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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표적과 기사가 계속되는 공동체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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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과 기사가 계속되는 공동체 (행 3:1-10)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지금 이 땅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셨을 뿐 아니라 교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시며 지금까지 지켜오고 계십니다. 주님의 참교회는 세상을 움직이는 열쇠요 방향이요 정신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참교회의 모델은 사도행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주신 바로 그 교회! 그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훈련받은 사도들이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이룩한 교회입니다.  

비록 실수와 허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였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이 뚜렷한 교회였습니다.  

지난 두 번에 걸쳐 살펴본 바와 같이, 사도행전 초반에서 보여준 교회의 특징은 첫째로 성령으로 충만한 공동체(2장), 둘째로 예수님의 삶을 사는 공동체입니다.

이 시간에는 사도행전 3장의 치유 사건을 중심으로 사도행전적 교회의 세 번째 특징인 ‘표적과 기사가 계속되는 공동체’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초대교회의 표적과 기사에 대하여 성경의 증거를 찾아보고,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표적과 기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교회를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공동체’로 만들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초대교회의 표적과 기사 

초대교회의 현저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표적과 기사가 상식이 될 만큼 자주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사도행전적 교회의 세 번째 특징은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초자연적 체험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매일 일어나는 기적의 중심부에는 성령 충만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만난 선천성 하체 장애인을 예수 이름으로 일으키는 장면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하체를 쓰지 못한 자로서, 무려 40년 이상을 불구로 지내왔습니다. 

사건의 전개로 보아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하체장애인이었다는 것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으며, 더욱이 치유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성전이었기에 이 사건은 곧 예루살렘 주민들 사이에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본문을 봅시다.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먼저 베드로는 자신들에게서 물질을 얻고자 하는 장애인의 바램을 일언지하에 포기시키고 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

그러나 이는 단순히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중요한 내면적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은과 금’이라는 표현은 형식적인 종교로 타락한 유대교를 빗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 미문은 금과 은으로 장식된 사치스러운 문이었지만 정작 유대교는 능력을 상실하여 장애인을 비롯하여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없거니와’ 라는 표현은 이제 물질적 동정의 차원을 넘어 더 위대한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 이 표현은 하체 장애인이 자신의 병을 고침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를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기독교가 전파하는 복음의 핵심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우리의 병든 육신을 고침 받는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참 생명을 주시는 예수 안에 거하는 귀한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믿음의 선포를 통해 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40년간이나 말라붙어 있었던 하체장애인의 한스럽고 초라한 다리의 근육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이제 다시는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지 않도록 하는 지속적인 효과가 있는 참 능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체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던 이 사람은 희망도 미래도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 충만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리도 오랫동안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살아왔던 무력한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 그는 즉시 일어났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앉은뱅이 되고 눈멀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에 대해 꽉 막힌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임하면 영적인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교회로 모여 예배하며 찬송하며 기도합니다. 얼굴 표정이 달라지고 말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영적으로 뛰고 들으며 깨닫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적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의 사역을 증거하고 있는 사도행전에는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할 만한 여러 기적들이 거침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15-16=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당시의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을 혼비백산시키고 온 세상을 충격으로 몰아넣는 사건입니다. 성경 기자는 이처럼 믿기 어려운 표적과 기사를 태연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5:17-19=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표적과 기사는 주의 사자 즉 천사들을 통하여서도 일어났습니다. 천사가 ‘밤에 옥문을 열고’ 옥에 갇혀 있던 사도들을 ‘끌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표적과 기사는 계속됩니다.

9:33-34=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8년간의 중풍 병상에서의 치유, 그리고 급기야 시체가 살아나는 기적까지 초대교회의 표적과 기사는 예수님의 치유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초대교회의 기적의 현장을 이 시대에 재현하는 ‘표적과 기사가 계속되는 공동체’로 더욱 성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 병든 자들을 찾아 직접 고쳐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 가에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이 장면은 인류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 병자를 이미 진단하셨습니다. 병이 오랜 줄 아셨고, 절망이 깊은 줄도 보셨습니다. 주님은 질문을 통하여 그에게 소망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이 그 병자에게 원하신 것은 그가 회복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더불어, 무엇보다 예수님을 의지하는 강한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은혜와 능력에 대한 갈망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절망 가운데서 우뚝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에게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도록 명령하셨는데, 이 명령은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이 병자의 삶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우리는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것을 명령하시는 능력의 주님을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계신 곳에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수십 년 동안 불치의 병에 사로잡혀 고생하던 사람이 그 지긋지긋한 고통의 짐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 참된 자유를 얻은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예수님을 확실히 믿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권능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 일을 감당하게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 10:7-8=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신 권능으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표적과 기사를 행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사도들 뿐 아니라 믿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주셔서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 약속은 보혜사 성령께서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막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막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새 방언을 말했습니다. 뱀을 집기도 하고 독에서 건짐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어 고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방인 선교를 위해 부름 받은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역 또한 표적과 기사로 특징지워집니다. 바울 일행이 가는 곳마다 병자들이 고침받고 귀신이 쫓겨나며 놀라운 기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들은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로마서 15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전도 사역에서 일어났던 표적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롬 15:18-19=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무슨 말입니까? 주님께서 바울 자신의 사역에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셨는데, 이는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편만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역에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 나타난 데 힘입은 바가 크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죄로 인해 고통 가운데 있는 인류를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했을 때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경륜을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에게 인류 구원을 위한 언약의 말씀을 주시고 ‘때가 차매’ 약속대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병자들이 누워 있는 베데스다 못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역시 절망에 빠진 이 세상의 영혼들을 위해서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절감합니다. 그들의 문제가 우리 자신과 개인적으로 직접 상관이 없을지는 몰라도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당하는 고통이나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에 혹 무관심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결코 그리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무거운 짐을 벗겨주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나타내십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숭고한 사랑을 깊이 묵상합시다. 병자들이 우굴거리고 있는 베데스다를 찾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려봅시다. 그리고 오늘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세상과 더불어 싸워 이기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특징지우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더욱 알아야 하고 그 능력을 친히 경험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표적과 기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우리의 삶 속에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지고 우리의 전도 사역은 더욱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3.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 되려면? 

