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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이름으로 (요 14: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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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4장 13~14절 
제목 / 예수의 이름으로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기도를 배운다는 것은 너무도 귀중한 일입니다. 우리의 일생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켜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키가 있다면 바로 기도를 배우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비밀이 기도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레슨을 받기도 하고, 멤버십을 갖기도 하고, 수많은 특권들을 얻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기도의 특권에 견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살다 보면 절망에 부딪히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배운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기도를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한계와 문제에 부딪혔을 때 기도를 배워놓은 사람은 살아납니다. 기도는 우리 인생을 살아나게 하고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절대자와 접속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신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은총이고 특권입니다. 그런데 기도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기도의 말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입니다. 어떤 초신자에게 갑자기 기도를 시켰는데 끝을 맺는 것을 몰라서 계속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해도 아무도 “아멘”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간절히 기도합니다.”라고 해도 “아멘”이 안 나오자 너무도 당황해서 “하나님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기도를 아무리 멋있게, 열심히 했다고 해도 기도가 하나님께 도달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기도하지만 모든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가 받아들여지는데 결정적인 요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에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핸드폰의 벨이 울리면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 후 전화를 받습니다. 수신자가 입력해놓은 이름이 화면에 뜨는데 아무 전화나 받는 것이 아니고 입력해놓은 사람의 전화만 받게 됩니다. 그 사람과 관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가 따로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죄인 된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과 백성들이 만나는 곳은 성전이었는데, 중보자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직접 나가면 그 자리에서 죽었고,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를 읽다 보면 제사제도에 대한 아주 복잡한 규정들을 대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복잡한 과정과 절차들을 단번에 무너뜨리신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 모든 장애물, 제한들이 제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의 제사가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짐승의 피로 드렸던 제사는 불완전해서 한 번에 영원한 속죄가 불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일평생 제물을 바쳐야 했고 제사장의 중보가 필요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속죄의 제사는 완전한 제사로, 완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하나님께로 나아갈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갈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얻었다는 것은 죄인인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것은 딱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휘장은 하나님과 사람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휘장이 찢어진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찢어짐으로 누구든지 나아갈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님의 피’ 입니다. 이것은 기도의 핵심적 원리입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해서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 대신 고통을 당해주셨기 때문에 그 대가로 인하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죄인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어떤 삶을 살았든지 내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오래 기도했느냐, 얼마나 정성을 바쳤는가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의 공로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의례적인 인사나 형식이 아닙니다.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마련해놓으신 통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기도함으로 주어지는 확신과 평강은 내가 열심히 해서 갖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를 붙들 때 일어납니다.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하)」 예수의 이름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대로가 열렸습니다. 가로막고 있던 모든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새로운 길, 새로운 시대가 온 것입니다.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엄청난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비밀 문을 여는 패스워드입니다. 하늘 궁정의 문을 여는 마스터키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것은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상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 나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나의 상태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도무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면 얼마든지 담대함을 가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마십시오. 언제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둘째,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속성이고 존재의 의미입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응답을 전제합니다. 이름 자체가 능력이고 권세입니다. 직장에서 CEO의 이름과 직인이 찍힌 서류는 그 자체가 실행력을 가집니다. 미술품에 작가의 이름이나 사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이름에는 권위가 있고 동시에 파워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겠다”는 말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강력한 권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요한복음 15장 16절 하반절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큰 특권을 맡기셨습니다. 이 기도의 특권은 인간이 죄로 인해서 잃어버렸던 통치의 능력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가끔 어떤 일을 하다 보면 한계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일꾼으로 부르시지 않으시고 기도라는 엄청난 비밀 병기도 맡기셨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며 날 때부터 일어나지 못하던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들은 그 이전까지는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잘 몰랐습니다. 특권은 사용할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특권이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용하는 만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은 빛을 발하게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도의 권세도 포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자녀로서의 특권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특권을 통한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경험해야 합니다. 신 나는 일입니다. 

