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

첨부 1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


마귀가 현대인을 미혹하기 위한 방법을 수정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미혹하기 위해 옛날에는 마귀가 사람을 게으르게 했는데, 요즘은 반대로 너무 바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바쁘게 되면 생각할 여유가 없게 됩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방향 감각을 잃기 쉽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하고 있는 일이 정당한 일인지 아닌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바쁘게 하는 일은 그르치기 쉽습니다. 그 예로, 운전하는 사람이 너무 바삐 서두르게 되면 교통 법규를 위반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다가 사고를 내게 됩니다. 

‘바쁘다’는 말의 한자어는‘바쁠 망(忙)’자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조급하다.’‘겨를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망(忙)’자는‘마음 심(心)’에‘망할 망(亡)’자가 더해진 글자입니다. 즉 마음이 바쁘면 망한다는 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마음이 바쁘면 몸도 생활도 바빠집니다. 이렇게 생활이 바쁘게 되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영혼관리의 소홀입니다. 영혼이 병들면 결국은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3서 1장 2절 말씀에“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영혼이 잘 못되었을 땐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범사가 잘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도“바쁜 목사 나쁜 목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왜 세상에 오셨는지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는 내 생명보다 더 귀한 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예수님을 멸시하며 조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혼자의 명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인 성경을 깊이 상고(詳考)할 때 비로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一.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본문에“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주님 앞에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시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에“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에 밝히시기를“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 갈래 구원의 길 중에 한 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 갈래의 구원의 길 중에 가장 좋은 길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발전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도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전국 어느 곳을 가든지 도로가 정말 잘 만들어졌습니다. 고속도로가 마치 거미줄처럼 건설되어 있습니다. 국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이 막히면 터널을 뚫고, 계곡이나 강이나 바다가 앞을 막으면, 가로질러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영종도를 연결하는 인천대교나 영종대교입니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나 용유도는 낙후된 외딴 섬이었습니다. 

그 섬이 세계적인 공항으로 탈바꿈을 했습니다. 인천공항은 7년 연속 세계 최우수공항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그 규모도 세계적이어서 개발이 완성되면 미국에서 제일 크다는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의 두 배나 된다고 합니다. 작은 섬이 세계적인 공항으로 발전하게 되는 데에는 영종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영종대교와 2년 전 개통한 인천대교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천대교는 총길이 18.248km(약 45리)로 그 규모가 세계적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연결하는 다리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에“우리에게 큰 대제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가리켜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차례씩 하나님 앞에 나가 민족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이 속죄 제사로 인해 하나님과 죄인의 관계가 회복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양의 피로 속죄제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그 피로 속죄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 희생의 모형입니다. 구약에 있었던 속죄의 제사가 예수님의 희생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제사장의 헬라어의 의미는“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영종대교나 인천대교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영종도와 용유도는 낙후된 작은 섬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다리 놓는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처럼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84편 5절~6절에 말씀하시기를“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을 하나님과 통하는 시온의 대로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여 눈물골짜기가 샘의 곳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자 교회에 나올까요? 하나님이 이끄신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하셨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까요? 하나님께서 영생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말씀하시기를“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 바로 이러한 사람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까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5절 말씀에“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을 창세전에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시인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주님 앞에 나와서,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시인하도록 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남달리 착하고 선행이 많아서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을 가리켜“은혜와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은혜란 값없이 아무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값없는 공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공짜이지만 하나님은 엄청난 값을 치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은혜가 무엇인지 한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 소년이 전혀 알지 못하는 미군 병사의 도움으로 세계적인 인물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 목사이며 극동방송국 설립자겸 사장인 김장환 목사입니다. 김장환 목사는 2000년 7월 5일 쿠바 아바나에서 제19대 침례교회세계연맹(BWA) 총회장에 취임한 바가 있습니다. 침례교회세계연맹(BWA)에 속한 침례교인은 전 세계에 1억 6000만 명에 달하며, 미국에만 50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침례교회세계연맹(BWA) 총회장은 서구선진사회의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김장환 목사는 경기도 화성군에서 끼니를 걱정하는 가난한 소작농가의 5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17세 때 6.25 동란이 발발했습니다. 1.4후퇴 때 퇴각한 미군들이 수원교도소의 죄수들을 다 풀어주고 비어 있는 교도소에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김장환 목사는 친구들과 담장 밖에서 미군부대를 구경을 하고 있을 때, 한 미군이 여러 친구 중에서 김장환 소년을 지목하여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미군은 그를 막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난로를 가리키며 불을 지펴달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눈치 빠른 김장환 소년은 재빨리 논두렁에 박아 놓은 말뚝을 뽑아 와서 난롯불을 피우고 시키지도 않은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놓았습니다. 신발까지 반짝반짝하게 닦아 놓자 영특하고 부지런한 그를 매일 오게 했고, 부대가 경북 경산으로 내려갈 때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전쟁 중이라 막내아들을 타지로 보내는 것이 걱정스러웠던 어머니는 반대했지만 김장환 소년은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고 싶어 미군을 따라 나섰습니다. 일을 하고 받은 초콜릿이나 담배를 양키시장에 내다 팔면 바로 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군들을 따라 경산에 도착한 김장환은 정식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경산에는 4개의 막사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막사에서 20명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군인들은 김장환에게「빌리」라는 미국식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우스보이는 특별한 월급을 받지 않는 대신 미군들이 버리는 보급품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미군들은 영리하고 부지런한 김장환 소년을 사랑하여 여러 가지 선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김장환 소년은 외로울 때는 나무 아래서 하모니카를 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나무 밑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김장환 소년에게 낯선 미군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칼 파워스라는 상사였습니다. 당시 22세였던 칼 파워스 상사는 폭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부모와 생이별한 불쌍한 어린이들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때 그는 단 한명의 아이라도 이 전쟁에서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옆 막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김장환을 눈여겨보았던 것입니다. 

