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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까이 해야 할 계시록 (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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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해야 할 계시록 (계 1:1-3)  

요한계시록은 계시를 적어놓은 책이다. 계시란 말은 아포칼리시스란 말인데 ‘덮개를 벗긴다’는 뜻이다. 한문으로 열 계(啓), 보일 시(示)다. ‘계(啓)’란 활짝 열어보인다는 뜻이고 ‘시(示)’는 보다의 ‘시(視)’가 아닌 보일 ‘시(示)’다. 

즉 계시란 누군가 보여주는 것을 본 것이지 내가 마음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하고 요한계시록이 시작되고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시기에 본 것을 기록했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은 모두 2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인데 먼저 이 책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요한계시록 이해는 종말론, 재림론, 환난 그리고 천년왕국 등에 있어서 대개 성서적이라기 보다는 자극적이고 호기심적으로 되어 있다. 상업적인 것에 의해 출판되는 검증되지 않은 도서들에 의해 거짓 정보를 갖게 된 사람들의 종말론이 판을 치고 있다. 

게다가 일제 시대의 망국의 한과 핍박, 6.25사변의 재난과 삶의 불확실, 가난과 고통 속에서 겪는 혁명과 데모, 사회적 불안이 이단의 싹을 틔웠고 안타깝게도 요한계시록이 오용, 도용, 남용, 변측 해석되어 왔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어떤 이들에게는 성경이 오직 계시록 하나인 것처럼 매달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계시록을 덮어버리고 전혀 교회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도외시 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오해도 풀어야 하지만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도 똑바로 해야 한다. 오늘의 시대에서 이 요한계시록을 왜 가까이 하여 이해해야 할까?  

1. 요한계시록은 가장 큰 복을 주는 책이다. (계1:3)

요한계시록은 흔히 난해하다고 한다. 짐승, 음녀, 바벨론, 두 증인, 천년왕국 등 이런 단어들이 낯설어서 상징 책이라고 한다. 이것이 오해다. 오히려 복 받는 책이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우리는 복(福)하면 또 물질과 재산, 건강과 좋은 지위를 생각한다. 우리네 밥상의 숟가락에도 써 넣는 복이란 글귀는 모두 부귀(富貴), 강녕(康寧)을 의미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복은 말씀을 읽는 자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 지키는 자이다. 

요한계시록을 예언서라고 하는데 이 예언이란 말이 장래 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미래적인 것도 있지만 예언된 말씀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손길을 해석하는 것이 예언이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시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 예언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예언이란 말에 신비감이나 특별한 무게를 두지 말고 전해진 말씀을, 기록된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는 것, 1장에서 22장까지 1시간 5분정도 걸린다. 두 번째 읽으면 55분이면 다 읽는다. 새벽기도회에 읽고 100일 저녁기도회에 1장씩 읽고 있는데 읽는 것은 여러분이 받는 복이라. 또 듣는 것은 교회에 나오면 들을 수 있다. 요한계시록을 강론하면 들을 수 있다. 역시 이것도 내가 마음먹어야 한다. 지키는 것도 나의 태도에 의해 달려 있다. 복 있는 인생이 될 것인지의 여부는 전적인 나의 몫이다. 어리석은 것에 시간을 들이지 말고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일에 투자하여 30배, 100배의 복 있는 성도가 되자.
  

2.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다. (계1:1)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오해할 때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이 요한인 줄 안다. 요한은 밧모 섬에 귀향을 가 있었고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자다. 요한은 피동적으로 들려주셨기에 음성을 들었고 보여주셨기에 하늘의 세계를 보았다. 

계1:1을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천사들에게 가져가게 하고 천사가 요한에게 보내어져 계시를 알게 한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받은 그리스도가 책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하고 계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되어 있다. 첫 장, 첫 줄로부터 예수 이름이 나오고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도 예수님의 이름이 나온다. 예수님이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이라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전개되는 환난의 스토리는 두려울 것이 없다. 주인공이신 예수님에게 초점을 두면 신나는 책이다. 이기리라는 책이다. 미래가 보장되고 축복으로 안내하는 책이다. 

요한계시록을 오해하면 예수님이 안보인다. 요한이 기록한 신비스럽고 이상한 이야기에만 몰입하려 한다. 그래서 시한부 종말론, 실현되어 버린 종말론, 변측 종말론 등에 현혹된다.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은 짐승과 적그리스도, 음녀가 아니다. 예수가 주인공이다. 환난이 집채보다 크게 다가와도 역사의 주인공, 사건의 주인공은 언제나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고 어떤 사람, 다른 이단 교주 등에게 초점을 두는 오해를 버리고 올바른 이해의 눈을 갖자.
  

