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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의 구원의 날 (슥 12: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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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구원의 날 (슥 12:1-13:1)

예언이라는 말은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예언이라고 하면 預(미리 예)를 써서 먼 장래에 일어날 일에 관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은 예언입니다. 그러니까 ‘예’는 ‘미리 예’를 쓸 수도 있고 ‘맡길 예’를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나님이 맡기신 말씀을 그대로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읽는 사람도 이것을 아침에 신문 읽듯이 그 내용과 의미를 간단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억지로 풀어서도 안 되는 것이고 피상적으로 이해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연구와 묵상을 통해서 가장 납득할만한 이해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후서 3장 16절에 예언은 바르게 풀어야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전 3:16). 억지로 푼다는 것은 영어로 ‘distort’ 왜곡을 한다는 말입니다. 본래 의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삐뚤어진 해석을 하고 자기들의 사사로운 목적을 이루려하다가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12장부터 14장까지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날에’라는 단어가 18번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스가랴 12장부터 14장까지 예언의 핵심은 ‘그날에 일어날 일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가랴 12장 1절부터 13장 1절까지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그날에 관해서 내용상으로 두 종류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그날에 구원받게 될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은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구원받는 날이기도 하고 영적으로 구원받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Ⅰ. 그날은 이스라엘이 육적으로 구원받는 영광스러운 날이다. 

유다는 예루살렘의 외곽 지역으로, 천하만국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2절에 보면 예루살렘이 사면 국민들에게 에워싸이게 되었습니다. 포위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절 후반에 보면 천하만국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려고 집합했습니다. 

6절에는 ‘예루살렘을 좌우로 에워싼 모든 국민’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나라 국민들이 다 와서 예루살렘을 좌우로 포위했다는 것입니다. 또 9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치러오는 열국’이라 말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공격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이처럼 공격을 받고 있으므로 구원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이렇게 공격받고 있는 예루살렘을 구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개입하셔서 예루살렘을 지키시고 원수들을 물리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슥 12:1). 

하나님은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이고 땅에 터를 세우신 하나님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유지하시고 전능하신 능력이 있으시고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안에 영혼을 지으셨습니다. 영혼을 지으신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약하고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유다가 약해도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개입을 하시어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실까요?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국민에게 혼취케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미치리라”(슥 12:2). 예루살렘이 포위되면 유다는 저절로 포위됩니다. 예루살렘으로 그 포위하고 있는 사면 국민들을 ‘혼취케 하는 잔’이 되게 합니다. 술 먹고 완전히 취해서 해롱대는 존재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혼취케 하는 잔’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잡아먹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열국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3절에는 다른 상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무릇 그것을 드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슥 12:3). 

사람이 무거운 돌을 억지로 들어올리다 보면 허리가 무너집니다. 무리한 무게를 들어 올리다 보면 허리에 장애가 오고 장애인이 되어 걷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침공한 열국들이 예루살렘을 들어 던지려고 하다가 자기허리가 다쳐 장애인이 되더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아보고 모든 국민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슥 12:4). 세상 모든 나라들이 예루살렘을 침략하려고 말을 타고 왔다는 것입니다. 말을 타고 기병들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들의 눈을 못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 탄 사람들을 정신착란이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말은 앞뒤가 안보이고 말 탄 사람은 정신착란이 일어나 서로 치고 죽이고 해서 다 죽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 날에 내가 유다 두목들로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국민을 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거하게 되리라”(슥 12:6). 

이것은 사사기 15장에 사사 삼손이 사용했던 방법을 하나님이 똑같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사 삼손은 블레셋하고 전쟁을 할 때에 무기가 없어 여우를 잡아왔습니다. 여우를 잡아다가 여우꼬리에다 횃불을 달았습니다. 횃불을 달아 여우 엉덩이를 치니 여우들이 블레셋 사람 곡식단으로 다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곡식이 다 불타 블레셋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똑같은 방법을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두목들이 횃불을 들고 다닙니다. 횃불을 들고 다니다가 외적들이 쳐들어 온 곳을 향해서 대니 열국들이 다 불타서 없어지게 되더라는 말씀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거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열국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슥 12:8~9). 

하나님이 예루살렘 거민 중에 제일 약한 사람을 성장시켜 다윗처럼 만들어주십니다. 다윗은 목동인데도 불구하고 블레셋의 큰 장수 골리앗을 물맷돌로 물리쳤습니다. 예루살렘의 약한 사람도 성장해서 다윗처럼 되고 다윗의 족속은 한층 더 성장되어 여호와의 사자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거민들이 다 능력을 받아 성장되어 원수들을 다 물리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다섯 가지 표현들을 모두 요약하면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개입하셔서 원수들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하리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를 어떻게 할 것이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입니까? 그날을 어떤 사람들은 21세기보다 더 미래의 어떤 날이라고 해석합니다. 미래의 어떤 날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다.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유대인을 보호하고 세계 열국을 다 멸망하게 하실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이것은 문자적인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예언이고 예언은 상징적인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상징적인 해석, 영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구약 예언에 나타난 이스라엘 혹은 예루살렘은 신약시대의 영적인 이스라엘, 영적인 예루살렘으로 이해해야합니다. 구약의 육신적인 이스라엘이 무너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신약의 영적인 이스라엘이지 육적인 이스라엘이 또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예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이 육적으로 구원받는다는 이 사건은 영적구원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예루살렘은 모두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 4:26). 옛날 교부들이 ‘교회를 어머니로 갖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 곧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선지자 예언에 등장하고 있는 예루살렘은 신약의 교회에 대한 예언으로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열국이 교회를 핍박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 선교사가 가서 복음을 마음대로 증거할 수 있는 나라는 몇 나라 되지 않습니다. 다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열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교회를 핍박합니다. 

