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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원하시는 것 (요삼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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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원하시는 것 (요삼 1:1-8)

 
만약 여러분에게 여러분 주위에 칭찬 받을 만한 사람을 한 사람 추천해 보라 하면 여러분은 누구를 추천할 수 있겠습니가? 여러분 주위에 그렇게 훌륭한 신앙인이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 복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아주 믿음 좋은 한 신실한 동역자를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가이오입니다. 성경에 가이오가 한 세명 등장합니다.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가이오라는 말의 뜻은 ‘기뻐한다.’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 관한 소식을 듣고 그 지역교회 지도자인 가이오에게 친히 친필로 편지를 쓰면서 그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 요한이 가이오를 추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가이오는 사도 요한에게 전도 받은 사람입니다. 전도 받고 사도 요한에 의해서 양육된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 4절에 보니까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내 자녀들이 감히 사도 요한은 물론 연세가 좀 많겠지만 가이오에게 내 자녀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영적으로 그를 낳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육적인 자녀도 있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전도해서 양육하면 영적인 자녀가 되는 것이죠. 여러분 여기 사도 요한은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요한 1서 2서 3서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그리고 마지막 생애는 밧모섬에 유배되어서 기도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입니다. 그 권위 있는 위대한 사도가 오늘 가이오를 추천하면서 그를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이오는 매우 신실한 일꾼입니다. 그는 특별히 사랑이 많고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에는 순회 전도자 순회 선교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명으로 부르심을 받고 누가 월급 주는 사람도 없지만 스스로 이곳저곳을 왕래하고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여관이나 호텔이 없고 돈도 없으니까 어느 지역에 가면 그 교회나 그 교회 성도의 집에 가서 머물게 됩니다. 거기서 식사도 대접받고 잠도 자기도 하고 또 떠날 때 노자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가이오가 그런 사람들을 잘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그 소문이 바로 사도 요한에게까지 들려오게 됐습니다. 그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대접의 은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또한 균형 잡힌 신앙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주 충실하게 순종하는가 하면 이웃사람들에게 사랑을 행하는. 그래서 말씀과 행함이 일치하는 사람이 바로 이 가이오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어느 지역 교회에 지도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와 대조되는 한 사람이 또 성경에 나오는데 우리가 읽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 한 번 9, 10절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만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아마 이 지역교회에는 가이오라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동시에 이 디오드레베라는 아주 못된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의 특징은 으뜸 되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최고되기 좋아하고 일등 되기 좋아하고 내가 제일 높고 힘이 있다.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고는 사도 요한을 영접하지 않았다. 많은 주의 종들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악한 말로 사도 요한을 비방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영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영접한 사람들을 오히려 교회서 추방한 아주 악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교회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 참 의심스럽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지도자가 되고나서 아마 변질 된 것 같아요. 사람이 달라졌어요. 그렇게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이 디오드레베에 비하면 가이오는 아주 흠모할만한 훌륭한 인격적인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더더욱 이 디오드레베는 스스로 자기 이름을 내기를 좋아했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가이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 6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이 무슨 이야기일까요? 순회 전도자들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이 가이오가 그들을 사랑으로 영접하고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접받은 선교사들이 다른 곳에 가서 이 간증을 했어요. 

가이오라는 분을 만나서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 소문이 사도 요한에게까지 들려 왔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뻐하면서 가이오의 신앙이 이렇게 훌륭하구나 하면서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다. 내가 내 자랑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그 사랑을 입은 사람에 의해서 그 소문이 사도 요한에게까지 들려지게 되었다. 아주 바람직한 것이죠. 

여러분 제일 좋은 것은 정말 우리 모든 성도들의 훌륭하고 인격적인 삶이 이 지역 주민 이웃 사람들을 통해서 소문이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세 들었는데 그 주인이 너무 훌륭해서 제가 이 분이 누구인가 알아보니까 영신교회 집사님이네요. 얼마나 좋을까요? 혹 우리 집에 세 든 분이 있어서 참 삶이 아름답고 인사성이 밝고 명랑해서 자세히 보니까 영신 교회 교인이라고 하네요. 여러분 이렇게 들어올 때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겠습니까? 

