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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렙돈과 헤롯 성전 (막 12:4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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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렙돈과 헤롯 성전 (마가복음 12:41-13:2)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성경을 기록할 때에, 순서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을 때에 독자는, 왜 성경기자가 이 이야기를 이 자리에 기록해놓았을까? 하는 질문을 가져야만 합니다. 본문 마가복음 12:41-13:2절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 바로 뒤에는 헤롯이 지은 성전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 마가복음의 기록자인 마가가, 이 두 이야기를 여기에 놓은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두 이야기를 앞과 뒤에 놓고 대조함으로써, 여러분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메셋지를 증거하려고 의도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마가는 두 렙돈과 헤롯이 지은 성전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 나온 이야기는 두 렙돈 이야기이고, 뒤에 나온 이야기는 헤롯이 지은 성전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께서 살아 계셨던 시대에, 로마제국의 팔레스터인 지역의 분봉왕인 헤롯은,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베들레헴 인근 지역에 세상에 난지 2년 미만이 되는 남자 아이, 모두를 학살하라는 영을 내린, 무자비한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통치자 헤롯의 다른 면을 보면, 헤롯은 솔로몬 이후에, 유대인 지배자 가운데서는, 가장 큰 토목사업과 건축사업을 감당한 왕입니다. 예를 들면 헤롯은 유다지역 여러 곳에다 로마식 도시와 요새를 건설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마사다 요새와 마사다 요새 벼랑에 건축한 헤롯의 별장, 그리고 요단강 동편에 세운 마카리우스 요새로, 이곳 감옥에서 세례요한이 갇혀 있다가, 참형을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헤롯의 건축사업 가운데 절정은, 46년 이란 긴 기간 동안, 많은 자금고 인력을 들여서, 웅장하고 화려하게 증개축을 한,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헤롯이 지은 성전은, 본래 바빌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 온, 페르시아 제국의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중심이 돼서, 건설한 두 번째 성전을, 엄청난 자금과 사간을 들여서 증개축한 성전입니다. 그래서 헤롯이 지은 성전을 보는 사람은, 모두 다 입을 벌려, 찬사를 할만큼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헤롯이 지은 웅장한 성전을 보고, 감탄하는 제자에게 말씀하기를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헤롯이 46년 동안을 공들여서 지은 성전의 비극적인 최후를 예언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한 과부는, 예루살렘 성전까지 와서, 드릴 헌금이 두렙돈 곧 한 고드란트밖에 없었지만,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고드란트란 동전은 [그] kodravnth"(kodrantes), [영] Penny, 로마제국이 발행한 최소의 청동화로, 헬라가 발행한 최소의 청동화인 렙돈의 배액입니다. 무게는 3.5g으로, 로마에서 한 고드란트는 1회의 입욕료(入浴料)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드란트는 라틴어 [쿠아드란스 quadrans], 즉 앗사리온의 4분의 1이라는 의미의 말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두 렙돈이라고 하는 동전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것은, 이 과부 자신이 보기에도 부끄러운 것이었고, 다른 사람이 볼 때에도 하찮은 것입니다. 당시에도 한 고드란트는 귀중한 것이 아니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과부가 드린 한 고드란트를 마치 큰 것을 드린 것처럼 여겨주셨습니다. / 반면에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라고, 헤롯이 지은성전을 보고, 감탄하자, 예수님은 그런 말을 하는 제자에게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헤롯이 지은 성전에 대하여, 아주 어렵고도 황당한 예언을 하셨습니다.

    한 번 가만히 생각을 해보세요, 헤롯이 증개축을 한 성전을 찾아온 사람의 눈에 비췬, 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참으로 하찮아 보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헤롯이 지은 성전은 으리으리하고, 웅장한, 하나님의 영광이 깃들은 장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는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하나님께서 크게 받으셨지만, 반대로 그 굉장해 보이는 헤롯의 성전은, 비록 크고 좋은 돌로 지어졌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헤롯이 지은 성전과 두 렙돈을 무리가 보는 것과 다르게 보셨습니까? 이 두 이야기는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두 이야기가 발생한 장소는 바로 헤롯이 지은 성전입니다. 먼저 나온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의 이야기는 성전 안에서 일어난 일이고, 예수님께서 한 제자에게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한 사건은, 성전에서 나오면서 하신 이야기입니다.

