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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을 사모하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사 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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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사모하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사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무디가 죽음의 날이 임박한 것을 예감하고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어느날 신문에서 무디가 죽었다고 하는 기사를 읽거든 그 사실을 믿지 마시오.그때는 지금의 나보다 더 확실하게 살아있을 것입니다.흙으로 지은 옛집에서 나와서 더 높고 영원한 집,죄악이 접근하지 못하고 더럽힐 수 없는 영광스런 몸을 입고 더 높은 곳에 있을 것입니다.육신은 1837년에 태어났고 영혼은 1856년에 태어났습니다.육신은 죽을 것이나 성령으로 난 것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무디가 소천하기 전에 잠깐 천국의 영광을 보았습니다.잠에서 깨어나며 말하기를 『세상은 떠나가지만 천국이 내 앞에 열립니다.이것이 죽음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하나님이 나를 부르십니다.나는 가야 합니다.예수님이 그 옆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라고 말을 하자 자녀들이 『아닙니다.아닙니다.아버지,꿈을 꾸고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그때 무디는 『아니다.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천국 문에 들어서고 있단다.자녀들의 얼굴을 보고 있단다』라고 말한뒤 『이것이 나의 승리,오늘이 나의 대관식의 날이다.아! 얼마나 영광스러운지!』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천국 영광을 향한 비전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구약에서 보여주신 여호와의 날과 구원받을 때에 일어날 예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시는 날에 온전히 이루어지고 천국의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이사야의 선지자의 예언은 당시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며 의를 행하던 이들에게 커다란 희망이 되었듯 오늘 우리에게도 역시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곧 광야와 메마른 땅 같은 우리 삶의 현실 사막과 같은 우리의 심령도 그리스도께서는 능히 변화시키시며 새롭게 하시고 천국의 영광을 사모하는 삶을 살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사 35:1-2)라고 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 사막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 어떠한 선한 것도 낼 수 없는 척박하고 소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인간의 심령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참으로 타락하여 죄를 범한 인간 심령의 본래의 상태는 그 어떤 선한 것도 낼 수 없고 소망도 없이 오직 악한 것들만 내는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메마른 땅,사막이 기뻐하며 백합화 같이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선한 것이라고는 전혀 낼 수 없고 소망이라고는 전혀 가질 수 없었던 척박한 인간의 심령이 부드럽고 기름진 옥토와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이는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라는 표현과 직결된 것입니다.

여기서 그것들은 광야와 메마른 땅 사막 곧 죄로 말미암아 척박하여진 인간의 심령을 가리킵니다.
결국 이는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때에 척박하여진 인간의 심령이 변화하여 옥토와 같이 된다는 말입니다.
  
선지자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아 강림 때의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앗수르를 비롯한 이방 군대들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황폐해졌으나 하나님께서 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르 입고 천국의 영광을 소망하며 나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사 35:3-4)고 하십니다.

