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렘 17:5-11)

첨부 1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예레미야 17:5-11)

야훼 하나님을 믿는 저희들은 내 생각, 내 계획, 내 욕심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다윗처럼, 언제나 먼저 주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깨달은 주님의 뜻만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사실은 만사형통의 비결이 바로 오직 주님의 뜻만 따라가는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입에 거품을 물기 까지 뛰고 땀을 흘립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벌었는데 결산해 보면 별 남는 게 없이 뒤로 다 빠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앞으로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로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심은 만큼 거두는 것 그것이 축복입니다.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는 마음이나 요만큼 작게 심어 놓고 저 만큼 크게 거두려는 마음은 욕심 많은 잘못된 마음입니다. 신앙인은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예레미야 17:5-11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삶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본문 5절에서 예언하기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매사에서 초월적인 원리를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과 감정만을 인정하고, 그것을 따라서 살아가는 가장 인간적인 존재을 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고, 보고 있는 세계만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모두를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창조주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인생을 달리 표현한다면, 덧없이 지나가고, 없어질 것에 대하여 연연해하면서, 아둥바둥 거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끝까지 모든 것을 창조주에게 맡기고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불성실함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완전하게 여기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인간을 보시기에 좋게 만드시기는 했지만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배신으로 하나님과의 조화로운 관계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저지른 최초의 죄악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사탄의 말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가인을 보세요 가인은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보다도 많은 농산물을 의지하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벨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육축의 희생 곧 피를 가지고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제사라고 했습니다. 

가인의 후손은 나중에 여러 가지 화려한 도시문화를 건설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가인의 후손들이 만든 문명은 그들이 지은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노아의 홍수 때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목한 채 물속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제 2의 아담이라고 할 수 있는 노아의 가족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세상에서도, 니므롯이라는 영웅이 나와서 시날 평원에 다시는 홍수의 피해를 입지 않고 자리를 보존하겠다고 지은 바벨탑도, 한 때 인간의 문명을 자랑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함으로써, 모든 인류가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따라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인간의 삶 가운데 분명히 두 종류의 흐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려는 불신앙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겸손히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대안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적인 노력이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위에서 복음을 전하시면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가난한 사람’이란 유대교적 배경에서 볼 때에, 하나님에 대하여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었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사람’은 누구도 돌보아 줄 사람이 전혀 없는 ‘고아나 과부, 그리고 나그네와 같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당시 이들은 사회적인 약자로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믿고 의지할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본문 7-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행복한 사람의 적극적인 면을 말씀하기를, ‘그러나 주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에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정성스럽게 읽고, 열심으로 공부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에는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읽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정비례합니다. 반대로 썩어질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이 적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도 아니고 전부해서 4권 밖에 분량이 되지 않는 복음서의 기본적인 내용을 잘 몰라서, 누가 복음서에 있는 내용을 질문하면, 명쾌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분을 가끔 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 가운데 TV프로그램이나 연속극이나 오락 프르그램에 대해서는 연세가 많으신 데도 불구하고 그 어린 출연자들에 대하여, 프로그램 내용에 대하여 아주 훤하게 꿰뚫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런 분의 삶을, 성령충만한 생활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삶이라면 당연히 성경에 대하여 기도생활에 대하여,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대하여 아는 것이 많아야만 할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가 임진년 한 해 동안에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임진년 한 해 동안에 에스겔이 말하는 것처럼,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오직 하나님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믿으시면 아멘)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무한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십니다. 

