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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리아산에 세워진 여호와의 전 (대하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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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산에 세워진 여호와의 전 (대하 3:1-17)


우리는 흔히 어떤 교회 이름 앞에 소유격을 붙일 때, '아무개 목사의 교회'라는 표현을 자주 듣고 또 쓰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특히 대형교회를 말할 때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충현교회' 하면 지금도 'ooo 목사님의 교회'라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반응이고, '순복음교회'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ooo 목사님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경향교회' 역시 앞으로도 오랫동안 원로목사님의 이름과 함께 계속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인식될 것입니다.
  
물론 원로목사님 당신께서는 단 한순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계시지만, 일반 기독교계에서의 반응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그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실 일입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솔로몬의 성전을 보아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가 '솔로몬의 성전'이라고 부를 때 그 의미는 솔로몬이 그 성전의 주인이란 뜻은 결코 아니고 그저 솔로몬이 지었다는 사실을 간단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왜 유독 솔로몬이 지은 성전만 그처럼 솔로몬의 성전이란 표현을 자주 쓰는 것이겠습니까?
성막은 모세가 지었지만 '모세의 성막'이란 표현은 우리가 거의 쓰지 않습니다.
이 솔로몬의 성전은 나중에 바벨론 군에 의하여 파괴되었고 그 후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이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재건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재건된 성전을 가리켜 '스룹바벨의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의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유독 이 첫 번째 성전만을 가리켜 '솔로몬의 성전'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 성전이 무척 화려하고 엄청난 돈을 들여서 지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성막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고루 갖다 바친 예물로 지어졌고 모세가 무슨 남달리 많은 예물을 바치지는 않았습니다.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재건된 성전은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그 가난한 백성들이 지은 것이니 자연히 그 건물은 솔로몬이 지었던 원래의 성전에는 도저히 비할 바가 못 되는 허름한 것이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솔로몬의 성전'은 최고로 화려하고 비싸게 지어졌으며, 그 비용의 전부가 다 솔로몬 한 사람이 충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마 이런 점이 그것을 유독 '솔로몬 성전'이라고 더 자주 부르게 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과연 그 성전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셨습니까?
사실상 성경에 보면 '솔로몬의 성전'이라고 말한 곳은 의외로 단 한 군데도 없고 그저 있다면 '솔로몬이 지은 전' 정도로 나타날 뿐입니다.
본문 역시 어디에도 '솔로몬의 성전'이라는 말은 없고 대신에 1절 서두에 보면 분명히 "여호와의 전"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이어지는 말씀은 그 성전이 그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성전'인지,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만이 주인 되신 성전'인지 그 이유를 명백히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거의 당연하게 일컫는 '솔로몬의 성전'도 오직 '여호와의 전'일 뿐이었다면 오늘날의 교회들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은 왜 지상의 모든 교회들은 그 명칭이 무엇이며 그 설립 목사가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이 오직 '하나님의 교회'로만 불리어야 마땅한지 그 이유 세 가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터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과 2절에 기록하기를 "1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2솔로몬이 왕위에 나아간 지 사년 이월 초이일에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3절에 보면 성전의 지대는 "장이 육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라고 했습니다.
'규빗'(cubit)은 시대마다 다르지만 보통 45센티미터 정도 되는 것이라고 볼 때, 폭 십 미터, 길이 삼십 미터 정도의 공간이 됩니다.
물론 이것은 성전 내부의 공간 치수만을 가리킨 것일 수도 있고, 따라서 외벽과 그 둘레에 지어진 작은 방들의 치수까지 합하면 이보다는 훨씬 큰 건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솔로몬의 성전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큰 대형 건물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어서 4절에는 성전의 "낭실" 즉 현관의 크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그 고가 "일백이십 규빗"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사본에 따라 '이십 규빗'이라고 되어 있는 것도 있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치수입니다.
그리고 5절로 7절은 "대전" 즉 성소에 해당되는 방을 어떻게 꾸몄는가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사실은 1절에서 이 성전을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건축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산이 보통 시온산으로 불리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마는, 여기에서는 그 시온산이 곧 모리아산이라고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리아산이 어떤 산이었습니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막 칼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만류하시고, 그 대신 미리 예비해 두셨던 수양으로 제사를 드리도록 하셨던 그 '여호와 이레', 즉 '여호와께서 준비하셨다'는 유명한 사건이 있었던 바로 그 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전, 까마득한 과거에 이미 그 장소를 당신의 성전 터로 준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역대상 21장에 보면 다윗이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산에 있던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장차 새 성전의 터가 될 것을 계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대상 22:1)고 선포하고, 그 곳은 성전이 지어져야 할 장소임을 선포했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성전은 솔로몬이 태어나기 일천 년도 더 되는 옛날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그 터에 그 성전을 지으시려고 준비해 두셨고 때가 되매 솔로몬을 통하여 바로 거기에 지으신 까닭에 그 성전은 오로지 '여호와의 전'이라 불리어야 마땅했던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터 역시 이 '모리아산'에서 '여호와 이레'로 준비된 터,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터' 위에 세워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께서 친히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다"라고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명백히 공언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터가 있어야 하는데 그 터를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못 닦는다고 하셨으니, 결국 교회란 사람이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경향교회 역시 원로목사님께서 개척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터를 닦아 놓으셨습니다.
