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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탈출(1) : 무기력으로부터 (막 5: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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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1) : 무기력으로부터 (막 5:25-34)

어제 신문을 보니까 세계 4대 작물(쌀, 밀, 옥수수, 감자) 중의 하나인 감자 분야에서 주먹만한 크기의 씨감자를 콩알만한 크기로 대량 생산하게 하여 '씨감자 혁명'을 일으킨 정혁 박사가 돌연 자살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장래가 촉망하고 농업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텐데 자신이 세운 연구소기업이 사기 사건에 휘말리면서, 투자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사람은 무기력해져 버립니다.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매사에 소극적이 됩니다. 흥미나 관심의 폭이 좁아집니다. 언제나 같은 것을 반복합니다. 사람과의 교제를 귀찮게 생각합니다. 감동이 없습니다. 희로애락의 감정표출을 하지 못합니다.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감에 빠집니다.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자기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끼며, 인생에 대하여 행복보다는 불행을 더 많이 생각하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자기혐오적인 상태가 됩니다. 심각해지면 인생을 포기해 버리고 자살을 합니다. 

세계보건기구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초마다 한명 꼴로 자살한다고 합니다. 2010년 한 해 동안에 우리나라에서는 1만 5천 566명이 자살로 사망했습니다. 매일 42.6명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1위입니다.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 따르면 국민 10명중 3명은 자살을 생각해 본적이 있다고 합니다. 삶을 살면서 문제를 만납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면 사람은 무기력의 늪에 빠져 버립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많은 실패 경험이 누적되어 무기력증에 빠져 자살할 만도 한 한 여인이 나옵니다. 무려 12년 동안 당시의 불치의 병으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결혼할 때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많은 의원을 찾아간 것을 보니 아마 부유한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녀도 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혈루증에 걸렸습니다. 하혈하는 병입니다. 당시 문둥병과 혈루증은 불치의 병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가정에서도 마을에서도 쫓겨나게 되어 있었습니다.(레 15:25-28) 

성전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당에 나가 예배도 드릴 수 없습니다. 12년 동안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본 것을 보면 아마 동네 사람들에게는 숨기고 병을 치료했던 것 같습니다. 발각되면 자식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정들었던 집을 떠나야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래도 살기 위해 의사에게 희망을 걸고 수많은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찾아 간만큼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있는 재산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병만 깊어졌습니다. 점점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당하는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있는 것 다 잃었습니다. 몇 년입니까? 12년입니다. 

이렇게 실패가 누적되면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됩니다.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다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대해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자포자기합니다. 자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멍하니 있습니다. 자신은 짐만 되고 아무 쓸모없는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결코 자신에게는 행복이 다가 올 수 없고 즐거운 일보다는 슬픈 일만 많다고 생각합니다. 공연히 우울해지고 자신이 싫어지고 언제나 혼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무기력증이라고 합니다. 이 무기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질적 무기력과 학습된 무기력입니다(learned helplessness). 기질적 무기력은 선천적으로 무기력한 것을 의미합니다. 학습된 무기력은 과거에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여 형성된 무기력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어느 날 해도 해도 안 되는 누적된 실패의 경험으로 무기력증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예배드려도 감격이 없고, 집에 가도 재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한 한 여성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늘날 나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1. 무기력에서 탈출하려면 먼저 예수님 만나 성공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기력하게 되는 첫 번째 원인은 실패의 경험입니다. 성공 경험이 없고 계속 실패하게 되면 마음이 패배주의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학습성 무력감(學習性無力感 learned helplessness)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셀리그먼 박사입니다. 세 집단의 개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였습니다. 개들을 실험 상자에 넣어 놓고 전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집단의 개들에게는 코로 벽의 판넬을 누르면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두 번째 집단의 개는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이 전기 충격을 받게 해 놓았습니다. 세 번째 집단의 개는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 개였습니다. 

