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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떤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갈 5: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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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갈 5:19-23)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님께서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거스르고 대적하는 세상에서 성령님께 순종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세상에는 육에 속한 사람인지 영에 속한 사람인지 헛갈리는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고전 3:1)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였지만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마 7:16)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포마토’라는 것이 있습니다. 포마토는 영어로 감자를 뜻하는 포테이토(Potato)와 토마토(Tomato)의 합성어입니다. 감자와 토마토 사이에 인공적 세포융합을 통하여 줄기에는 토마토가 열리고, 뿌리에는 감자가 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면 그야말로 일거양득일 것입니다. 감자와 토마토를 한 그루에서 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포마토에서 열린 토마토는 완전한 토마토가 아니고, 감자도 완전한 감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유전자 조작 식물로 만든 식품을 조심스러워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유전 공학의 발달로 배나무에서 사과가 열리고, 감나무에서 귤이 열리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밝히는 것이 될지 아니면 어지럽히는 것이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감자에서 열리는 것이 감자이고, 포마토에서 열리는 감자는 일반적인 감자가 아니라 ‘포마토에서 열리는 감자’라는 것입니다. 사과나무에서 열리는 것이 사과입니다. 배나무에서 사과가 열린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사과가 아니라 ‘배나무에서 열린 사과’입니다. 유전 공학의 발전은 그 열매를 분석하여 그 열매를 맺은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정확하게 밝혀낼 것입니다. 유전자 감식을 통하여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밝혀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열매를 통하여 나무를 안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열매를 통하여 어떤 나무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맺고 있는 열매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육의 사람이 맺는 육의 열매가 있습니다.
  

I. 육의 열매  

육의 열매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9절 말씀입니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오늘 말씀은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명백한 것들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분명한[fanerov"/화네이로스]’은 본래 ‘빛나는’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으로 명백하고 분명한 것을 가리킵니다. 육체의 일이란 무엇인지는 분명합니다.

1. 육체의 일은 분명합니다.

육의 열매인지 영의 열매인지 헛갈리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일로 분명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그리고 또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상의 열여섯 가지들은 한 가지씩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들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조심하여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것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간단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그룹들로 성적인 죄악들입니다.

여기에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 해당됩니다. ‘음행[poeiva/폴네이아]’은 정상적인 아닌 성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간음, 동성애, 수간, 근친상간을 가리킵니다. ‘더러운 것[ajkaqarsiva/아카달시아]’은 본래 ‘불순’한 것으로 역시 성적으로 음탕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호색[ajsevlgeia/아셀게이아]’은 성적으로 무절제하여 방탕하고 음탕한 것을 가리킵니다. 한 마디로 성적인 죄악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2010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성폭력 범죄는 총 1만 9,939건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루 평균 54.6건이 발생한 것이고, 한 시간당 2.3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82.7%)이 이를 남의 일 같이 않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범죄의 또 다른 문제는 성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가 대다수(85.1%)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동네 어른들이 지적 장애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한 인면수심의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가 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라는데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약’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악’한가 하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이어지는 육체의 일로 분명한 것은 또 어떤 것이 있습니까?
20절 말씀입니다.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우리는 여기에서 분명한 육체의 일의 두 번째 그룹과 세 번째 그룹의 죄악들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불신앙의 죄악들입니다.

우상 숭배와 주술은 불신앙의 죄입니다. ‘우상숭배[eijdololatriva /에이돌롤라트레이아]’는 말 그대로 거짓 신에 대한 숭배입니다. ‘주술[farmakeiva/활마케이아]’은 우상숭배의 속임수와 유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모두 다 잘못된 대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쾌락을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인기에 죽고 인기에 사는 유명한 스타들만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쫓아다니는 사람들 역시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민심이라는 허상을 쫓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자신과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박수와 칭송과 아부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들 역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예배가 왜곡되어 하나의 형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재물이나, 명예나, 정욕이나 권력을 섬기고 있을 수 있습니다. 끝임 없이 새로운 종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성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명백히 육체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20절 말씀에는 불신앙의 죄악들과 또 달리 구분할 수 있는 육체의 일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죄악들입니다.

20절 말씀에서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그리고 21절 말씀에서 투기는 모두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죄악들입니다. ‘원수 맺는 것[e[cqra/에크드라]’은 다른 사람을 증오하는 것입니다. ‘분쟁[e[ri"/에리스]’은 다툼, 불화, 언쟁입니다. ‘시기[zh'lo"/젤로스]’는 다른 사람을 질투하여 마음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분냄[qumov"/뒤모스]’은 거친 숨을 내몰아쉬면서 격분하는 것입니다. ‘당 짓는 것[ejriqeiva/에리데이아]’은 ‘음모’를 꾸미는 것입니다. 서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계략을 꾸미는 것입니다. ‘분열함[dicostasiva/디코스타시아]’은 서로 삐거덕거리는 알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단[ai{resi"/하이레시스]’는 끝이 다른 신앙의 분파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의견과 목표가 갈라짐으로 발생하는 분쟁을 가리킵니다. 12절에서 ‘투기[fqovno"/프흐도노스]’는 질투하고 시샘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지만 죄가 사람에게 들어오자 서로 핑계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급기야는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파와 아볼로파와 베드로파로 나누어 다투었습니다. 어쩌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서로 다투고 싸우고 갈라서는 것은 ‘비정상적인 정상’입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패를 가르고 싸움을 하는 것은 ‘불행한 정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육체의 일입니다. 우리는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 되는 길을 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21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21a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여기에서 또 다른 유형의 육체의 일을 보게 됩니다.

