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는 교회 (고전 9:1-12)

첨부 1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는 교회 (고전 9:1-12)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사도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기본적 생활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교회로부터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을 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직접 이 문제에 관련시켜 말합니다. 그는 자기가 사도 또는 복음전도자로서 누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우선 자기 자신의 사도 됨에 대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동의를 구합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에게 먼저 네 가지 질문을 연속해서 던지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이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본문 1절입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한 데서 “자유”는 사도로서 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한 것은 분명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경험을 가리키는 것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았다는 사실은 사도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습니다. 

사도라는 것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직 사울이었을 때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만난 주님으로부터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는 사명을 받고 이방 나라들을 두루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복음을 전한 확실한 사도였습니다. 사도로서 그가 행한 일의 결과의 하나가 바로 고린도교회였던 것입니다.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하는 물음은 바로 그 말입니다.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던 바울은 그 교회 신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그들은 바울이 사도로서 행한 일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임을 재확인 시킵니다. 본문 2절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인쳤다는 것은 법적으로 유효하게 확증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막장이 일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벌어 자기의 생활비에 충당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바울이 다른 사도들처럼 사도로서 대우받을 자격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가 전하는 복음은 믿고 들을 만한 것이 못되지 않느냐 하는 의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의식하며 쓴 글이 본문 3절과 그 이하의 내용입니다. 먼저 3-4절을 봅니다: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이 말은 사도 바울 자신과 그 일행이 스스로 일해서 먹고 사는 것이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을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기도 다른 사도들과 꼭 같이 섬기는 교회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얻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그 당시 다른 사도들이나 야고보를 위시한 예수님의 혈육상의 형제들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이들은 전도여행을 할 때 아내들이 함께 다녔으며 교회는 그 모든 비용을 다 담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아내들 없이 혼자 다닌 것 가지고도 그들의 사도로서의 자격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바울은 그 점에 있어서도 다른 사도들과의 꼭 같은 권리를 갖고 있음을 주장한 것입니다. 본문 6절에서는 바울과 그 일행도 굳이 스스로 일해서 생활비를 벌지 않고 교회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말합니다: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본문 7절에서는 사도로서의 권리를 세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다시 주장합니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군인이 군대에서 생활비를 받고 포도원을 가꾸는 사람이 그 열매를 먹으며 양 치는 사람이 그 양의 젖을 먹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군사로 섬기고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며 주의 양 떼를 치는 사역자는 당연히 교회로부터 그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쓰고 난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 인간적으로 하는 말로 생각되느냐고 되묻고는 그것은 율법에서도 가르치는 바라고 말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그리고는 그 예를 들어 말합니다. 본문 9-10절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사도 바울이 여기서 인용한 율법이란 신25:4의 말씀입니다. 옛날에는 타작마당에서 겨와 알곡을 분리시키기 위하여 소로 하여금 추수한 밀을 발로 밟게 했습니다. 또 알곡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서도 소로 하여금 맷돌을 갈게 했습니다. 그때 소가 일하면서 곡식을 먹어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소의 입에 망을 씌우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소가 그렇게 일하고 있을 동안에는 망을 씌우지 말고 소가 일하는 대가로 필요한 만큼 먹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짐승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하물며 사람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진정 깊은 관심은 사람에게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도나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주의 일에 전념하는 대가로 생활에 필요한 재정적 도움을 교회로부터 얻게 하시려고 그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묻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신령한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그들의 육신의 삶을 위한 도움을 교회로부터 취하는 것이 과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과 주의 사역자들이 다 교회로부터 그런 지원을 받고 있다면 사도 바울과 그 일행도 꼭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12절 상반절을 봅니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는 이들의 삶을 교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사도 바울은 본문 13-14절에서도 계속합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전도하도록 내보내시며 명하시기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하셨습니다(마10:9-10). 

이렇듯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의 세 가지 요점 중 첫 번째인 사도의 권리에 관하여 쓰는 데 본문의 대부분을 할애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본문에서 의도한 보다 중요한 강조점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그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요점입니다. 12절 중간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한 데입니다. 또 본문 15절 앞부분을 봅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로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그것을 행사하기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 권리 포기에서 오는 온갖 삶의 어려움을 다 참아냈다는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당당한 주님의 사도로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오늘 본문의 세 번째 요점이며, 여기에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을 쓰며 의도한 진정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제 본문 11-15절 전체를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우리는 12절에서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한 말과 15절에서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한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12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에로 나아오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15절의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한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자랑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였습니다. 그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그 대가로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으면 혹시라도 사람들이 그를 삯군으로 여기고 그래서 그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으로써 그의 복음전도사역이 헛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사도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했다는 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에게서 받아들여지는 데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는 그의 일념이 그로 하여금 사도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게 한 것입니다. 

본문 15절에서의 바울의 말 중에는 우리는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5절 전체를 다시 한 번 읽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자기가 사도로서의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는 이유가 어디 잇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거나 생색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다른 사도들에게 하듯이 자기에게도 해주기를 원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쓰기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해온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도사역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도로서의 자기 권리뿐 아니라 자기의 목숨까지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이 그의 목숨까지도 걸면서 원했던 것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사도 바울의 그런 자기 권리 포기를 본받아 고린도교회 신자들 또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할 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직전에서 사도 바울이 쓴 것이 무엇입니까? 고전8:10-13을 다시 봅니다: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을 자유가 있지만 혹 그 때문에 교회 안의 믿음의 형제 중에 실족할 사람이 하나라도 없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자기 권리 포기와 희생을 강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하여 사도로서의 권리를 스스로 행사하지 않았다고 한 말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사도 바울의 마음을 본받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도 없게 하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어 날로 더욱 부흥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