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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막 13:28-37) - 종말,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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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하라 깨어 있으라 (막 13:28-37)
    
오늘은 설교하기 전에 한 동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카페 프로페짜이-설교모임, No. 500-영상 "한국교회를 진단한다. "

E. 스탠리 존스는 화려하고 멋지고 환상적인 삶을 살았던 가공적인 인물에 대하여 글을 썼습니다. 그 사람이 한 일이라곤 어떤 것에 대하여 생각하기만 하면 짠! 하고 그대로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잠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뒤로 기대어 궁궐같은 맨션을 상상하였습니다. 

짠! 하고 15개의 방이 있는 삼층집이 생겨났으며, 무엇이든지 다 하여주는 나긋나긋한 시종들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좋은 차가 필요해서 다시 눈을 감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차를 몰고 드라이브하는 길을 상상했습니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운전을 하여 갔으며, 아니면 마피아단이 쓰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차 뒷좌석에 앉아 운전사에게 가고 싶은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닐 곳이 없어 그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호화스러운 식사를 주문하였더니 짠!하고, 앞에 온갖 좋은 냄새와 아름답기까지 한 식사가 대령하였습니다. 혼자 앉아서 그것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마침내 심심하고 식상하게 되자, 그는 시종들 중의 한 사람에게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난 여기서 나가고 싶어. 무언가 창조적인 것을 하고 싶어. 무언가를 얻고 싶단 말이야. 다시 무언가 어려운 일을 겪고 싶어. 여기에 있느니 차라리 지옥에 가는 편이 낫겠어.” 

그 시종은 조용히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지옥을 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물질만능에 사로잡혀 우리 주님이 예비해놓으신 천국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다 좋은 집에, 우리들 시대에 다 좋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좋은 고급승용차에, 멋진 콘도에, 세계가 좁다고 여행하며, 취미생활과 여가선용이라고 하여 다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다들 잘 살고 싶어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은데, “예수 믿고 천국에 갑시다.”라고 하면 “당신이나 가세요, 나는 여기가 천국이야, 천당 밑에 있는 동리에 산단 말이야”하고 무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를 믿느냐? 마음의 평안이나 얻고 수양삼아 나오고, 기독교를 좋은 문화생활 정도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예배라는 이름으로 모였는데, 잘 기획된 콘서트에 참석한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멋지고 화려한 예배도 많습니다. 그런 예배는 볼만 합니다. 말씀이 있는 열린 음악회나 다름이 없습니다. 기독교문화를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헌금하는 것은 입장료 내는 것이나 다름없이 생각합니다. 교회에 나가서 조금 헌금이라도 하고 와야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십시일반 조금씩 헌금하여 자선하고, 구제하고 선교하면 나도 참여하였으니 안심이 되고, 좋아 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감격속에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감격스럽고, 고맙고 감사하여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를 따라가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다하여 헌신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역사의 종말, 우주적인 종말이 다가오고 있고, 개인적인 종말, 한 사람의 운명이 다하는 날이 다가오는데, 우리의 종말이 코앞에 이르렀습니다. 인생이란 제원이란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기계는 사용할 수 있는 한계수명이 있습니다.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기계는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수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평균수명, 기대수명이라고 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녀 평균 79.1세입니다. 남자75.9세, 여자 82.5세입니다. 최고 장수국인 일본은 남자 79.55세, 여자 85.3세입니다. 남녀평균 82.4세입니다. 우리나라보다 한 3년 정도 더 살고 있습니다. 

요즘 건강100세 시대를 말합니다. 오래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인간은 100년을 넘기는 사람이 극소수입니다. 우리 모두 한 세기를 살면 가야 합니다. 100년 미만입니다. 90세만 넘어도 참으로 장수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강건하면 80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목사는 잠을 자도 곱게 자고, 누운 자리에서 돌아눕지도 않고, 평안히 잡니다.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길게 살고,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침대에 눕는 시간이 잠드는 시간입니다. 뒤척인다든지 잠이 오지 않아 걱정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잠꼬대를 하여 옆에 자는 아내를 깨운 적도 별로 없습니다. 말씀보고 기도하는 관계로 제 방에서 혼자 자고 있는데, 꿈에 벼락 치듯이 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홍모”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나갔습니다. 