바로 가이오는 그런 사람이에요. 스스로 소문내지 않아도 그로부터 사랑과 영접을 받은 사람이 다니면서 이것을 간증해서 사도 요한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사도 요한은 이제 가이오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 사실을 칭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이 가이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요. 1절 말씀 한 번 읽어볼까요?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이 보통 편지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이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한다. 이것은 가이오에게만 보낸 편지가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가이오라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우리에게 소개시켜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가이오를 진심으로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런 복을 받기 원하고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바람을 담아서 그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 축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원하노라.” 하나의 축복의 소원을 담고 있어요. 자 여러분! 오늘 사도 요한이 가이오를 향한 놀라운 축복의 소원을 담고 있다면 바꿔 말하면 이 편지는 주님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바램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소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의 삶이 어떠하기를 원하실까? 이 말씀을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첫 번째는 ‘주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2절 말씀 잘 알지만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됨같이’ 이 잘된다. 이 뜻은 헬라어로 유오두사이(ευοδουσαι) 이 말은 문자적으로 말하면 ‘좋은 여행을 하다.’라는 뜻이지만 이것을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번영하다. 성공하다. 잘되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사도 요한은 가오이의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는거예요. 주님은 바로 우리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해요. 우리 영혼이 복 받기를 원해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부모들이 자녀들이 잘 되기를 원해요. 망하기를 원해요? 잘 되기를 원하죠! 하나님의 마음도 똑같아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 당신의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세요. 때론 우리 육신적인 부모들도 자기 자녀들이 잘 되는데 자기보다 더 잘 되기를 원해요. ‘너는 나보다 더 잘돼야 돼. 너는 나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돼. 너는 나보다 더 믿음의 사람이 돼야 해.’ 이것을 원해요. ‘너는 나보다 잘 되면 안 돼’ 이런 부모는 없어요. 자녀가 더 잘 되기를 원해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세요. 영혼이 잘 되길. 이 영혼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푸시케(ψυχη)라고 하는데 이것은 정말 최고의 가치를 지닌 영적 생명을 영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지성소가 바로 영혼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잘 된 사람은 어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기를 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영혼이 풍성한 사람들은 예배가 기쁘고 즐거운거예요. 

예배가 기대가 되는 거예요. 말씀을 들을 때 감격이 있고 감동이 있는거예요. ‘에휴 빨리 안 끝나나? 빨리 끝내지 뭘 이렇게 길게 해. 더운데.’ 이런 사람은 미안하지만 영혼이 풍요롭지 못한 사람이에요. 육신적인 밥을 먹고 싶어서 빨리 영적 식사가 끝났으면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정말 우리 영혼이 기름지고 풍성하고 생기로 충만한 그런 영혼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풍성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름진 영혼!! 만약 우리의 영혼이 여름에 비가 안 와서 땅바닥이 갈라지고 식물이 시들어 가는 것처럼 그런 영혼이라면 얼마나 피폐하겠어요. 비참하잖아요. 그건 직분과 상관없이 비참한거예요. 그러나 내가 직분이 없어도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영혼이 기름지고 풍성한거에요. 주님과의 관계가 늘 기쁘고 즐거운거예요. 그래서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니까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도적이라는 것은 누구에요. 사탄이에요. 사탄이 온 목적은 우리 영혼을 빼앗고 우리 영혼을 도적질 하고 우리 영혼을 멸망시키려는거에요. 

