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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도성 2 : 예루살렘, 거룩한 시온 성 (시 4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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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도성 2 : 예루살렘, 거룩한 시온 성 (시 48:1-14) 
 
 
❚아!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동경 35도 북위 31도 지점에 위치한 면적 126평방킬로미터의 자그마한 도시입니다. 포항시의 면적이 1127평방킬로미터니 포항의 1/9밖에 안 되는 정말 작은 도시지요. 하지만 이 작은 도시는 지금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화약고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교뿐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3대 종교가 저마다 이 예루살렘을 가장 중요한 성지(聖地)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지순례 때 예루살렘에 가본 분들은 “드디어 내가 성경에 나온 예루살렘에 왔구나” 하는 감격도 잠시, 예루살렘 한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황금빛 모스크, 이슬람교의 사원을 보고 의아하게 여깁니다. 

“아니? 어떻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예루살렘 한 가운데 저렇게 번쩍이는 이슬람교 사원이 차지하고 있나?” 하고 말입니다. 그것도 이 ‘황금사원’ 혹은 ‘바위 돔 사원’이라 불리는 모스크가 위치한 자리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 바위 위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중요한 장소에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다는 말입니까?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이 바위는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한 성지지만, 동시에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영어식으로는 마호메트)가 이 바위에서 하늘로 승천했다고 해서 이슬람교의 아주 중요한 성지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들은 주전 638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이 자리에 찬란한 ‘황금사원’을 짓습니다. 오랜 후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역을 점령했는데 그렇다면 대체 왜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이 눈엣 가시 같은 ‘황금사원’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일까요? 

전체 아랍 국가를 상대로 겁 없이 전쟁도 하는 이스라엘인데 감히 아브라함의 제단 위에 세워놓은 이 이슬람 사원을 헐어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예루살렘이 국제사회에서 ‘군사적으로 점령한 지역’으로만 인정받고, 이스라엘의 정식 영토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이 황금사원을 헐고 그 위에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는 날, 전 세계 이슬람이 총궐기해 세계3차 대전이 일어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 상당히 복잡하지요? 제가 왜 이렇게 남의 나라 수도 예루살렘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할까요? 물론 예루살렘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도시이며 이스라엘의 수도라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신앙적으로 네 가지의 아주 중요한 사실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거듭남

첫째, 예루살렘은 우리 성도들이 받게 되는 중생과 성화를 상징합니다. 예루살렘은 본디 가나안 원주민인 여부스 족속의 땅이었는데 다윗이 점령한 것입니다. 사무엘하 5:6~7입니다.

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예루살렘은 시온 산꼭대기에 지어진 산성으로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입니다. 여부스 족속은 다윗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도 콧방귀를 뀝니다. “너희가 쳐들어오면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쉽게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곧이어 7절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다윗이 쳐들어가 손쉽게 시온 산성을 빼앗아 버립니다. 

8절에 보니 물 긷는 데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어느 성이나 성 바깥에 있는 샘과 연결된 물 긷는 통로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군사들을 올려 보내 쉽게 산성을 점령하고 그 성을 다윗 성이라고 이름 짓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교만하면 안 됩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지 절대 견고한 산성도, 천혜의 요새도 아닙니다. 제아무리 많은 재물이나 능력도, 아무리 든든한 권력이나 건강도 지킬 수 없습니다. 시편 18:2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런데 여부스 족속들은 든든한 요새와 산성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교만했습니다. 다윗이 그 교만을 금세 깨뜨리고 예루살렘을 점령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깨신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내 산성이요 요새요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고 의지하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지키시고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시온 성을 빼앗은 후 10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니 모든 원수를 물리쳐 승리하게 하시고, 점점 더 강성하고 창대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윗처럼 하나님만 의지하여 승리하기 바랍니다.

자, 이렇게 보면 예루살렘은 본디 여부스 족속의 땅이었지만 다윗에게 점령되어 다윗 성이 되고, 나아가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거룩한 도성이 됩니다. 주인이 바뀌어 이방인의 도성에서 하나님의 도성이 된 것입니다. 이방인의 제단이 있던 곳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세워지고, 이방인의 더럽고 죄악된 도시가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로 바뀝니다. 따라서 이러한 예루살렘의 역사는 바로 오늘날 성도들의 중생, 즉 거듭납과 성화를 상징합니다. 우리도 전에는 죄인이었습니다. 마귀사탄에게 지배받는 죄악 된 삶을 살았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우상 제단 앞에 절하며 살았습니다. 