장로교 교리문답서인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에 보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으려면, 무시로 사랑의 편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쉬지 않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묵상한다는 것은, 말씀의 내용을 깊이 음미하고, 그 말씀을 ‘자신의 영의 양식’으로 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자녀를 물가에 심은 나무’라고 표현을 하고 있지만, ‘물가에 심겨진 나무’라는 것이, 반드시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번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세요, 예레미야 자신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선지자였지만, 그가 세상에서 받은 대우는, 번영과 환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나사렛 예수를 온 인류의 그리스도라고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장차 받아야 하는 고난에 대하여, 설명하신 것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만을 의지하는 사람답게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의 모습만을 따라가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인생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나 주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무엇을 선택하느냐? 혹은 여러분이 어떻게 선택하느냐?’ 에 따라서 인생의 질과 내용이 결정됩니다. 대통령 선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긴 편에 줄을 선 사람은 기고만장합니다. 반면에 패자 편에 서서 거들었던 사람은 모두 패자가 되어 울분을 삼켜야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빨리 뛰는 토끼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빨리 가서 1등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지금 다른 사람보다 조금 앞섰다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먼저 달려갔다고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 내 계획, 내 욕심을 앞세우고 달려가다 보면, 지금 당장은 앞서는 것 같고, 성공한 것 같아 보여도, 상황이 뒤집어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 성공은 한 순간에 안개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맙니다. 휙 바람이 불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립니다.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과 행복한 선택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선택을 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선택을 하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본문 말씀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과 인간적인 것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언제나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의인은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적극적으로 야훼께서 주신 계명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 시냇가의 심겨진 나무처럼 풍성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습니다. 

야훼께서는 이사야 통해서 사 1:28-31절에서, 야훼를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고 따라가는 사람을 향하여, ‘그러나 거역하는 자들과 죄인들은 모두 함께 패망하고, 주를 버리는 자들은 모두 멸망을 당할 것이다. 너희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우상숭배를 즐겼으니,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가 동산에서 이방신들을 즐겨 섬겼으므로, 창피를 당할 것이다. 기어이 너희는 잎이 시든 상수리나무처럼 될 것이며, 물이 없는 동산과 같이 메마를 것이다. 강한 자가 삼오라기와 같이 되고, 그가 한 일은 불티와 같이 될 것이다. 이 둘이 함께 불타도 꺼 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도 잎이 시든 상수리나무가 되고, 물 없는 동산이 되고, 실오라기처럼 되어서 쓸 곳이라고는 딱 한 가지 가 있는데, 뗄감으로 쓰는 것뿐입니다. 이처럼 바른 삶의 목적과 목표를 잃어버리고, 영혼이 메마른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고  물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항상 청청하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도록 주님만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3)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본문 8절에서 말하기를,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에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라고 했습니다.

여름철에 강변길을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강가에 심겨진 수양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푸르고 치렁치렁 가지가 늘어져 있는지 보기만 해도 풍성합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강변은 메마르지 않습니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농작물이 다 타서 말라죽는다고 아우성을 쳐도, 강변만큼은 끄떡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 생수의 근원이신 야훼 하나님 곁에서 사는 사람은, 아무리 가물어 어려운 시절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샘의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일마다 때마다 도우시고, 지켜주심으로, 언제나 형통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이, 마치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삶이 되시기를 바라십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요셉과 같은 사람이, 복을 받은 비결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에서 항상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시절도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었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선진들은 당한 형편에 굴복하지를 않고, 믿음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인내하면서 결국은 승리했습니다. 족장들이 거둔 승리는 한 마디로 야훼 하나님께서 믿음을 잃지 않은 족장들을 도와주심으로써, 길이 열리고 형통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야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감당하는 삶이, 마치 물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고난의 시절을 잘 견디고, 언제나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체험이고 간증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도 살아 역사하시는 나의 하나님이 되는 줄을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형통하게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안될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가버나움의 회당장 야이로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아무리 세상 사람이 상황이 끝이 났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처럼,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맡기고, ‘내게는 방법이 없으니, 주여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으며,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기 바랍니다. 야이로처럼 예수의 말씀에만 사로잡혀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넘을 수 없는 벽을 넘어서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믿으시면 아멘)  그러니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눈으로, 귀로,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넣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 속에서 차고 넘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세상에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인생이 있는가 하면,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성과 순간성을 이야기합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나무와 풍성한 열매 등으로 주인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에 날리는 겨’는 땔감으로 밖에는 쓸 수 없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가치 있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결산을 해보면 아무 것도 남을 것이 없는 무가치한 인생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아니 평생을 일하고도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리석은 선택을 한 사람은 이런 일을 당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망해버릴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날마다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무시로 무릎 꿇고 전능하신 분에게 기도하는 사람입니까? 한번 여러분 자신의 신령상 형편을 가만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다 의인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 가운데도 악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만은 그리스도 예수께로부터 영원한 하늘의 복을 받는 삶을 살고자, 갈망하고 애를 쓰는, 신실한 신앙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4)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썩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본문 9-10절에서 예언하기를,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각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심장을 감찰하며, 각 사람의 행실과 행동에 따라 보상하는 이는 바로 나 주다.’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말을 안해서 그렇지 많은 사람이, 사람을 믿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을 믿었다가 일순간에 자신의 명예를 잃어버리고, 전 재산을 날리고, 그 충격으로 중병에 걸리거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고생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라 사랑할 존재이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존재입니다. 

