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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소통해야 산다 (출 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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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소통해야 산다 (출 9:8-12)

지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지난 주간에 태풍 2개가 한반도를 지나갔습니다. 심한 바람을 동반한 강력한 태풍 ‘볼라벤’과 비를 많이 뿌린 ‘덴빈’이 지나갔습니다. 여러 곳에 피해를 입히며 지나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며 걱정했던 만큼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둘째 아이 상우가 초대형 태풍이 오니까 대비를 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대처법을 보면서, 우리 집 유리창도 강한 바람에 깨질 수 있으니 창문에 테이프를 붙이거나 신문지를 물 묻혀서 붙여야 한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신문지를 분무기를 뿌려가며 창문에 붙이기를 시작했습니다. 

얼마가 지나서 그 붙인 신문지가 자꾸 떨어지니까, 밤에 문구점에서 테이프를 사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야단을 떨면서 붙이더라고요. 밤중에 다 붙이고는 교회가 걱정이 된다는 거에요. 우리 교회는 유리창이 많은데 그것들이 깨지면 어떻게 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유리창은 두꺼운 유리들이기 때문에 안 깨질 것이라고 하는데도,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서도 창문마다 테이프를 붙여야 한다고 .... 글쎄 교회 청소년부의 한 학생이 자기 교회 담임목사 보다도 더 교회 걱정을 하더라고요. 

여러분도 태풍이 지나갈 때 교회를 걱정하셨죠? 이럴 때 ‘아멘’을 하시던지, 고개를 끄덕이시던지 해야 교회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표시를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나의 집과 가정을 아끼고 사랑하듯이 교회를 중요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출애굽기 9:1~7 말씀으로, 애굽에 내린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의 ‘돌림병’ 재앙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내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자 ‘심한 돌림병’으로 가축들, 곧 말, 나귀, 낙타, 소, 양들을 죽이셨습니다. 고대 시대에는 전염병(역병)에 걸리면 손 쓸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가축이 죽어갑니다. 조류독감이라든지, 구제역과 같은 가축 전염병이 돌면 농장이 무너지고, 장사집이 안되어 큰 손실을 입습니다. 

결국 애굽에 내린 재앙으로 수많은 가축이 죽은 것은 농경사회인 애굽을 힘들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재앙으로 각종 동물을 숭배하는 우상을 심판하셨고, 또 그 우상을 섬기는 바로와 애굽을 심판하셨습니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도록 하셔서 이스라엘은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 심판과 보호에 있어서 ‘여호와의 손’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생의 성패는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 “형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우리 인생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애굽에 내린 여섯 번째 재앙인 ‘악성 종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8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화덕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모세가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9절) “그 재가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악성 종기가 생기리라”, 

‘종기’는 피부 염증으로 통증과 고름이 생기는 병입니다. 큰 종기(carbuncle)의 경우에는 발열이나 오한, 몸살과 같은 전신 증상이 동반됩니다. 그렇다면 ‘악성 종기’는 사람과 가축을 죽일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5장에 보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서 에벤에셀에서 아스돗으로 옮겨와서 우상인 다곤 신전에 다곤 신상 옆에 두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곤 신상이 넘어지고, 그 신상의 머리와 두 손목이 잘려지고 몸뚱이만 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손이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의 사람들을 쳐서 망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궤를 가드라는 곳으로 옮겼는데, 그곳에서도 성읍의 모든 사람을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셨습니다.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악성 종기의 재앙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삼상5:11) “...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 

욥기에 보면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데, 욥의 전신에 악성 종기가 나게 했습니다. 이 종기가 얼마나 아프고 가려운지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은 해하지 말라고 하여 욥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욥이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자신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인생무상을 말할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악성 종기는 최악의 고통 중에서 죽어가는 질병인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뾰루지가 엉덩이나, 눈썹, 코, 턱, 부근에 생기기도 하고, 또 음식을 잘못 먹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생기기도 하는데 심히 가렵고 참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 수년 전에 중곡교회에서 치유기도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다 눈을 감으라고 하고, 몸 아픈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그때까지 공식적으로 몸 아픈 사람을 위해서 안수기도 하겠다고 안수기도 받을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한 적이 없었고, 그날이 제가 목사가 되어서 처음 한 날이었습니다. 

