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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부가 아니면 모두가 아니다 (막 10: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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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가 아니면 모두가 아니다 (막 10:23-30)
  

반 쪽 마음은 주님이 거들떠 보시지 않습니다. 전부가 아니면 모두가 아닙니다.
옛날 성당 가시단이 세례 받을 때에는 이상한 모습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기사단은 물속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을 때 칼을 들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칼은 물에 담지 않고 높에 쳐들고 몸만 물속에 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의미는 이렇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 드리지만 이 검만은 주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전쟁터에서만은 주님 뜻대로 칼을 사용하지 않고 명령대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이 검만은 주님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사용하여야 하는 검입니다.”
전부가 아니면 모두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갑만 들고 세례를 받지는 않는가요?
우리는 명예만은 포기할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요?
우리는 돈만은 감추겠다고 하지 않는 가요?

미국 장로교 잡지(Presbyterian Survey)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어느 분의 간증담입니다.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천국을 이리 저리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천국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정말 신비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옆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신앙생활하다가 천국에 오셨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1860년 동안 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찍 온 셈이지요. 나는 바울 시대에 로마에 살았습니다. 나는 예수를 잘 믿고 있었습니다. 네로가 나를 잡아 기둥에 매두었습니다. 예수믿는다고 굶어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지나도 죽지 않으니까 내 위에 장작을 쌓더니 불을 질러 나를 죽였습니다.”
“그 때 얼마나 무서웠었습니까?”
“아니요. 도리어 기뻤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내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는 데 나도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때 한없이 기뻤었습니다.”
천국을 구경하던 그는 자기 신앙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또 한 사람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어디서 신앙생활하다가 천국에 오셨습니까?”

“나는 하늘나라 이 곳에 온 지 수백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저 남해 에로망가 섬에서 왔습니다. 식인종입니다. 죤 윌리암 선교사가 그 섬에 와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왜 그렇게 확실하게 믿어지는 지 놀랄 정도였습니다. 나는 그 후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로 서약을 하였습니다. 그더던 어느 날 내 종족들이 선교사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도 잡아서 나무에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기진맥진할 때까지 팼습니다. 그들은 내가 죽은 줄 알고 돌아 갔습니다. 이튿날 와서 보니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머리를 자작 쪼개듯이 뽀갰습니다. 그리고 나를 요리하여 먹었습니다.”

“저런 끔찍한 일이 있나요?”

“아니요. 당신이 보기에는 끔찍하여도 나는 기뻤습니다. 윌리암 선교사는 나에게 예수님은 내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으셨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때 믿음을 끝까지 당당하게 지킨 것을 나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윌리암 선교사와 같은 분을 위하여 얼마나 헌신하였습니까?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신 예수님을 위하여 어떻게 헌신하고 살고 계십니까?”
그는 이런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 하고 서있었습니다. 그렇게 물어 본 이는 슬픈 얼굴로 물끄럼이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며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식은 땀을 흘리며 몇 시간동안 울면서 회개하면서 자기 생활을 점검하여 보았습니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헌금드리는 데는 인색하였고 좋은 옷을 사는 데는 아낌없이 돈을 쓰지 않았는가?
나는 놀러 다니는 데는 많은 시간을 사용하면서 예배드리는 데 시간을 얼마나 바쳤는가?
나는 육적 건강을 위하여는 좋은 것이라면 다 사먹으면서 영적 건강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였고 영적인 책을 사보았는가?”
그는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다가 꿈에서 깨어나 자기 영적 생활을 다시 조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꿈이 준 영적 성장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을 먼저 살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제자들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겠습니까?”
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베드로는 모두를 버렸습니다. 주님 한 분을 위하여 모두를 포기하였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1. 재산을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였습니다. 어느 날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렇게 순종하였습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히지 않던 고기를 두 배 그득 잡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배와 그물을 갈릴리 해변가에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관심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맡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아내에 연락하여 팔라고 잘 매어 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헐값에 당장 팔아 버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 관심밖이었습니다. 다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많이 잡은 고기가 어떻게 되었는 지 성경은 전혀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조금 버린 것이 아니라 다 버렸습니다.
<오직 예수>였습니다.

2. 가족을 버렸습니다.