네 번째 그룹은 술과 관련된 죄악들입니다.

술 취함과 방탕함은 술과 관련된 죄악입니다. ‘술 취함[mevqh/메데]’은 말 그대로 술에 취하여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방탕[kw'mo"/코모스]’은 술을 마시며 야단법석을 떨고 떠들어 대며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위인 것’을 검색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위인 것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반도체 생산량 세계 1위, 선박 건조율 세계 1위, 제철 조강 생산량 세계 1위 등등. 이처럼 자랑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창피한 것도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청소년 흡연률 세계 1위, 술 소비량 세계 1위, 사이버 폭력 세계 1위, 간암 사망률 세계 1위, 여자 하루 흡연량 세계 1위 등등입니다. 

이 중에서 술 소비량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서 최고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소주 위스키 등 20도 이상의 높은 도수의 술 소비량은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29개 OECD 회원국 평균 소비량의 5.6배에 이르렀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술 소비량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서 경제 사회적 손실 규모도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서 술 마시는 문제에 대하여 점점 너그러워지고 있지만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음주가 분명히 육체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단순히 육체의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의 열매를 맺는 사람에게 주는 경고가 있습니다.

21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21b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는 너무나도 엄청납니다. 그것은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경계하다[prolevgw/프롤레고]’는 ‘미리 말하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일과 천국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엄청난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2.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육체의 일들 중에서 한 가지라도, 그리고 이러한 일을 한 번이라도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세상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일이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영에 속하였지만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냐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영이 그의 영에 머물러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졌노라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육의 열매를 맺고 있다면 정말로 믿음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믿음을 가졌노라고 하면서 상습적으로 육의 열매를 맺고 있다면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연약하여 실수하였다면 회개하여야 합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이 육체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 영의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맺는 육의 열매가 있는가하면, 하나님의 영을 모셔 들인 사람이 맺는 영의 열매가 있습니다.
  

II. 영의 열매

영의 열매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2절과 23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a 온유와 절제니 

여기에서는 육체의 일과는 반대가 되는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이것들은 성령님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들입니다. 이것들은 예수님의 성품이자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1.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들 역시 한 가지 한 가지가 모두 귀중한 그리스도인의 덕목들입니다. 여기에서는 역시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모두 깊이 묵상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ajgavph/아가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고 말씀하셨습니다. ‘희락[cara/카라]’은 유쾌함, 즉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eijrhvnh/에이레네]’ 평화,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랑, 기쁨,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것을 우리는 받아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래 참음[makroqumiva/마크로뒤미아]’은 인내, 잘못을 갚는데 더딤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벧후 3:9).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벌하시는 것을 오래 참으셨습니다. ‘자비[crhstovth"/크레스토테스]’는 도덕적으로 탁월한 친절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인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양선[ajgaqwsuvnh/아가도쉬네]’은 마음과 삶의 선입니다. 

모든 선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선을 베푸십니다. ‘충성[pivsti"/피스티스]’은 성실입니다. 시편은 여러 곳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노래하였습니다.(시 40:10, 54:5, 71:22 등등) 하나님은 흔들림이 없이 의지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온유[prau?th"/프라우테스]’는 온화한 기질, 온유한 마음, 유순함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하신 분이십니다(시 18:35). ‘절제[ejgkravteia/엥크라테이아]’는 자기통제 즉 자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심판을 스스로 멈추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성령님께서 성령님이 계신 그 사람의 영에 역사하셔서 열매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성령님이시고 열매는 이러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셔 들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열매로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역시 문제는 열매가 아니라 나무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를 아는 방법이 열매이기에 열매가 중요합니다.   

영의 사람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23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23b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에서 ‘금지하다’는 말은 앞서 17절 전반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의 ‘거스르다[katav/카타]’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거스르다’는 화해할 수 없는 두 상대의 철저한 상호 대립을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소원은 육체의 욕망과 대립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금지할 수 없다고 즉 거스를 수 없다고 하였으니 대립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에게는 성령의 열매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못 말리는 것입니다.


2. 금지할 법이 없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가 성령의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 8:26a)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성경은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b)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위하여 간구하심으로 도우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 받아 기도함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하여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뜻입니다. 

맹자는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므로 어머니 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맹자가 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습니다. 이곳에서 맹자는 늘 보던 것을 따라 곡(哭)을 하는 등 장사지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이에 맹자의 어머니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사를 했는데, 하필 시장 근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의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이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도 아이와 함께 살 곳이 아니구나 하여 이번에는 글방 근처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맹자가 글을 읽고 예법에 관한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맹자 어머니는 이곳이야말로 아들과 함께 살 만한 곳이구나 하고 마침내 그곳에 머물러 살았다고 합니다.

맹모삼천지교는 자녀교육에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고 들은 것을 따라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요즘 신앙생활하기 어려운 것은 보고 들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보고 듣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영에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 계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성령님께서 머물러 계시기에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성령을 따르기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는, 영에 속한 사람이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하여 육의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영에 속한 사람인데 아직 연약하여 육의 열매를 맺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육에 속한 사람이기에 육의 열매를 맺는 것인지 사람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영적 DNA를 분석해 보면 알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영적 DNA를 분석하는 게놈 지도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믿음과 열매를 통하여 분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머물러 계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었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십시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성령의 열매를 맺어 가십시오.

하나님의 영을 모셨기에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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