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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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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 (민 21:4-9)

 
몇 년간 이민 목회를 하시다가 한국 교회의 부름을 받고 한국에 와서 목회하고 계신 어떤 목사님이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간증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한 마디로 이민 목회가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이민을 떠날 때에도 이런 저런 사정이 많은 분들이 이민을 떠납니다. 또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고 직장을 찾고 언어를 익히고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도 보통 문제가 아니죠. 그래서 그분들이 이런 저런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상처를 어디서 치료받을 때가 없어요.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 오면 그 상처를 쏟아 놓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또 목회자에게 상처를 내 뿜는다고 합니다. 이민 목회가 힘들어서 몇 번 사임하려고 몇 번 그만 두려고 하다가 그는 드디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민 목회를 잘 마치고 돌아오셨다는 간증을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교인들 중에 보면 정말 놀라운 은사를 가지신 분들이 있답니다. 그래 그 은사가 어떤 은사냐 했더니 목사를 괴롭히는 은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교묘한 방법으로 목사를 힘들게 하고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에 굉장히 좌절했는데 한번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저들이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런데 너가 그렇다고 그것을 가지고 낙심을 가지면 어떡하냐? 그래서 자기가 감동을 받고 그 때부터 상처받은 교인들 외로운 교인들을 껴안아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쓰다듬어 주고 축복해주고 위로해주고 칭찬해주고 그러면서 담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결국은 아름다운 공동체로 그 이민 교회가 변화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민 목회를 잘 마치고 돌아오게 되었다는 그런 간증을 하시더라구요.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받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린 수많은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형제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또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지요. 결혼 후에는 처갓집 식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또 시집 식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또 교회나오면 교인에게 상처를 받고 때로는 목회자에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 상처들이 해결되지 않고 치유받지 않고 그대로 상처가 놓여있는 상태에서는 갖가지 성격 장애를 가지고 올 수도 있습니다. 

대인 관계를 기피하는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 신경성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정신 질환에 걸리기도 합니다. 인간 관계가 파괴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까지도 파괴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래서 상처는 치유받아야 합니다. 치유받지 못한 상처는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과 이웃,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까지 불행하게 만듭니다. 어떤 건강한 공동체에 상처 받은 사람이 들어와서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아니하면 그는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내뿜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생긴 신조어가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묻지마 범죄입니다. 한 5일간에 4건의 범죄 행위가 발생해서 TV나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있습니다. 22일에는 여의도에서 김모씨라고 하는 분이 자기 다니던 회사의 직장 동료들을 기다리다가 칼로 무차별 찌르는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서 칼을 휘두르는 엄청난 일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또 지난 18일에는 의정부역에서 한 사람이 또 난동을 부렸습니다. 그가 나가면서 침을 뱉으니까 승객이 왜 침을 뱉느냐 그 말에 분노가 폭발해서 그는 칼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수많은 행객들이 다치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21일에는 울산에 한 동네 슈퍼 여주인을 윤모씨라는 분이 별 이유도 없이 흉기를 휘둘러 찌른 사건도 있었습니다. 자기와 무슨 감정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기의 분노를 폭발하는 이런 범죄들입니다. 

