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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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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4-18)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는 그들이 여호수아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와 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섰다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냥 최고 지도자의 부름을 받고 그 앞에 나와 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불가능한 것으로만 알았던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굽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 섰습니다. 또한 광야 생활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리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신 바로 그 하나님 앞에 나와 섰습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그는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고 하면서... 그가 대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일종의 역사 회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수 24:2 하반절~5) 

이어서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점령하기까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아주 상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병거를 거느리고 그들을 뒤쫓는 애굽 사람들 앞에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많은 날을 광야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단 동쪽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을 쳐서 멸하게 하셨습니다. 모압 왕 발락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르러 그 주민들과 싸워 이기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오늘에 이르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수 24:13)

그렇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수 24:14 상반절)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여기서 온전함이라는 말은 마음이 나뉘어져 있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진실함이라는 말과 통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되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며 그 마음이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찌 보면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지극히 배타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어떤 다른 대상을 섬기는 것과 병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여호와의 온전하심과 진실하심에 비추어 볼 때에 백성들도 또한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는 다시 한 번 백성들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수 24:15 상반절) 옛날 사람들은 신은 각자 고유의 통치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여호수아는 유브라데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거주지를 옮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새롭게 거주하게 될 지역의 신을 섬기기 위해서 이스라엘도 얼마든지 여호와를 배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여호와를 섬길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들어가 거주하게 될 지역을 다스리는 바알이나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인가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하반절) 여기서 그는 최고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에게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가 먼저 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족들과 함께 이미 결단을 내린 상태입니다.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대답합니다. 그들은 결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 까닭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수 24:17~18)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대답을 통해서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굳게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은 그 약속을 저버리고 여호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훗날 바벨론 포로들에게 있어서 그 선택은 날마다 순간마다 내려야 하는 매우 실존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 충성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희망을 가지고 살 것인가 아니면 현지에 그냥 뿌리를 내리고 말 것인가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율법이나 계명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날마다 현실에서 부딪쳐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이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은 계속해서 반복해야 할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때마다 반복해야 할 믿음의 반응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굳게 맺은 언약의 확인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그들에게 보여 주신 여호와의 놀라운 행동에 근거해서 내리는 올바른 결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올바른 반응을 요구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여호와를 섬겨야 합니다. 그런 결단을 내린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에 대한 증인들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을 살고 있지만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삶을 요청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바로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살리시고 또 그렇게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웃에게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이 생명의 소식을... 그런데 이 복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함에 있어서 먼저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옛날 여호수아가 자신 있게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가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렇습니다! 나와 내 집이 먼저 하나님만을 섬기는 본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늘 교회의 부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생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쳐서 헌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종종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들에 대해서 등한히 여길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결코 그래서는 아니 됩니다. 가족들의 구원 문제는 당사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웃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받은 바 구원의 은혜에 늘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함께 주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 주님을 섬김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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