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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사람에게 좋은 교회 (행 2: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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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람에게 좋은 교회 (사도행전 2:41-47)

차를 타고 길을 가다 보면, 목사가 되어서 그런지, 교회가 유난히 잘 보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교회의 이름으로 보면, 예전에는 다 교회가 있는 동리의 이름이 교회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동리 이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추상적인 이름이 붙여진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교회’, ‘참 좋은 교회’, ‘향기 나는 교회’, ‘앞서가는 교회’등의 교회 이름입니다. 

언젠가 목회자 모임에서 강원도 평창의 대화라는 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유명한 송어횟집이 있어, 그곳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목사님 한 분이 대화라는 곳에, 유명한 메밀국수 집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메밀국수를 먹고 가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는 않아서, 속으로는 그냔 갔으면 했는데, 그 제안을 하신 어른 목사님께서, 먹고 가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고 해서, 반은 억지로 메밀국수 하는 집엘 갔습니다. 메밀국수집은 60~70년대 시골집 그대로에, 깨끗하게 수리만 한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메밀국수 맛이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점심식사를 맛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국수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그때 시간이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 같으면 정리하고 저녁준비 하기 전에 잠간 쉬는 시간일 터인데도, 이 허름한 집에는 메밀국수를 먹겠다고 모여든 손님으로 붐비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그 집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교회도 이렇게 메밀국수집처럼 호감이 가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가만히 보니까, 시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불편한 곳을, 그 구석진 곳까지 많은 손님들이 찾아갑니다. 주인과 종업원의 친절함과 맛이 곁들어진, 그 메밀국수 집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웃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좋은 평가를 받는 교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도 남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 메밀국수집은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믿음의 소양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신앙생활의 첫째 기본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보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 믿음이 있을 때 능력을 얻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바른 신앙생활을 지속해나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히 11:6절)

신앙생활의 두 번째 기본은 즐거움입니다.
즐거움이 없는 신앙생활은 힘이 듭니다. 신앙생활에 즐거움이 없으면 늘 수동적으로 끌려 다녀야만 합니다. 자발적인 믿음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그냥 믿음생활이 믿음 있는 남편과 평화하기 위해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아니면 두려움에 의해서, 믿음은 없지만 마음에 ‘오늘 교회가지 않으면 혹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교회를 나가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말 무슨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내가 교회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자책감을 가지고,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고, 시비하고 원망을 하는 삶을 삽니다. 하지만 교회에 안 나가도 아무 일이 없으면, 그대로 세상 재미에 빠져서, 남편은 교회의 중직이고, 믿음생활을 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아내는 교회와는 아주 먼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변에서 이런 신자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에 즐거움이 없으면, 예전부터 부모님 따라서 교회 다닌 습관 때문에 교회를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본인도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하니까 교회에 와서도 봉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를 못하고, 여러 해를 다니고 있지만, 교회가 무슨 일에든지 방관자이고, 구경꾼 노릇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인생활을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감당해야 할 터인데, 항상 못할 핑계만 생기고, 동료 교인들이 봉사하고 헌신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부럽지도 않고,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교회엘 왔으니, 남의 눈치만 보게 됩니다. 그러니 교회생활이 즐겁지가 않고, 괴롭고 피곤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계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믿음생활과 교회생활에는 누가 빼앗을 수 없는 궁극적인 즐거움이 있어야 하고,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한 번 가만히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밥을 먹어도 즐겁게, 음식은 단 마음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입맛이 씁니까? 실은 몸은 멀쩡한데도, 마음이 병이 들면 입맛을 잃어버립니다.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에 즐거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근심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찾아오면, 입맛이 돌게 되고, 입맛이 들면, 먹은 음식 때문에 기운이 나고, 그런 사람의 얼굴에는 즐거운 모양이 나타납니다. 이런 점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인 마포중앙교회 교인에게도 교회생활을 하는 즐거움이 있어야만 합니다.