주님의 교회는 크고 작은 성령 사건의 연속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세상에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곳입니다. 교회는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이런 교회는 주일 예배에서도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병 고침 받는 사람,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사람, 내적 치유를 경험한 사람 등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납니다. 새벽기도회나 심야기도회에서 이런 간증들이 계속됩니다.  

주님의 은혜로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고, 부모와 자녀간에 막혔던 대화가 열리게 됩니다. 술과 담배가 쉽게 끊어진 이야기는 너무 흔한 간증입니다. 망해가던 회사가 살아나고, 집을 나갔던 자녀가 돌아옵니다. 

성도 여러분, 기적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위대한 기적은 병이 낫거나 홍해가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괴롭히고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들을 향해 용서와 사랑으로 품는 것입니다. 과거의 원수가 친구가 되고, 불신과 기피의 상대가 사역의 동반자가 됩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적 교회에서는 통합의 기적이 끊임없이 연출됩니다. 이 기적은 성도들의 가정으로, 직장으로, 그리고 이웃으로 계속하여 번져갑니다. 성도들의 삶에 감동의 눈물이 마를 시간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도 초대교회처럼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의 답은 제자들을 훈련시키신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이 땅에 산 사람들 가운데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해 가장 많은 훈련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향해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고 명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말씀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눅 24:49).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이 넘도록 침식을 함께하며, 자신들의 사역에서 주님이 주신 능력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들은 두나미스(dunamis), 즉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름 부으심의 지붕 아래서 행하였지만, 이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 자신이 직접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성령세례는 하늘의 두나미스(=능력) 속에 잠기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는 믿는 자들이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우는’ 사건입니다. 약속의 성령께서 우리 위에 임하실 때 우리에게는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은사들이 주어지게 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을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게 됩니다. 병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손상된 세포가 회복되고 굽어진 척추가 바르게 세워지게 되고 암세포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것이 약속의 땅을 모두 취한 것이 아닌 것처럼, 아직 그 땅을 소유하려면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충만은 내게 초자연적인 언어를 주는 것 이상이고, 초자연적인 치유를 경험하는 것 이상입니다. 주님의 목적은 우리를 좀더 앞으로 데려가는 데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함께 일할 수 있는 주님과의 동역자 관계로까지 데려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십시오. 성령께서 그들 위에 내려오셨을 때 그들에게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들 앞에서 모든 자연 세계는 엎드려졌습니다. 나면서부터 하체 장애인이었던 사람의 두 다리가 순식간에 힘을 되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종들을 얽어매었던 착고는 풀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철창은 열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령의 부으심! 오늘도 주님은 교회 위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교회를 충만케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덧입혀 주십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주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또한 함께 모여 우리의 불순종을 회개하며,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기도할 때에 주님은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떨기나무 앞의 모세에게 보여주신 표적들을 신약교회에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지팡이를 뱀으로 만드시고 나병이 든 손을 다시 희게 하시고 물을 피로 만드시는 표적을 재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지팡이가 뱀이 되고 다시 지팡이가 되는 것과 같은 표적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원수의 세력을 말씀과 성령으로 이기고, 사탄의 사슬에 묶인 자들을 구원해내는 역사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도 눈처럼 희게 된 중증(重症) 나병이 깨끗이 낫게 되는 표적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부패하고 문드러지고 냄새나는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깨끗이 씻김받아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게 되는 기적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도 나일강 물이 피가 되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영혼들이 계속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님의 권세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는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기도 응답의 기쁨을 누려본 적이 언제입니까?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기도하여 치유를 경험해본 적이 있습니까? 새방언으로 기도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구역이 유무상통의 사랑의 기적이 넘치는 아가페 공동체로 바뀌어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 기사와 표적이 상식이 될 정도로 흔해지기를 바랍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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