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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사랑 (시 119:9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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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랑 (시 119:97-104)
    
영국의 9월 날씨가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푸르고 높은 하늘이 한국의 가을을 연상케 합니다.   옛 어른들은 가을을 천고마비, 등화가친의 계절이라 했습니다.  등불을 가까이 하여 글 읽기에 좋은 계절에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적과 대치중인 군인에게 훈련과 경계에 열중하라는 것과 학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은 당연한 것처럼 교우 여러분에게 기도와 말씀에 열심을 내라고 당부하는 말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한 일인데 잘 실천이 안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성경읽기 여론조사에 관한 기사내용입니다. 

기독교 여론 설문조사 기관인 라이프 웨이 리서치(Life Way Research)는 ‘성경읽기’라는 주제로 미국 전역의 개신교인 29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9월 6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응답자들은 1달에 1번 이상 예배에 참여하는 개신교인으로, “얼마나 자주 성경을 읽는가?”라는 질문에 ‘매일 읽는다’라고 답한 개신교인은 전체 응답자의 19%에 불과했다.   반대로 ‘거의 혹은 전혀 읽지 않는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18%로 나타났다.   그 밖에 ‘일주일에 몇 번’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6%, ‘일주일에 한번’은 14%, ‘한달에 최소 한번’은 22%로 집계됐다.  

우리 교회에서 설문조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한 분이라도 더 많은 교우들이 성경 말씀과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주일 주보에 성경읽기 안내를 올립니다.   내년에는 작년처럼 성경일독 달력을 다시 사용하여 매일 읽을 말씀의 분량을 정하고 읽는 훈련을 해보려고 합니다.   말씀을 규칙적으로 읽어 그 내용을 알아야 성경공부나 설교시간에 이해와 은혜 받는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는 우리 개인을 약하게 만들고, 우리 교회를 병들게 하며, 우리의 간증을 무력하게 하고, 결국 복음의 진보를 가로 막게 됩니다.  성경을 읽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성경 읽는 것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일년에 한 번은 성경 전체를 읽어야 합니다”. - Dr. John MacArthur

성경을 바로 알아야 사이비 종교와 이단을 식별하고 내가 믿는 신앙의 내용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요즘 횡행하는 이단 중에 신천지 같은 사람들은 기성 교회 교인들이 성경을 너무 모른다고 얕보며 자기들에게 와서 배우라고 큰 소리 합니다.  교회들이 가르쳐 주지 않는 감추어진 비밀, 특별한 계시를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귀가 솔깃하여 따라간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에 빠져 가정이 깨지고 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기도 합니다.   심지어 목사들 중에도 거기 빠져 교회가 흔들거리고 교인들이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속상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통일교나 신천지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참 기이하고 신기합니다.  알만한 분이 왜 저러나 궁금한데 알고보면 성경을 바로 알고 배우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이단들은 거의 대부분 성경의 일부분만 가지고 전체를 아는 것처럼 행세하거나 필요한 구절만 발췌하여 자기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로 삼습니다.   성경의 주인공이며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지 않고 그 성경을 도구로 삼아 자신을 높이고 자기 이익의 재료로 삼으려 하기 때문에 이상한 이단과 사이비 집단이 생깁니다.   

이단의 공통점은 성경 외에 자기들만 받았다는 특별계시를 적은 경전이 있습니다.   그들이 달달 외우며 제시하는 성경구절은 기독교인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고 그들이 감추고 있는 진짜 진리는  성경이 아니라 통일교의 원리강론이나 신탄이라 하는 신천지 교리책 같은 것입니다.   

신천지의 성경해석을 살펴보면 규칙도 없고 정당한 원리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비유를 풀어놓은 해괴한 이야기들인데 그래도 사람들은 그런 해석이 새롭고 그럴 듯하다고 귀를 기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성경에 있는지 아닌지 그리고 그 뜻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그만큼 성경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참 웃기는 억지 중에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시내산에 대한 해석입니다.   서울 근교에 있는 청계산이 동방의 시내산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청계산의‘계溪’자가 ‘시내 계’이므로 시내산이랍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시내산은 시나이(Sinai) 반도 지역에 있는 산 이름인데 우리말의 시내와 성경 원어의 시나이도 구분할 줄 모르는 무지한 해석을 진리라고 받들고 있습니다.   통일교 문선명이 경기도 가평에 자신의 왕국을 세운 것처럼 신천지의 이만희는 청계산 자락 과천에 있는 신천지 예수교 장막성전에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 임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성경과 관계없는 것을 자기들만 받은 계시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사람을 재림주니 보혜사 성령님이니 하며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 사람들은 자기네 신천지 교적부에 등록해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이라 하며 기성교단의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구원받지 못한 어리석고 불쌍한 이방인이라 합니다.   어찌하든 그 사람들은 교주 이만희씨는 영생하는 구주시니 죽지 않는다고 한다니 두고보면 알 일입니다.   통일교처럼 최고 권력자가 죽으면 자기들끼리 권력다툼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 시간이 해결하겠지만  그 사이에 어리석은 유혹에 미혹될 교인들이 더 많아질까 두렵기만 합니다.  