또 성폭행 범죄가 지난 주간에 두 건 정도 우리에게 소개가 됐습니다. 대개 이런 분들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여의도에서 칼부림을 저지른 김씨는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게 1년 동안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고시원에서 거의 두문불출하고 1년 동안 생활해왔습니다. 그 사람이 체포되었을 때 주머니에는 현금 200원, 4,000원이 충전된 교통카드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이분들은 가난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의정부에서 난동을 부린 유씨라는 분도 휴대폰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어요. 10여년 동안 번듯한 직장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고 여인숙을 전전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울산에서 슈퍼 주인을 칼로 찌른 윤모씨라는 분도 누구와도 친한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저 한 달에 한 번 어머니가 와서 먹을 것을 한 번 가져다 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대화한 일도 없는 그런 외톨이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상처를 가지고 삽니다. 실패자의 상처 외로움의 상처 거절 받은 상처 버림 받은 상처 배신의 상처 이런 상처를 꽁공 싸매서 가지고 있다가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그것이 폭발해서 누군지 따지지 않고 칼을 휘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학교 폭력이 많은 관심, 또 기도의 제목이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왕따 당하고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또 중학생들끼리 서로 성폭행 당하고 이런 안타까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얼마 후에는 가해자로 둔갑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힘이 없어 맞았지만 힘센 친구들과 어울려서 자기보다 약한 친구들에 또 폭력을 가하게 되는 가해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처의 특징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 이 상처를 반드시 되물림 한다는 것입니다. 분풀이 하고 복수하는 것이 바로 그렇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타인에게 그 고통을 전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심리학자가 그런 연구를 해봤다고 합니다. 개코 원숭이라는 종류가 있는데 이 개코 원숭이를 유심히 관찰해봤습니다. 어느 날 힘 센 원숭이가 와서 약한 원숭이를 괴롭혔어요. 두드려 패고 흘고 아주 괴롭혔습니다. 힘이 없으니까 저항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았어요. 그래서 가만히 있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약한 원숭이를 찾아가서 분풀이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고통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전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나오면 쓴뿌리가 되고 누군가를 공격하는 사람이 되고 비난하는 사람이 되기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멀리 찾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며느리 때 시어머니로부터 많은 구박을 받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내가 시어미가 되면 절대로 며느리 구박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안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처와 고통을 가진 분들이 시어머니가 되면 또 다시 며느리들을 구박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상처를 또 되돌려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려운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가정환경 속에서 너무 지나치게 어렵게 가난하게 생활 했던 분 또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가 없이 생활했던 분 또 친구들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던 분들이 대개 이런 상처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상처를 가지고 자기 아내에게 남편에게 가족에게 또 이웃에게 또 교우들에게 이 상처를 표현 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면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나가야 할까요?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린 그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속에도 상처 받은 백성들이 이야기가 소개 되고 있지요. 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의 마음이 상했어요. 길로 인해서 상처를 입었어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왔어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아마 때로 그들은 많이 지쳐 있을거에요. 그런데 이제 가나안 땅을 향해서 가는 길에 에돔이라는 나라를 거쳐야 하는데 그 에돔을 거쳐가는 왕의 대로라고 해서 아주 가깝게 가는 넓은 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서 우리가 이 땅을 좀 지나가겠다. 우리는 물도 먹지 않고 곡식도 열매도 따지 않고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만약 피해를 주면 변상하겠다 그렇게 약속을 했건만 에돔왕은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할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은 일주이면 갈 길을 몇 달을 거쳐 돌아가야 하는 길 없는 곳으로 돌아가려니까 이것이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백성들의 마음이 상처를 입었다. 상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했어요. 

여러분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뭔가 다른 분노를 폭발할 이유를 찾게 됩니다. 그들이 경험했던 문제는 무엇입니까? 환경, 음식, 물에 대한 문제 였어요. 결국 이 문제에 분노를 폭발하게 되지요. 5절말씀입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 백성이 여호와와 모세를 원망했다. 

결국 그 상한 마음이 환경에 대한 불평으로 이어졌습니다.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모세를 향해서 원망했어요. 그리고 대두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음식에 대한 문제, 물에 대한 문제, 그리고 우리를 여기서 죽이려고 여기까지 인도해 냈느냐? 하고 불평을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신 그 만나를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하찮은 음식, 예전 성경은 박한 음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별 가치 없는 이런 의미죠. 하나님이 주신 만나 40년 동안 먹고 생존한 그 만나를 향해서 가치 없는 음식이라고 경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아니 이것을 선물이라고 줘? 하면 이것은 선물을 욕하는 것입니까? 선물을 준 사람을 모독한 것입니까? 물어보나 마나죠. 선물 준 사람을 모독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시는 그 만나에 대해서 불평을 한다면 그 만나를 주시는 그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것만은 견딜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서운 징계를 내리셨어요. 불뱀을 통해서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원망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불뱀에 의해 상처를 받고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불뱀이라는 것은 사막에 생존하는 아주 무서운 뱀의 일종입니다. 아주 맹독이 있는 것입니다. 시나이 반도 아라비아 광야에 서식하는 뱀의 종류인데 이 뱀은 붉은 반점이 있어요. 그래서 불뱀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이 뱀에 한 번 쏘이면 그것이 마치 뜨거운 불에 덴 것처럼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지속되다가 결국은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뱀에 물려서 죽어가기 시작하고 고통을 부르짖기 시작했어요. 너무 안타깝죠. 수많은 사람이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뉘우칩니다. 