그러나 내가 온 것은 내가 누구에요.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그리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옆에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의 생명은 풍성하십니까?’ 살아있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어요. 여러분은 다 살아계시죠. 그러나 우리의 영적 생명이 정말 풍성하고 기름지냐? 아니면 피폐하고 메마르고 갈라졌느냐? 그것을 의미하는 거에요. 그건 주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그리고 내 자신이 알아요. 영혼이 잘되는 것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 영혼이 잘 되면 모든 것에 영향을 줍니다.

여러분 지난주에 태풍 두 개를 맞이했습니다. 첫 번째 태풍이 뭐였죠? 볼라벤. 이름도 참 신기하죠. 두 번째 태풍이 또 뭐죠? 덴빈. 덴뿌라로 생각하시면 돼요. 일본에서 지은 이름이 덴빈입니다. 그런데 이 볼라벤은 바람을 몰고 와서 모든 나무 가지의 낙엽을 다 떨궈버렸어요. 그런데 또 하루 만에 이 덴빈이 폭우를 몰고 와서 비가 내렸어요. 그러니까 침수가 될 수밖에 없죠. 광주나 목포에서는 도로가 침수가 돼서 차가 둥둥 떠 다녔어요. 왜 그랬느냐? 이유는 간단합니다. 

낙엽이 떨어져서 하수구 구멍을 다 막아 버렸습니다. 거기에 폭우가 오니까 그 물이 빠질 때가 없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침수가 돼서 차가 둥둥 떠다닐 수밖에 없지요. 여러분 우리 영혼의 통로가 막혀 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영혼의 관계가 파괴되거나 파이프가 막혀 버리면 우리의 육신적인 삶이나 우리의 모든 건강의 문제나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영혼이 피폐해지면 묻지마 범죄!! 영혼이 파괴된 분들입니다. 영혼이 다 메말라버렸어요. 증오로 국가가 나를 버렸어 회사가 나를 버렸어 가족이 나를 버렸어!! 증오와 원망이 가득 찬거에요. 

그러니까 감사가 없어요. 영혼이 파괴된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칼을 들고 아무나 닥치는대로 찌르는 거예요.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데 지나가는 사람을 찌르는 거예요. 이 영혼이 파괴된 거예요. 영혼이 파괴되면 환경이나 건강까지도 심각한 충격을 입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영혼이 너무너무 중요하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지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강건이라는 것은 육체적인 건강을 이야기 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영혼이 잘 되면 그에게는 선한 영향력이 있어서 범사!! 모든 것이 다 잘 된다는 것입니다. 또 건강의 축복도 그에게 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혼이 풍성하면 다 잘 되고 건강하고 병원에도 안가고!!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영혼도 풍성하고 범사도 잘 되고 건강의 복도 누리기를 원하시고 또 그렇게 되기를 우리가 축복하시는 것이지!! 영혼은 정말 풍성한데 병을 줄 수도 있습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경우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얼마나 궁핍하게 살았습니까? 매 맞고 궁핍하고 쫓겨나고 그래도 그것이 복입니다. 영혼이 풍성합니다. 

여러분 욥 같은 사람은 동방의 의인이지만 영혼은 풍성하지만 그가 마귀의 시험을 당해서 그의 몸에 질병을 당해서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합니까? 이렇게 예외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육신은 풍년인데 영혼이 가뭄인 사람. 육신은 풍성입니다. 돈 잘 쓰고 건강하고 놀러 잘 다니고 신나!! 그러나 영혼은 메말라 있습니다. 바짝 바짝 말라 있습니다. 캄캄합니다. 그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외형적인 삶이 조금 부족해도 우리 영혼이 풍성할 때 그 사람이 진정한 행복한 사람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원하건대 여러분이 영혼도 풍성하고 범사도 잘 되고 건강의 복도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풍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죠. 영혼의 양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은 영혼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영혼에 생기가 흐르고 기름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호흡이 있어요. 영혼의 호흡은 무엇입니까? 호흡 안하면 질식하죠? 기도입니다. 

