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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것이라 (민 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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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라 (민 3:1-51)


고등학교 때에 제 친구 하나가 "자기 애인한테 '넌 내 꺼야.'라고 하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하는 줄 아니?"라고 제게 질문을 해 왔습니다.
제가 "그거야 'You are mine.'이라고 하면 되지 않니?"라고 대답하자 그 친구가 말하기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여자한테 뺨 맞아. 그런 경우에는 'You belong to me.'라고 해야 되는 거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두고 '너는 나의 것'이라고 소유대명사를 써서 말하는 것은 마치 상대방을 무슨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이며, 반면에 '너는 내게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고상하고 점잖은 표현이라는 것이 그 친구의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국에 가서 좀 살다보니 미국의 연인들 사이에서는 그 '넌 내 꺼야.'라는 식의 표현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그런 말이 매우 정답게 들릴 수 있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You are mine.'이라고 하든지 'You belong to me.'라고 하든지 간에 하여튼 상대방을 자기의 소유물처럼 여긴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사람 사이에서는 함부로 쓸 수 없는 그 말을 지극히 당당하게 선포하실 수 있는 분이 딱 한 분 계시는데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수양회 표제 등으로 흔히 쓰이는 이사야 43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것이라"는 저 유명한 선언을 내리고 계시는데, 이 말씀의 영어 번역 역시 'You belong to me.' 정도가 아니라 'You are mine.'인 것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리켜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에 지나친 큰 실례가 될 수 있지만, 창조주이시며 생명주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리켜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민수기의 첫 두 장을 통하여 이제 막 가나안으로 본격적인 행군을 시작하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계수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3장에 와서는 조금 특수한 계수를 모세에게 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레위인으로 일 개월 이상 된 남자"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남자로 일 개월 이상 된 자"를 계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따로 계수하는 이유를 가리켜 그들이 다 "내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남자'들을 계수했던 앞의 인구조사와는 달리, 이 3장에서 계수함을 입은 자들은 그야말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 곧 성막을 중심으로 섬기는 직분에만 완전히 헌신하도록 구별된 사람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내년에 교회설립 제40주년을 맞이하면서 장로, 집사, 권사 임직을 계획하고 있으며, 지난 주일의 당회에서는 그 후보자 추천을 확정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공동의회를 통한 직분자 피택 선거를 한 주일 앞두고 있는 이번 주일에 저와 여러분은 이 '레위인의 계수'를 통하여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섬기는 일을 위하여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구별하여 부르실 때에 과연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순종해야 하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는 교회의 직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레위 지파 가운데 아론 자손이 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은 경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사실입니다.
본문 1절로 4절에 "1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와 말씀하실 때에 아론과 모세의 낳은 자가 이러하니라 2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은 장자는 나답이요 다음은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니 3이는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이며 그들은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 받은 제사장들이라 4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고 무자하였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 아비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10절에도 "10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은 족보를 따지면 레위의 증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성막을 섬기도록 특별히 계수함을 입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오직 이 "아론의 아들들"과 그 후손만이 제사장의 직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임명을 받을 때 "기름을 발리운" 것은 구약에서 오직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 이 세 직분에만 해당되는 특별한 절차로서 곧 그들이 "거룩히 구별된" 존재임을 상징했습니다.
즉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완전하게 하나님께만 속한 존재,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위해서만 순수하게 사용된 존재로 구별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이들을 가리켜 "위임받은" 제사장들이라고 했는데, 이 '위임받다'라는 히브리어의 문자적 의미는 '손에 채움을 받다'입니다.
즉 그들이 제사장으로 임명받았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에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채워 주셨다'는 사실과 동격이라는 뜻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의 전 인생을 '제사장이라는 직분'으로 완전히 빼곡하게 채우셨으니 이제는 결코 되돌릴 수도 없으며 결코 다른 일거리가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고 결코 다른 목적으로 오용될 수도 없는 가운데 오직 '거룩한 책임'만 남아 있을 뿐인 것이 바로 '위임받은' 자의 상태인 것입니다.