3. 요한계시록은 속히 될 일을 보여주신 것이다. (계1:1)

그렇다. 요한계시록은 속히 될 일을 보여주신다. 계1:1의 말씀을 따라 계1:19 “장차 될 일”이라 하였고 계4:1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이라 하였고 계22:6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이라고 하였다. 누가 이 분명한 표현의 반복을 부정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 속히 될 일, 장차 될 일이란 무엇인가? 7년 환난, 주의 재림, 천년왕국, 백 보좌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등 이렇게 요약되는데 그렇다면 이 책이 7세기, 10세기, 15세기, 20세기, 그리고 지금까지인 21세기에 일어난 징조를 언급한 것일까? 이 시대의 징조를 찾는 사람에게도 장점이 있고 역할이 있다. 이 시대의 때를 분별해 보겠다는 역할이 있다. 하지만 장차 될 일이라는 것을 붙잡고 징조만 찾는데 요한계시록을 짜맞추려고 한다면 오해가 생기게 된다. 

그 동안 심심찮게 재림의 날짜를 자꾸 예견하고 수정하는 일이 반복된 것은 징조 찾기 때문이다. 징조 맞추기가 사람들을 깨우는 것, 사람에게 긴박감을 주는 것이 기여한 공로라면 상징의 해석이 시대를 따라 자꾸 바뀌어지므로 또 앞으로도 또 바뀌어져야 하는 혼동을 자초하므로 요한계시록을 덮어버리게 만들었다. 가령 666으로 표현된 짐승은 네로나, 도미티안의 황제라는 것으로부터 교황, 마호메트 그리고 더 나아가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EC공동체로까지 해석하고 오늘 날에 와서는 경제적 통제,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가는 도구로서 나타난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장차 될 일이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교회의 승리, 역사의 종국에 나타날 천년왕국으로서의 통치의 승리임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 장차 될 일은 단2:28~29을 보면 그 내용이 나온다. 

단2:25~45에 의하면 느브갓네살 왕이 이상한 신상을 보았다. 그 머리가 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진흙이었다. 이를 두고 다니엘이 해석할 때 각각 다른 금속 재질은 역사에 등정하는 4대 제국이었다.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의 제국이 이어져 가지만 그 마지막은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를 세운다.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다. 이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이 영원히 망하지 않을 하나님의 나라, 강력한 제국들이 무너져 버리고 영원히 서는 나라를 이루신다. 

다니엘이 느브갓네살 왕에게 해석해 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란 바로 이것이다. 이 나라를 세우는 돌, 산돌은 예수 그리스도다. 따라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은 교회를 핍박하는 로마 제국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 바벨론, 로마를 무너뜨린다는 내용이다. 땅의 제국은 다 무너진다. 그리스도가 머리되시는 나라,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 천년왕국이 세워지는 것, 그것이 속히 될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붙잡고 계신 주님이 교회를 보호하시고 교회를 지키시며 마침내 교회로 승리하게 한다는 것이 장래 일이다. 속히 이루어질 일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환난을 당하는 성도에게 보내진 위로의 문서다. 교회를 붙잡는 축복의 문서다. 길흉을 말하는 예언이나 징조를 맞추는 점쟁이 책이 아니다. 고통과 악이 득세하는 이 세상 속에 사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를 교회에게 알려주는 책이다. 오해를 풀고 속히 될 일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자.

역사와 제국의 주인은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주의 주이시오, 우리의 왕이시며 신랑이시다. 속히 될 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 건강한 종말론이 된다. 자신을 감람나무로, 자신을 두 증인으로, 자신을 구세주라고 말하는 거짓된 이들에게 현혹되지 않는다.

 축복의 책, 요한계시록을 더럽혀서는 안된다. 축복의 책, 요한계시록을 이단들의 전유물로 오용당해서도 안된다. 주인공되신 예수를 밀어내고 계시 받은 목자가 자신이라고 인간의 이름을 올려서도 안된다. 속히 될 일이란 하나님의 구속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의 완벽한 승리의 실현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요한계시록은 나와 여러분을 위해 주신 책이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종이 되려는 사람에게 알게 하시려는 귀중한 책이다.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종이 되자. 요한계시록이 새롭게 열리며 당신의 영혼에 환희의 새 드라마가 될 것이다. 아무도 그 드라마를 찢을 수 없기에 그 드라마의 완성을 기다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의 성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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