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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회 비용 (눅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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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 비용 (눅 14:25-33)

기회비용이란 
  
기회비용은 말 그대로 어떤 기회를 얻으면 치러야 하는 비용이 있다는 말입니다. 기회비용이라는 단어는 삶의 구석구석에서 사용됩니다. 중국집에 가서도 기회비용을 치릅니다. 자장면과 짬뽕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데에도 기회비용이 듭니다. 자장면을 택하면, 짬뽕을 먹지 못하고, 짬뽕을 택하면 자장면을 먹지 못합니다. 자장면과 짬뽕 사이의 선택은 정말 곤란합니다. 그래서 짬짜면이 등장했습니다. 기회비용의 문제를 해결한 참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탕짜면, 탕볶밥, 탕짜면, 짬탕면, 볶짬면...       
  
한국인들은 참 머리가 좋은 것 같습니다. 접시를 반으로 나누어서 둘 다 준다는 생각은 획기적입니다. 전 외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음식을 주는 곳을 본 적은 없습니다. 스파게티 집에 갔는데 토마토 소스와 크림소스가 둘 다 먹고 싶기 때문에 두 가지를 반반씩 주는 곳은 없습니다. 아마 곧 이탈리안 레스토랑에도 이런 메뉴가 타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들은 욕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빨리 잘 살게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며 기회비용을 따져보게 됩니다. 전 어린 시절 부모님의 요구 사이에서 선택의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장래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버지는 제가 목사이기를 원했고, 어머니는 교수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장래 희망으로 목사를 썼다가 중간에 잠시 판사, 교수로 바뀐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돈 많이 버는 장로님이 되길 원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원하는 두 가지 일을 다 이루었습니다. 목사, 교수가 모두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짬짜면 인생”을 잘 살아오고 있습니다. 

  
Wait a Minute!
  
오늘 본문은 제자가 되는 기회비용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정말로 많습니다. 성경은 “수많은 무리”가 그를 따랐다고 말합니다(25절).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인기 있는 분을 따르는 데 얼마나 좋습니까? 때로는 떡과 물고기도 공짜로 먹는데 조금 힘들면 어떻습니까? 무엇보다도 엄청난 무료 강의도 들을 수 있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리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멈추고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당황스럽고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Wait a minute!” 잠시 오던 길을 멈추고 생각 한 번 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6-27절)
  
제자가 되기 위한 기회 비용에 관해서 적나라하게 말씀하십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 처자, 형제, 자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미워하지 아니하면” 그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26절). “미워하면”이라는 단어는 너무 강하게 들리는데 히브리인들은 강조하기 위해서 이처럼 과장된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진짜로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미워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헌신이 가족이나 심지어 자신의 목숨보다도 우선순위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불편하게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상들을 나열하시면서 양자택일을 요구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보다도 예수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자가 되는 “비용cost”은 생각하지 않고 “기회opportunity”만 생각했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일단 양손에 쥐는 아이들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예수님을 모두 양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주먹은 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때로는 가족이라는 기회비용도 지불해야 합니다. 내 가족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가족도 책임져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내 목숨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실제로 내가 가족을 사랑한다고 해서 가족이 모두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선순위를 둘 때 오히려 가족의 문제까지도 해결되지 않습니까? 

실제로 내가 나 자신을 위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나를 더 해치지는 않습니까? 오늘 예배에 나오기 힘들었지만 예배를 드리고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기회비용을 지불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면 다른 것들도 채워주신다는 믿음으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예를 들어 제자가 되기 위한 기회비용에 대해서 강조해서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망대를 건축하면서 먼저 비용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초만 쌓고 건축을 끝마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한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는데 자신에게는 일만 명의 군사가 있는데 상대방에게는 이만 명의 군사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과를 예측해 보고 질 것 같으면 전쟁보다는 화친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중간에 포기하기보다는 정말 제자가 될 것인지, 쉽게 말하면 예수를 정말로 믿을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에는 어떤 비용이 들까요? 예를 들어서 먼저는 시간을 계산해 보십시오. 일주일에 10시간을 보낸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일년에 520시간을 보냅니다. 10년이면 5,200시간입니다. 30년이면 15,600시간입니다. 총 650일이라는 시간입니다. 약 2년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금전적으로 계산해 보십시오. 한 달에 십일조를 포함해서 약 30만원을 헌금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30년 동안 1억원 이상의 헌금을 하게 될 것입니다. 1년이면 360만원, 10년이면 3,600만원, 30년이면 1억 하고 800만원입니다. 이것은 이자를 제외한 금액입니다. 저는 잘 계산을 못하는데 복리로 계산하면 더 많겠지요. 노후 은퇴도 불안한데 이런 비용을 지불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비용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이라면 기회비용으로 잃게 될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그 비용이 십자가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는 “끝까지”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십자가란 지금 잠시 지는 것이 아니라, 최종 목적지까지 따르는 것입니다. 마지막 골고다 언덕까지 말입니다. 

  
예수, 모든 것everything
  
제자도에 관한 좋은 예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모든 율법을 잘 지키는 부자 관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지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시면서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고 그를 좇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 
  
이 말씀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참 엉성해 보였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늬만 제자가 아닌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그런 제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자신들의 십자가를 끝까지 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기회비용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그는 저울의 한쪽 추에는 모든 것을, 다른 쪽 추에는 그리스도를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모든 것이 아닌 예수를 선택했습니다. 99가지가 있어도 한 가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한 가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생의 모든 퍼즐 조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마지막 퍼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기회 비용을 잃어버리고서 제자가 되어서 얻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누가복음 18장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눅18: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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