당시에 한 주간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구했던 때였습니다. 그때 네 명이 나왔는데, 그중 한 권사님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수 개월 동안 몸이 가려워서 괴로웠다는 것입니다. 피부과 병원에 가 보았고, 큰 대형병원에도 가서 검사도 해 보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고, 고쳐지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몸이 가려워서 너무나 괴롭고, 몸에 발진이 일어나 붉은 반점들이 생겨서 피부를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보면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고, 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도 있지만, 목사로서 저는 본격적 치유기도를 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간절하게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고, 질병이 떠나갈 것을 선포하면서 기도했음. 어떻게 되었을까요? 안 나았으면 말을 안 했겠죠? 그 권사님 말이 하루에 반씩 가려움증이 없어지더래요. 그 이야기를 듣고 가장 놀란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했습니다. 

당시 애굽 사람들은 이러한 종기의 위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 그리고 특히 메마르고 먼지가 많은 애굽에서 악성 종기는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11절) “요술사들도 악성 종기로 말미암아 모세 앞에 서지 못하니 악성 종기가 요술사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생겼음이라”, 

애굽의 모든 요술사들까지도 악성 종기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애굽 땅의 요술사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직무는 요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병을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치료자였습니다. 그런데 치료자에게 뭐가 생겼어요? 악성 종기가 생겼습니다. 요술사들이 죽어 넘어지는 광경을 보았을 때, 애굽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들이 믿고 의지했던 것들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력한 것인지를 실감했을 것입니다. 

또한 애굽인들에게는 그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그들이 병들었을 때 치료해 준다고 믿었던 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치유의 신은 ‘세크매트(Sekhmet)\'라는 신이었습니다. 이 신은 질병을 예방하는 신이었습니다. 또 일단 병이 들면 치료하는 ’수누(Sunu)\'라는 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신으로 ‘튀폰’이라는 신도 있었습니다. 

본문 구절에 ‘화덕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바로의 목전에서 날렸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재’는 이 신들을 달래기 위해서 바친 희생 제물을 태운 재라고 합니다. 모세는 바로 이 재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재앙을 피하려는 그들에게 또 하나의 다른 재앙을 퍼부었다는 것입니다. 이 악성 종기가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에게 생겼습니다. 요술사들에게까지 생겼습니다. 

1. 왜 하나님은 짐승과 사람에게 똑같은 악성 종기가 생기게 하셨을까요? 

그동안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고 하시면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하나님께 대해 무반응이었고, 냉담했었습니다. 

우리 말 속담에, ‘소 닭 보듯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닭이 아무리 왔다 갔다 해도 소는 눈만 멀뚱멀뚱하면서 되새김질만 하지 닭한테 관심이 없습니다. 

이같이 사람들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 완전 실망하면 사람 취급을 안 합니다. 무시하며 아무 말 도 안 합니다. 이같이 바로도 마치 소가 닭 보듯이 하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관심도 없습니다. 따라서 악성 종기는 이러한 바로를 짐승 취급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짐승을 종기로 죽이듯이, 애굽 사람도 종기로 죽이고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애굽을 짐승과 별 차이 없이 똑같이 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재앙은 ‘경고 없이’ 곧바로 이루어졌습니다. 

짐승은 때려야 말을 잘 듣듯이 이제 애굽에 대해서도 더 심한 재앙과 심판으로 다스리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해야 삽니다”, - 여러분, 무엇이 소통입니까? 막히지 않고 서로 생각하는 것, 서로 주고 받는 것, 이것이 소통입니다. 왜 애굽은 짐승과 같이 재앙을 겪었습니까?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아서입니다. 


2.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운명을 바꿉니다.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귀중히 여기면, 하나님도 우리를 귀중히 여기십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이 세리인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세리였던 마태는 당시의 압제자 로마의 심부름꾼으로 세리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그는 매국노였습니다. 결국 그는 돈 벌어 살기 위해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을 때에 그는 귀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지금 내 형편이 중요치 않습니다. 강대국 애굽이라도 하나님을 거부하면 짐승 취급받는 것이고, 매국노인 마태일지라도 주님을 영접하면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소통은 산소줄을 연결하여 바닷속에 들어가는 잠수부와 같습니다. 잠수부가 바닷속에 있을 때 바다위의 배로부터 산소줄이 연결되어 있으면 생명에 지장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소통하면 하늘의 생명이 공급되어 살아납니다. 그 생명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귀한 일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소통을 신앙생활에서 최고로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소통해야 삽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소통과 같습니다. 소통은 주고 받는 대화입니다. 이같이 기도도 일방적 요구식의 기도는 오래 해도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묻고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대화하는 기도는 감동이 있고 충만해집니다. “하나님과 소통해야 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귀중히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귀중히 여기지 않으십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점점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하나님과 불통이 됩니다. 