우리가 여호와와 모세에게 범죄했다. 그리고 모세에게 부탁하죠.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이 불뱀 들을 떠나게 해달라고 와서 간청하게 됩니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가지고 나가서 기도하게 되죠.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가지 방법을 주셨어요. 네가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그 불뱀을 달아놔라. 그리고 불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그 상처에서 치유를 받을 것이다. 살아날 것이다. 죽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모세는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죠. 

8, 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참 놀라운 일이었어요. 불뱀을 만들라고 했으니까 어떻게 만들어요. 구리로 불뱀과 똑같이 만들었어요. 그것이 바로 놋뱀이죠. 놋뱀을 장대 위에 매달아놨어요.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산다. 믿음으로 순종하고 바라보는 자들은 뱀에 물린 상처를 치유 받고 살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까짓것 놋뱀 쳐다본다고 어떻게 살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오기가 나서 일부러 안 쳐다봐요. 그들은 다 죽었어요.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놋뱀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렇게 생겼습니다. (첨부 사진 1)
지난번에 성지 순례 갔을 때 요르단 지역에 느보산이라고 있습니다. 예전에 모압 땅이었는데 모세가 저 느보산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지요.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숨을 거두는데 거기에 상징적으로 저렇게 놋뱀을 만들어 놨어요. 장대를 만들어 놓고 끝에다가 놋뱀을 만들어서 구리로 만들어 놨어요. 저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구원함을 얻었다. 

그 다음 사진을 볼까요?(첨부 사진 2)
느보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나안 땅입니다. 요단강이 보이고 여리고가 보이고 날씨가 좋은 날은 예루살렘까지 보입니다. 저 가나안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모세는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는 것이죠. 

다음 사진을 볼까요?(첨부 사진 3)
이 사진은 느보산 위에 있는 비석인데 느보산 위에서 바라보는 각 가나안 지역의 큰 도시들의 거리를 산정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치유함을 입었다. 그럼 이 놋뱀이 무엇이냐?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냐?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장 14, 15절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광야에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다시 말하면 모세가 들고 있는 그 놋뱀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렸을 때 놋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치유함을 얻고 생명을 얻었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은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여러분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눈이 밝아지려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는 어떻습니까? 뱀에 속아서 결국 선악과를 따먹고 나니까 인간에게 죄가 들어 왔습니다. 뱀이 주는 그 맹독 때문에 인간은 모두 다 전염 되어 버렸습니다. 그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고 고통 가운데 저주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인간들을 구원할 수 없었어요. 

결국 어떡합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 얻는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다가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기 시작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워준 놋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광야에 모세와 함께 있던 백성들이 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구원을 받았듯이 이 땅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는 자마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죄가 용서받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린 보혈로 우리 죄가 용서받고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를 믿고 의지하라 그럼 네가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 두 번째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우리의 상처가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가 받은 상처들을 이미 경험하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분의 양 손이 창에 찔리셨습니다. 양발이 대못에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허리에는 창에 찔린 상처가 역력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가 받은 상처를 이미 아시고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상처받으신 그 분을 바라볼 때마다 상처가 치유 될 것을 우리에게 이미 예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상처를 자꾸 묵혀두고 싸매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언젠가 환경을 만나면 그 상처가 폭발되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여러분의 상처를 쏟아 놓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 상처를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상처 받은 치유자 인 것입니다.

한 부부가 서로 앙숙이 되어서 싸웠습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살다보니까 이런 저런 상처가 많은 가정들이었습니다. 서로 가정이 다 어려운 가운데 성장한 분들이기 때문에 상처가 많아요.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말에 문제만 생기면 서로 물고 뜯는 것입니다. 늘 싸우는 것입니다. 어느 날 부부가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었는데 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그것이 잘 안돼요. 어느 날 또 심하게 부부가 싸웠어요. 남편은 코를 골고 자는데 보니까 정말 칼이 있으면 죽이고 싶어요.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데 남편을 죽이고 싶었어요. 죽지도 않는가?! 그래서 정말 죽여! 죽여! 하는 마음이 꽉 찼어요. 

그런데 지난 주일에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생각났어요. 상처가 많기 때문이다. 상처를 이해해주고 상처를 싸매주고 상처를 오히려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한다. 너의 상처부터 치유받아야지 그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다. 그는 그 말씀을 다시 되새기면서 이제 죽여 죽여 하던 말을 바꿨어요. ㄱ자를 빼니까 주여! 주여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주여 주여 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주님 제게 이런 상처가 있습니다. 이런 아픔이 있습니다. 이런 고통이 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게 됩니다. 남편이 불쌍해요. 

