀과 무엇보다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 단기선교훈련에 직접 참여해주신 22명의 선교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우리교회가 섬기는 캄보디아 쓰로엠지역에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와 구원의 역사를 말로서는 다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며,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치유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캄보디아 단기선교훈련을 다녀오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선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흔히들 단기선교는 선교여행정도로만 생각을 하시는데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선교는 희생과 헌신과 수고와 눈물이 없이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번 캄보디아 선교훈련의 일정은 짧았지만, 많은 분들의 섬김과 희생과 눈물과 수고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선교에 동참하는 그 자체가 내 몸을 헌신하는 것이고, 희생하는 것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혼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것과 선교의 헌신에 동참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감격과 기쁨과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며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정성을 기울여 창조하신 온 우주 만물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놀랍게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도 소중한 대상이지만, 하나님을 부인하고 죄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사랑하시며 이들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좋은 환경이나 자신이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어떤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사도 바울의 관심은 바로 하나님의 관심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모르는 죄에 빠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사도 바울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죄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가문도, 학식도, 지위도, 명예도 돈도, 경력도,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빌 3:5-9절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가문적인 배경과 종교적인 배경과 사회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가진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성공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고난의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 이하에서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에 대해 설명합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를 무려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세 번은 태장을 맞았는데 이 태장은 채찍 끝에 납이나 동물의 뼈가 달려있어 한 번 맞으면 살점이 뜯겨서 나간다고 합니다. 

또 돌에 맞아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다 버린 적도 있고, 전도여행을 하다가 세 번이나 배가 파선하여서 표류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들의 위험과 자지 못함과 주리고 목마름과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서도 이렇게 고난의 삶을 산 이유가 무엇입니까? 

충분히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사도 바울이 이처럼 고난의 삶을 산 것은 바로 복음 때문입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일 때 증인이 되었던 열심 있는 바리새인이었고, 또 다메섹에 있다는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서 대제사장으로부터 구인영장을 받아서 갈 만큼 유대신앙에 푹 빠져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 3일 동안 흑암 속에서 기도함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택함을 받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은혜를 경험하였기에 롬 1:14절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내가 다 빚진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을 가졌기에 일평생을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며 수많은 고난을 이겨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기에 그는 평생을 복음을 위하여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복음’ 이것이 그에게는 삶의 목표였고 믿음의 목표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어렵고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복음은 바로 나의 존재의 목적이요 살아갈 삶의 방향입니다. 이 복음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 갈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고난을 받으며 최선을 다해 헌신했던 이유는 한 영혼 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헌신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 감옥에 주인의 재물을 훔쳐서 도망한 종이 있었습니다. 당시 종이 도망치다가 잡히면 주인에게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불쌍한 마음이 들었고, 그의 영혼을 사랑하여 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 종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오네시모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오네시모에 대해서 “내가 복음 안에서 낳은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오네시모를 위하여 주인인 빌레몬에게 친히 편지를 쓰는데 그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이 편지를 통하여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먼저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것을 부탁하고, 혹시 재산에 손해를 끼친 것이 있다면 자신이 갚아 줄 테니 따로 계산을 해 놓으라고까지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있었던 영혼사랑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당시 종은 사람으로서의 취급을 받지 못하며 더구나 노예가 주인을 돈을 훔쳐 도망했다면 당연히 죽이게 되어 있는데, 종의 신분인 한 사람의 영혼을 이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복음 안에서 다른 영혼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을 볼 때,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사도 바울이 가졌던 영혼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을 구원하는 선교는 생각과 열정, 그리고 선교사들의 간증과 보고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저 역시도 선교를 해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현지에 가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선교현장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뜨거운 사랑과 영혼에 대한 긍휼함이 느껴집니다. 선교현장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단기선교를 해외여행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선교도 하고 겸사겸사 여행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해 보시면 절대로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짧은 기간의 단기선교라고 하지만, 그리고 전문적인 선교사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선교현장에서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희생과 눈물과 기도와 헌신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번 캄보디아 단기선교훈련을 위해 가기 전부터 훈련하고 기도하며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짧은 기간이지만 현지에서 사역을 하면서 거의 매일, 그리고 순간순간 기도의 제목들이 생겼습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상황들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우리의 선교를 방해하고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매일 순간순간 기도하고 또 기도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지 아니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도하시면서, 선교가 얼마나 고난의 발걸음인가를, 선교가 얼마나 처절한 영적인 싸움인가를 너무도 절박하게 느끼고 또 느끼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사랑하며 생명을 구원하기를 바라는 우리 단기선교팀들의 눈물과 기도와 헌신과 사랑은 그 어떤 환경과 악조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였고, 예수님의 사랑을 몸으로 전하면서 함께 기뻐하였고 함께 울었습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사단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교묘하게 방해합니다. 영적인 전쟁이 치열합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우리 교회가 앞장서고 모든 성도들이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고난을 받으며 최선을 다해 헌신했던 이유는 주어진 직분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대적자들이 사도 바울을 대적하는 중요한 내용은 “네가 어떻게 사도이냐”는 사도성의 문제입니다. 원래 사도란 말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인데, 주님으로부터 직접 제자로 부름을 받고, 함께 생활을 하면서 가르침을 받은 뒤,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이 조건으로 보면 가룟 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11제자들이 사도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사명을 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5년 뒤인 A.D 35년경으로 사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을 하고 가르침을 받은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불러주셨고, 이방인의 전도자로 세우셔서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사도성은 주님이 직접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사도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했던 것을 우리는 그의 서신서를 통하여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과 직분에 철저한 사람이었고 헌신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만큼이나 자신의 직분에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고전 1:1절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불림을 받은 바울과”라고 기록이 되어있고 또 갈 1:1절에도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당하는 복음전도자의 직분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직분임을 믿고 확신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구원하는 이 거룩한 직분은 사람들의 뜻에 따라 주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직분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기에 자신의 모든 인간적인 좋은 조건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버리며, 극심한 고난과 핍박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캄보디아 선교를 다녀오면서 선교사의 직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직분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리는 이 사명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더욱 깨닫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영혼사랑과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과 헌신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수많은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교회 파송선교사인 박정재선교사님을 위해서 더 많은 기도와 관심과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한 사람의 선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 선교현장을 목격하신 분들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가진 그 직분은 누가 무엇 때문에 주신 직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여러분들을 그 직분의 자리에 있게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택하시고 세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도록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받는 직분과 사명은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엄청난 일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주신 사명과 직분에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 안에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이 맡은 직분과 사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영혼구원을 위해 맡겨주신 귀한 사명과 직분을 헌신적으로 잘 감당하는 충성스러운 귀한 믿음의 헌신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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