이렇게 사전 처치를 실행한 개들을 도피/회피의 셔틀 상자에 넣었습니다. 이 때 전기 충격을 경험해 보지 않은 세 번째 개와 전기 충격을 회피해본 첫 번째 개들은 전기 충격을 받으면 심한 반응을 보이다가 우연히 담 벽을 넘어 다음 칸으로 넘어 가 전기 충격을 피하게 됩니다. 계속 반복하여 실험을 하면 반복될수록 시간이 단축되고, 약 50번 정도 시행하게 되면 개들은 전기충격이 주어진다는 신호가 오면 유연하게 담을 뛰어 넘게 되었답니다. 반면에 사전에 어떤 처치를 해도 전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 번째 개들은 처음 얼마동안은 전기충격으로부터 도피하려고 시도하다가, 불과 몇 초 사이에 포기를 하고 그 충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학습된 실패 경험이 누적되면 무기력증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인간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가는 실험해 보았답니다. Seligman은 Hiroto와 함께 대학생을 대상으로 두 가지 학습된 무기력 실험을 하였습니다(1975). 학생들에게 혐오스런 소음을 들려주었습니다. 한 집단은 버튼을 누르면 소음이 꺼지게 했고 한 집단은 어떤 반응을 해도 소음이 꺼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 후 개들과 같이 소음이 들리는 상자에 넣고 반응하게 하였더니 버튼을 눌러도 소음이 꺼지지 않던 집단의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앉아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소음을 받아들이더라는 것입니다. 인간도 동물처럼 통제 불능의 경험을 하게 되면 학습된 무기력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계속 실패 경험을 하면 스스로 안 된다고 생각하고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은 무기력하게 될 뿐 아니라 성적도 다른 집단보다 나쁘고, 고통도 훨씬 심하게 받는다고 합니다. 밤새워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나는 별수 없구나. 공부할 수 있는 채질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포기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학습무기력증에 걸려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전도도 할 수 없고, 나는 성격이 좋아 질 수도 없고, 나는 행복해 질 수도 없고, 나는 발전할 수도 없어, 나는 불행하고’라고 생각하며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그럭저럭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살도 별로 나아질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며 교회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포기하고 체념하는 운명론자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 성공 경험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만나 승리 경험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12년 동안 실패했던 실패 경험을 깨끗이 청산한 성공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만나 질병이 치유되고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38년 동안 실패한 병자도 예수님 만나니까 그 질병에서 치유받는 성공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38년 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예수님 만나면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99번 실패했어도 100번째 예수님 만나 성공 경험을 하면 무기력증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몇 차례 실패했다고 해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무기력증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내게는 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 만나면 예수님의 능력으로 한 번도 해결 받지 못한 인생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를 보십시오. 심한 경련을 일으킵니다.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립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제자들도 고치지 못합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막9:22)” 이 때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합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우리 예수님께 나아가면 성공 경험을 하게 되고 무기력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38년 된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를 보십시오. 물이 움직일 때 물에 들어가면 낫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38년 동안 실패의 경험을 했습니다.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38년의 실패 경험으로 낫고자하는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그에게 말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 그 때 무어라고 말합니까?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5:7)” 자신의 실패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8)”라며 하시면 평생 잊지 못할 성공 경험을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 성공 경험을 하게 되면 신앙인으로 주체성과 자신감 생깁니다. 작은 성공 경험은 큰 성공 경험으로 이어지고 모든 경험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가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승리 경험한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성공 스토리는 삶의 기쁨을 만듭니다. 그릇된 습관을 이기게 합니다. 

삶의 태도를 바꾸어 줍니다. 실패의 경험을 가진 과거를 이기는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쓰게 만듭니다. 가정생활에 실패 경험이 누적되었습니까? 자녀 교육에서 실패 경험이 누적되었습니까? 건강 생활에 실패경험이 누적되었습니까? 사업에서 실패경험이 누적되었습니까? 예수님 만나 성공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얼마든지 예수님 만나 무기력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승리 경험, 다니엘의 승리경험, 엘리야의 승리 경험, 한나의 승리경험, 베드로의 승리 경험, 바울의 승리 경험이 우리의 승리 경험이 될 줄 믿습니다.