가족과 완전히 헤어졌습니다. 아내에게 연락하지 않고 거냥 떠났습니다. 누구에게 연락 좀 하여 달라는 언질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가족관계보다 예수님이 우선이었습니다. 가족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복음성가중에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라는 성가가 있습니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 복음성가의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던 시대였습니다. 신앙이 독실한 한 남자를 잡아 고문하면서 예수믿기를 포기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고문을 하여도 듣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끌어다 기둥에 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루 여유를 주면서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내를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자기가 보는 앞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다음은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들도 목전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도 죽으면서 지은 노래가 바로 이 노래입니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헨리 보스(Henry Vos)는 말했습니다.
“나에게 머리가 둘 있다면 나는 이 머리 둘을 주님을 위하여 바치겠다.”
카스틸라 루피아(Castilla Rupea)는 예수믿기를 포기하라고 강요당하였습니다. 낭떨어지위에 세워 놓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비록 내 몸을 낭떨어지로 떨어뜨릴 지라도 내 영혼은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 갈 것입니다.”

베드로는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를 버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 군대에게 둘러 싸여 있을 때였습니다. 바벨론군은 피흘리며 싸우지 않았습니다. 포위만 하고 있으면 배가 고파 항복할 때가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모두 배가 고팠습니다. 할 수 없이 한 가정 두 가정 항복하고 나올 때였습니다.

세 아들을 기르고 있는 과부 여인이 있었습니다. 모두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막내 아들은 아직 젖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조직된 특공대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지 않도록 지키는 결사대였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어디에서도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굶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다 죽느니 차라리 갖난아기를 잡아 먹는 것이 셋이 사는 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막내 아들을 잡아 요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에게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두 아들은 무슨 고기인지 모르고 맛있게 먹다보니 자기 동생의 손가락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 떨어져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성전을 지켰습니다.
가족관계보다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재산을 버리고 가족을 버렸습니다.

3. 자기 생명까지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따라다니며 죽기까지 복종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죽더라도 예수를 버리지 않겠다는 서약을 여러 차례하였습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순교하였습니다. 아가야 파트리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으려는 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바로 못박히셨는 데 내가 어떻게 바로 못박혀 죽겠느냐? 거꾸로 못박아 죽여다오.”
그렇게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로마 베드로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베드로는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베드로가 순교할 당시에 로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로마 네로 황제에게는 <황제의 투사들>이라는 특공대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원형경기장에서 경기를 시켜서 가장 우수한 군사들만 뽑아서 만든 특공대였습니다. 그들은 네로 황제 앞에서 서원하였습니다.
“우리 투사들은 황제를 위하여 싸울 것이며 황제로부터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의 지휘관은 베스파시안(Vespasian)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황제는 베스파시안에게 말했습니다.
“내 투사들중에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나보다 예수를 더 사랑한다. 모두 골라내어 죽이라.”

이 명령을 받은 베스파시안은 추운 겨울 얼어 붙은 호수가에 모든 군사들을 세워 놓고 말했습니다.
“너희들 중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와라.”
이런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40명이 우르르 베스파시안 지휘관 앞으로 몰려 나갔습니다.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 그 때까지 단호히 결단하고 대답하라.”

베스파시안은 해질 때까지 간곡하게 예수믿기를 포기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한 사람도 배신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베스파시안은 단안을 내렸습니다.
“황제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다. 그러나 너희들의 피를 동료들로 하여금 흘리게 할 수 없다. 자! 옷을 모두 벗고 얼음을 깨고 들어가라.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께 너희들의 생명을 맡긴다.”
그들은 모두 옷을 홀랑 벗었습니다. 그리고 얼음을 깨고 들어가면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오! 주님! 주님을 위하여 면류관을 달게 받겠습니다.”

베스파시안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옆에 앉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배반하고 얼음속에서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새도록 벌어진 광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명도 배반하고 나오는 이가 없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던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벽이 가까웠을 때였습니다. 한 병사가 추위를 견디지 못 하고 모닥불쪽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베스파시안이 그 병사쪽으로 가다가 신비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늘로부터 환한 빛이 임재하여 얼음속에 있는 병사들에게 비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베스파시안은 갑옷과 투구를 벗어 던지고 그 병사가 예수를 배반하고 나온 자리로 들어가면서 외쳤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이제 40명의 병사가 주님을 위하여 싸우고 있나이다. 승리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는 같이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재산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생명까지 주님을 위하여 버렸습니다.
전부가 아니면 모두가 아닙니다.

버림의 댓가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린 그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말은 진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베드로처럼 “모든 것을 다 버리고”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숙연하여지며 울고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모든 것을 버린 사람에게는 <금세에> 즉 살아 있을 때에 100배나 받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금세에도 보상하십니다. 그리고 내세에 영생을 주십니다. 다만 핍박이 겸하여 있을 뿐입니다.