항상 긴장의 연속이지요. 목회라는 것은 24시간 대기조와 같습니다. 침대 앞에 있는 옷장을 밀어제치고 상하 두 단으로 된 장인데, 아랫단에 부딪쳐 정강이가 새카맣게 멍이 들었습니다. 모서리에 부딪쳐 상처가 난 것입니다. 그러고 깨어보니 꿈에 저를 부른 소리에 뛰쳐나가다가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창문이 열린 쪽으로 뛰어나갔다면 5층에서 길가로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높은 난간이 있었으니 사실 걱정할 것은 아닙니다. 혼자 앉아서 얼마나 감사하면서 기도하였는지, 저는 요, 마지막 날 주님이 ‘일어나 오라’고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보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성목사, 하던 일을 멈추고 그만 내려오라”고 하시면 아직도 모셔야 하는 노모가 있다느니, 아직도 출가시키지 못한 사랑하는 딸이 있다느니, 지금 벌여놓은 사업체를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일찍 부르시는 것입니까? 그래도 이제 그만해라 하시면,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동작 그만” 군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구령입니다. “동작 그만” 이 명령에는 하던 모든 일을 멈추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면 밥을 먹던 중이라도 동작을 멈춰야 합니다. “동작그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을 하면 경계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20년 전,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면서 나온 다미파가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하다가 불발이 되었습니다. 그날은 지나갔습니다. 그들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이라는 목사는 그를 따르면 신도들과 함께 신세계교회라는 것을 조직하고 1999년에 재림한다고 하다가 그것도 불발되었습니다. 그들은 1999년 10월 28일에 휴거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게 됩니다. 1992년에 영적으로 휴거되었고, 실제적인 휴거가 1999년 10월 28일에 이루어진다고 하다가 허풍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도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럴듯하게 주장하였고, 확신하던 자도 있었지만, 다 새아침은 밝아왔습니다. 우리 주님이 오시는 날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에 사탄은 가짜 나팔을 불어서 우리를 속이고 있으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기다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가 재림주요, 메시아라고 떠들며 세계의 종교를 통일하겠다던 자가 병들어 이제는 오늘내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후에 그 집단이 어떤 형태로 변신할 것인지 걱정입니다. 그는 영원히 살 것처럼 아방궁을 차려놓고 세계최고의 의료진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죽습니다. 

유독이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종말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건강하지 못한 종말론을 가진 자가 미국을 오가며 집회를 하고 666이란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지난 70년대 서달석이라는 자가 신용카드 바코드가 666이라고 하면서 신용카드가 짐승의 표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 신학도 없는 자가 한국교회를 떠들썩하게 만들다가 망신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신용카드를 안 쓰는 사람이 없고, 물건을 살 때에 바코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바코드란 1에서 9와 0을 박대기로 표시하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격을 표시하고, 모든 수치를 표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오류가 나지 않는 바가 6이라는 바입니다. 이 6이라는 바로 시작하고 중간에도 6을 넣고 마칠 때에도 6바를 사용하니, 666이라는 바가 되었습니다. 바코드가 발전하여 신용카드가 나왔습니다. 요즘은 신용카드 한 장으로 모든 상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신용카드에 마그네틱 테이프를 부착하여 사용하는데 분실의 위험이 따르고, 용량이 적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그래서 또 발전된 것이 마이크로칩입니다. 이 마이크로칩은 마그네틱의 단점을 보완하였습니다. 마이크로 칩 하나에 A4용지 2500장 분량을 담아낼 수 있고, 해독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저장하고 수정할 수 있습니다.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유심(USIM)칩이 있습니다. 개인의 정보가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런 USIM을 무선주파수를 가지고 다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이패스처럼 지나가기만 해도 그 속에 담겨진 것을 다 읽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복제를 한다든지, 분실하면 엄청난 손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의 ADS라는 회사에서 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넣을 수 있는 생체칩을 만들었습니다. 이 칩은 쌀 한 알만한 캡슐 속에 128개의 유전자 코드, 축전지, 레디오코일 안테나로 있습니다. 이 생체칩은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RFID이란 소형 반도체 칩을 이용하여 사물의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입니다. 기술이 발달되고 보니, 무선주파수를 이용하여 물건이나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활용하는데, 여러 나라에서 동물의 몸속에 이 생체칩을 넣어 모든 정보를 입력하여 판독하며 거래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기술을 사람에게도 적용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많은 정보를 담은 전자여권을 비롯하여 전자주민등록증을 발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분실의 위험과 파괴될 수 있기에 생체칩을 사람들의 이마나 손등에 넣으려는 시도를 올지도 모릅니다. 이 생체칩이 위치를 추적할 수 있고, 모든 살아온 정보를 담아 통제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13:16-18에는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생체칩 같은 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을 반대해야지요. 세계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적은 수가 아니기에 경계할 것은 경계해야지만, 그런 것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이런 시도가 있다고 하여 예수님이 곧 오실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아주 잘못된 신앙입니다. 

