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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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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13)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말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운동경기에서 실격을 당하는 사람처럼 자기 자신도 주님의 사도로서의 사역에 있어서 실격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모세와 함께 이집트에서 나온 옛 이스라엘 백성을 운동경기에서 실격 처리되는 선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1-5절을 봅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의 땅을 향해 행진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이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다 구름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출13:21-22). 그들이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왔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 가로 막힌 홍해의 물을 가르셔서 그 가운데로 안전하게 지나가게 하시고 다시 물을 흐르게 하셔서 이집트의 병사들은 모두 수장시켜 멸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출14:5-30).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고 홍해의 물 가운데로 지나며 구원을 얻은 사건을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일종의 세례를 받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그는 본문 2절에서 쓰기를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모세에게 속하여”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왕 바로의 지배 아래 있다가 그들을 이집트로부터 이끌어낸 “모세의 지도력 아래로” 들어갔다는 뜻일 것입니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되어 모세와 함께 구름기둥의 인도와 보호를 받고 홍해 가운데로 지나가게 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는 말입니다. 세례란 것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옴으로써 우리가 주 안에서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며 죄의 씻음을 상징하는 의식이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가운데를 지나감으로써 죽음의 위기로부터 살아나온 것은 오늘날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는 것은 그들이 광야를 지나며 양식과 물이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고 반석을 쳐서 흘러나온 물을 마심으로써 굶어 죽지 않았던 놀라운 은혜의 체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신령한” 양식과 물을 먹고 마셨다는 것은 그 양식과 물이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와 권능으로 베푸신 것임을 뜻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본문 4절에서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이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반석은 종종 하나님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이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목마를 때는 언제 어디서든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함께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뜻에서 옛 이스라엘 백성도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 자신의 능력이나 자격이나 공로 덕분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사는 백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택하신 백성에게 그들을 따라다니는 신령한 반석으로 예수님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의 모두 버리셨다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실제로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빼고는 모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뒤따르는 6절에서 인지를 그 이유를 밝힘과 동시에 그 역사적 사실이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기를 즐겼기 때문에 멸망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며,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은 그 역사를 거울삼아 하나님께 즐겨 악을 행함으로 구원에서 떨어져나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집트에서 나온 옛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악을 행하였다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본문 7-10절에서 네 가지 예를 듭니다. 먼저 7절을 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받느라고 다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자 그것을 참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형 아론을 압박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는 그것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낸 신이라 하며 그 앞에 제사를 드리고 먹고 마시며 뛰놀았던 사건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출32:1-6). 그 때문에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의 전철을 고린도교회 신자들은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는 본문 8절에서 봅니다: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이란 곳에 머물러 있을 때 모압 여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초청을 받고 그들의 우상신들에게 제사하는 자리에 가서 그 백성과 함께 먹으며 그들의 우상에게 절하는 일에 가담하기까지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산 사건을 가리킵니다(민25:1-3). 옛 이방 족속들이 우상을 섬기는 신전에는 신전창녀들이 있었고, 제사가 끝나면 제물을 나누어 먹는 잔치가 벌어지곤 했으며, 식사 후에는 우상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성전창녀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성행위를 벌이곤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그렇게 모압 여자들과 놀아난 자들이 생겼던 것입니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목매어 달게 하셨으며(민25:4) 염병으로 이만 명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을 죽게 하신 사건이었습니다(민25:9).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 중에도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의 고기를 먹기 위하여 그런 자리에 드나들다 보면 그런 음행에 빠져들 수 있으니 삼가라고 한 것입니다. 

세 번째 예는 본문 9절에서 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하자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했을 때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셔서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은 사건을 언급한 것입니다(민21:4-6). 당신의 백성을 가장 좋고 안전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신뢰 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권능을 시험하는 악을 행했던 옛 이스라엘 백성처럼 고린도 교회 신자들도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의 길을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였던 것입니다. 

네 번째 예는 본문 10절에서 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것은 가나안 땅에 곧바로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모세의 보냄을 받아 먼저 그 땅을 정탐을 갔던 자들이 돌아와 보고하며 그 땅을 악평하여 말하기를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2-33) 했던 일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 온 회중은 소리를 높여 울부짖고 밤새도록 통곡하며 원망을 쏟아내기를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1-3) 하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민14:4)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문에 정탐에서 돌아와 긍정적인 보고를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다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민14:11-12, 22-24, 29-38). 고린도 교회 신자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을 일러준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보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을 보는 순간부터 불만과 불평과 원망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한 나라를 이루게 하시며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큰 사실을 잊어버리고 먹을 것 마실 것이 떨어졌다는 작은 사실 때문에 곧바로 하나님을 원망하곤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우리에게 베푸시고 행하신 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베푸시지 않고 행하지 않으신 일들만 생각하면 금방 불만과 불평과 원망을 일삼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원망은 곧 멸망의 길이라고 사도 바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순종할 줄 아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복된 길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죄와 실패의 역사를 상기시킨 후 본문 6절에서처럼 다시 한 번 그 역사가 기록된 것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그것을 거울삼아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옛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이 그들만의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바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살아있는 역사임을 말합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여기서 옛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사건이 그 옛날 그들만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 관한, 우리를 위한 역사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말씀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오고 들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본문 12절은 오늘 본문 전체의 결론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옛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이집트 땅을 치시며 바로를 굴복시키셔서 이집트에서 나오게 되었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양식을 먹고 반석에서 내시는 물을 마셨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절대적인 감사와 신뢰와 순종을 드리지 못함으로써 광야에서 거의 다 죽고 만 사실을 통해 하나님이 백성이 깨달아야 할 교훈을 사도 바울이 압축한 말입니다. 그렇게 놀라운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구원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 선 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세례 받고 성찬식에 참석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완전히 섰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세례와 성찬을 통해 그 믿음을 고백하며 공포할 수 있어야 하지만 세례와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구원 받을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옛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주는 교훈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경고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유효한 교훈이고 경고라면 또한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교훈이며 경고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다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넘어지게 만드는 시험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임을 말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다” 한 말의 뜻은 “너희” 즉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당한 시험은 이미 이스라엘 신자들이 당한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닌 시험을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 그런 시험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당할 수 있고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이긴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 신자들도 그 시험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셔서 사람이 어떤 시험을 당하든 피할 길을 보여주시며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시험을 피할 길을 따르고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기를 간구하며 시험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승리의 길이고 복된 삶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를 당하고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이 의도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다 선 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지지 말 것을 권면하며 경고하고자 한 것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이 다 선 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받고 홍해가 갈라져 죽음의 위기를 면하며 안전하게 물을 건너는가 하면 하늘로부터 내리는 양식을 먹고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지만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우상 주변에서 먹고 마시며 뛰어놀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시험하다가 광야에서 죽고 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회 신자들도 물로 세례를 받고 성찬에서 신령한 떡과 음료를 마시지만 다른 한편으로 옛 우상숭배에 다시 빠지고 우상 섬기는 이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기를 즐기다가는 옛 이스라엘 백성처럼 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의 고기를 먹는 자유를 알았다고 다 선 줄로 생각했다가는 우상 섬기는 자들의 음행에 빠져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험을 피할 수 있고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참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서 궁극적이고 영원한 상을 잃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옛 고린도교회 신자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권면과 경고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 귀 기울여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영원히 복된 하나님나라의 상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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