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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전 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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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전 2:7-12)

지난주에 신앙은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는 설교를 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고 중요하다.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지도자 리더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어떻게 리더와의 관계를 세워야 신앙이 잘 성장할까? 세 가지를 설교했다. 

첫째 ‘더욱 존경하라’ 마음으로 존경하고 존중히 여기라.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어떻게 존경을 표현할까? 부를 때 존경을 담아서 부르라. 우리 리더 집사님! 우리 리더 권사님! 우리 리더 장로님... 

둘째 ‘순종하고 복종하라’ 리더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순종하라. 히13:17 표준 새번역 “여러분의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게하고 탄식하면서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탄식하면서 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셋째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함으로 행복한 관계를 만들라. 
사랑하는 시화동산의 모든 성도님 여러분! 여러분의 리더와 행복한 관계속에서 신앙이 날마다 성장하시길 축복한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떤 마음으로 사역해야 할까? 가장 좋은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성경에 나오는 지도자 중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역했던 분이 있다. 자기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고전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누구인지 아는가? 바울사도 이시다. 
오늘 말씀은 바울 사도가 어떻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역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리더인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셀을 섬기자. 가정에서는 자녀를 그렇게 양육하자. 

1. 권리를 주장하는 대신 책임을 지자- 어머니의 마음으로. 

7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이다. 사도에게 주신 권위가 있다.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주님이 교회에 직분을 세우셨다. 그 직분에 주님이 주신 권위가 있다. 주장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 

세상 직책에도 권위가 있다. 주장할 권리가 있다. 국회의원은 일반 시민이 갖지 못하는 특별한 권리가 200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국민을 섬기기 위해 일하겠다는 분들이 자기들을 위한 특권을 그렇게 많이 만들었다. 국민들이 요구해도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바울 사도는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사도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요구하지도 않는다. 
알아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주님이 주셨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왜 주장하지 않는가? 

고전9:12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 사도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도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니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사도의 권위를 주장했다면 무시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시해도 참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역하는 리더의 마음이다. 

사도의 권리를 주장하는 대신 오히려 책임을 감당한다. 어떤 마음으로 책임을 감당하는가?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순하다는 것은 부드러운 태도이다. 친절한 태도이다. 겸손한 태도이다. 권위를 내세우고 권리를 주장하는 지도자는 교만하게 말한다. 리더로서 합당하지 않다. 
바울 사도는 권리 대신 무슨 책임을 감당하는가?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유모는 보통 남의 자녀를 키우는 사람을 말한다. 때로는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엄마를 의미하기도 한다. ‘자기 자녀’라고 했으니, 여기서는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엄마를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권리는 접어두고 책임을 감당하는 지도자이다. 어린 자녀를 무한책임으로 양육하는 어머니 같은 리더이다. 

어머님의 마음을 노래한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사랑하는 리더 여러분! 권리를 주장하는 일도 없지만, 더욱 힘써 끝까지 어머니의 마음으로 책임을 감당해 나가십시다! 


2. 복음과 목숨까지 주는 사랑- 아낌없는 사랑의 희생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역하는 바울사도가 어떻게 책임을 감당하는가? 

8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됨이라.” 

마음으로는 간절히 사모한다. 
엄마가 어린 자녀를 생각하는 것 같이 생각한다. 엄마는 어린자녀를 항상 생각한다. 
생각뿐인가?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가? 환영하는가? 아니다. 거부한다. 무시한다. 핍박한다. 

그러면 포기하는가? 아버지의 마음으로 품기에 포기할 수 없다. 목숨도 아끼지 아니하는 수고를 하며 복음을 전한다. 마침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신앙생활 알아서 잘 하는가? 
엄마가 애를 열 달 뱃속에서 키우느라 고생고생을 했다. 낳느라고 죽을 고생했다. 낳기만 하면 지가 알아서 크나? 키우는 고생이 낳는 고생보다 더 크다. 

전도해서 양육하는 고생이 훨씬 더 크다. 바울 사도도 그랬던가 보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억지로 하는가? 마지못해 하는가? 의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가?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됨이라.” 
기쁨으로 감당한다. 누가 기쁨으로 희생할 수 있나? 사랑하는 사람이 기쁨으로 희생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희생은 수고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은 행복이다. 