신약성경이 말씀하는 신약 종말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기대입니다. 이 기대가 신약교회의 믿음을 지배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신앙이 오늘의 교회를 존속하게 만들었습니다. 재림 신앙은 우리를 구원하는 진리의 말씀에서 핵심이요, 최후의 완성이 됩니다. 

복음서와 서신서에도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은 수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4복음서에서 다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마16:27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영광중에 오신 주님, 영광중에 강림하신다는 말이 “파루시아”라고 했습니다. 이 파루시아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데 영광중에 강림하신다는 말입니다. 

바울서신에도 도처에 나타나는데, 살전5:2에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주의 날이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매 장마다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계1:7에서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에서는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마라나타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이 마라나타입니다. 초대교회는 “마라나타”를 말했습니다. 성도들이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말로 사용하였습니다. “주님이 오십니다.”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기원이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 주의 교회들은 우리 주님 예수님의 다시 오심, 재림에 대한 생생한 기대 속에 신앙을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그런 기대와 소망이 우리 성도들에게 보이지 않고, 아예 생각조차 없다면, 무엇인가 하나님의 진리에서 아주 멀어져 있고, 근본적으로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우리 주님이 더디 오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우리 주님께 아주 불충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이 너무나 물질적이고 세상의 일에 연연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에 대한 관심이 우리의 관심사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오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재림에 약속은 재림신앙만 남아 있고, 재림은 막연한 기대에 맡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힘차고도 생생한 기대를 잃어버린다고 하는 것은 교회 안에 퍼져 있는 아주 심각한 영적 질병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삼가 주의해야 하며 깨어 있는 신앙, 영적으로 각성하여 주님의 재림을 대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막13:32의 말씀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는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지는데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는 아들 우리 주님 자신도 그 날과 그 때를 모릅니다. 다만 아버지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이요, 아버지만이 아시는 날입니다. 

저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데, 우리가 사는 우리 시대에 다시 오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고대하고 소망한다고 하여 주님의 재림이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님이 우리 시대에 오시면 구원받은 사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우리 주님이 예비하시는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여러분은 죽은 다음에 오시는 것을 바라고 계십니까? 저는 우리가 살아 있는 우리 시대에 오시는 것을 고대하고 사모합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살만큼 살았으니 그런 생각하시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래요, 살아서 주님을 맞이한다면 그보다 큰 복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여름이 다가온다는 것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만 알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32절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고 사모하여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것을 32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어떤 말씀이 있든지, 사도들이 말씀하신 재림에 대한 교훈의 말씀에도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시는 말씀은 한 곳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33절입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신 차리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모토(Motto)라는 신학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어제 죽으셨고, 오늘 아침 일어나셨으며, 내일 다시 오실 것처럼 살자”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재림을 확신하지만, 그러나 언제 오실 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개혁주의 종말론을 쓰신 안토니 후쿠마라는 교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이 시간상으로 임박했다고 말하지 말고 상황적으로 임박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한 귀로 듣고 다시 한 귀로 흘려버리지 말고,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우주적인 종말, 역사적인 종말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머지않아 주님 앞에 서야 하는 개인적인 종말은 바로 코앞에 놓여 있습니다.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습니다. 

“그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레이스 트로이’라는 분이 지은 것인데, 번역을 잘 된 것 같지 않지만, 내용을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그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그 분이 오늘 오셔서 내 손에 가득한 
미래의 계획을 보신다면 아무리 멋진 계획이라도
그 속에 나의 구주와 함께 나눌 것이 없다면
그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그 분이 오늘 오셔서 나의 사랑이 식은 것을 보신다면
나의 믿음이 너무 약하고 희미해
그를 찾지조차 않는다면
그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그 분이 오늘 오셔서 내 인생길에 축복을 준
나의 천국의 친구에 대해
한 영혼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을 아신다면
그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그 분이 오늘 오시면, 나는 기뻐하리.
그 분께서 모든 이를 위해 죽으신 것을 기억하며.
하지만 나를 통해 그 누구도 그 분의 부르심을 듣지 못했다면
그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우리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보시면서 “주님은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하는 것을 한번 깊이 생각하시면서 신앙의 좌표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의 첫 문단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분이 오늘 오셔서 내 손에 가득한/ 미래의 계획을 보신다면 아무리 멋진 계획이라도/ 그 속에 나의 구주와 함께 나눌 것이 없다면/ 그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오늘 예수님을 사모하시면서 예수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주님안에서 깨어 있어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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