여러분, 불통은 깡통과 같습니다. 길거리의 찌그러진 깡통은 누구나 발로 차거나 짓밟아서 점점 더 찌그러집니다. 이같이 하나님과 불통하면 은혜와 보호를 받을 수 없어서 찌그러진 깡통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애굽 왕 바로처럼 인격관계가 아닌 짐승 취급을 받습니다. 

(계16:2) “...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마지막 때에 하나님과 불통하고 우상과 소통하는 사람들에게는 독한 종기의 재앙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소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하지 못하도록 자꾸만 훼방을 합니다. 

북한의 대남전략 가운데, 남한의 교회의 교세를 1/10로 줄이는 전략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10대 대형교회 무너뜨리기’를 꿰하고, ‘안티기독교인 만들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가 없으면 적화통일이 쉽게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열렬히 비판 합니다. 

지금 현재 국내 안티기독교인이 2~3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다른 종교는 이런 안티(반대) 세력이 별로 없습니다. 기독교만 안티 세력이 있어서 인터넷에서 활동하며 악성 댓글을 달아서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합니다. 여러분, 이럴 때일수록 지혜롭게 분별하여 더욱 더 하나님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이러한 세상 전략에 속아서 교회를 등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소리에 민감하여 교회와 신앙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되지 말고 하나님만 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계략에 속아서 하나님과 불통하게 되면 스스로 망하는 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과 소통해야 삽니다”, 

지난 주중에 ‘말레이시아 선교회’에서 1박 2일로 수련회가 서해안 영종도에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풍이 오는 바람에 회장이신 종교교회 최이우 목사님이 제주도에 발이 묶여 취소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자 몇몇 목사님이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니 적은 인원이라도, 장소를 옮겨서라도 모이자고 해서 제천으로 오라고 해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인천은 태풍의 중심지이니까... 모여서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고, 태풍으로 비바람이 심할 때에 숙소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그 중에 한 친구 목사님은 내가 군대에서 군종병으로 있을 때 내가 군목으로 모셨던 친구 목사님입니다. 이 목사님은 내가 아는 목사님들 중에 가장 성실한 분입니다. 우리 친구 목사들은 다 인정합니다. 그 목사님 얼굴만 봐도 쓰여 있습니다. ‘성실’이라고... 그런데 이 목사님과 말레이시아 선교를 갈 때에도 경험을 했지만, 이 목사님은 밤에 잠을 잘 못 잡니다. 쪽

잠을 자고, 하루에 3~4시간 이상을 못 잡니다. 그것도 수시로 깨서 온전히 못 잡니다. 밤에도 늘 핸드폰을 옆에 두고 자고, 조그만 소리에도 민감해서 바로 깨고... 그래서 밤에도 불을 켜고 책을 보기도 합니다. 나도 6시간 이상을 안 자지만, 이 분은 너무 심합니다. 일찍부터 고혈압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장로님들이나, 성도들이 조금만 불편한 기색을 보여도 그것이 늘 신경이 쓰이고, 책 잡히지 않으려고 성실하게 목회를 합니다. 

설교 준비나 강의 준비를 해도 저보다 훨씬 시간을 많이 투자합니다. 제가 그 친구를 볼 때, 안쓰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건강 좀 챙기라고, 잠 좀 푹 자라고 했습니다. 청풍교회에 가서 효소도 가져가게 하였습니다. 함께 이야기하는 중에 기도의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우리 목회자부터 하나님과 소통해야 한다고.... 

찬송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 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 하소서” 여러분, 하나님과 끊임없이 소통하시기 바랄비다. 이것만이 개인과 가정, 교회와 국가가 살 길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시는 삶을 살기를 다짐하는 여러분 가운데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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