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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 (고후 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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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 (고후 6:1-10)
   
뜨거운 한 주간을 보내고 살아 돌아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사무실에 출근해서 실내온도를 보니까 이미 31도였습니다. 당연히 손이 에어컨으로 갔지만... 좀 특별한 피서 방법은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한 번 겨울 풍경을 떠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왕이면 겨울의 풍경을 담고 있는 시를 읽으면 좀 더위가 좀 수그러들겠지... 그런 기대를 가지고 제가 알고 있는 겨울 시를 일부러 시집을 꺼내다가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눈 쌓인 겨울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마종기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입니다. 여러분도 들으시면서 한 번 그런 상상을 해 보십시오. 
   
방문객 

무거운 문을 여니까
겨울이 와 있었다. 
사방에서 반가운 눈이 내리고
눈송이 사이의 바람들은 
빈 나무를 목숨처럼 감싸 안았다. 
우리들의 인연도 그렇게 왔다. 

눈 덮인 흰 나무들이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복잡하고 질긴 길은 지워지고
모든 바다는 해안으로 돌아가고
가볍게 떠올랐던 하늘이
천천히 내려와 땅이 되었다. 

방문객은 그러나, 언제나 떠난다. 
그대가 전하는 평화를 
빈 두 손으로 내가 받는다. 
 
어떠신가요? 좀 효과가 있습니까? 시원해지셨는지요? 앞으로도 더위가 물려가려면 많은 시간이 있어야 할 텐데... 이 시를 기억하면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을 마음속에 그려 보십시오.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시를 다시 읽으면서 제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바로 마지막 세 번째 연이었습니다. ‘방문객은 그러나, 언제나 떠난다. 그대가 전하는 평화를 빈 두 손으로 내가 받는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문득 나 자신이 바로 방문객이라는 것... 영원히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을 때에... 이렇게 날씨가 덥다고 해서 맥없이 늘어져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예전보다 우리가 좀 더 오래 살게 되었다고 한들... 우리가 세상에서 살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기회라는 것은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얼마나 짧은 것인지... 그나마 이런 덧없는 시간을 살면서... 우리는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맘에 들지 않고... 

이렇게 주어진 환경과 형편을 탓하면서 의미 없게 보내는 시간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지... 아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이곳에 잠시 머무르다가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시면 다시 떠나야 하는 방문객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더위 속에서도 가슴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교인들에게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v.2)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지금이란 도대체 어떤 시간일까요?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덥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눈보라치는 겨울도 아니고... 견디기에 딱 알맞은 쾌적한 날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가 의도하고 시도하는 것들은 모든 것이 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가 하는 말에 동의해주고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뭐 그런 좋은 일들만 일어나고 있는... 그래서 사는 것이 참 신바람 나고 좋은... 정말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지켜주고 계심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보내기에...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가 직면한 정황들... 아니면 그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겪었던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을 오늘 읽은 말씀의 뒷부분을 보면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겪기 힘든 여러 고난들을 겪으면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것은 그가 4절 이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매 맞음과 옥에 갇힘,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 굶주리는 것...’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그는 다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 그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도 참 어렵고 힘이 듭니다. 과거에 그가 가지고 있던 화려한 명성이나 영광... 이제 그 모든 것은 다 사라져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가난하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는 완전히 몰락한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이야 말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일까요? 바울이 이렇게 도저히 은혜를 말하고 구원을 이야기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도 그럴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을까요? 

오늘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면서 아주 독특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v.1) 저는 이 구절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참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웬만해서는 하기 어려운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야...’ 

이렇게 자기를 표현한다는 것은 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만큼 사도 바울에게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영어 성경을 읽어보면 fellow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마치 하나님과 자신이 아무런 간격도 없는 막역한 친구인 것처럼... 바울은 그렇게 자기의 믿음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사도 바울의 모든 삶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런 고백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 마음속에... 나의 생각 속에... 내가 하는 일 속에... 내가 걷는 길 위에...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동료처럼...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알아주시고... 나를 위로하여 주시고... 나의 상처를 치유하여 주시며 나의 가는 길에 함께 하여 주십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이렇게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기의 삶을 말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친구처럼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좀 어렵고 힘든 처지와 형편 가운데 있다고 하여도 거기에 그렇게 큰 영향을 받지는 않게 됩니다.  
 
오히려 지금 내가 맞이하는 이 시간이야 말로 나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고... 내 인생의 절정이라는 기분을 가지고 세상을 살게 됩니다. 바울이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마음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원래 이 대목은 바울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한 것입니다. 나라를 바빌론에 빼앗기고 포로가 된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자신의 희망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를 구원해야 할 때가 되면,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겠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날에는, 내가 그 간구를 듣고 너희를 돕겠다.’(이사야49: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때가 되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이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영감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맞아... 예전에 이사야 예언자가 피력했던 그 희망...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될 것이라는 그 희망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이신 나사렛 예수 안에서 이미 우리는 충만한 은혜를 누리고 있고... 구원 받은 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라는 고백 속에는 이런 놀라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지금 나의 삶 가운데 충만히 임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알게 하신 분이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 다시 말하자면 자신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상의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처럼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그는 지금 가장 최고의 순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세상에서는 누릴 수 없는 최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그것은 지금 자기가 처해 있는 어떤 형편도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오고 새삼스럽게 느껴지게 합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음 말씀 중에서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 봅시다.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v.9-10) 
   
놀랍고 신비한 역설이 여기에는 숨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초라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참 많았는데... 어느덧 그는 자기가 가진 좋은 것들을 다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참 유명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철저하게 잊혀 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살아가는 이유가 있고 기쁨이 있고,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런 신비로움을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겉으로 보기엔 가난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요함을 선물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는 마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처럼 그렇게 행복하고 풍성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이야말로... 나는 나의 삶에서 가장 멋진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의 바로 나의 인생에 있어서 최상의 순간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풍성함을 주시는 분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예수 이십니다.’ 이렇게 고백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 바울처럼 그런 기분으로 살 수 있을까요? 참 모자라는 것이 많습니다. 지금이 나의 삶의 절정이라고 고백하기에는 나는 참 없는 것도 많고, 나 자신의 처지와 형편이 너무 초라한 것 같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 바울처럼 오늘이 바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그런 풍성함과 행복함을 누리며 살 수가 있을까요? 언젠가는 오겠지... 오고 말거야... 우리는 이렇게 막연한 기대를 해보기도 합니다. 
   
혹시 오늘이 바로 그 날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삼아 주시고...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신비한 사랑과 구원의 기쁨을 우리들에게 가득히 부어 주시는 시간... 그 날이 바로 오늘이라고...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고통과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한 삶이지만... 그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임하는 그 날... 그 날이 바로 오늘은 아닌지요. 

비록 우리가 이 지구촌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방문객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자의식... 여기에는 우리가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는 희생과 고통과 어려움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처럼 우리를 자유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말도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바로 최상의 순간임을 느끼게 하는 매력이 바로 이 말 속에 숨어 있습니다. 
     
설혹 견디기 힘든 더위가 찾아온다 하여도...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한 가운데 지금 내가 서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함... 이것은 오늘이 바로 나의 삶의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임을 느끼며 살게 하여 줍니다. 
    
오늘 우리가 보내는 이 날이 바로 그런 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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