기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할 때마다 우리 영혼이 살아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생기를 받는 거예요. 그리고 영혼의 운동이 있어야 해요. 이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할 뿐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영적인 비만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영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신다. 영혼과 범사와 건강의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자 3, 4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 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오늘 사도 요한이 기쁨이 무엇입니까? 오늘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 큰 기쁨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우리 백성된 자녀들이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너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 된 여러분들이 어떨 때 기쁘십니까? 자녀가 바르게 살 때, 자녀가 말씀 안에서 공의롭게 살 때 부모의 마음이 기쁘고 행복해요. 그러나 만약에 자녀가 돈을 많이 벌어 집은 열채인데 매일 사기 치며 살아간데 남의 돈 뺏고 거짓말 하며 살아간데 그 소식 들으면 우리가 행복합니까? 말씀 안에 진리 안에 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진리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죠. 공의로운 말씀 안에 살기를 원하고 그 말씀을 지키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죠. 또 더 나아가서 이 진리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곧 예수님을 가리켜요. 그리고 이 진리는 또한 복음의 말씀을 가리켜요. 네가 복음 안에서 네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네가 살기를 내가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산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내가 너무 기쁘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 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삶이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이 되셔서 우리 주님에게 기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절에 ‘내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성경에서 소개되는 가이오가 그런 진리 안에서 거하는 사람이고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죠. 디오드레베. 그는 하나님 말씀, 진리를 벗어난 사람입니다. 복음에서 빗나갔어요.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는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말씀하는데 그는 으뜸이 되고 교만하기를 좋아했어요. 성경은 우리에게 이웃의 연약한 형제들을 영접하라고 했는데 전도자들을 영접하라고 했는데 그는 거절하고 내쫓았어요.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형제를 향해 축복하라고 했는데 그는 악한 말로 사도 요한을 비방했어요. 그는 말씀에서 벗어난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이었어요. 

그런가 하면 우리가 영상에서 본 신천지 이단들!! 이것은 아예 진리에서 탈선한 사람들입니다. 아니 신천지는 엄격히 말하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만희 교주, 이만희 교지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다 거짓된 얘기입니다. 이만희가 바로 예수고 이만희가 재림 예수라고 합니다. 백마 타고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저도 전에 유원지 가서 백마 타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럼 저도 재림 예수입니까? 14만 4천명!! 이것 때문에 신천지 사람들이 얼마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애쓰는지 몰라요. 제가 아는 분 물어보니까 2년만 지나면 14만 4천명을 채운데요. 

그래서 남편 밥도 안 해주고 새벽부터 뛰어 나가서 보따리 들고 다니며 사람을 끌어 올려고 해요. 10년 안에 이만희는 죽을 거예요. 지금 아마 80 몇 세라고 해요. 문선명이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며 천부교라고 해요.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죽으려고 해요. 문선명씨가 모든 신장 기능이 다 끝났데요. 그래서 죽을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무 말도 못하고 다 끝났어요. 모든 기능이 모든 병원에서 손들었어요. 그는 죽을 거예요. 이만희도 반드시 죽을 거예요. 14만 4천명 다 채우면 영생 불사하고 평생을 살 수 있데요. 매일 늙고 있던데 어떻게 안 늙습니까? 그는 죽을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진리에서 탈선한 사람들이에요. 벗어난 이단들이에요. 주님은 우리가 정결한 신부로 주님 오시는 날까지 기다리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요. 사도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떠났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데마라는 사람 주님을 떠나서 진리를 떠났습니다. 초대교회들은 거짓 교사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거짓 이리가 되어서 믿는 자들을 미혹해서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멸의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도 너무너무 많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섬기고 여러분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은 그래도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진리 안에서 살려고 애를 씁니다. 진리만을 전합니다. 인기를 끌려고 쇼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거짓 교사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을 미혹하고 무슨 병을 고친다! 복을 받게 한다! 뭐 어쩐다!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거기에 끌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정결한 신부로 진리 안에 머물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우리가 복음을 위한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5,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희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5절에 보니까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이 형제라는 것은 믿음의 형제들을 가리킵니다. 