세상 것들이 나를 지켜줄 산성이요 요새인 줄 알고 교만하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정복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거듭남, 즉 중생이며, 거듭난 자녀답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성화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께 점령당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거듭난 사람답게 거룩한 삶을 살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루살렘 같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의 영광

둘째로, 예루살렘은 우리 성도들이 받게 되는 존귀와 영광을 상징합니다. 오늘 설교 후 부를 찬송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의 가사처럼 예루살렘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시온 성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에 가보면 거창할 것도,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도시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루살렘은 그저 터가 높은 곳에 위치한(본문 2절) 작은 도시일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온 산위에 지어진 산성이기 때문에 천혜의 요새로 지키기는 좋지만 도시를 확장하는 데는 오히려 걸림돌이 됩니다. 그런데 이 작고 높은 성이 거룩한 도성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세상 어떤 도시보다 영광스러운 성이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이곳이 이스라엘의 수도이기 때문일까요? 사실 예루살렘이 작고 복잡해서 현재 명목상으로는 아직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지만 모든 행정과 외교를 총괄하는 곳은 ‘텔아비브’라고 부르는 현대식 도시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이 수도라서가 아니고, 예루살렘이 다윗의 궁전이 있던 곳이라서도 아니고,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루살렘이 그토록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이 된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그 성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48편도 예루살렘을 찬양한 ‘시온의 노래’지만 1절부터 보면 예루살렘 자체를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보세요.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위대하시니 예루살렘이 위대하고, 하나님이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니 예루살렘도 영광과 찬양을 받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예루살렘이 받는 존귀와 영광은 오직 그 안에 있는 성전 때문이요, 그 성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때문인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누리게 될 모든 존귀 영광 권세는 오직 내 안에 계신 하나님 때문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 자격이 있어서 영광과 존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못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가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토록 놀라운 존귀 영광을 받게 된 것이란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4:7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투박하고 못난 싸구려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다이아몬드 같은 보배를 담고 있으니 귀한 보석함이 된 것입니다. 그 보배가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 모두가 ‘예루살렘 같은’ 성도 되어 내 안에 존귀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영광과 권세와 존귀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정말 귀하신 분들입니다. 아멘? 아멘!

❚예루살렘의 회복

세 번째로 예루살렘은 우리 성도들이 경험하게 될 회복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도성인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때문에 멸망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 수없이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우상숭배 죄, 지도자들이 타락해 권력남용 죄, 경제적인 불의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죄에 대해 계속 경고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죄가 계속되자 결국 남 왕국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그 찬란한 예루살렘도 다 성벽도 무너지고 불탑니다. 더욱이 가장 귀한 성전도 노략질 당하고 불타 무너지고 맙니다. 비참한 포로기가 시작된 것이지요.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다 불타고 무너진 예루살렘과 성전을 그리워하며 70년 동안이나 포로생활의 고통을 견뎌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렇게 불행 가운데 영원히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고난 중에 계신 성도들은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바벨론이 망하고 바사 제국이 들어서자 고레스 임금은 뜻밖의 칙령을 내립니다.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과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이스라엘의 포로귀환입니다. 시편 126편은 이 감격스러운 포로귀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그렇습니다. 그냥 포로가 돌아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포로들을 시온으로 돌려보내 주신 것입니다. 원수들에게 점령당해 무너지고 불타버린 예루살렘이 회복된 것입니다. 이 포로귀환의 기쁨, 회복의 감격이 그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감격적인 포로귀환이 바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회복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시편 126:5~6을 같이 볼까요?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 말씀처럼 우리 성도들에게도 포로생활과 같은 고난이 닥쳐옵니다. 실패와 좌절이 갑자기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눈물로 씨를 뿌리고 눈물의 기도를 뿌리게 되면 반드시 곡식 단을 거두는 것처럼,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기쁨으로 돌아올 줄 믿습니다. 우리도 기쁨의 단을 거두고, 인생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다시 일어서게 될 줄로 믿습니다.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잖아요

이 찬양을, 이 회복을 현재 고난과 아픔 중에 계신 성도들께 드리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처럼, 예루살렘의 회복처럼 여러분의 삶에도 반드시 다시 돌아오고, 다시 일어서 회복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새 예루살렘

마지막 네 번째로 예루살렘은 마지막 때 우리가 들어가게 될 천국을 상징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종말 때 새 예루살렘이 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1:2 말씀입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여기서 마지막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천국’(天國)의 모델입니다. 종말 때에 임할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왜 하필이면 천국을 ‘새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예루살렘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도성인 것처럼 천국도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있는 것처럼, 천국도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과 거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요한계시록은 이 ‘새 예루살렘’ 즉 천국이 어떤 나라인지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21:4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제가 이 말씀을 참 좋아하고 특히 장례 때 자주 인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 땅에서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 너무 커서 도저히 말로 위로할 수 없지만 이 말씀이 진정한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임할 새 예루살렘, 천국은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나라이기 때문에 더 이상 슬픔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죽음의 고통이나 이별의 아픔이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 아픈 것도 없습니다. 다시는 병들 일이나 넘어질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은 회복의 나라, 소망의 나라인 것입니다. 모든 아픔과 슬픔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회복되는 나라입니다. 더 이상 절망이나 고통이 없이 모든 것이 기쁨과 영광만 가득한 소망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은 이렇게 거룩한 시온 성이며 여러 가지 영적인 교훈을 가진 존귀한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가 이 ‘예루살렘 같은’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전에는 죄악과 세상에 매여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매어 사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 때문에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내며 회복되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새 예루살렘,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영생복락을 누리기까지 여러분 모두가 ‘예루살렘 같은’ 성도로 거룩한 삶을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바랍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은 존귀한 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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