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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리없는 소리를 들으라 (왕상 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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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소리를 들으라 (왕상 19:11-12)


들리는 소리만 소리가 아닙니다.
말하는 말만 말이 아닙니다. 말없는 말이 있고,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습니다. 

<귀곡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불건전한 5가지 말을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맺힌 말(怨言)
근심하는 말(憂言)
화났을 때 하는 말(怒言)
수다떠는 말(戱言)
병든 말(病言)

이런 소리들은 들리는 소리지만 영양가 없는 소리입니다. 소리도 소리지만 소리없는 소리도 소리입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리보다 안 들리는 소리없는 소리가 더 큰 영양가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이 공기속에서는 소리없는 소리가 얼마나 많은 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TV 소리만도 100 채널이 넘을 것입니다. 라디오 전파도 엄청납니다. 수 만명의 핸드폰 소리가 섞여 있습니다. 

말 조심하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말하는 것만 녹음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새로운 발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의 말, 어제 한 말 모두 찾아내어 녹음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여러분 조상의 말도 다 찾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한 말 나중에 다 찾아 낼 수 있습니다. 그런 녹음기가 나오면 이제 거짓말 할 수도 없습니다.
말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식물학자가 풀과 나무들이 자기 감정을 나타내는 소리를 녹음하여 들려 주었습니다. 식물들도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 소리를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풀잎을 밟을 때에 아프다고 내는 식물의 소리가 있습니다.
가지를 꺽을 때에 싫어서 내는 나무 소리가 있습니다.
꽃을 꺽을 때에 찡그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톱으로 큰 나무를 자를 때에 내는 신음소리도 녹음하였습니다.

농사짓는 조상들은 말했습니다.
“곡식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
이같이 소리없는 소리가 많습니다. 소리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소리없는 소리인데 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있습니다.
  
1. 생각

미음속에서 조용히 떠오르는 생각은 어떤 소리보다 큰 소리입니다. 모든 성공은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실패도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생각하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성공은 돈없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애급에서 종살이하였습니다. 민족이 해방되었습니다. 그런 민족의 해방은 모세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모세의 생각이 민족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행 7;22-23)

모세가 궁중에서 40년 동안 살면서 애급의 최고 학문을 다 배웠습니다. 강조점이 있습니다. <다> 배웠습니다. 모든 것에 탁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다음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나이 40이 되매 이스라엘 자손을 돌 볼 생각이 나더니”
40년의 훈련과 교육, 40년의 모든 학문이 40살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 하나로 백지화되었습니다.
애급을 뒤집어 엎었습니다. 소리없는 생각하나의 위력은 원자탄만큼 폭팔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영향을 미치는 생각도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인신매매도 비참한 인신매매입니다. 유괴하여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가 아닙니다. 자기 선생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3년 동안 같이 동거동락한 스승을 팔아 넘겼습니다.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
생각이 그 사람을 지배합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잠23;7)

사무엘 스마일즈는 말했습니다.
“생각을 심으십시오. 행동을 거둘 것입니다.
행동을 심으십시오. 습관을 거둘 것입니다.
습관을 심으십시오. 성격을 거둘 것입니다.
성격을 심으십시오. 신뢰를 거둘 것입니다.
생각을 기르십시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오르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소리없는 소리입니다. 소리보다 더 큰 소리입니다. 이런 생각이 소원으로 바뀌면 더욱 위력을 발휘합니다.
마음속에서 생각과 더불어 소원이 치밀어 오를 때 그 소원은 세계를 움직이는 위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불타오르는 소원은 온 세계를 녹일 수 있습니다.
존 템플턴이 저술한 ‘ 열정’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인이 무시무시하고 큰 괴물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습니다. 식은 땀이 온 몸을 적시고 드디어 옷까지 척척하게 하였습니다. 괴물은 계속 괴성을 지르며 따라 오는 꿈이었습니다. 여인은 계곡으로 도망하다가 막다른 곳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괴물이 코앞에 섰습니다. 여인은 벌벌 떨면서 괴물에게 물었습니다. 