그처럼 특수하게 임명을 받았으니만큼 그 책임 수행 여부에 대한 심사도 가장 엄격히 적용되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비록 초대 제사장 멤버에 속한 자들이었지만 "다른 불" 즉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을 함부로 사용한 죄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임'을 받은 제사장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와 방법을 따라 자신의 직분을 수행해야 함이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은 '불은 다 같은 불인데 무슨 차이가 있을까?'하고 자기네들 편한대로 행하다가 즉각 징벌을 받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고귀한 직분에 대한 자각과 책임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였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통해 직분을 받게 될 때, 비단 목사뿐 아니라 장로나 집사나 권사 역시 그와 똑같은 자각과 책임의식을 반드시 가져야만 합니다.
노회에서 목사로 안수를 받았든지 교회에서 목사를 통해 장로나 집사나 권사로 임명을 받았든지 간에 모든 '거룩한 직분'은 궁극적으로 다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손에 목사의 일을 채워 놓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꼭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손에 장로, 집사, 권사를 비롯해서 심방장, 구역장, 주교교사, 찬양대, 주차봉사위원 등의 사명을 빼곡하게 채워 놓으신 분 역시 오직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지금 자기 집안의 급한 일을 시간 내에 마치기 위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판인데 옆집 사람이 무슨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한다고 해서 자기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떠날 사람이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목사로서, 장로와 집사로서 반드시 완수해야만 할 일을 손에 꽉 채워 든 상태에서는 일단 그 일부터 마쳐야만 할 뿐인 것입니다.
친구한테 자기가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서 일감까지 이미 받아왔는데 나중에 가서 그 일감을 되돌려 준다는 것은 차마 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어떤 사명이 일단 내 손에 채워진 후에 나중에 가서 발뺌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손에 채워 주신 일을 제쳐놓고 다른 일부터 먼저 하려는 사람이나 일단 자기 손에 이미 채워진 책임을 다시 하나님께 되돌려 주려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우리 손에 채워 주신 사명은 우리의 남아 있는 전 생애를 통하여 항상 '최우선'이 되어야 할 뿐입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목사에게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것이며 따라서 그 모든 직분의 사명 역시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손에 친히 가득 채워 주신 일인 것을 절대로 잊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교회의 직분을 수행하는 동안 그 어떤 경우에도 철저히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레위인이 바로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열두 지파 가운데서도 특별하게 뽑힘을 받았습니다.
본문 5절부터 9절에 "5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6레위 지파로 나아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7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8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수직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장막에서 시무할지니 9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돌리운 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11절과 12절의 말씀에도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2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14절 이하에 이어지는 내용은 그 레위인을 종족을 따라 계수한 것이며, 39절에 가서 "39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레위인을 각 가족대로 계수한즉 일 개월 이상 남자의 수효가 이만 이천 명이었더라"고 종합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앞서 이스라엘 전체 인구 조사를 했을 때에는 "이십 세 이상"의 남자만 해당되었었는데, 레위인의 경우에는 "일개월 이상 남자"가 다 포함되었습니다.
이것은 레위인은 아예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성막을 섬기는 직분자로 성별되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기에 계수된 총 인원은 "이만 이천 명"이지만 실제로 "회막에서 수직하며 시무하는" 일에 종사한 레위인은 유아와 노인을 빼고 나면 팔천여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전투 병력을 계수할 때와는 달리 이 레위인의 계수에는 갓난아이부터 은퇴한 노인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 이유는 그들의 직분이 그야말로 '종신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비록 실제로 성막 일을 하는 기간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모든 레위인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아론에게 온전히 돌리운" 자들로 구별되었고 "회막의 직무"라는 사명을 중심으로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특별하게 레위인을 "택하여" 놓으시고 아예 "내 것"이라고 못 박아 두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열두 지파 가운데 유독 레위 지파만 그처럼 철저하게 '당신의 것'으로 구별해 놓으신 것이었습니까?
