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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인이 흘린 피의 대가 (마 23: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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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 흘린 피의 대가 (마 23:29-36)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잠시 중단했던 마태복음 강해 설교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마 23장은 누구보다도 설교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으로, 무거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토록 책망하셨던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살펴볼 때에, 마 23장의 말씀은 오늘날 저를 포함한 이 시대의 목사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질타하신 음성처럼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날카롭고 단호하게 책망하신 말씀은

1)언행의 불일치였습니다.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언행이 불일치하는 사람을 가리켜, 표리부동한 자 또는 위선자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표리부동하고 위선이 가득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질타를 당하는 것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지, 그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외식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제할 때나, 기도할 때나, 금식할 때나, 무엇을 하든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 중심해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3)명예욕과 교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서 랍비라 칭함을 받기를 좋아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행태이기도 합니다. 특히 주님께서 오늘날 이 땅의 교계를 돌아보신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훨씬 더 통렬하게 책망하실 것 같습니다. 

4)천국 문을 가로막는 악행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선포 받은 이유는, 그들이 ‘모세의 자리’인 율법 선생의 지위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되게 해석하여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까지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5)가치관의 오도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가르치기를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니라.”고 했고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6)율법의 근본정신에 대한 무지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의(義)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 89:14절에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의를 바라고 정의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불의가 판을 칩니까? 이 불의한 세상에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얼마나 의롭게 살아갑니까? 주님께서 율법의 중요한 근본정신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 가운데 하나는 긍휼 곧 인(仁)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불쌍한 자와 고통 받는 자를 보고서, 그들을 향하여 베푸는 친절이나 호의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긍휼 곧 자비를 바라시는 것 역시, 하나님 자신이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우리 같은 죄인들이 멸망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으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또 한 가지 주님께서 율법의 근본정신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은 신(信) 곧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믿음 곧 신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확신이나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세상은 또 얼마나 불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이 세상의 불신은 거의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뿌리가 깊고, 이러한 불신은 성도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7)도덕적인 타락을 가볍게 여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도다.” 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윌리암스는 “주님은 아주 사소한 의식상의 더러움을 피하고자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저들의 모순성을 지적하신다.”고 정확하게 잘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책망 속에서 오늘 한국 교회와 성도의 윤리에 대해 책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술과 담배 문제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교회와 성도들이 이처럼 술. 담배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이보다 더 큰 거짓과 사기, 뇌물과 부패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둔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살이도 걸러내고 반드시 약대도 걸러내야 합니다. 

8)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더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도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또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고 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회칠한 무덤을 닮았다는 것은, 그들의 외적 행위는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그들의 실상 즉 도덕적. 영적 상태는 썩어 냄새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나는 세 개의 ‘나’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자기 자신이 보는 ‘나’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보는 ‘나’는 대개의 경우 관대합니다. 자기 합리를 잘 시킵니다. 둘째, 다른 사람이 보는 ‘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확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외식과 위선으로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보시는 ‘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나’는 정확합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부르짖었던 다윗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라고, 그리해서 우리의 안과 겉이 성결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잘못된 역사의 전철을 되풀이하여 밟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29-30절에 “회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는 데 열심히 남달라 성전의 헌금 일부를 선지자의 무덤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데 사용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즉 그들은 이렇게 선지자들의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면서, 자기들의 경건함을 과시하는 동시에, 의인과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과 자기들은 다르다는 은근한 자기 우월감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과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을 탓하며, 자기들만큼은 다르다고 말한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의인중의 의인이요,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데 가장 앞장섰던 사악하기 그지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조상 때에 살았더라면 선지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의롭고 경건한 척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증명함이로다.”고 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조상들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의로운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며, 조상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려 하였지만, 실제로는 마지막 이스라엘의 선지자라 할 수 있는 세례 요한을 죽이고, 메시아이자 최대의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죽이려함으로써, 그들 조상의 행위를 답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과 다르다고 말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그들 조상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자임을, 그리고 그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채우라’는 표현은 원래 ‘말이나 저울의 부족한 양을 채우라’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는 좋은 의미에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 “너희 조상들이 죄의 잔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사악한 일을 너희가 충만히 채우기까지 계속하라”는 냉소적인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전 11:절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눈에 보는 대로 행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대로 청년들이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눈에 보는 대로 살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계속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러니까 청년들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마음에 원하는 길과 눈에 보는 대로 살 수는 있지만, 만일 그렇게 살았다가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이 있을 줄 알아서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는 말씀은, 조상들이 다 행하지 못하고 남겨둔 악행을 가득 채워 완성하라는 뜻이지만, 사실은 그러지 말라는 말씀이고, 그리하면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뱀과 독사는 사탄의 상징으로서, 하나님께 저주받은 동물이었습니다. 따라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는 말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모욕적이고도 심한 욕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표현은 장차 마귀가 지옥 형벌을 당하게 될 운명인 것처럼, 그들도 지옥 심판을 당할 운명적 존재라는 사실을 경고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의 제자들이 당할 세상의 핍박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 대해 세상은 무자비한 핍박을 가해 왔습니다. 

그들은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였고, 야고보의 목을 베었으며, 베드로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외에도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이 순교를 당했으며, 요한도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2천 년 역사 가운데 얼마나 많은 핍박이 성도들에게 가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신앙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 평안과 칭찬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도리어 성도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 하셨으며, 그 말씀대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신앙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이상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피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핍박이 올 때 그것을 성도가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 생각하며 인내로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은 당시에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이겨낸 성도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영광의 면류관을 얻도록 해 주는 방편이 될 것입니다. 

35절에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는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고 죽이는 천인공노할 살인 사건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알량한 휴머니스트들은, 흉악범 살인범들의 사형을 반대합니다. 

아무리 사람을 죽인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그의 인권은 존엄하기 때문에 사형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형이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2008년 위헌소송을 낸 사람은 전남 보성에서 젊은이 4명을 연쇄 살해한 어부 오종근(74세)입니다. 오종근은 2007년 8월 바닷가에 놀러온 19세 대학생 커플을 자신의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간 뒤 남자를 물에 빠뜨려 숨지게 했습니다. 여대생을 성추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는 여대생마저 바다로 내던졌습니다. 

그는 3주 뒤 같은 방법으로 20대 여성 2명을 더 살해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소중한 목숨을 빼앗고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2심도중 사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요청하였습니다. 사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사형수는 현재 60명(군인 사형수 2명 포함). 이들이 살해한 피해자는 모두 207명으로 사형수 한 명에게 평균 3.5명이 희생됐다. 여러 명의 생명을 빼앗아놓고 자신의 인권은 존중해 달라고 요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형의 합헌성이 두 차례 확인됐지만 사형은 1997년 이후 15년간 집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사형수 60명을 살려두기 위해 한 해 13억2000만 원가량의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뭔가 우리 사회가 대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보다 더 자비하고 사랑이 많은 척하는 위선자들은 인간의 존엄성 운운하면서 사형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피는 강한 호소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이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후 즉시 가인을 찾아오셨습니다. 가인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가인을 향하여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되리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계 6:9절에 보면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그때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의인들의 흘린 피는 반드시 보상을 받고 갚음을 받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자들도 반드시 심판의 형벌을 받을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게 한 자들과, 보혈의 공로를 거부하고 주님의 피를 욕되게 한 자들이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중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자들에게는, 또 다른 놀라운 대가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는 사죄의 축복입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리스도의 보혈은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로 하여금 하늘의 지성소 곧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에게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는 놀라운 권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의인 중의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의 지성소 곧 천국에 들어가고, 그 곳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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