신앙생활의 셋째 기본은 교회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는 것입니다. 
교회란 곳이 가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감정은 반드시 교회의 시설이나 어떤 규모나 외형적인 것에 의해서만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만나는 회중들이 좋은 감정을 갖도록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왠지 교회에 갈 맛이 나고, 교회에서 나를 끌고 있다는 좋은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음식점을 찾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외형적으로 보이는 편리한 시설과 분위기입니까? 아니면 주인이나, 종업원의 친절함 때문입니까?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음식점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맛’입니다. 남다른 ‘맛’이 있으면, 손님들이 먼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갑니다.  

1. 예루살렘 교회도 이처럼 남다른 맛이 있었던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본문에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 모인 믿음공동체인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본문 44-47절에서 누가는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증거하기를,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호감을 사니까, 사람들이 예루살렘 교회로 모여들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루살렘 교회는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하게 되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누가의 말대로라면, 예루살렘 교회는 누구나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교회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란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교회는 소문을 듣고라도, 가서 배우고, 가서 헌신하고 싶은 곳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질 때,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고,  교회가 영적으로, 양적으로 부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교회에 가도록 하는 근본 동력인 믿음과 즐거움, 이 두 가지 문제는 근본 요소가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점을 이 시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름다운 믿음을 가지는 데는, 물론 중간 역할을 하는 먼저 믿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리새인 사울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 바울이 되는 과정을 보면, 다마스커스의 성령 충만한 제자 아나니아란 사람이 있었고, 고향 다소로 가서 은둔해 있던 사울을 안디옥 교회의 교사로 부르고, 함께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된 바나바란 참으로 믿음이 좋은 멘토가 있었으며, 결정적으로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강력한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말하기를, ‘한 사람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는, 반드시 한 사람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난다.’라고 하셨습니다.

즐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마음자세를 가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이란 것도 피상적으로 보면,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사람의 영향을 받지만, 결국은 자신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네게 달렸으니까, 이제부터는 네가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버려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곁에 있는 이들이 주보기도를 통하여 동료의 심령 가운데 하늘의 것을 더 강화되고, 위에 속한 것을 위하여 살려는 자세를 더 든든하게 갖추도록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에 동료교인의 마음 속에 영적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을 보게되고, 그런 교인의 노력이 바로 모두가 좋아하는 교회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좋은 교회는,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마포중앙교회를 먼저 내가가고 싶은 교회로 만들기 위하여, 기도하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포중앙교회가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주는 자리가 되도록 구체적으로 사랑하기 바랍니다. 내가 깨끗하게 청소한 곳은, 남들은 몰라도, 내게는 관심이 가고 즐거움을 주는 곳이 되는 것처럼, 이 교회에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마포중앙교회가 여러분에게 관심거리가 되고 즐거움을 주는 공동체이자 건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다음으로 참된 신자라면, 하나님께 좋은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교회를 세워가자면, 먼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1:10절에서 갈라디아 교인에게 말하기를,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자신이 감당하는 복음전파사역이라고 하는 것이, 실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기뻐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오늘의 교회도 항상 유념해야만 합니다.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좋아하는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교회란, (1) 복음의 진리를 최선을 다하여 지키는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전적으로 지키고자 애를 쓴 교회입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전념했고, 교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그대로 지키고자 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본문 42-43절에서 증거하기를,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사도들을 통하여 기이한 일과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개척하여 세운 갈라디아 교회가 성령의 능력 아래서 잘 성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유대교적 그리스도인 교사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서는, 갈라디아 교인을 미혹하기를,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 행함이 없고,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고,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거짓 교사들 때문에 갈라디아 교회가 혼란해졌습니다. 이때에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에게 말하기를,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은 사람에게 좋게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지적을 하면서, 갈 1:7-8절에서 말하기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경우에 바울 사도의 입장은 아주 강경합니다. 전혀 타협을 하지도 않고, 융통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만은 요지부동하고 완강한 자세를 견지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받은 그 진리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것은 몰라도 오직 복음에 대해서만은 이런 확고부동한 자세를 견지해야만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세요. 베드로와 사도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붙들어다가 산헤드린 회의에서 심문을 하고, 전도하지 못하도록  협박을 하고, 매질까지 합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매질까지 당하고도 담대하게 공회원들에게 행 4:19-20절에서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사람, 곧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은 복음, 진리를 가지고는 누구하고도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는 전혀 물러서지를 않고, 오직 복음만을 전합니다. 왜냐하면 복음 안에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머리가 된 교회는, 언제나 변질되지 않은 진리 자체를 전하고, 가르치고, 지키고 행해야만 합니다. 복음이 변질되는 순간 교회는 무너집니다. 

