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 (마 16:13-20)

첨부 1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 (마 16:13-20)


몇 년 전 우리나라 장관 한 분이 당신 딸이 자신이 장관으로 있는 부서에 특채 된 것이 드러나 중도 하차 한 적이 있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 장관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그날로 그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장관이라고 하는 특권을 이용하여 자신의 딸을 특채한 것은 사회적으로 볼 때 매우 큰 범죄였습니다. 그게 무슨 사회적인 범죄까지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공정성의 파괴라고 하는 범죄입니다.

정의로운 세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공정성입니다. 공정성이 무너지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과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과 사회는 발전이 멈추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평성과 공정성을 무너트린다는 것은 매우 큰 사회적 범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들어오면서부터 개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우리 민족을 축복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는 양반과 상놈이라고 하는 불공정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누구의 자녀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운명적으로 기회가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그런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세상이었습니다. 당연히 그와 같은 불공정한 차별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아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와 민족은 가난하고 희망이 없는 캄캄한 암흑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차별이 우리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부터 무너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하고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다 한 하나님의 평등한 자녀로 인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모두가 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복음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아버지가 양반이냐 상놈이냐로 차별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담임목회를 하였던 승동교회는 당시 백정교회로 불리어 졌습니다. 승동교회의 최초 장로는 백정이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당시의 문화나 정서로 볼 때 혁명이었습니다. 세상이 뒤집어 진 것이었습니다. 복음이 세상을 뒤집은 것이었습니다. 몇 천 년 동안 양반만이 지도자가 되고 상놈은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해도 절대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그런 세상을,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었던 그런 세상을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 아침에 바꾸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백정들이 예수를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승동교회에는 수원에서 출석하는 백정들이 있었습니다. 백리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매주일 출석하였던 것입니다.

승동교회 목사님 중에는 왕 손 출신 목회자가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예수 믿기 전 말을 타고 전국을 유람하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그 말의 고삐를 잡고 다니던 마부가 중화동에 있는 경동제일교회의 영수였습니다. 성이 엄 씨인 엄 영수였습니다. 영수는 지금 이야기하면 안수집사 쯤 되는 직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 영수가 그 왕손을 모시고 다니면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나으리 예수 믿으시지요.’ 왕손이 빈정거렸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너 같은 상놈이 양반이라도 되느냐?’ 엄 영수가 대답합니다. ‘예수 믿는 도리는 그런게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마부 노릇을 더 잘해야 합죠.’

여러분 이 말이 보통 수준의 말이 아닙니다. 저는 그 말을 모든 직업을 성직으로 보는 만인제사장설로 이해했습니다. 이 왕 손의 집이 바로 인사동에 있는 승동교회와 담장 하나를 두고 있는 집이었는데 왕 손이 유람을 다니던 중에 그 부인과 자녀들이 먼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 왕 손도 결국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승동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는데 그 때 이 예수를 믿게 된 왕손이 참여하였습니다. 예배당에 들어가 보니 전에 자기에게 전도를 하였던 마부 엄 영수가 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여도 사방에서 교인들이 모여왔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 왕손이 그 엄 영수의 손을 붙잡으며 ‘형님’하고 불렀습니다.

세상에 왕손이 천민 마부의 손을 붙잡고 ‘형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엄 영수가 놀라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왕손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다 형제가 아닙니까? 엄 영수가 나보다 연상이시니 형님이라고 부른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 왕손은 나중에 승동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이 땅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국민의 다수였던 천민들이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고 뿐만 아니라 자신만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세상을 우리 기독교가 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까 이야기하였던 승동교회의 최초 장로였던 분이 백정이라고 하였는데 그 백정 장로의 아들이 선교사들의 후원을 받아 한국 최초의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다 똑같은 그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그 공정성과 형평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대형교회의 목회자 세습 때문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부 (사실은 일부보다 많습니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아들은 마치 양반과 귀족같이 불공평한 특혜를(자신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북한도 그러지만) 받아 그 나이에는 그런 큰 교회의 목사가 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어 30대 나이에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됩니다. 그것은 마치 아직 30도 채 되지 않은 북한의 김정은이 하루 아침에 국가 원수가 되는 것가 별반 다르지 않은 현상입니다.

아버지가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닌 일반 신학생들과 전도사와 부목사는 천민과 같아서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고 성실해도 공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대형교회의 세습이 이루어지면서부터 담임목사의 아들은 성골(聖骨), 장로의 아들은 진골(眞骨), 아버지가 목사도 장로도 아닌 아들들은 천민이라는 농담들이 공공연하게 교회와 신학교 안에 돌아다니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대형 일간지에 전면광고가 났습니다. 그것은 아들에게 세습을 한 어느 유명한 초대형교회의 원로목사가 낸 광고였습니다. 세습은 오히려 교회에 좋은 제도인데 남 잘되는 것을 사람들이 시기해서 그러는 것이며 그런 사람들은 모두가 다 좌파가 돼서 그렇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저를 경악하게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분노하게 한 변명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원로목사도 사람인지라 다른 후임이 와서 목회를 잘하면 시기심이 나서 원로목사와 후임담임목사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교회에 문제가 되고 어려워 질 수 있지만, 자기 아들이나 사위가 후임이 되어 목회를 잘하면 흐믓한 마음이 들어 교회에 평화가 오게 되니 세습이 교회 발전에 오히려 큰 장점이 된다는 정말 부끄러운 주장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엄청난 돈을 들여 세상에 광고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교회 얼굴에 똥칠을 한 것과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말도 안되는 광고를 보고 교회에 대하여 뭐라고 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정상으로 보겠습니까? 정신 나간 미친 사람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정신 나간 사람까지는 몰라도 얼마나 수준이 낮은 미개한 집단으로 보겠습니까?