먼저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다가, 순례자들이 헌금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성전 출입문 앞에 헌금함을 설치해 놓고, 예배자들이 성전에 들어가면서, 헌금을 하도록 했습니다. 순례자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니까, 부자들은 당당하게 성전에 들어가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일부를 꺼내어, 금화나 은화 꾸러미를 헌금궤에 넣습니다. 돈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면, 돈을 넣는 사람의 위세도 높아집니다.

    그런데 한 과부는 얼굴을 붉히면서 헌금궤 가까이 다가가서는, 본문의 분위기를 볼 때, 이 과부는 혹시 누가 자신이 헌금하는 것을 볼까 봐, 조심스럽게, 두 렙돈을 헌금궤에 넣고는, 얼른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런 여러 형태의 헌금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신 예수님께서, 본문 43-44절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두 렙돈을 헌금한 이 과부의 작은 헌금에 주목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과부의 작은 헌금을, 하나님께서는 ‘큰 것으로  기쁘게 받으셨다.’라고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라면 하나 값도 안 되는, 한 고드란트를 큰 것으로 여겨주시고,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부자들이 드리는 많은 금화나 은화보다도, 이 과부의 두 렙돈을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두 렙돈이 가지고 있는 가치보다는, 그  동전이 과부의 삶에서 지닌 가치를 보신 것입니다. 한 고드란트는 이 과부에게는 전 재산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면, 자신에게는 전혀 아무 것도 남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과부는 자신의 삶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이 과부에게는 헌금을  하고나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반면에 부자들은 액수로 보면 많지만, 실은 자기가 가진 많은 것 가운데 일부를 드렸을 뿐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하나님께 드리고도, 많은 것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서 드린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과부가 드린 한 고드란트를 귀하고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마다, 이 과부의 자세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예물을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고, 드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다음으로는 헤롯이 지은 성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앞에서 순례자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비록 한 고드란트에 불과한 예물을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보시고 칭찬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지역 출신으로, 촌사람들이고, 당시 사회에서는 하류계층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비유를 하자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전에 온 것은, 시골 촌사람이 오랜만에 서울 구경을 온 것과 같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갈릴리 지역에 비해서 크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촌에서 올라온 예수님의 제자들은 헤롯이 46년 동안 지은,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한 치장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고, 성전건축에 사용한 돌의 질과 크기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헤롯 성전의 내부는, 금으로 치장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헤롯성전은 1톤이 넘는 큰 돌들로 지어졌는데, 돌과 돌 사이에는 금색 몰타르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해가 떠올라 성전을 비추게 되면, 온 건물이 금으로 된 것처럼 찬란하게 빛이 났으니, 이런 건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이 성전을 떠나,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면서, 예수님께 한 마디 하기를, ‘선생님 이 건물 굉장하지 않습니까?’라고 했더니, 그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이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은 곧 무너지게 될 것이다.’, ‘부분적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고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과부의 드린 한 고드란트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부자들이 드린 많은 액수의 금화나 은화보다도, 크고 기뻐하는 예물이 되었습니까?