1. 금세에 100배의 복

마가는 축복을 많이 받는다고 하지 않고 100배라고 분명히 하였습니다. 100배란 풍족함을 의미합니다. 꼭 100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삭은 농사하여 100배나 얻었습니다(창26;12) 농사짓는 이는 땅에서 30배,60배,100배의 소득을 올렸습니다. 100배가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눅8;8)
요압은 하나님께 이 세상에서 100배의 복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삼하 24;3)
성경대로 살면, 말씀대로 살면, 예수를 잘 믿으면 반드시 100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호크마 주석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새롭고 영광스런 형태로 사람에게 되돌려 주지 않고서 빼앗아 가는 법은 없다.”

2.. 내세에 영생의 복

모든 것을 버린 이에게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금세에는 100배의 복을 받지만 내세에는 영생의 복을 얻습니다. 영생의 축복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가장 궁극적인 축복이 영생입니다. 구원입니다. 모든 것을 버린 최종의 대가는 영생으로 결론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절대자이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버린 헌신자를 찾고 계십니다.
전부가 아닌 것은 모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진정으로 몸과 마음과 물질과 시간과 생명을 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을 불꽃같은 눈초리로 찾고 계십니다.
나는 설교문 작성을 마치고 무릎을 꿇고 외쳤습니다.
“주님! 나를 보아 주십시요.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에콰도르 아우까 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하? 순교한 짐 엘리엇 선교사가 있습니다. 인디언들이 창을 가지고 와서 그를 찔러 죽였습니다. 그 때 그의 손에는 총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이들에게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얻으려고 영원한 것을 버릴 수 없습니다.”
“잃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하여 지킬 수 없는 것을 내주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장례에 많이 가게 됩니다.
가서 예배를 드리고 앉으면 고인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히 나오게 됩니다.
“이 분은 살아서 등산을 참 좋아 하였지요.”
“이 분은 살아 있을 때 낚시를 즐겼지요.”
“이 분은 자녀들을 참 사랑하였어요.”
탈무드에게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돈을 사랑하던 남편이 죽었습니다. 죽을 때 만원짜리 두 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돈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만원을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만원은 씹어 먹고 죽었습니다.
죽은 후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이 분은 돈을 사랑하였지요.”
그런데 그 분이 세상을 떠나고 이렇게 말해주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 분은 주님을 사랑하였지요.”
“이 분은 교회를 사랑하였지요.”
“이 분은 영혼을 사랑하였지요.”

전부가 아니면 무두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윌리암 보드(William Borden) 이야기를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윌리암 보드는 억만 장자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큰 낙농회사를 경영하고 있을 때 부요속에 이 세상으로 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아버지는 세계 여행을 시켰습니다. 온 세계를 알려 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여행중에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행중에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모두를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성경 앞에 썼습니다.
“남김없이.”

예일 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주님을 위하여 남김없이 온전히 헌신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주님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예일대학에 입학한 후 친구 한 명과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단 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임이 예일 대학교에 하나 둘 늘기 시작하였습니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4년 후 윌리암 보드가 졸업할 때에는 이런 모임이 대학교 안에 그런 모임이 1,000개 가량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뉴헤이븐 거리를 방황하는 노숙자들을 돕기 시작하였습니다. 알콜 중독자, 노숙자, 홈레스 피플을 돕는 예일 호프 미션(Yale hope mission)이란 단체를 세웠습니다. 
대학재학중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 받았습니다. 
졸업하면서 이렇게 일기를 썼습니다.
“늘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에게 순종하리라.”
그리고 성경 뒤에 이렇게 썼습니다.
“후퇴없이.”

윌리암은 예수님을 따르는 데 후퇴하여서는 안 된다고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뒤돌아 보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세계 선교로 하나님이 부르심을 알고 중국 간수성에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중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랍어를 배우고, 이슬람 선교를 배우기 위하여 이집트로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풍토병에 걸렸습니다. 천수막염이라는 병이었습니다. 그는 카이로에서 25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카이로에 묻혔습니다.

그의 생애는 무모하여 보였습니다.
그 많은 재산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데 모두를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25살에 풍토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선교를 제대로 하여 보지도 못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일대학에는 그를 통하여 수많은 영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학생이 수 천명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결코 실패작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성경에서 세 문장이 발견되었습니다.

"남김없이(No Reserves)"
"후퇴없이(No Retreats)"
"후회없이(No Regrets)"
윌리암은 영원토록 주님의 제자로 오래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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