그 기원은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된 '금송아지 사건' 때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당시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목도하게 된 모세가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고 외쳤을 때 바로 "레위 자손이 다 모여" 모세에게 나아왔었습니다.
그리고 그 레위 자손들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이스라엘 진 끝에서 끝까지 다니면서 우상숭배에 참여했던 자 삼천 명을 죽였었습니다.

그런 직후에 모세는 레위 자손들을 향하여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선포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레위 지파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하게 구별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 편에 서 있기를 원했던 자, 온 백성이 미혹당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하나님 편을 떠나지 않았던 자, 그리고 그처럼 하나님 편에 서서 우상숭배 퇴치운동에 몸을 바쳐 앞장섰던 자였던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그 레위인들을 '내 것'이라고 확실히 점찍어 놓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직분을 받은 자라면 당연히 매사에 그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교회 안에 시험이 생길 때에 특히 직분자일수록 더욱 우왕좌왕하거나 편당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기도로써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찾아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가 외부로부터 도전이나 핍박을 당할 때에도 목사와 장로부터가 일사불란하게 하나님 중심의 판단과 언행으로써 약한 성도들 앞에 역할모델의 지도자가 되어야만 교회를 지켜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시도 거르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 붙어 있는 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교회의 직분을 무슨 '딱지'처럼 여기면서 그것이 붙어 있는 동안만 겨우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척하다가 그것만 떼고 나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해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그럴듯한 직분이 주어져야만 좀 '하나님의 일꾼'으로 행세할 마음이 생기고 반면에 장로나 장립집사 선거에서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도 멀어지는 시험에 빠지고 마는 교인은 절대로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자일 뿐인 것입니다.
젊을 때나 늙었을 때나, 힘이 있을 때나 약해졌을 때나 상관없이, 교회가 형통할 때나 어려울 때나 변함없이 오직 항상 하나님 편에만 서서 섬기는 이 시대의 '레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교회의 직분을 통하여 몸의 헌신과 동시에 물질의 헌금으로써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원칙을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를 통하여 일러 주셨습니다.
40절부터 43절의 말씀에 "40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남자를 일 개월 이상으로 다 계수하여 그 명수를 기록하라 41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난 것의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42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를 계수하니 43일 개월 이상으로 계수함을 입은 처음 난 남자의 명수의 총계가 이만 이천이백칠십삼 명이었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를 계수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비단 레위인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 중에서도 '처음 난 자' 즉 장자들은 다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된' 즉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고 선언하신 대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 당시 애굽의 장자와 가축의 첫 새끼들을 죽이시던 그 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규례로서 바로 앞의 본문 13절에서 "13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설명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원래의 원칙을 따지자면 각 가족의 장자들도 다 성막에 나아와서 평생을 풀타임으로 봉사해야만 마땅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대신에 '장자 한 사람'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봉사의 임무를 '레위인 한 사람'으로 "대속"하게 해 주셨습니다.