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을 헤롯이 봉헌한 성전보다 더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보기에는, 가난한 과부가 드린, 자신의 전 재산인 두 렙돈은, 헤롯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권세를 드러내고, 자기의 통치에 이용하기 위해서 지은, 성전보다 나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을, 부자가 드린 많은 예물보다도 귀하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는 헌금이라고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대부분이 갈릴리 촌사람인, 제자들이 보고 놀란, 헤롯이 웅장하고 화려하게 증개축을 한, 성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표하지 않으시고, 이 성전이 곧 ‘돌 하나 돌 위에 놓이지 않게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런 모습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한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에 불과한 헌금에 대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46년이란 공사기간을 바쳐서, 화려하고 으리으리하게, 많은 재산을 드려서, 성전을 봉헌했는데, 그런 헤롯의 헌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될 것을 예언하셨으니, 이것은 헤롯이 봉헌한 성전은 오히려 하나님께는 슬픔이 되고, 욕이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야훼를 위하여 지어진, 성전의 그 화려하고 값진 자재인 큰 돌들이, 돌 하나 돌 위에 놓이지 않게, 철저하게 파괴된다는 것은, 야훼 하나님에게도 큰 욕이 되는 것이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성전에 살아 계신 야훼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성전이 파괴될 것이란 예언은, 헤롯이 그 많은 재산과 시간을 드려서 지어, 야훼 하나님의 이름으로 봉헌한 성전을, 하나님께서 받지 읺으셨다는 의미가 됨을,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동전 한 닢 밖에 없는 가난한 과부는 형편이 그런대도,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진 재산의 전부인 두 렙돈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실 그 과부는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할까!’라고 하면서, 자기가 당한 어려운 형편을 가지고, 하나님께 시비를 하고,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전 재산인, 두 렙돈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감사를 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값이 나가고, 세상에서 값진 것이라고 해도,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은 성전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정성과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보여주려고, 인가적인 방법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은, 야훼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받으려고도 아니하시고, 원하지도 않는다 하는 점을 여러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을, 헤롯이 46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지어 놓은 성전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본문에서 마가가 말하고 있는 분명한 사항은, ‘예수님께서는 한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기쁘게 여겨 받아주시고, 하늘나라 창고에 영원히 남도록 하셨지만, 헤롯이 46년 동안 국가재정을 투자하면서까지 심혈을 기울여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끌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에 무관심하셔서, 속히 돌 하나 돌 위에 놓이지 않게 철저하게 파괴는 날이 이를 것을 분명하게 예언하셨다.’ 라는 점입니다.

    당시로서는 헤롯이 지은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예언대로 헤롯이 지은 성전은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주후 70년 경에 발생한 유대인 독립전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로마의 장군 티투스는 진압군대애개, 예루살렘 성전을 쌓은 돌과 돌 사이에 있는 모르타르에 금이 섞여 있다고 말함으로써, 반란 진압군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자마자, 성전을 약탈하면서, 성전돌을 쌓는데 사용한 모르타르를 긁어내기 위하여, 철저하게 모든 돌을 떼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이 그렇게 심혈을 귀울여서 지은 성전이, 하루아침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한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기억이 되고, 나중에 그것을 드린 과부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세상 사람에게 기억하게 하려고, 지은 헤롯 성전은, 잠시 동안은 모든 사람의 탄성을 자아내는 성전이 분명했지만, 때가 되니까 돌 하나 돌 위에 놓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그곳을 바라보면서 헤롯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한 과부는 자신이 받은바 은혜를 생각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자신이 가진 것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소유 전부를 드렸습니다. 과부의 이런 헌금은, 부자들이 많이 가진 것 가운데 일부를 드린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성령께서 과부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았다면, 전혀 실행할 수가 없는 헌금입니다.