물론 사랑은 행복하기만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랑의 아픔도 있다. 사랑의 슬픔도 있다. 
사랑의 아픔을 주님이 만져주신다. 사랑의 눈물을 주님이 닦아주신다. 그거면 됐다. 충분하다. 그러니 다시 힘을 내서 사랑으로 희생하자. 기쁨으로 감당하자. 

그렇게까지 희생하면서도 성도들에게는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 9절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아버지의 마음이다. 자식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다. 바울 사도의 마음이고, 우리 리더들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사역해보자. 성도들은 그런 리더들의 마음을 알아주자. 

그래서 때로는 지칠 때도 있다. 낙심이 될 때도 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지쳤을 때 한 말이다. 

민11: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너무 지쳐서 기도 아닌 기도를 한다. 

15절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의 심정이 공감되는 리더들이 많이 계실 거다. 하나님이 모세를 포기하셨는가? 아니다.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다. 다시 붙잡아 주셨다. 


3.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함- 아버지의 마음으로 

부모는 자식을 오냐오냐 그렇게 양육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자녀에게 유익하지 않다. 
11절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바울 사도는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였다. 

권면한다. 권면은 가르치는 것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젖만 먹이는 게 아니라 밥을 먹이는 것이다. 밥만 먹이는 게 아니라 밥을 해서 먹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어린 아이를 청소년으로 청년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위로한다. 가르치는 대로 다 하지 못한다. 실수한다. 넘어진다. 비난하지 않는다. 무시하지 않는다. 위로해준다. 넘어졌으면 일어나면 된다고. 실수했으면 성공의 디딤돌로 삼으면 된다고 격려해준다. 

경계한다. 경계는 강하게 권고하는 것이다. 책망을 하는 것이다.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위로가 필요하다. 위로만 하는 게 다 유익하지 않다. 책망도 필요하다. 책망을 통해 강하게 훈련을 시켜야 한다. 어린아이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아비가 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어떤 마음으로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해야 하나?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아버지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고전4:14-16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 사도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영적 자녀인 성도들을 양육한다. 자기 욕심인가? 아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으로 세우려는 것이다.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게 하려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 사도의 그런 마음을 알았다. 이렇게 했다. 

13절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우리교회가 데살로니가교회 같기를 소원한다. 모든 셀들이 데살로니가교회 같기를 축복한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섬긴 교회를 바라보는 바울사도가 이런 소망을 고백한다. 

살전2: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모든 리더의 소망이 되기를 축복한다. 


맺는 말
 
어느 리더의 고백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화는 없고, 언제나 제 고집으로 맞서고, 그러다 덜컥 낙오해버리는 상황이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다면 아마 이럴 때 제자를 바라보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마음이리라. 사나흘 몸살이 오고, 시무룩해지고, 주님 앞에 서기조차 힘겨워지는 그 아픔의 시간, 홀로 앓고 또 앓을 뿐이다. 강대상에 서면 눈물은 또 왜 그리 주체없이 흐르는지, 열 두 제자와 함께 주님도 이렇게 우셨을까?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그렇게 믿고 인간적인 애착까지 쏟았던 제자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물러설 때이다. 온갖 유혹과 어려움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도중하차해버릴 때, 나는 차라리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고통스럽다... 

그러면서 나는 배운다. 사람을 키운다는 건 곧 아비의 심정을 갖는 것이라고. 어느새 제자가 아닌 자식이 되어버린 그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기르는 힘은 눈물과 수고, 끝없이 나를 깎는 해산의 수고다. 

이것이야말로 결국은 사람의 성숙된 제자들을 만들어내는 힘이란 사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깨닫는 진리가 됐다. 사람들은 흔히 제자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양 착각한다. 아니다. 아비의 심정이다. 사랑밖에 더 없는 아비의 심장, 언젠가 그것마저 내줘야 할 아비의 뜨거운 심장 말이다.> 

우리 모든 리더의 고백이 되길 소원한다. 이런 마음을 모든 성도들이 알아주시길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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