즉 레위인이 성소를 섬기는 것은 모든 이스라엘의 장자들이 마땅히 하나님께 몸소 바쳐야 할 평생의 헌신을 대신하는 셈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져 볼 때 한 가지 차질이 있었는데, 그것을 바로 이어지는 44절 이하 51절에 "4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45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46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가 레위인보다 이백칠십삼 인이 더한즉 속하기 위하여 47매명에 오 세겔씩 취하되 성소의 세겔대로 취하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니라 48그 더한 자의 속전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줄 것이니라 49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에게서 속전을 받았으니 50곧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에게서 받은 돈이 성소의 세겔대로 일천삼백육십오 세겔이라 51이 속전을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장자 한 사람 당 레위인 한 사람씩 되어야 앞에 나왔던 '대속'의 계산이 맞아 떨어질 것인데, 문제는 이스라엘의 전체 장자의 수가 "이만 이천이백칠십삼 명"이었던 것에 반하여 레위인의 전체 숫자는 "이만 이천 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46절에 밝혀져 있는 대로 "이백칠십삼 인"이라는 숫자의 차이가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는" 원칙을 따른다면 이 '이백칠십삼 인'은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의무를 대속할 길이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남는 숫자의 매명 당 "오 세겔" 씩을 취하게 함으로써 그 모자라는 분량만큼을 "속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자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져야 할 장자가 2만 2천2백7십3명이니 레위인도 똑같은 숫자가 되어야 계산이 맞을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2백7십3명의 레위인이 모자라니, 그 대신에 '5세겔 곱하기 273명'에 해당되는 "일천삼백육십오 세겔"의 "속전"을 그 장자들로부터 거두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속전은 아론과 그 아들들 즉 제사장들에게 주어짐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성소를 위한 일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자신이 직접 풀타임으로 성막을 위해 헌신할 수 없을 때 그 대신에 물질을 바침으로써 역시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레위인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장자가 다 '하나님의 것'으로 선언된 이유는 그들 모두가 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하나님의 손을 통해 구원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의 보혈이라는 지극히 비싼 값을 치르고 사신 우리 모두는 두말할 것 없이 오직 '하나님의 것'일 따름입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평생토록 헌신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다 '풀타임의 레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오 세겔'의 속전으로 대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헌금을 바치는 것 역시 우리 자신의 몸을 드리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가든지 아니면 보내든지 하라'는 멋진 표어를 내걸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평신도라 할지라도 바로 문서전도헌금, 선교헌금, 고려신학교 후원헌금 등의 물질을 바치는 '보내는 전도자'가 됨으로써 풀타임으로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나 선교사와 꼭 마찬가지로 자신을 100퍼센트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능력대로 자신의 온 몸을 헌신하고 자신의 가장 귀한 물질로 헌금함으로써 진정 '하나님의 것'으로 영광스럽게 쓰임 받는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아까 미국 사회에서는 'You are mine.'(넌 내 꺼야.)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네들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라면 'I am yours.'(난 당신 것이에요.)라는 말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나 미국에서나 세상 어디에서든지 자기의 연인으로부터 그런 고백을 듣게 되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더욱 그렇지 않으시겠습니까?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실 때에 피조물에 불과한 나를 당신의 양자로 삼아 주신 그 하늘 아버지께 '아멘,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응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그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론의 아들들'과 '레위 자손'과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그처럼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고 구별하시면서 계수해 주시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역시 '너는 내 것이라'고 만세 전부터 이미 점찍어 주셨습니다.
'너는 내게 속한 자'라고, '너는 내게 완전히 바쳐진 자'라고 저 장망성에 속한 자들과 완전히 성별하셔서 당신의 팔 안으로 끌어당겨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하면 저와 여러분은 이제 그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내 손 안에 가득 채워 주신 일을 완수하는 '아론의 아들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특별히 위임 받은 직분을 기쁨으로 감당하지 않고 눈치만 살피거나 살짝 빠져 나가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를 당신 편으로 끌어당겨 주셨으니 이제 무슨 일을 당해도 오직 그 하나님 편에만 확실히 서 있는 '지조 있는 레위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교회 가장자리만 맴도는 어정쩡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교회 안에 자기가 서 있을 자리'를 확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몸으로, 때로는 물질로 자기 생명의 최고와 전부가 다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지도록 헌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몸도 물질도 쓰임 받지 못하는 영적 전신마비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정말 부끄럽게 여길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장로, 집사, 권사로 세움을 받는 사람을 바로 이처럼 '내 것'으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소명하고 계십니다.
'위임받은 아론의 아들들', '하나님 편에 선 레위인', '몸과 물질을 함께 드리는 처음 난 자' - 이처럼 자신의 인생 전부가 다 온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되고 헌신되는 피택 직분자들과 모든 경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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