재벌 회장도 자기 아들에게 회장 자리를 세습하기 위하여 편법들을 씁니다. 개인 회사를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합법적인 상속입니다. 그러나 요즘 재벌기업은 개인회사가 아닙니다. 자기 지분은 단 몇 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많은 주주들의 주식투자로 운영되는 회사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회장은 오너가 아니라 전문 경영인일 뿐입니다. 그런데 전문경영인이라고 하는 막강한 권력을 이용하여 편법으로 자신의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하여 이런저런 편법들을 씁니다.

세상이 그것을 지적하고 비난할 때 그것을 반박하고 공격하기 위하여 신문에 광고를 하는 회장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반감을 사게 되어 회사의 수익이 크게 감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납작 엎드려 태풍이 지나가기만 기다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옳지 않아도 나름 지혜는 있습니다. 그리고 염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의 그 원로목사님은 지혜도 없고 염치도 없어보였습니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천 만 성도 운운했었습니다. 거의 신뢰성은 없었지만 1,200만 성도를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천 만 성도를 이야기하는 목사는 없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요 몇 년 사이에 비탈에 선 교회 처럼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요즘은 800만도 보지 않습니다. 600만에서 700만 사이 정도로 보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천 만 성도를 이야기할 때 천주교는 200만 정도였습니다. 최근 천주교는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통계를 보면 600만 명 정도 나옵니다. 이제는 우리 개신교와 천주교의 교세가 비슷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향추세고 천주교는 상향추세임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에서 천주교인 수가 개신교인 수를 넘어서는 일이 이제 몇 년 남지 않은 것으로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형교회의 목회자 세습이 우리 개신교 몰락의 첫 출발 신호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치매가 오면 기억력도 없어지지만 분별력도 없어져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감추고 있어도 시원치 않을 큰 수치와 부끄러움을 큰 돈을 들여 신문전면에 광고까지 하시는 그 분의 행동을 영적 치매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생각을 제 페이스 북에 올렸습니다.

며칠 전 그 교회로부터 내용증명 한 통을 받았습니다. 머리 털 나고 처음 받아보는 내용증명이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히 말씀드리면 사과하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과하지 않고 그냥 재판을 받으려고 합니다. 저는 재판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 별로 관심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재판에서 지고 싶습니다. 이왕 질 바에는 벌금도 작은 벌금 말고 큰 벌금을 맞고 싶습니다. 더 바라는 바는 벌금으로 하지 않고 투옥으로 갔으면 더 좋겠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하여 저도 이젠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목사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를 이 꼴이 되게 한 일에 대하여 나는 세습을 하지 않았으니 무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죄 값을 어떤 식으로라든지 받고 싶습니다. 저라도 대신 받아야 우리 한국교회가 죄사함을 받지 않겠습니까?

저 쪽 교회에서는 공개사과하고 조용히 넘어가자고 하지만 제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저는 재판이 더 좋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이 문제를 크게 공론화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아들에게 세습을 하기 위하여 진행 중에 대형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옳지 않은 일인데도 교회와 교인들이 잠잠하니 그런 사람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그런 일을 자행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잠잠 하는 것은 저들의 옳지 않은 일에 동조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대형교회 담임목사 아버지가 우리 하나님 아버지보다 더 힘이 있는 세상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기독교적이고 반 기독교적입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교회는 기독교적이기 때문에 세상의 비난꺼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기독교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재판을 받을 겁니다. 인간적으로 혹시 억울할 수 도 있겠지만 지면 좋겠습니다. 세상 법은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성립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명예훼손죄나 모욕죄가 성립이 되어 제가 불이익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사실을 덮어 둘 마음은 없습니다. 그 댓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제가 높은 뜻 숭의교회 첫 예배 때 설교한 본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반석과 같은 신앙고백위에 세운 교회는 반석위에 세운 교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할 교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그와 같은 반석위에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모두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와 같은 정신을 이어가기 위하여 정관을 만들었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정년을 단축한 것도, 장로와 권사와 안수집사을 6년 단임제로 한 것도, 담임목사와 전임목사는 6년 마다 재신임 투표를 받게 한 것도, 원로 제도를 없이 한 것도 다 사람이 주인인 교회가 될까 봐였습니다.

우리 교회 정관에 담임목사 세습불가 조항을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어떤 면에서 보면 또 하나의 역차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보다 더 큰 덕을 위하여 그런 차별은 좀 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높은 뜻 정의교회도 분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또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네가 하나님이다. 네가 교회의 주인이다. 얼마든지 네가 교회의 주인노릇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유혹할 겁니다.

그런 시험에 들지 않도록 끊임 없이 깨어 기도하는 교회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입니다. 이 귀한 신앙적 전통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높은 뜻입니다. 높은 뜻 정신의 핵심은 ‘하나님이 주인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을 예수님 오실 때까지 이어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