    화려한 건물을 지어서, 자신의 위세를 높이고, 이름을 많은 사람 앞에 드러내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재산이 있거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남들보다 강한 명예욕이 있는 사람들이, 가끔 그런 역사를 감당합니다. 인류 문화 유적을 보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널리 드러내고, 영광을 받기 위해서, 엄청난 규모의 건축공사를 해낸 것을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린 경우는 흔하지가 않습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솔로몬은 야훼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는데는 7년이란 기간을 사용했습니다마는,  자기의 궁궐을 짓기 위해서는 무려 13년이란 기간을 사용했습니다. 지혜롭다는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자기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 마음을  성령님이 감동시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교회 성도님 모두가 이 가난한 과부처럼 성령의 은혜 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드릴 수 있는 복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과 제자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에 주목했지만, 제자들은 헤롯이 지은 성전에만 주목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헌금을 드리는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사람이 이루어 놓은 성과만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보는 것과 제자들이 보는 것이 달랐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크게 보신 것을 작게 보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여러분도 예수님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면,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께 드린, 두 렙돈에 관심을 가지고, ‘아! 저 과부가 참으로 하나님께 많은 것을 드렸구나!’ 하면서, 예수님처럼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지금도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큰 예배당과 온갖 값진 것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예배당에만 주목하는 분이 여기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요즘에도 자신이 믿음생활을 할 교회를 정하는 기준이, 그 교회가 어떤 수준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가? 예배당은 어느 정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가? 교인들의 수준은 어떠한가? 교인의 학력수준은 어떤가? 등을 가지고, 다닐 교회를 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가? 그 교회가 성령의 능력 아래 있는 진정한 증거가 있는가? 참된 복음이 선포되는 장소인가? 하는 점은, 교회를 정하는데 뒷전에 있는 기준이라고 합니다. 실제가 그렇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회개해야만 함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가끔은 교인수가 적고, 교인이 가난해서, 헌금이 적게 나오고, 건물이 없어 월세를 내면서, 지하실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덧입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담대하게 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덜 받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런 교회를 다니면, 복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교인도 있답니다. 헤롯이 지은 성전처럼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지어 놓은, 부자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교회보다 더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처럼 건물이 크고, 부자가 많이 모이는 교회가, 작은 교회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은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믿음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받아서, 하늘나라 창고에 넣었지만, 헤롯이 지은 성전은 아무리 값나가는 것이 있었어도, 돌 위에 돌 하나 놓이지 않도록, 심판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왜?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크게 보신 것은 작게 보고, 예수님께서 작게 보신 것은, 크게 보는 것입니까? 요즘은 부자가 많은 헌금을 하면 요란하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만일 가난한 사람이 생활비 전부를 드렸더라도, 액수가 작으면, 아무도 주목하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요즘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이유는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사람의 욕심을 이루려다 보니, 하늘나라에서 값지게 여기는 가난한 사람의 헌금이 무시되고, 마음보다 헌금 액수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까, 작은 자의 헌신은 무시됩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헤롯이 성전을 지은 이유처럼, 큰 성전을 짓고, 사람이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월간지 현대종교 발행인 탁지일은 말하기를, ‘이 시대 이단이 많은 것은, 교회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알리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교회프로그램이 얼마나 좋은가!를 선전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의 모습을 지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각과 제자의 시각이 달랐던 것처럼, 오늘 저희의 시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점을 언제나 인정하고 깨어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믿음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기뻐하는 것을, 저희도 기뻐해야 하고, 예수께서 미워하는 것을 저희도 미워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이, 초라하고 작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기를 꺼려합니다. 좀더 크고 좋고, 많은 것을 드리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부자가 되어서 많은 것을 드리는 것보다, 가난할 때에 드린 작은 것을, 예수님은 더 기뻐하고, 크게 여겨주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넉넉해지면 드리고 이웃에게 베풀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가난했을 때에 드리고, 이웃과 나눈 것을 예수님은 더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주신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 12:48절에서 말하기를,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적게 받았으면 적게 드리면 됩니다. 하지만 적게 받았기 때문에,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적게 받은 것을 정성껏 드리면,, 크게 보시고 갚아주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의 작은 것을, 결코 작게 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많은 사람이 감탄해마지 않는, 헤롯의 성전보다도 크게 여겼습니다. 부자가 큰돈을 헌금한 것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더 귀하고 큰 것으로 받으셨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했다면, 두 렙돈으로 끝이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에, 두 렙돈은 헤롯의 성전보다 귀하게 여김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여러분이 가진 작은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보다 얀약한 이웃을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것을 가지고, 마치 사르밧 과부의 집에 남아 있던, 마지막 떡가루와 기름처럼, 3년 반의 기근을 이기게 하는, 큰 역사를 이룹니다. 여러분이 감사함으로 드린 작은 것이, 헤롯이 지은 성전보다 더 귀하게 여김을 받게 됨을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여러분의 것을 자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작은 것이 변하여 풍성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런 풍성한 믿음의 열매를 맺는데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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