남편이 성장기에 가난하게 자라고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만나서 도망가 버리고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어요. 그 상처 때문에 그러는 것을 이해하고 보니까 그렇게 불쌍해 보이는 것이에요. 남편을 다 용서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허물과 자기의 상처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자기의 마음의 상처도 치료받습니다. 그리고 부부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서로 이해하게 되니까 그것이 싸매게 되고 허물을 덮어 주게 되고 끌어안게 되고 기도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의 상처가 치유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분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고백하지 않고 토로하지 않고 그냥 싸매고만 있으면 그 상처는 영원히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히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상처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는 그 사람을 용서할 때 그 상처를 치료 받을 수 있습니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결코 그 상처는 아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전도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 이분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아주 술주정이 심했다고 합니다. 술 드시고 그냥 주무시면 좋은 데 꼭 집에 들어오면 기물을 파괴하고 솥단지를 집어 던지고 결국 어머니를 두드려 패고 심지어는 어머니의 머리채를 끄들고 온 집안을 다니면서 어머니를 괴롭히는 것이에요. 그것을 보고 어릴 때부터 너무너무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아버지가 또 술을 먹고 와서 어머니를 막 괴롭히는데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께 대들었어요. 왜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냐구? 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냐구?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구. 그랬더니 아버지가 이놈이 벌써 아버지께 대든다면서 아들을 거반 죽을 정도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때렸어요. 아들은 이것이 큰 상처가 되었어요.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어요.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어요. 피해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불불 끓는 거에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어느 날 동네 식당에서 술을 드시고 계시는 거에요. 집에 있는 공기총을 가지고 가서 아버지를 죽이려고 겨눴습니다. 쏘긴 쏘는데 그것이 미수에 그쳤습니다. 빗나갔습니다. 그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음 아파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친구의 전도를 받고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고 신학 대학에 가서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다 순종하겠는데 용서하라는 말씀만은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용서해도 아버지만은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아버지는 인간이 아니니까? 그건 짐승이니까! 어떻게 짐승을 용서할 수가 있어요. 아버지는 짐승이지 인간이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너무 괴로웠어요. 설교할 수 없어요. 사역할 수 없어요. 강단에 와서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너무너무 괴로웠어요. 그런데 그가 오래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한 가지 환상을 보여주셨어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예수님의 몸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가시 면류관을 쓰고 계시고 양 손과 양 발에 대못이 박힌 그 상처, 허리의 그 상처. 그것을 보여주시는 거에요. 

그러면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야 김전도사야 내가 너의 죄를 지고 이 고통을 당했고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하려고 내가 이 아픔을 감당했는데 너는 너의 친 아버지 하나 용서하지 못하는가? 하면서 주님이 자신을 꾸짖으시는 거에요. 그 순간 이 전도사님은 고꾸라집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회개합니다.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다짐하고 주님 앞에서 내가 이제 용서합니다. 하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몇 시간을 울고 회개하면서 기도하다가 그 다음 날 고향을 찾아가 아버지를 만납니다. 식구들이 많으니까 아버지를 윗방으로 모시고 갑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큰 절을 합니다. 

그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 손을 잡고 제가 이제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 받은 상처를 죽 어릴 때부터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공기총으로 죽이려 했던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고백을 합니다. 아버지를 다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용서하지 못한 저를 아버님 용서해달라고 다시 아버지 앞에 용서를 비는거예요. 아버지는 그 아들의 말을 듣고서는 아버지도 70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아들을 부둥켜 안고 서로 부자가 함께 웁니다. 이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이 못된 아버지를 짐승 같은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아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부자가 서로 화해하고 서로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가정이 밝아졌는지요. 아버지도 얼마 있다가 교회를 나가게 되었어요. 그 전도사님의 마음을 깨끗하게 치유 받을 수 있었어요. 아버지를 용서할 때 내 마음의 상처가 치료받을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시면 됩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그럴 때 내 상처가 아물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보니까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출애굽기 15장 20절에 보니까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 우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에요. 하나님 앞에 나오시면 상처를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 모든 고통과 상처를 토로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치료하시고 아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까지 그 고통의 상처를 싸매어가지고 고통 가운데 불행하게 살아가시겠습니까? 그 상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남을 공격하며 살아가시겠습니까? 상처를 치유 받으십시오. 주님은 바로 상처 받은 치유자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싸매 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상처 받은 치유자로서 물댄 동산 같이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이 넘치는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이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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