그 터는 을지로 창고도 아니고 여의도의 우정빌딩도 아니며 강서의 경복학원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경향교회의 터는 모든 참된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주님의 십자가가 세워진 갈보리산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경향교회 역시 그 머릿돌이 놓인 날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날입니다.
그리고 우리 경향교회 역시 그 설립자인 동시에 영원한 진짜 목자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경향교회 역시 '아무개 목사의 교회'라고 불려서는 결코 안 되며, 오직 '주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통하여 친히 세우신 주님의 교회'일 뿐인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의 터를 일천 년 전에 예비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오늘의 경향교회의 터 역시 이천 년 전에 친히 예비하심으로써 우리 교회의 유일무이한 주인이 되심을 늘 기억하고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만을 따라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8절로 14절에 기록하기를 "8또 지성소를 지었으니 전 넓이대로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도 이십 규빗이라 정금 육백 달란트로 입혔으니 9못 중수가 오십 금 세겔이요 다락들도 금으로 입혔더라 10지성소 안에 두 그룹의 형상을 새겨 만들어 금으로 입혔으니 11두 그룹의 날개 길이가 모두 이십 규빗이라 좌편 그룹의 한 날개는 다섯 규빗이니 전 벽에 닿았고 그 한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우편 그룹의 날개에 닿았으며 12우편 그룹의 한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전 벽에 닿았고 그 한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좌편 그룹의 날개에 닿았으니 13이 두 그룹의 편 날개가 모두 이십 규빗이라 그 얼굴을 외소로 향하고 서 있으며 14청색 자색 홍색실과 고운 베로 문장을 짓고 그 위에 그룹의 형상을 수놓았더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 역시 성막처럼 성소와 지성소라는 두 방으로 구분되어 지어졌는데, 8절 이하의 말씀이 바로 지성소와 그 내부의 성물들과 장식물들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솔로몬의 성전에 보면 지성소 안에 특별히 "두 그룹의 형상"이란 것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바로 앞의 7절에도 보면 성소의 벽에 "그룹의 형상"들을 아로새겼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우상 즉 섬기고 절할 목적으로 만든 형상과는 그 개념이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 '그룹'이란 바로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하고 있는 천사와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좌하고 있는 영물을 표현한 것이므로 우상은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만들 때 바로 그런 그룹의 형상을 두 개 만들어서 언약궤의 뚜껑에 해당되는 속죄소에 붙이도록 친히 지시하시기도 했는데,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바로 그 그룹의 형상을 벽면에 좀 더 많이 새겨 놓았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하여튼 솔로몬의 성전은 비록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성막과 크게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똑같이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고 좀 더 화려하게 만들어졌을 뿐이었습니다.
또 온 세상을 창조하신 천지의 주재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지어진 것임을 염두에 둘 때에는 사실상 그에 어울릴 만한 큰 규모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성전이 무슨 화려함과 장엄함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대변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목적이었다면 아무리 더 크게 짓고 아무리 더 비싼 재료로 가득 꾸몄다 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고 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은 그런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과 교통할 수 있게 해 주시려고 짓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목적,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이 선언될 그 목적만을 수행할 성전이었던 까닭에 그 기본 구조는 전체적으로 그 전에 지어진 성막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목사의 영예를 위한 것일 수가 절대로 없고, 교회가 예배당을 짓는 것 역시 그 건물의 크기나 화려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자들을 향하여 베푸시는 선하신 '구속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세워지고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교회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서비스해 주기 위한 곳이 결코 아닐 뿐 아니라, 신자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섬기는지를 과시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도 결코 아닙니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그런 택함을 입고 부름 받고 믿게 된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서로 교제하고 힘을 다하여 봉사충성하고 전도하고 선교하기 위하여, 즉 오직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을 따라 순종하고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세워졌을 뿐인 것입니다. 

비록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있지만 그 교회의 '식양과 제도'는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정해 놓으시고 성경을 통해 일러 주시는 한 가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 된 사람을 만나 주시는 지성소가 되며, 그런 사죄와 구원의 은총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오직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는 '여호와의 전'이 됩니다.
그런 까닭에 참된 교회는 그 어떤 경우에도 어떤 사람의 욕심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막과 성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교회 역시 똑같은 구속사 성취를 이루시기 위한 목적으로 세우신 까닭에, 우리 경향교회도 오직 이 종말시대에 택자를 찾아 모으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로 세워졌으며 또한 그렇게 쓰임 받고 있음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하에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15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에 기록하기를 "15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고가 삼십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16성소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17그 두 기둥을 외소 앞에 세웠으니 좌편에 하나요 우편에 하나라 우편 것은 야긴이라 칭하고 좌편 것은 보아스라 칭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는 특별한 구조물이 첨가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 앞에" 즉 현관에 세워진 기둥 둘이었습니다.
