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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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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사 61:1-3)


방금 봉독한 말씀은 메시아 곧 구세주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으로서 메시아 자신이 말씀하시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1)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가복음 4장에 보면, 공생애의 초기에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가 봉독한 이사야서의 바로 이 부분을 무리 앞에서 선포하셨다고 증언합니다. 

“16)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61장의 예언이 자기 자신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면 이사야 61장의 예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 받은 메시아이신 것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신 것은 사람들이 그를 구세주로 인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 당시 유대나라의 종교지도자였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백성을 선동하는 자로 여기고 신성 모독죄로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를 다스리던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 형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는 저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물론,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소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랐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상관없이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신데, 그 첫째 근거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증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였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첫 번째 근거는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둘째 근거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을 한없이 부어주셔서 메시아의 직임을 수행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 이를 테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벙어리로 말하게 하며, 중풍병자를 일으키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심지어 죽은 자들을 살리신 것은 다름 아닌 성령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시니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놀라 말하기를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듣고 말하기를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은 주님께서 나타내신 능력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장에 이르기를 “3)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예수님 한 분 외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위대한 가르침을 베풀었던 성현들과 세상을 지배했던 영웅호걸들이 하나같이 죽음에게 삼킨바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말을 잘해서 수많은 사람에게서 메시아로 인정을 받은 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이라면 결코 구세주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어 무덤에 장사되신 지 삼일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그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밝히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살아가게 된 데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려 마땅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사야서 61장 1절에 보니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언급한 “아름다운 소식”은 곧 복음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는 가진 자들을 위한 아름다운 소식이 많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을 가진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에게, 힘이 없는 자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복음이 복된 소식, 기쁜 소식, 아름다운 소식인 까닭은 가난한 자들에게 전해진 구원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음은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자들에게 더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둘 것은, 가난한 자들이란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도 포함하지만 그 보다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보다 마음이 가난합니다. 다시 말하면, 겸손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가난하다고 해서 반드시 마음이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개중에는 마음이 교만한 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반면에,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에다 부자였으나 마음이 가난한 자였으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란, 마음이 깨어진 자 곧 자기의 죄를 통회하는 자를 말합니다. 여기서, 상한 마음을 고쳐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죄를 해결해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자기의 죄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을 고쳐줄 자가 누구입니까? 누가 우리 각 사람이 지은 죄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인 율법에 의하면,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습니다(히 9:22). 우리 자신의 피로는 우리 죄를 없이할 수 없는데, 이는 죄인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야 죄인을 위한 구주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일 년에 한 번씩 다가오는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수송아지의 피로써 온 백성을 위하여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가 사람들의 죄를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하나의 상징이요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정한 속죄제사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짐승의 피가 아닌 자기의 피로써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려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다 사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구원 받지 못하고 멸망한다면 그 이유는 그 사람이 평소에 지은 죄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크고 무서운 죄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다 용서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메시아께서 마음이 상한 자들 고치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은, 자기 죄를 통회하는 사람이라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31)…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다 죄인이지만,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통절하게 깨달은 사람이라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로된 자, 갇힌 자들은 죄에게 종 된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34)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고 하셨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죄의 종이 되고 맙니다. 그리하여 죄를 거부하지 못하고 죄가 시키는 대로 날마다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심령은 죄책으로 괴로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종교들은 아무리 악한 자라도 죄를 뉘우치면 선량한 자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미 지은 죄에 대한 책임과 형벌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죄에 대한 근본적이고 완전무결한 해결책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완전무결하게 청산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13절에 “12)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3)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한 말씀이 바로 이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6장 14절에 이르기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죄에게 포로된 자들은 죄의 간섭 아래 살아가지만, 이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포로 상태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죄가 더 이상 주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해방선언문이 나옵니다.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받은 자답게 모든 죄책에서 놓여나 자유함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란, 희년을 가리킨 것입니다. 레위기 25장에 보면 희년의 규례를 이같이 명하였습니다. “8)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찌니 이는 칠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9)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찌며 10)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 11)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13)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기업으로 돌아갈찌라” 

희년은 하나님께서 율법에 명하신 것으로, 구약시대 이스라엘 자손은 매 7년마다 안식년을 지켰으며,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그 다음해 곧 50년 되는 해를 희년으로 지켰습니다. 희년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팔았던 토지가 원주인에게 되돌려졌습니다. 빚을 갚지 않았더라도 원래의 주인이 자기의 땅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해서 남의 집에 종살이하던 사람들은 종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희년은 가난하고 종살이하는 사람들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는 해이므로 ‘은혜의 해’라고 했습니다. 

이 은혜의 해는 곧 신약시대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신약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신약시대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회가 주어져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10장에 이르기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류는 에덴동산을 상실했습니다. 비옥하던 땅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희년, 은혜의 해가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에덴동산보다 더 좋은 천국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죄에게 종살이하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스러운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내용 가운데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신원이란, 마음에 맺힌 원한을 풀어준다는 뜻입니다. 또는 보복해 준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 인생들의 철천지원수인 마귀를 멸하고 마귀의 위협을 당하지 않게 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귀는 우리 인생들을 이롭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도적이라고 하시면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같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다(요일서 3:8).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어머니 하와를 꾀어 선악과를 따먹게 한 것은 옛 뱀 곧 마귀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말을 더 신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가리켜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마귀가 하는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짓말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말을 곧이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꾄 뱀을 저주하시면서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최초의 복음이라고 하는데,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께서 뱀 곧 마귀를 멸하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마귀에게 발꿈치를 물린 것과 같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마귀가 결정적인 패배를 당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인간들은 마귀의 꾐에 빠져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저주 아래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몸소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인간들의 모든 죄를 없이하셨습니다. 마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철천지원수인 마귀를 이기셨으므로 성도들은 더 이상 마귀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리어 성도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막 16:17).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의의 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본문에 이르기를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란, 죄로 인해 통회하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들을 귀히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자기 죄를 슬퍼하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화관을 씌워주십니다. 화관은 기쁨의 표상입니다. 반면에 재는 슬픔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주님을 믿을 때 슬픔이 사라지고 그 심령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 15:10-11)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께서 믿는 우리에게 근심의 옷을 벗기시고 찬송의 옷을 입혀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열매 맺는 삶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가리켜 참 포도나무라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농부라고 하셨으며. 성도들을 가리켜 가지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우리를 의의 나무로 삼으시고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의의 열매를 맺는 이유는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잘 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고 풍성한지를 깊이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 강림하시는 때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죄의 기쁨과 죄와 마귀에서의 자유와 하늘의 평강을 누리며, 의의 열매가 가득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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