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광복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첨부 1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오늘은 광복절기념주일입니다. 금주 수요일이 67번째 맞는 8.15 광복절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힘으로 합방시키고 이어서 중국도 정복하고 인도네시아, 싱가폴, 인도차이나 여러 국가들을 모두 손안에 넣었습니다. 1941년에는 드디어 일본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진주만(지금의 하와이)를 공격하여 미국의 함대를 다 초토화 시켜버렸습니다. 1942년에는 네델란드까지 항복을 받을 정도로 전 세계를 통치하려는 야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막을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통 중에 있는 온 인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또한 이 민족의 고통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1945년 2차 대전을 일으킨 세 나라를 동시에 멸망시키셨습니다. 이탈리아의 뭇소리니는 4월 28일에 사살되었고, 이틀 지나서 히틀러는 4월 30일 권총으로 자살해 죽었으며, 8월 6일과 9일은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탄이 떨어지면서 일본 천황은 드디어 8월 15일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함으로써 우리 민족은 드디어 해방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이한 지 벌써 67년이 되었기에 젊은세대와 신세대들은 나라 잃은 서러움이 무엇인지 로릅니다. 이야기로 전해 듣는 정도입니다. 저도 해방 이후시대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뼈속까지 나라 잃은 서러움을 안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해방을 우리의 안일과 무사(無事)로 인해 또다시 잃어버리고 종의 멍에를 매게 되지 않도록 근신하며 깨어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 나라와 민족이 타 민족에게 속박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셨던 이승만박사가 하야를 하고 하와이에서 생을 마칠 때 우리 민족을 향하여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겼는데 그분의 유언은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매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유언은 오늘 본문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한 조류 학자가 깊은 산 속에서 앵무새 둥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매일 아름다운 노래를 듣기 위해 앵무새를 새장에 넣어 마당 한 쪽의 나무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어미 앵무새가 나타났습니다. 어미 새는 새끼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다 주었고, 조류 학자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 너무 좋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새장의 앵무새는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조류 학자는 죽은 원인을 분석하고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미 새가 갖다 준 먹이는 놀랍게도 독이 든 과일이었습니다. 어미 새는 새장에 갇힌 자신의 새끼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는지 독이 든 과일을 조금씩 먹여 고의로 죽인 것입니다. 이처럼 동물도 먹고 자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독립 운동에 헌신했던 패드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는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한 말로 유명합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자유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만큼 소중한 것임을 깨우쳐 줍니다. 따라서 자유를 빼앗긴 상태로 사는 것은 죽음만도 못한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남의 종노릇하는 사람처럼 가련한 사람은 달리 없을 것입니다. 

자유를 잃어본 자만이 자유의 소중함을 압니다. 나라를 잃어본 나라의 백성만이 나라와 민족의 소중함을 압니다. 이승만박사는 나라 잃은 백성의 서러움을 몸소 체험하면서 독립운동을 한 세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 유언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얻은 자유는 참으로 어렵게 얻은 자유였습니다. 36년 동안 일본제국에 의해서 모든 자유를 박탈당하고 노예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돈될만한 것들은 36년동안 일본이 다 빼먹어버렸습니다. 내선일체라고 해서 우리의 혼과 정신세계까지 다 뺴앗아버렸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일일이 다 열거하고 언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유를 지키지 못한 나라와 민족과 개인은 결국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을 때는 쉽게 잃지만 찾을 때는 쉽게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자유입니다.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을 쉽게 팔아먹었습니다. 국가도 민족도 백성들도 그것을 넘겨줄 때는 쉽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되찾는데는 36년이 결렸고, 그것도 우리가 힘이 있어서 얻은 자유가 아닙니다. 함석헌선생의 말처럼 꿈같이 온 해방이었고, 도적같이 찾아온 해방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너무 불쌍하니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잃을 때 너무 허망하고 어이없게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 기회를 한번 더 주신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네 가지 자유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기아에서의 자유" 입니다. 유엔 식량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지구촌 곳곳에서 먹지 못해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이 1분에 28명이랍니다. 
둘째는 "질병에서의 자유" 로 건강하게 살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전쟁과 자연재해의 공격으로부터 자유" 를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정치적 억압에서의 자유" 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네 가지 자유보다 더 중요한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자유입니다. 우리에게 정치적인, 사회적인 자유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영적으로 자유하지 못한다면 결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의 멍에를 어떻게 해서 메게 되는 것입니까?
방종때문입니다. 자유인이라면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자유는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의 삶은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갈 때 누릴 수 있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품에 있을 때 진정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아가면 그것은 결코 자유가 아니고 나를 더 억압하고 파멸로 이끌어가는 불행한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자유를 가치 있게 사용하는 법을 진리 안에서 배워야합니다.
참된 자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기쁨을 가지라고 주셨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부담없는 공동체, 부담없는 만남, 부담없는 삶을 원합니다. 그래서 교회생활도 부담없이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종의 멍에를 메는 방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부담스럽게 교회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내 할일이 있어야 합니다. 내 땀과 눈물과 수고가 들어가야 합니다. 
  
부담 없는 교회생활을 위해 예배에 자주 빠지고, 직분을 부정하고, 헌신하는 것을 즐거이 하지 않는다면 그 신앙을 이어가기 쉽지 않으므로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부담감을 느껴야 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교회의 각종 모임에 대한 부담감도, 짐스럽게 느껴질 때가 없지는 않지만 직분에 대한 부담감도, 물질주의가 만연한 세상에 살아가면서 헌금에 대한 부담감도 가질 뿐만 아니라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도에 대한 거룩한 부담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담 없는 교회생활, 그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살아가려 했던 아담과 하와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이어지는 모든 후손에게 억압된 삶을 물려주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어 오시고 또 하늘의 부요와 하늘의 권세와 또 생명을 다 희생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우리 죄를 속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참 자유를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항상 멍에 아래로 다시 매어두려는 자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느날 갈라디아교회로 갈라디아교인들을 율법의 멍에 아래로 다시 메어 두려고 하는 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버린 그 멍에를 다시 메게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자유를 굳세게 서서 지키고, 다시는 죄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굳세게 서서라는 말을 주의해서 보셔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묶이며 우리가 굳세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가 고통일 때 미련 없이 자유를 버리는 태도는 참 자유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좀 가난하면 어떻고, 좀 어려우면 어떻습니까. 어찌 이걸 자유에 비교하겠습니까! 우리는 자유의 고귀함을 알아야 됩 니다. 어떤 것으로도 소중한 자유를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자유를 꼭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