(2) 좋은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있습니다. 먼저 당신의 자녀에게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구체적인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사랑을 표현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서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2)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웃을 향한 봉사, 이것은 경건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일 4:20절에서 말하기를, ‘-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의 말처럼 형제와 이웃을 사랑할 때,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형제사랑과 이웃사랑을 위하여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교회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하는 곳입니다. 제자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자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 예수에게 전적으로 위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나아가서 제자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서 거룩한 일을 하고,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삶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의 삶을 이루기 위하여 훈련하는 곳, 복음전파를 위하여 소명 받은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언제나 하나 되고자 하는 노력과 삶이 있어야만 합니다. 교인 모두에게 한 가족과 같은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 안에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서로 섬기고 베푸는 가족의 따스함이 교회에는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에서도 고객을 손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가족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합니다. 가끔 큰 매장에 가면, ‘우리는 고객을 가족으로 모십니다.’라는 현수막을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그러면 정말이지 그들이 여러분에게 경조사가 있을 때, 고통을 받고, 아파할 때, 여러분을 찾아와서 위로를 해주고 함께 있어줍니까?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하는 곳입니다. 교인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처럼 감싸 안고, 성도의 기쁨에 함께 참여해줍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바로 여러분이 이런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도 주님의 뜻에 맞는 교회가 되어서 성령의 능력을 이웃에게 보여주고, 날마다 교인의 수가 더해가는 역사를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사람에게 좋은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 좋은 교회는 사람에게도 좋은 교회입니다. 
세상은 사람에게 맛으로, 상품으로, 서비스와 친절로 시설 등으로 만족을 주면 됩니다. 하지만 교회는 사람에게 만족을 준다고 해서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활에서는 하나님께 합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에게 좋은 것이 됩니다. 

성경을 보세요, 성경기자는 다윗을 말하기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산 사람입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적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 앞에 진실하려고 애썼고, 모든 일을 야훼 하나님께 물으면서, 어디서나 야훼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이고, 강력한 나라를 이루었고,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고, 백성들에게 만족함을 준 왕입니다. 그래서 만인에게 존경을 받았고, 야훼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행 13:22절에서 다윗에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편에서 좋은 것이 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면, 혼란과 고통만이 온다는 것을 유념하고, 먼저 다윗처럼 하나님께 좋은 것을 택하고 실행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의 구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참여해야 합니다. 좋은 가정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가족이 모두 참여해야 합니다. 아내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사랑으로 신뢰하고, 인내하면서 함께 할 때 아름다운 가정이 가능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좋은 교회,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도 좋은 교회로서, 오고 싶은 교회, 자랑하고 싶은 교회, 배우고 헌신하고 싶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람에게만 호감을 주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좋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교회가 될 때 사람에게도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복음의 진리를 지키고, 진리 안에서 살고자, 여러분 모두가 함께 힘을 합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예배와 봉사에, 훈련과 전도에 그리고 가정 같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한마음이 되고, 함께 역사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힘을 모아갈 때, 성령의 능력과 지혜가 우리와 함께 하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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