지금도 힌두교 국가나 이슬람 국가나 불교 국가들이 자유를 준다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유가 많지 않습니다. 열국이 지금 교회를 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둘러싸서 치려하고 핍박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교회를 보호하시고 교회의 원수들에게 심판을 내리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교회를 건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요, 무거운 돌을 들다가 중상을 입을 자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고 비틀거릴 자요, 정신착란을 일으킬 자요, 그가 타고 있는 말도 앞을 못 보게 될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즉 스가랴 12장 1~10절까지는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보호해 가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건물인가요? 이곳은 교회가 아니고 예배당 건물입니다. 그럼 교회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들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우리 각자 개인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나를 치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이 나를 돌같이 되게 하셔서 그가 허리를 다칠 것입니다. 

여러분을 치려고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진노의 잔을 내리실 것입니다. 나를 치려고 하면 하나님이 나를 강하게 해주시고 성장하게 해주셔서 원수를 이기게 해주실 것이며,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이처럼 보호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보호해주고 계십니다. 


Ⅱ. 그날은 예루살렘이 영적으로 구원받는 영광스러운 날이다. 

두 번째로 이 본문은 예루살렘이 영적으로 구원받는 영광스런 나라라는 것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영적인 구원을 의미하는 세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첫 번째는 그 날이 되면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하나님이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영, 간구의 영을 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은혜의 영, 간구의 영은 바로 성령입니다. 그날이 되면 예루살렘과 유다의 집에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하나님의 백성들, 신약시대 성도들에 대한 상징으로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회심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회심은 개인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에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지금은 하나님이 대하시는 원리가 동일하며 유대인 중에도 하나님의 택한 자가 있고 이방인 중에도 하나님의 택한 자가 있고 하나님의 택한 자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어떤 시대든 다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예수님 재림 직전에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성령 받고 회심한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의 오순절 사건을 스가랴가 바라보며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나오는 사건은 10절 후반에 각 족속의 남자와 여자가 따로 통곡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회개하고 통곡을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 최후의 종교개혁가인 요시야 왕이 애굽왕 바로느고와 전투를 하다가 므깃도 골짜기 하닷 드림몬에서 죽었습니다. 그때 유다백성들이 요시야 왕을 슬퍼하면서 통곡했던 것처럼 그렇게 통곡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재림 직전에 유대인들이 그렇게 통곡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오순절 이후에, 성령 받은 이후에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다 진정한 회개운동을 하고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바로 우리의 구주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알고 깨달아 진실로 통곡하는 것, 회개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 19:37). 

예수님이 로마 군병에 의해 창에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을 때에 그것은 스가랴가 예언한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하고 이렇게 설교 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에 찔려 사도들에게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탄식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우리가 못 박은 예수가 메시아였구나.” 이방인들도 “골고다 언덕에 못 박힌 예수가 내 죄 때문에 죽으신 나의 구주셨구나.”라고 진실로 애통하고 회개한다는 말씀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시면 인류역사에 진정한 회개운동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스가랴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사건은 13장 1절입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 13:1). 죄를 씻는 것은 사죄, 칭의를 의미하고 더러움을 씻는 것은 성화를 의미합니다. 칭의와 성화를 주는 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밖에는 없습니다. 성령이 오시고 회개운동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죄를 용서받고 거룩하게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스가랴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의 문제는 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못생기면 개성 따라 살면 됩니다. 사람의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문제는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 똑바로 살지 못했던 죄, 이것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 죄 가운데 죽어 지옥에 떨어져 영영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는 해결해야 됩니다. 죄는 용서를 받아야 됩니다. 죄는 용서를 받고 사죄를 받고 의롭다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의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죽어도 괜찮습니다. 죽어도 천국에 들어가서 부활을 하고 영생하며 살기 때문에 죄 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아직도 죄와 허물을 씻는 샘이 열려있는 시대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지금도 흐르고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샘이 영원히 열려있지는 않습니다. 이 샘이 닫힐 날이 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유대인만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내 죄 때문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에 찔려 물과 피를 다 흘리셨나이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내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진실로 회개하고 애통하는 사람은 죄 용서를 받고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그 시각 이후로 그는 천국 백성이 되어 죽어도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죄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은 그대로 살지 마십시오. 죄는 해결함을 받아야 됩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 믿어 그 피로 씻음 받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 세상 권력자가 교회를 해치려 해도 이 세상 부귀와 모략을 가지고 교회를 해치려 해도 해치려 하는 그 자만 중상을 당하고 허리가 부러지고 미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죄를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예수 믿고 죄 씻음 받고 의롭다함을 받아 구원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살 때에도 성령이 함께하셔서 삶을 살다가 천국에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교회를 사랑하시고 주께서 명하신 복음전도에 함께 협력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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