칼 파워스 상사는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김장환을 미국으로 데려가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후견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미국에서 공부한 김장환 목사는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갈 파워스 상사의 눈에 발탁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이 사람은 행운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군 병사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난 것이 이 사람의 일생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다른 자격이 있거나 어떤 공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유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가리켜 은혜라고 합니다. 

二.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분단된 우리나라에는 이산가족이 많습니다. 애틋한 사연이 많지만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심정만큼 애절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이와 같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입니다.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불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디모데후서 4장 1절~2절에 명령하시기를 당부하시기를“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4장 23절에는“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신 영혼들에 대한 하나님의 한 맺힌 심정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 영혼구원에 힘쓰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혼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세상에 40일간 더 계시다가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실 말씀이 많으셨겠지만 딱 한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가서 모든 민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8-20).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와 함께 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함께 하시되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보다 더 복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개인이나 국가는 반드시 성공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전쟁 기사가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며,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올 때 하늘에서는 기쁨의 큰 잔치가 벌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냥두면 그 영혼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복음증거를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으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지 하지 않는 성도나 교회는 사명을 망각한 것입니다. 선교학자 레슬리 뉴비긴은“선교적 비전을 상실한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교회는 선교할 줄은 몰랐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몰랐던 것입니다. 성도간 서로의 사랑은 깊었지만 복음증거에는 무관심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전도의 명령을 받고도 거역한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교회는 핍박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를 위해 흩으신 것입니다. 수만 명이 모였던 예루살렘교회는 지금까지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전도하지 않는 결과입니다.

가장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영혼구원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충성된 사람은 영혼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사명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신분을 가리켜“제사장들이요”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란“다리 놓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구원의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또한 성도의 사명에 대해“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선포”이전 성경에는“선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선전요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에 대해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미련해 보이는 전도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씨앗을 뿌리지 아니하면 열매가 없듯, 전하지 아니하면 구원은 없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15절 말씀에 구원의 원리에 대해 말씀하시기를“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전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되 싹이 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듯,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믿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쉼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습니다. 죄 범한 나를 부르셔서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삶의 방향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복음이 증거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증인으로 나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도의 본분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삶에 보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삶에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있습니다. 이러한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고,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