약한 손을 강하게 하십니다. 모세의 팔을 들어 올려 아론과 훌은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에 아말렉 족속이 그 길을 막았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군사들을 택하여 아말렉과 싸우러 나갈 것을 명한 후에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섰습니다. 그 때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는데 모세의 손이 들려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을 이기고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지면 아말렉 군대가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투는 그들의 전투력과는 상관이 없이 모세의 손이 올라가고 내려옴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아말렉과의 싸움이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심을 의미합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요술을 부린 것이 아니고 그 지팡이가 올라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전쟁에 승리하는 비결을 교훈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자들로서 전쟁에는 경험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배후에 여호와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육신의 힘은 언제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잡아줌으로써 아말렉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해가 지도록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아니했기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아말렉 군대를 쳐서 파하였습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을 승리케 한 것은 영적 전투에서 서로 협력하여야 함을 교훈해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하지만 성도가 서로 하나가 되어 믿음으로 나아갈 때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부르시어 개인으로 있게 하지 아니하시고 성도의 연합체인 교회를 통해 구원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악한 영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됨을 굳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아말렉과의 전투는 성도의 영적 전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싸워야 함을 교훈해줍니다. 아말렉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방해하려는 사단의 책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힘으로 아말렉을 이길 수가 없었듯이 성도는 자신의 힘으로 죄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 자체가 이미 죄 가운데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시면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미 사단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올라갈 때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던 것처럼 성도는 예수 이름을 의지하여 나아갈 때 어떠한 대적도 물리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서로 힘을 합쳐야 함을 성경은 일관성있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교회의 분열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실족하게 만들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주며 말씀으로 권면함으로 하나님 앞에 거룩한 길을 가도록 격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영적 전투를 수행하여야 함을 교훈하면서 항상 여러 성도를 위하여 간구할 것을 권하였습니다(엡6:18).
성도는 교회를 분열시켜 하나님 백성을 공격하려는 사단의 궤계를 인식하여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사랑으로 섬기며 하나가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강하게 역사하시어 승리케 하십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악한 세력에 대한 승리를 확보하였습니다. 사망의 권세가 더 이상 성도를 억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성도는 믿음으로 악한 세력과의 영적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선포하여야 하겠습니다. 자신을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선포함이 성도의 존재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두려워 떠는 우리의 연약한 손을 잡으시고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힘 있게 기도하며, 힘 있게 봉사하며, 또한 연약한 이웃을 찾아가 위로하며, 힘을 주며, 견고히 설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의무를 다하게 하실 것입니다.(눅 22:32)
이은혜에 감사하며 천국을 소망하며 사명 감당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십니다. 연약한 믿음과 심한 두려움으로 인한 공포는 사람의 무릎을 약하게 하여 떨리게 합니다(단 5:6). 이러한 자는 자신의 일을 감당키 위해 서지도, 걷지도 못하며 달려갈 길을 달려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자들의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시고(히 12:12) 굳게 하여 주십니다. 

이제 무릎이 굳건해진 저들은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롬 5:1), 넘어져 가는 자를 붙들어 주며,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욥 4:4) 힘 있는 걸음을 멈추지 말고 천국의 영광을 소망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사 35:4)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굳세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전능하시며 부족함이 전혀 없으신 완벽한 후원자가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넘치는 자신감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신 분으로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하신 그분의 보호와 격려 안에 있는 우리는 세상의 어느 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35). 그분은 우리에게 용기의 근원이 되십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신 하나님은 이제 자신의 백성들을 모든 시험과 환난(시 57:1), 원수와 악으로부터, 또는 온갖 유혹으로부터 보호하시되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하실 것입니다(사 31:5).
뿐만 아니라 원수들에게 보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고통으로 갚으시고(살후 1:6),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는(눅 18:7, 8)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 갚은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내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레 19:18)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온 땅에 만연하던 모든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이 세상은 복과 소망의 밝은 빛으로 가득 차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던 연약한 자들은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고, 저들을 괴롭히던 모든 원수들의 악한 세력은 합당한 보응을 받게 되며, 성도들에게는 천국의 영광을 누리는 복된 은총이 함께 할줄 믿습니다.

그때에는 눈먼 자가 보게 되며,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으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광야와 사막에서는 물이 솟아나 시내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사 35:5, 6).
  
극에 달했던 절망적인 상황이 변하여 소망적인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복 가운데서도 가장 큰 복은 '구원을 이루시리라'는 엄청난 약속입니다. 
그분의 신실하신 약속대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목적 또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함인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약속된 구원을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모든 시험과 환난 가운데서 구원하셨습니다(창 48:16). 

온갖 질병에서 건지셨고(마 9:21, 22), 또한 극심한 흉년에서도 구원하셨습니다(창 45:7). 뿐만 아니라 악한 원수들과 사탄의 궤계에서도 자신의 자녀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출 14:13 히 2:14,15). 그들의 영적인 기갈과 배고픔의 문제도 외면치 않으셨습니다(요 6:35).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저들을 죄악으로 인한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그의 사역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어느 날 흰 옷을 입은 소녀가 꽃다발을 들고 가다가 흙장난을 하던 한 소년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장난기어린 소년이 흙먼지 한줌을 소녀에게 뿌리자 흙덩이는 이내 소녀의 옷자락을 더럽히고 신발 위에 수북이 쌓였습니다. 소녀는 울상이 된 얼굴로 멈춰 섰습니다. 그러나 이네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꽃 한 송이를 건네주는 것이 아겠습니까? 놀란 소년은 흙먼지를 던지고 대가로 받아든 꽃을 들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했으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신의 연약한 모습과 감당키 힘든 환경 등을 바라보고 두려워 떨며, 방황하던 우리는 힘과 능력과 보호자와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참된 평안을 누리며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승리하는 삶을 살며 천국을 소망하며 사명 감당하는 좋은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사 35:5-6)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복음 사역에 적용시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마 11:3)라고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메시아적 사역, 구속 사역의 구체적인 실현을 설명하셨던 것입니다(마 11:5).