복음 안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 그리고 이 나그네 된 자들은 구약에서 말하는 나그네, 고아나 과부 이런 의미 보다는 오늘도 복음을 증거하는 믿음의 형제들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순회 선교사들, 순회 전도자들 그들을 사랑으로 가이오가 영접하고 대접했어요. 이것은 매우 신실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각 교회에 다니면서 그의 선행을 증언했어요. 그리고 그 일이 바로 간접적으로 선교에 주의 일에 동역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7절에 보니까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그 순회 전도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나가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너희는 두벌 옷도 가지지 말고 배낭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팡이 하나 들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 얘기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에서 이곳저곳 교회들이나 성도들로부터 공궤를 받고 숙식을 제공 받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이교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교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아이고 내가 노자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만원만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된다는 것이죠. 제가 어느 가정에서 심방 가서 아니면 전도하고 나서 ‘내가 배고픈데 저녁 좀 사주면 안 될까요?’ 이것은 안 되는 것이죠. 이교도들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이 그 순회 전도자들을 잘 영접하고 섬기는 것은 이것은 바로 전도의 사역에 선교의 사역에 동참하고 동역하게 되는 것이죠. 자 오늘 성경 7, 8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말하는 ‘진리를 위하여’ 는 복음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교사들을 돕고 전도자들을 돕는 일은 나도 그 선교에 동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선교지에 가지 못하지만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로 후원하고 또 물질로 후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이오는 바로 순회 선교사들을 위해서 물질과 사랑으로 그를 후원한 복음의 동역자라고 오늘 사도요한은 그를 칭송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그래서 주님께서는 70인 제자들을 보낼 때 두벌 옷 가지지 말라 노자돈 가지지 말라 가면 그들이 책임질 것이다. 

그런데 이교도들에게는 부담을 주지 말고 같은 믿음의 형제들에게 가서 공궤를 받으라고 주님 말씀하셨어요. 마태복음 10장 40절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이 너희라는 것은 누구일까요? 순회 전도자들이에요. 예수님의 보내는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그들을 보낸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가이오는 주님의 일에 함께 동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내신 순회 선교사들을 내가 영접하고 사랑으로 대접하니까 그것은 곧 그들을 보내신 주님을 하나님을 대접하는 일이에요. 이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오늘 가이오는 주님의 선교에 동역자가 되었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의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한 구절만 더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작은 자라는 것은 순회 전도자들입니다. 이름 있는 위대한 사도가 아니라 정말 이름 없는 볼품없는 선교사일지라도 내가 제자 이름으로 그를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하늘에서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들이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을 물질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을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거절하지 말구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 혹 선교사님들이 방문할 때 여러분이 정말 물질에 여유가 없지만 만원 이만원이라도 선교사님 이것을 필요한 곳에 쓰세요. 하면 선교사님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선교사님들 방문했을 때 설렁탕, 갈비탕, 짜장면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것이 선교사님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선교에 동역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선교지에 갈 수 없지만 선교사님의 하는 일에 기도하고 물질로 도울 때 나도 거기에 동역자가 되는 것이고 함께 복음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 한 달에 한 번씩 드리는 이 선교 헌금에도 열심히 참여 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의 액수가 정성을 다하면 되지 많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면 그것이 내가 바로 선교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더 많은 선교사를 지원하고 파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총회에 또 개척 선교헌금에 만원이라도 참여하면 그 만원으로 내가 벽돌 몇 장을 산 것이고 우리 총회가 한 두 교회를 세울 때 여러분도 그 선교에 동참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가 이 복음에 아름다운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또는 이 세상에 많은 미혹된 진리 가운데 미혹된 이단의 교리 가운데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진리 가운데 거하고 정결한 신부로 남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로 물질로 사랑과 정성으로 선교에 동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뜻을 이루어드리는 우리 모든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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