“야, 괴물아. 도대체 나한테 뭘 어쩌려는 거야?” 
괴물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너한테 달렸지. 지금은 꿈이니까.”
그렇습니다. 여인이 깨면 끝입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서 계속 벌벌 떨고 있으면 꿈을 깰때까지 공포속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 앞에 당하고 있는 일들 모두 헤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깨어 일어나면 다 사라집니다.
잠에서 깨듯이 지금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꿈으로 덮어 버리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새 역사가 펼쳐 질 것입니다.

중국 무술의 고향은 소림사 입성정(立雪亭)이라고 합니다. 그 곳에 이런 빨간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단비구법입설인(斷臂求法立雪人)

이 글의 유래가 전해내려 오고 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혜가(慧可)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혜가는 소림사에 스승이 그렇게 유능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싶은 소원이 불타 올랐습니다. 그래서 소림사를 찾았습니다. 스승을 만나서 제자로 삼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스승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혜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 자리에 꼼짝 하지 않고 서있었습니다. 며칠 만에 스승이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고 서있는 혜가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서있는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무엇이?”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붉은 눈이 내리면 너를 제자로 삼아 주겠다.”
이 말을 듣자 말자 혜가는 칼을 빼어 자기 왼 팔을 잘랐습니다. 붉은 피가 쏟어져 내려 눈을 적셨습니다.
“붉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팔을 잘라 붉은 눈이 내리게 하였다”라는 글이 씌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큰 일을 한 사람들을 보면 4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강렬한 소원이 있습니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소원입니다.
2. 모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큰 일을 한 사람은 위험하게 살았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살았습니다. 토인비는 도전을 이겨낸 민족만이 찬란한 역사를 이루어 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였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4. 승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원은 능력입니다. 소원은 소리없는 소리입니다. 큰 소리입니다.

2. 십자가

소리없는 소리중에 가장 큰 소리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온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지나다니면서 십자가를 보면 소리없는 소리가 들립니다. 말없는 말이 들립니다.

십자가의 소리는 두 가지 소리입니다.

(1) 내가 네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었다.

십자가는 죄사함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대속물은 구약의 소, 양, 염소, 비둘기같은 제물을 말합니다. 대속물이란 헬라어로 <뤼트론>이라고 하는 데 이는 ‘해방하다’‘결박에서 풀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속물인 짐승을 대신 죽임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대신 죽이는 동물을 대속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대속물로 오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속물을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대속물이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란 <모든 사람의 대속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온 인류의 대속물 즉 온 인류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처럼 자신을 모든 이들을 위하여 생명까지 주려 하며 살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프랑스 북쪽에 칼레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1347년 백년전쟁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칼레는 영국군에 포위되었습니다. 다른 도시는 다 점령되었는 데 칼레만 점령되지 못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프랑스군은 영국군에서 생명을 걸고 저항하였습니다. 영국군에게 가장 골치 아픈 곳이었습니다. 영국군을 가장 괴롭힌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에 의하여 완전 포위되었습니다. 1년 정도 지났습니다.

이제 음식이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칼레는 이제 굶어 죽든지 항복하든지 둘 중에 하나 길을 선택하여야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며칠 버티기 힘든 최악 상황입니다. 결국 백기를 걸었습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말했습니다.
"칼레의 시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겠다!"
칼레 시는 영국 왕에게 사절을 보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 할 테니 생명만은 헤치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영국왕이 말했습니다.
"좋다. 그러면 시민들의 목숨은 보장하마. 그러나 그 동안 우리를 괴롭힌 댓가는 받아라. 칼레 시만 대표 6명을 보내라. 그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벌은 끝낸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6명이 시민들을 대신해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 때 칼레에서 가장 부자였던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제일 먼저 죽겠다고 나섰습니다. 
"칼레의 시민들이여, 5명만 더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이 때 시장도 나섰습니다. 칼레의 핵심 인물, 귀족들이 한 명 한 명 앞으로 나왔습니다. 7명이 나왔습니다. 한 명을 빼야 합니다. 서로 안 빠지겠다고 하였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한 명을 빼기로 하였습니다. 한 명이 뽑혔습니다. 그 사람은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영국으로 갔습니다.