메시아의 구속 사역이 백성들에게 현실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육체에 임한 기적적 은총에 의해서였습니다. 복음의 권능이 현실적으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신유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인간을 질병과 불구로부터 해방시킨다고 하는 것은 현실 생활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기본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적 사역은 영혼의 구원 못지않게 육체의 구원도 중요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은 말씀의 선포와 가르침을 통하여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신유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치실 때에도 그것은 그들의 영혼의 구원 곧 죄의 사유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마 9:2 막 2:5 눅 5:20).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주 영역은 인간의 영혼이며 육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는 참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며 육체 그대로는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요3:6)이라 하셨고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고 하셨으며,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영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무어'(Moore) 목사가 쓴 「나의 회상」이란 책에는 그가 '케즈윅'이라는 마을에서 목회할 때 큰 복을 받은 일이 기록되었다합니다. 어느 날 교인들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한 사람이 무어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복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무어 목사는 '글쎄요, 난 케즈윅으로 오기 전에도 복 받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었지요. 그렇지만 그분은 그저 법적인 지배자였고 나는 사역자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생에 전부를 변화시킨 절대적 주님'이 되었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복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안에서 천국의 영광을 누리는 복이 가장 귀한 복인 줄  믿습니다.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라고 합니다.
광야 사막 메마른 땅 등은 모두 인간의 심령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심령이 '물이 솟고', '시내가 흐르고', '원천'으로 변화되는 것은 성령의 사역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8, 39)하셨고,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고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광야와 사막 같은 심령이 생수가 솟는 영원히 갈증을 모르는 심령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속 사역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주의 재림 때까지 지속 될 것이니 천국의 영광을 소망하는 좋은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사 35:8)라고 합니다.

'대로'는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가리킨 것으로 그 길은 거룩한 길이라 했고 오직 구원받은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 했습니다.

불신자가 처음 이 길로 들어설 때에는 이 '대로'는 '좁은 문'이며 '협착한 길'이지만(마 7:13, 14), 구원받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활짝 열린 '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로는 하나님의 지혜 이신 예수 그리스도(고전 2:6-8)를 깨닫지 못한 '우매한' 자들에게는 결코 허용될 수가 없는 길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공동체가 교회이며 이 교회에서부터 천국에 이르기까지 대로가 나 있는 것입니다.

미국 북부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장성한 아들 넷을  둔 어머니가 죽음 직전에 다큰 아들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들과 헤어질 시간이 된 듯 싶구나." 그 어머니는 아들들을 이름을 부르며 엄마에게 키스로 작별인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짐, 엄마에게 굳나잇 키스를 해다오." 

짐은 곧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가 키스를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둘째, 셋째  아들과도 굳나잇 키스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내인 네째 아들 앤디에 이르자 "앤디야, 우리 막내 엄마에게 굳바이 키스를 해다오."라고 하였습니다. 막내 아들인 앤디는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 왜 형들에게는  굳 나잇 키스를 하게 하시고 저에게는 굳 바이 키스를 하라고 하시나요?" 

어머니는 조금은 어둡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막내 아들의 두 손을 꼭잡고 말했습니다. "앤디야, 너희 형들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꼭 저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된단다. 하지만 너와는 이게 마지막 이란다. 이 엄마가 너를 주님의 길로 인도했으나 너는 끝내 네 고집대로  어두운 길로 가버리고 말았잖니. 그러니  너와 이 엄마와 만남은 이것으로 끝이란다.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단다. 그래서 형들과는 굳 나잇 키스를 하였지만, 너와는 굳바이 키스를 한거란다." 