이 기둥은 무슨 지붕을 받친다든가 하는 구조학적인 목적이나 건물의 외양을 멋있게 보이고자 해서 세워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 기둥에 붙여진 이름들을 보아서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였는데, 그 뜻은 각각 '하나님께서 세우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튼튼히 하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건물의 기둥에 특별한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좀 특이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것은 그만큼 의미심장한 뜻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솔로몬의 성전은 이전의 성막과 비교해 볼 때에는 훨씬 더 튼튼하고 반영구적이라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또 전성기의 이스라엘의 국력과 솔로몬의 재력으로 볼 때, 그 새 성전을 잘 운영하고 보존해 나가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옛날 광야에서 만나만 받아먹고 살 때나 사사 시대 때 끊임 없는 외적의 침략만 당하고 살던 때와 비교해 보면, 이제는 정말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가 이 성전 하나 정도는 웬만큼 지켜나갈 수 있을만한 능력이 있어 보이는 때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 편의 능력과 형편이 좋아지고 또 정성까지 넘치고 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성전은 하나님께서 원래 세우셨듯이 또한 그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야 유지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을 함께 세우고 출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 점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교만해서는 아니 될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솔로몬의 성전 앞에는 아예 입구에 그와 같은 특별한 기둥 두 개가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즉 그 두 개의 기둥들은 성전을 '구조적으로만' 지지하기 위하여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 성전을 출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성전을 실제로 받치고 지탱하고 보존해 주는 힘이 어디로서 오는 것인지를 항상 상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기둥에는 그런 특별한 이름들, '하나님께서 세우심'이란 뜻의 "야긴"이란 이름과, '하나님의 힘으로 지키심'이라는 뜻의 "보아스"라는 이름이 각각 붙여진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성전을 지켜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셨으니 그 성전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일 따름이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오늘날 역시 교회를 출입하는 교인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가 교회의 임자가 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소위 민주적인 교회 운영을 한다는 교회에서는 마치 교인들이 교회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자기네들이 헌금을 내어서 운영되니까 마치 무슨 기업의 주주가 되는 것처럼 교회의 소유권과 운영권 역시 자기한테 있는 줄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반면에 목사가 교권주의를 행사하면서 속된 표현으로 마치 '왕처럼 노는' 교회들도 수두룩합니다.
자기가 설교를 잘해서 교인들이 모이고 자기가 목회를 잘해서 교회가 성장하고 있으니 당연히 자기 교회라고, 무슨 회사 하나 차린 사장 같이 교회를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 입구에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이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우리 개척멤버가 세웠다.' '담임목사인 내 힘으로 지킨다.'라는 기둥들이 사실상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처럼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지탱하고 있는' 그런 교회는 그 얼마나 취약하고 불안한 교회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경향교회는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여호와의 전'이라는 기둥들만이 이 성전을 받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향교회의 성도들은 이런 '영적 기둥'들의 이름을 읽으면서 바른 교회관을 늘 되새기는 가운데 지난 39년 동안 이 교회를 출입해 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능력을 총동원하여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불성곽' 같은 교회임을 늘 든든히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솔로몬이 자신의 온갖 정성을 다하여 명실 공히 최고의 성전을 지었지만, 그것조차 결코 '솔로몬의 성전'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전은 오직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계획하시고 때가 되매 그 목적을 따라 세우시고 또한 그 뜻을 이룰 때까지 친히 지키신 성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시 목사가 개척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예정하셔서 세우십니다.
교회는 사람의 목적을 위하여 사람의 필요를 위하여 사람이 모여서 만든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구속의 복음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를 지탱하는 것은 결코 제직들의 헌금 정도나 목사의 목회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그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이며, 그 교회를 향한 주님의 뜻이 이어지고 그 보살핌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범하거나 쓰러뜨릴 수 없는 산성과 요새처럼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목사가 목회를 해도, 아무리 헌금을 많이 하는 장로들과 충성을 다하는 집사들이 있어도,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교회'라고만 불리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면모가, 이런 색깔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면 날수록, 그 교회는 참된 교회, 훌륭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한 교회를 생각할 때 사람 색깔, 사람 이름이 먼저 떠오르게 되면 될수록, 그 교회는 분명히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경향교회는 원로목사님께서 개척하셨기 때문에 훌륭한 교회가 된 것이 아니라, 원로목사님께서 오직 예수 십자가 복음의 터 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도록 이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훌륭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경향교회는 사람의 뜻대로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이루고 계시는 구속사'의 경륜을 따라 운영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역사들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향교회는 장로들이 훌륭하고 제직들이 잘 충성해서 지금까지 든든히 서 온 것이 아니라, 목사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이 '교회는 그 주인 되신 주님께서 끝까지 지키시고 반드시 잘 되게 하신다.'라는 확신을 그 어떤 시험이나 어려움 중에서 단 한 순간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실로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교회'로 지금까지 연전연승의 역사를 계속 누려왔던 것입니다.
참으로 이 경향교회가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로 영광스럽게 일컬어지고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오직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써 이 '여호와의 전'을 더욱 충성으로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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