“나를 제일 먼저 죽이십시오.”
에드워드 3세 영국왕은 이런 모습을 보고 모두를 살려 주었습니다.
니 대신 죽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소리없이 가장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너 대신 죽었으니 너는 생명을 얻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십자가의 말없는 소리입니다.

(2) 내가 너를 사랑한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소리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리 감리교 원로 목사님 가운데 벽해라는 호를 가지신 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이름은 밝히지 않고 호만 밝혔습니다. 그래서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어났던 일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실명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매일 안과로 치료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사실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다녔습니다. 하루에 한번 병원에 갈 때마다 치료비를 아버지가 주었습니다. 한 달 지났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한달 치료비 계산서가 날라 왔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그 날 그 날 치료비를 가지고 병원에 갔지?”
“네.”
“그런데 이 계산서가 왠 말이냐?”
아들이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매일 치료받으로 가는 길가에 맹인 한 분이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쌍한 생각이 나서 가지고 가던 돈을 매일 그 분에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아들의 눈이 완전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은혜 체험이 놀라와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소리나는 소리보다 소리없는 소리가 더 강력한 소리입니다. 소원은 큰 소리입니다. 십자가는 더 큰 소리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이방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거짓 선지자인 것이 들어 났기 때문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을 감싸고 있던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브엘쉐바로 도망갔습니다. 광야 깊숙이 한적한 곳에 숨었습니다. 마침 로뎀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밑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고 들이 쉬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음식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습니. 40일을 걸었습니다. 호렙산까지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곳에 나타나셔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그 후 이야기를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 19;11-12)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세차게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센 바람인지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나는 바위가 구를 정도의 바람은 보았지만 바위를 부수는 바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요란함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을 가요?
조금 후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요란하게 땅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조금 불이 일어났습니다. 온 대지를 태우는 소리도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조금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 9;13-16)

요란한 소리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세미한 음성속에 하나님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세미한 음성이라는 히브리어 원어는 콜데마마 다카입니다. 이 말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조용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들릴가 말가 하는 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들리는 음성입니다.
소리없는 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 19;3)
그렇습니다.
소리없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생각의 소리, 소원의 소리 그리고 십자가의 소리가 소리없는 소리입니다.
들어야 할 소리입니다.

주전 14세기 중국은 은(殷)나라 시대였습니다. 탕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가뭄이 오래 계속 되었습니다. 온 대지가 다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온 국민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탕왕은 국민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내 책임입니다. 내가 하늘의 신앞에 깊이 통회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손톱, 발톱을 정결하게 깍았습니다. 수염도 잘 깍았습니다. 목욕을 말씀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꽁꽁 묶어라. 그리고 산 제물로 드려라.”
왕의 명령이라 할 수 없이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 제단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피를 하늘에 바치려고 한 것입니다. 왕을 죽이기 전에 왕은 고천문(告天門)을 들고 하늘에 고하는 회개를 시작하였습니다.

“가뭄은 하늘의 신에게 내가 잘못한 연고입니다.
첫째 정치에 절제하지 못 한 것이 있으면 회개합니다.
둘째 실직자가 늘어났으면 회개합니다.
셋째 궁궐이 사치하였으면 회개합니다.
넷째 치맛바람이 거세었으면 회개합니다.
다섯째 뇌물이 성행하였으면 회개합니다.
여섯째 무고한 자를 사형시킨 것이 있으면 회개합니다.”

가슴은 가슴을 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 순간 천지가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수 천리리에 먹구름이 덮였습니다. 단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중국에서는 이를 육사지책(六事自責)이라고 합니다. 순자(荀子)가 쓴 책 <大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리없는 소리, 생각의 소리, 소원의 소리, 십자가 소리는 큰 소리입니다.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이 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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