2. 무기력에서 탈출하려면 예수님을 만나 성공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학습된 무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요인은 과거의 누적된 실패경험입니다. 그렇다고 그것만이 원인 것은 아닙니다. 성공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는 갖가지 장애물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합니다. 통제불 가능한 상황, 통제할 수 없다는 기대 또는 지각된 통제 불가능,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한 손상과 실패의 강화, 인간관계(부모, 교사, 친구 관계) 등 다양한 요소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으며 실패경험을 누적한 이 여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 성공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가장 먼저 뛰어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자신의 마음의 장애물입니다. 

12년 동안 그 누구를 만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인입니다. “의사도 아닌 예수님 만나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면 이 여인은 결코 예수님 만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성공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경영의 전문가도 아닌데, 예수님은 역사에 간섭하시지도 않는데, 예수님은 단지 신화적 존재인데, 예수님은 응답하지 않는데.”라고 생각하면 교회에 다녀도 결코 예수님을 통해 성공 경험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여인을 보십시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때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됩니까? 

28절을 보십시오. 큰 소리로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은 어쩔 수 없이 망한다. 우리 남편은 절망적이다. 우리 아들은 변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절망적인 나라다. 우리 교회는 부흥하지 못한다...." 이런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는 못해도 우리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면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능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스마르크와 친구가 사냥을 갔는데 친구가 늪에 빠졌답니다. 그 때 친구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답니다. 비스마르크는 일언반구 하지 않고 갈려고 하니까 친구가 계속 살려 달라고 했답니다. 그 때 비스마르크는 그에게 총을 겨누었답니다. "늪에 빠져 고통당하면서 죽는 것보다 네 총을 맞아 죽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친구는 살려고 발버둥을 쳤답니다. 그 때 비스마르크는 그를 늪에서 꺼내 주며 "나의 총은 너의 생각을 겨냥한 거야"라고 말했답니다. 사람의 생각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여인이 모든 것 다 잃었고 12년 동안 그 많은 의원을 만났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자포자기 했다면 결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11째까지 안되었다고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1마일을 4분 이내에 뛸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954년 6월 5일, 로저 바니스터는 3분 59초 4의 기록으로 마의 4분대를 깼습니다. 그리고 1957년 말까지 16명의 다른 육상선수가 4분의 장벽을 깼습니다. 생각의 힘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바바라 프레드릭슨 교수와 브라질 가톨릭 대학의 마셜 로사다 교수는 사업관계의 역학을 연구했습니다. 사업팀이 번성하려면 긍정적인 말이 부정적인 말보다 2.9배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낙관적인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낙관은 막연한 낙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비율이 11.6을 초과하면 사업팀이 붕괴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 때문에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두 번째 예수님 만나 성공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는 뛰어 넘어야 할 장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2) 사람이라는 장애물입니다.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분명히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아가는데 누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합니까? 24절을 보십시오.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며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질병을 낫고자하는 수많은 경쟁자들이 있습니다. 그 때 이 여인은 어떻게 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무리 가운데 끼어 들어갔습니다. 무력하게 경쟁자들을 보고 주저앉은 것이 아닙니다. 경쟁자들 앞에서 실패 경험의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절망한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그 경쟁자들 틈에 끼어들어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입니다. 