성경을 통해 확인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주시려고 안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아들의 권세는 아버지가 가진 권세를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에는 엄청난 파워와 실행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를 어떤 교리나 막연한 이론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도 그 자체, 예수의 이름은 실행코드입니다. 신앙의 핵심에 기도가 있습니다. 자신의 형편이나 조건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나아가십시오. 예수 이름의 권세를 누리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고,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습니다. 간혹 기도를 무기력하고 병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기도야말로 가장 강력한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최고의 수단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십시오. 예수 이름의 권세를 기도를 통해서 확인하십시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구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지지만, 문제는 예수의 뜻에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권을 사서 일등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당첨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반값 세일하게 해달라거나, 손을 봐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한번 살짝 만져주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남아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의 이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면 도용입니다. 누가 내 이름을 빌어 나도 모르게 나의 의도와 다르게 사용한다면 황당한 일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주님의 동의를 받을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에 오르는 소화물에 “예수님의 이름”이 붙어있으면 1단계는 통과합니다. 그러나 정밀단계의 스캔을 통과해야 합니다. 요즘 공항에는 전신스캔을 하는 기계가 도입된 곳이 많습니다. 한국 엄마들이 김치 같은 것을 포장에 포장을 하지만 들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속에는 자신의 야망, 탐욕은 깊은 곳에 은밀하게 감추어 놓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이 된다면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응답이 타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이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남군의 리 장군도 독실한 신앙인이었고, 북군을 이끄는 링컨 역시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링컨은 “남과 북이 모두 똑같이 성경을 읽고, 한 하나님께 기도하며 상대방을 이기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양쪽의 기도가 모두 받아들여질 수는 없습니다. 어느 쪽도 소원하는 바를 완전히 이룰 수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분만의 목적을 가지고 이루십니다.”라고 연설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예수의 이름에 합당한 기도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능력 있는 기도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응답을 받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능력 있는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기도를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남발하고 마치 하나님을 채무자 다루듯이 “왜 안주세요!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신 거예요? 제가 할 만큼 했는데 나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되지요”라고 합니다. 또 흥정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번에 한 번만 나를 봐주시면 나도 하나님이 힘드실 때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협박하고, 강요하고, 투쟁합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의 부족 때문입니다. 「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고 했습니다. 

둘째는 우리의 욕망이나 탐심으로 구했기 때문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NO”하십니다. NO도 응답입니다. 

셋째,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응답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내 마음에는 들지 않을 수 있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응답입니다. 

넷째, 무응답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무응답이 원망스럽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응답하지 않았던 것이 축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짝사랑하는 자매의 마음을 사로잡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렇게 되었다면 끔찍할 뻔했다고 고백합니다. 응답하지 않는 것도 주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다섯째, 응답을 지체하는 경우입니다. 내가 구한 것을 당장 주시지 않고 나중에 주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주지 않으면 응답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십니다. 아무리 자녀를 사랑해도 아직 면허증도 따지 않았는데 자동차를 사주지는 않습니다. 시기는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가장 완전한 때에 허락하십니다. 

여섯째, 내가 구한 것이 응답되지 않아 야속하지만, 공동체 전체를 볼 때는 훨씬 더 유익한 경우입니다. 성경은 한 개인보다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공동체가 복되어야 개인도 공동체 안에서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도 응답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하고 기도하셨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무응답이었습니다. 

온전히 응답받는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에 합당한 기도를 드렸을 때입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할 때 무엇이든지에 단서가 붙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구한 것을 통해서 예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지만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도할 때도 자신의 필요를 가지고 기도하신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 십자가를 앞두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지만 곧 그 기도마저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가 사업이 잘 되기를, 직장에서 승진이 되기를 기도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업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경영하도록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이나 세속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만 모든 것을 맡기는 일방적인 태도가 아니라 우리의 책임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는 것은 대책 없는 기도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이때에 알맞은 성실함을 배우게 하시고, 게으르지 않고 나에게 하시는 훈련을 잘 받아, 이 공부를 통해 인류와 공동체를 위해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승진하고 일시적인 출세에 목을 매달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더 건강한 기도입니다. 병이 낫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이 병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내가 죽든 살든 하나님께 나아가 믿음 위에 굳게 세워지는 기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나의 책임, 내가 감당해야 할 영역에 대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성취하는 목적에만 몰두하면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만 살짝 걸치고 자기 마음대로 기도하다면 기도를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려면 예수님의 의도와 마음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분명히 이해했다면 나의 기도의 상당한 부분은 수정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를 늘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무엇을 얻는 것보다 포기하는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에 초점을 늘 맞추셨습니다. 특히 잃어버린 영혼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한다면 마땅히 영혼 구원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건지기 위해 기도해보십시오.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기꺼이 응답하실 것입니다. 성숙한 기도는 예수께서 기도하신 것 같이 내 욕망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는 막강한 역사를 이루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이루어주시겠다는 것은 바로 그때 해당되는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대행자로, 동역자로 불러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기 원하신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신 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기도해보십시오. 무엇이든지 그 이름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이루어주시겠다는 이 약속이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삶의 지평이 넓어져 가고 풍성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규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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