가끔 주변에서 사람이 철썩 같이 믿었다가, 일이 잘 안 되었을 때나 배신을 당했을 때에,  자조하는 말로 “에휴~, 믿은 내가 잘못이지…” 라고 말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럴바에는  처음부터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내가 나를 보아도 믿을만한 존재가 못되는데, 누가 누굴 믿고 의지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야훼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하기를, ‘각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심장을 감찰하며, 각 사람의 행실과 행동에 따라 보상하는 이는 바로 나 주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지 말아야 할 것은 믿고, 정작 믿어야 할 것은 믿지 않다가, 낭패를 당합니다.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었기 때문에 손해를 봅니다. 

믿었다가 배신을 당하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고생을 합니다.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야훼 하나님은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 금년 한 해는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한 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한 해로 만들어 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야훼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본문 11절에서 예언하기를, ‘불의로 재산을 모은 사람은 자기가 낳지 않은 알을 품는 자고새와 같아서, 인생의 한창때에 그 재산을 잃을 것이며, 말년에는 어리석은 사람의 신세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베푸시자, 그 때부터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떡을 더 얻어먹기 위하여 예수님 계신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 몰려 온 무리 가운데는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자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이 어떠한지 아셨기 때문이, 자기 앞의 이익만을 위하여 예수를 왕으로 내세우려는 사람을 믿거나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먹을 것 때문에 나를 왕으로 세우겠다고 하지만 언제 저들이 나를 배신할지 모른다는 점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는 제자들의 배신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급해지자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다가 결국은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시고, 베드로가 그물질을 하던 갈릴리 호수까지 찾아가서,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베드로에게 '내양을 먹이라.'고 사명까지 맡겨주십니다. 이것이 인간의 약점을 알고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의지해야 하지만, 예수는 사람을 믿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사람을 믿거나 의지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을 믿고 의지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 아니라 자신이 산 삶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반항하던 사람은, 반드시 불순종한 삶의 값을 치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제압할 수 없게 악하고 못되게 굴어서, 세상에서는 어떤 힘으로도 제압을 당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런 이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심판은 한번 내려지면 영원한 것입니다. 벌을 받으면 영원히 벌을 당하는 것이고, 상급을 받으면 영원한 상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이 무서운 것입니다.   벌로 회초리 몇 대 맞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심판 때문에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유념하고,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지만, 삼가 행동과 말을 조심하고 나보다 연약한 이웃을 배려하면서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지극히 적은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준 것이 곧 나에게 하 것이니라!’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언제나 나보다 연약한 이웃을 대접하기를, 그리스도 예수를 대접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알고 있는 가정과 자녀가 행복한 삶을 삽니다.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분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이미 저와 여러분의 삶을 알고 계십니다. 저희가 걷고 있는 삶의 길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의인의 길을 아시고, 이를 옳다고 인정하시고, 영원한 복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반면에 악은 망하는 것이고, 오직 음부, 즉 지옥의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의 말처럼 안개와 같이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을 소극적으로 불행하게 살아가기보다는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마치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늘 푸르고, 시절을 좇아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세요.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오직 예수를 여러분 마음속에 모셔야만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무시로 예수만 깊히 생각하고, 예수만 바라보시고, 예수의 발자욱만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을 돌아볼 때, 본의 아니게, 알게 모르게, 악인의 꾀를 쫓기도 했고, 죄인의 길에 서기도 했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끊을 것은 끊고, 버려야 할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만 합니다.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면 여러분의 삶의 자리는 쓰레기장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버릴 것을 용기 있게 버리고, 취할 것을, 거룩한 것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의와 진리에 대해서는 불같이 뜨겁게 취하고, 불의와 거짓에 대해서는 어름같이 차게, 미련 없이 잘라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여러분이 이제부터 이 땅에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말씀 속에서 하늘의 신령한 비밀과 건강한 삶의 목표를 발견하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