경쟁자의 장애물을 뛰어 넘으려면 열정과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바울의 열정, 모세의 열정, 다윗의 열정, 야곱의 열정, 요셉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불타오르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승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무엇이 빌 게이츠를 승자로 만들었을까? (샤오쭤 지음)"라는 책이 있습니다. 빌 게이츠의 여섯 친구가 그의 성공 비결을 밝힌 것입니다.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했지만 빌 게이츠와 친구들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를 성공으로 이끈 더 중요한 요소를 한자로 표현한다면 "광(狂)"이라고 말합니다. 열정이라는 말입니다. 14세에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15세에 파트너들과 함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1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19세에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 22세에 향후 20년 간 소프트웨어가 발전할 것으로 확신하고, 41세에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되어 지금까지도 컴퓨터 업계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통 어떠한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21일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21일만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하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1번의 법칙입니다. 공군 조종사가 모의 훈련을 몇 번 하는 것이 실전에서 가장 효과적인가를 알기 위한 조사에서 나온 법칙입니다. 늘 남보다 뒤떨어진다는 의식에 발목 잡힌 사람에게는 100번의 법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안 되어도 100번 반복하면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거머리가 달라붙으면 전류를 흘려보내 감전시키는 실험에서 거머리는 떨어지고 붙고를 반복하다가 100번째에는 안 붙는다고 합니다. 기억력이 없는 거머리도 100번이면 학습이 되는 것입니다. 거머리도 100번에 통했다면, 사람이 100번 반복하면 통한다는 것입니다. 습관과 관련하여 "10년 법칙"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성취에 도달하려면 최소 10년 동안 집중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윈스턴 처칠은 중학교 때 3년이나 진급을 못했고, 영어에 늘 낙제점을 받아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실력이 없어 포병 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어릴 적에는 "열등아"였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인의 장벽이 경쟁자만 있습니까? 어쩌면 신앙생활에서 가장 신앙의 무기력을 극복하는데 가장 넘기 힘든 장벽입니다. 아마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람들은 가장 가까이에서 호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자들의 장벽을 뚫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을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실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방해한다고 해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교회 생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람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를 잘 믿는다는 사람들 때문에 시험에 들고 실망하여 무기력하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오후 찬양예배가 끝난 후 다른 교회 집사님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어떻게 목사님이 그럴 수 있느냐며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러기 때문에 더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보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얼마나 연약한 것이 인간입니까? 그렇게 잘 믿는 것 같은 베드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는 위기를 당하니까 부인하고 저주 까지 하고 도망가지 않습니까? 그렇게 신앙시를 짓고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은 다윗도 여인을 겁탈하고 그 남편까지 죽이지 않습니까?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첩을 두고 살지 않습니까? 모세를 보십시오. 그렇게 온유한 사람이고 80년을 훈련받은 사람이지만 분노하여 바위를 치고, 구스 여인을 취하여 아론과 미리암으로부터 비방을 듣지 않습니까? 완벽한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 보며 냉소주의자가 되고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세 번째 예수님 만나 성공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는 뛰어 넘어야 할 장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3) 관습의 장애물입니다. 

이 여인은 혈루증 앓은 환자입니다. 당시 문둥병 환자와 혈루증 환자는 격리 수용되었고 성에서 쫓겨났습니다. 정상인에게 손을 댈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그녀는 사회 통념상 여자로서 뿐 아니라 부정한 자로서 공중(公衆) 앞에 나설 수 없는(접촉 불가) 입장이었으나 그러한 사회, 종교적 장애를 극복하고 담대히 예수께 접근하여 손을 댄 것입니다.(레 15:19-27). 

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접근하여 손을 대는 것입니다. 무리 가운데 썩여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을 한 것입니다. 관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체면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불교 집안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교 집안이기 때문에, 이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이정도의 인격자인데..."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성공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이것만 있겠습니까? 편견, 교만, 아집, 경험, 이성 등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수많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장애물이라고 뛰어 넘고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3. 무기력에서 탈출하려면 예수님 만나 성공 경험하게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실패하는 것은 대부분 방법문제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방법이 잘 못되어 실패하고 잘 못된 방법을 계속 사용하면 백번 2백번 계속 실패하게 됩니다. 서울을 가려고 하는데 경부선을 타고 부산 쪽으로 내려가면서 서울을 왜 안가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비즈니스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 outliers)'에서 보통 사람의 범위를 넘어서는 비범한 사람, 즉 아웃라이어들의 공통적인 성공비결로 '1만 시간의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레비틴은 베를린 뮤직 아카데미 바이올린 전공자들 중 연주 실력이 탁월한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단지 연습시간일 뿐이었다고 합니다. 연주가 탁월하고 창의적인 표현이 가능했던 학생들은 5세 이후부터 총 1만 시간이 넘게 연습해 온 반면, 실력이 낮은 학생들의 연습시간은 8,000시간 미만이었다고 합니다.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간 연습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1만 시간을 투자한다고 성공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1만 시간의 법칙' 저자 이상훈 씨는 성공한 이들은 모두 연습의 선순환에 올라섰기 때문에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선순환 법칙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1단계), 신중한 연습을 하면(2단계) 성취와 자신감을 얻는다(3단계)는 것입니다. 1만 시간 동안 한 분야에서 일을 했더라도 전혀 성과가 없다면 악순환의 법칙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악순환을 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빠지고 삶은 무의미한 일상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방향이 중요하고 방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을 보십시오. 악순환에 빠진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당시 의사들은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을 앓고 있으면서 계속 의사만 찾아다닌 것입니다. 그러다 몸은 더 망가지고 있는 돈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잃은 건강을 찾기 위하여 의원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이 병은 의사가 낫게 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상식이었고 임상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의사를 찾아가면 낳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저 사람을 통해 낳을 수 있겠지? 이 약이 아니면 저 약으로 낳을 수 있겠지?" 그러다 보니 결과는 무엇입니까? 괴로움은 더욱더 심해지고 있던 돈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효험은 없고 병을 더 깊어졌습니다. 잘못된 방법의 결과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용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나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것입니다. 그 옷에 손만 대어도 치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태도를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4절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네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믿음이겠습니까?