이 말을 듣고 막내 아들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 저도 굳나잇 키스를 다시 하겠습니다." 어머니도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마지막 순간까지 막내 아들의 두 손을 꼭잡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천국에서 영광의 자리에 함께 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사 35:9-10)라고 합니다.

거기 곧 천국은 '사나움'이 없는 세계로서 오직 속량 받는 영혼들의 기쁜 찬양만 있는 것입니다. 모든 슬픔과 탄식은 사라져버리고 '기쁨과 즐거움'만 넘치는 곳입니다. 그때는 사탄을 무저갱에 가둔 시대이므로(계 20:2, 3), 거룩함과 영광만이 가득 차 있는 곳입니다.
거기는 성도의 나라이며 안식의 세계입니다.  세계만방에서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오는 세계는 천년 왕국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인간의 가장 심오한 소원 중 하나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인물로 평가되는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열망하였으나 거절당하였는데 (출32:18-23) 바로 그 놀라운 복이 이제 하나님의 모든 평범한 백성들에게 주어지게 되는 것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복은 인간의 역사적 시간 내에 성취될 성격의 복이 아닙니다. 그 복은 종말론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서 장차 주님 다시 오실 때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로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의 영광에 이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죄로 말미암아 척박하여지고 소망이란 전혀 가질 수 없었던 인간의 심령이 옥토와 같이 변화하여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내고 풍성한 천국의 영광의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전 곧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어 이 땅에 오시기까지 인간의 심령은 사막과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소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오직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만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시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기만 하면 그의 심령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 곧 성령이 부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척박한 사막과 같은 심령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옥토로 변화하게 됩니다. 전날 악하기 그지없었던 자들조차 변화하여 선을 행하며 의를 행하고 악한 일만 고집하던 자들이 복된 일을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절망과 죽음의 그늘 아래 살아가던 자들이 소망을 갖게 되며 생명 가운데 행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역사,새로운 창조의 역사,생명의 역사를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에도 이루셨고 오늘도 성령을 통해 이루시며 장차  작정하신 종말에 다시 오시어서 그것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 앞에서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사막과 같은 절망의 자리,죽음의 자리에 서 있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것을 비관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며,아니 포기해야만 햐는 삶의 자리에 서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처럼 척박한 삶의 자리를 변화시키실 유일하신 분,우리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구원하심과 회복케 하시는 은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능하시며 복되신 역사를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은 어떤 절망과 곤고함 가운데서도 건지시고 삶의 자리를 복된 곳,생명의 결실이 넘치는 기름진 곳으로 인도하시며 천국의 영광을 사모하는 삶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수년전에 영국 선원 한 명이 뉴욕 시의 한 선교회를 찾았습니다. 그가 마음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선교회를 나서려 할 때 한 사역자가 현관문에서 작은 카드 하나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 카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오늘 밤 죽는다면 나는 ○○○로 갈 것이다.' 공란 밑에는 '여기에 써넣으시고 당신의 이름을 기록하시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 선원은 카드를 읽어보지도 않고 호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배를 타러갔습니다. 영국으로 돌아가는 항해 도중 그는 갑판 위의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선실로 데려다주어 여러 날을 누워 있는 동안 그 카드가 눈에서 떠나지 않고 자꾸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오늘 밤 죽는다면 나는 ○○○로 갈 것이다.' 
'그래. 내가 정직하게 이 공란에 채워 넣는다면 지옥이라고 써야 할 거야. 내가 오늘 밤 죽는다면 지옥에 가게 되는 거야. 그러나 그렇게 써넣을 수는 없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고는 카드에 '내가 오늘 밤 죽는다면 나는 천국으로 갈 것이다.'라고 써넣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다시 뉴욕에 왔습니다. 그는 그 선교회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카드를 제출했습니다. 각자가 그런 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내가 오른 밤 죽는다면 나는 ○○○로 갈 것이다.' 라는 공란에 무엇이라고 써넣겠습니까. '내가 오른 밤 죽는다면 나는 천국으로 갈 것이다.'라고 써 넣으시고 천국의 영광을 사모하는 좋은 일꾼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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