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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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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가려느냐? (요 6:66-71) 
 
이 요한복음 6장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육신의 주림을 채워 주심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누리는 귀중한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셨고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주는 말씀이다. 벳새다[요1:44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사람]의 언덕에 엄청난 사람들이 배고픔도 잊고 말씀을 들었고 주님께서 기적으로 그들의 주림을 채워 주심에서부터 하늘의 양식으로 강화해가는 귀한 교훈을 베푸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 임도 이 교훈 가운데 나타나는 말씀이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8~29) 

이런 엄청난 사랑과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군중들은 다 떠나고 달랑 열 두 제자들만 남았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으시는 말씀이 오늘의 제목이다. 결국 많은 혜택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은 다 떠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치 못한 자신의 기준으로서의 응답은 생명의 주님, 영광의 약속을 떠날 수 있다는 교훈이고 그러한 전례는 이렇게 주님께 온 갓 혜택과 은혜의 말씀을 모두 경험하고도 떠난 저들과 같이 오늘도 내일도 떠날 수 있다는 안타까운 가능성이다. 

또 마지막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부정적인 역할을 할 사람 즉, 자신의 구원에 관계없는 사람들도 가룟 유다처럼 부르심 속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70b~71…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결국 알곡과 가라지가 추수 때까지 함께 자란다는 안타까움도 비유 속에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종자는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종자를 바꾸실 수 있는 창조주 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마귀의 자식들, 진노의 대상이었던 우리의 중심을 성령으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바꾸신 것 자체가 종자가 바뀐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는 교훈 속에도 증거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리에 순종하고 따르려는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는 절대도 본인이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하시지도 않고 하실 수도 없다.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각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시는 질문에 직면하도록 말씀과 함께 긍정적인 답변을 준비할 수 있는 … 


Ⅰ. 주님으로부터 진리를 직접 듣던 사람들도 떠나갔다.(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한때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 삼으려고까지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요6:15) 그러나 이들 중에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60) 

결국 새로운 교훈에 놀랐고 배고픔까지 이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 삼으면 고생이나 수고 없이도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연이어 이 썩어질 양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을 위한 생명의 양식을 말씀하시자[27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에게는 감당이 되지 않았던 것이고 떠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할 때 그 수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수의 사람들이었다고 이해되고 이들 속에는 주님의 교훈을 반대하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도 함께하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 [제자, 헬mathetes]란 “배우는 사람, 학생”을 의미하는데 세상에서도 배우는 사람이 어렵다고 제멋대로 배움을 주는 대상을 떠나버린다면 달리 구제책이 없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한 때 떠났더라도 돌아온다면 하겠는데 주님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선 모습을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는 것이다. 주님과 담을 쌓는 것은 어쩌면 영원과의 단절이라는 데서 가장 큰 비극이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자신의 어려움으로 주님을 찾고 그러는 가운데 영생과 진리를 배우고 자신의 목적이 주님의 가르침 즉, 말씀 때문에 바뀌게 되고 이제는 영원의 영광과 약속의 귀중성이 이 세상의 모든 가치를 넘어서는 것으로 바뀔 때 비로소 이 세상의 조건에 관계없이 주님을 섬기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고백하기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f) 

주님과 영생을 가장 귀한 가치로 확신하고 이 세상에서부터 그것을 누리며 사는… 


Ⅱ. 주님을 떠나지 않아야 될 근거(68~69)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①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8) 여기서는 참 베드로답다. [영원한 생명의 논리(주제)]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는 말씀을 오해하여 수근 거리는 제자들에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3)는 주님의 말씀을 그래도 이해한 베드로 사도의 고백인 동시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신앙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이다. 모든 다른 믿음의 이유 마치 주님께서 온 갓 기적을 행하신 것처럼 모두 주변적인 것일 뿐이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역사가 주님의 육신으로 오심의 가장 큰 이유이며 표적이었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가장 최종적인 이유는 바로 영생이다.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겔34:18)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②예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되심을 알기 때문에 …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9)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알고 믿었다.’가 아니라 “믿고 알았다.”는 사실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세상의 썩어질 것을 얻고자 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요 구원자 이심을 믿기 때문에 떠날 수 없는… 


Ⅲ. 주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다는 자긍심이 중요하다.(70~7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세상의 그럴싸한 사람에게만 택함을 받아도 우쭐대고 자랑한다면 주님으로부터 택함 받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내) 평생의 자랑이요 영원의 자랑이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대상에게 잘 보이기 보다는 주님께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는 (화장-30분<주님께 잘 보이려고 그렇게 하는가!>, 깔창)]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9f)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3:14~15) 

우리는 다 내가 주님을 선택한 것처럼 자랑하고 큰소리치는데 과연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할 정도로 선할 수 있는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15:16) 

특히 레위인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민16:9) 말씀하시는 것은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께 택함 받은 것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귀중한 가치인가를 확신하는 … 


Ⅳ. 오늘 우리 각자에게 직접 물으신다.(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이것은 주님을 따르(섬기)는 이유를 물으시는 질문이다. 교회를 다니는 이유,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를 물으시는 질문이라서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에 세상에 것들(物質, 治病, 榮光)을 바라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 것들을 잃게 될 때는 주님을 떠나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처음 주님을 따르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고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가면서 이런 것들은 변화 되어야만 한다. 

내가 주님께 머물고 주님과 함께 사는 이유는 영생의 말씀이 계시기 때문이라면 주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랑과 자긍심 때문이라면 절대로 주님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b) 하셨다. 주님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운 마지막 시대에 있는 우리 각자에게 주님은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신다. 이 질문에 부끄러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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