1) 듣고 믿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27).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만지기만 하여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28).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내가 그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함일러라"(엘레겐)는 미완료 시제로서 그녀가 마음속으로 그 같은 사실을 되뇌고 또 되뇌였음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믿음이 바로 성공 경험, 승리 경험을 하게 하여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그 여인을 예수님은 어떻게 불러 줍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딸아”라고 불러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녀로 맞이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혈루증 환자라고 불결하게 취급하고 짐으로 취급합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살롬, 인생의 평안을 선물로 받습니다. 영혼의 구원, 생활의 구원, 육체의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의 삶은 완전히 치료되었습니다. 
①예수의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가졌습니다.(29) 
②예수를 따랐습니다(27). 
③믿음에 따라 행함으로 치료받았습니다.(27) 
④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병 나은 것을 고백(33)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①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34)선포를 들었습니다. 
②평안히 가라(34) "평화의 상태를 지니고 가라"고 말씀합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평화의 은총을 선사하신 것입니다. 
③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34) 
④건강해져라(34)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에 이런 환희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 삶에 이런 성공 경험이 펼쳐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우리 삶에도 이런 승리경험이 펼쳐져야 합니다. 이성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성만능주가 되면 사람이 무기력해집니다. 믿음 생활은 이성의 노예가 되면 반드시 무기력증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재미가 없습니다. 신앙과 관계된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영적인 말씀을 먹기 싫습니다. 입을 벌려 전도하기도 싫습니다. 신앙에 회의가 생깁니다. 이성은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 이성이 신앙에 의해 쓰임받을 때 날개를 다는 것이지 이성의 노예가 될 때는 오히려 그 이성 때문에 무기력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심리학자 프레드릭 플래치는 신앙심을 위기극복 능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으로 성공 경험을 한 믿음의 용장들을 보십시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믿음으로 인생을 승리고 이끈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우상 장사의 아들입니다.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라고 속인 사람입니다. 조카와 불협화음으로 가정 갈등을 가진 사람입니다. 단신으로 이민 갔는데 아이를 낳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믿음이 있었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그의 믿음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롬 4:17-24)"

다윗의 믿음을 보십시오. 그 거대한 힘 앞에 주저앉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을 보십시오. 백성들 모두가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무기력증으로 주저 앉았을 때 그들은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민 14:9)"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 싸워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믿음이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크기만큼 우리 삶은 풍요로워지며 우리의 미래는 밝아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이 진정한 인생 승리이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인생의 풍요입니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 쳐서 멸하세 저 앞에 오는 적군을 다 싸워 이겨라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397장 1절)"

어떤 무기력의 늪에 빠져있습니까? 경제로 인한 무기력입니까? 중독의 늪에 빠져 무기력하게 살고 있습니까? 섭섭함의 늪에 빠져 무기력하게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돈과 명예의 늪, 권력의 늪에 빠져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실패의 늪에 빠져 무기력하게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 승리 경험, 성공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 성공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장애물, 사람의 장애물 관습의 장애물을 뛰어 넘으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일상생활에서 믿음으로 지속적인 성공 경험을 하여 무기력으로부터 탈출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 5:34)."라는 말씀이 여러분과 저의 생에 있기를 바랍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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