어제 런던에서 열린 선교사들의 모임에 WEC UK의 Director John Bagg 선교사가 영국 사회와 기독교 현실에 대한 특강을 했습니다.  강의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했는데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며 습관적으로 교회를 출석하였고 12살 즈음에 세례도 받았지만 그때까지 성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히 성경을 존중하지만 그냥 성경이라고 생각했지 한 번도 그 성경을 꼼꼼하게 읽어본 적도 없이 책장에 장식처럼 모셔두기만 했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이 오늘 영국교회의 쇠퇴를 낳은 큰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분의 강의 촛점은 영국교회의 쇠퇴에 대한 염려와 어떻게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었는데 문제 해결의 열쇠는 다른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확신이 없고 확신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나누지도 못할 뿐 아니라 복음에 기초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된 삶도 없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영국교회는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갔고 지금 거의 사망 직전에 놓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URC의 Dick Wolff 목사님도 언젠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교인들이 개인 성경이 없이 그냥 맨 몸으로 와서 예배시간에 교회에 비치된 성경으로 설교에 관련한 본문을 잠간 읽는 것으로 끝이라고 염려했는데 이것이 지금 영국교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그래도 좀 낫지만 언젠가 영국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심히 걱정됩니다.   어른들은 물론이지만 자녀들도 성경을 가까이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건강하고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119편은 말씀을 사랑하여 그것을 종일 묵상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유익이 무엇인가 보여줍니다.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그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했는데 종일 묵상하는 것은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되새기며 말씀이 나의 생각과 행동의 중심이 되도록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때 지혜와 명철함은 세상적인 지식이나 정보량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다른 책들은 다 쓸데 없는 것이니 버리고 성경만 읽어야 한다 그런 말이 아님은 여러분도 잘 압니다.  그 지혜와 명철은 모든 거짓 행위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늘 묵상하는 사람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그 지혜롭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로 원수보다 뛰어나고, 둘째로 스승의 명철을 넘어서며, 셋째로 노인의 명철함보다 뛰어납니다.   이상 세 가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지혜를 대표하는 비유적인 말씀입니다.   

1. 내가 그 말씀을 종일 묵상하여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합니다.  나의 원수는 나를 넘어뜨리고 하는 악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주의 말씀이 앞서 나를 인도하기 때문에 나의 지혜가 원수의 모략보다 한 수 위에 있어 나를 보호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이스라엘에 있을 때 아람 나라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넘볼 수 없었습니다(왕하6장).   아람군대가 기습작전을 펼치면 엘리사가 먼저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전갈을 보내어 방비하게 하였고 왕이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아람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든든히 지켰습니다.  혹시 원수의 꾀가 교묘하여 나를 곤란에 몰아넣고 괴롭게 하지만 내가 주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의뢰하고 따를 때 피할 길을 주시고 그 괴로움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2.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모든 스승보다 승하게 합니다.  그 말씀이 나를 가르치실 때 내가 그 말씀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니 나의 지혜가 세상의 모든 스승보다 더하더라는 말입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전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좋은 스승 아래 좋은 제자가 나옵니다.  그래서 옥스포드대학에서 공부하려고 여기 온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스승은 지식만 전달하지만 인생을 참으로 올바르게 사는 지혜가 주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스승을 넘어서는 명철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요?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좋은 제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은 제자들의 삶을 봅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그들에게서 나왔습니다.   그 말씀을 사랑하여 종일 묵상하는 사람은 복이 있으니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사시사철 풍성한 열매를 냅니다.   

3.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합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더니 나의 지혜가 노인보다 뛰어나더라는 말입니다.  인생을 오래 산 노인들은 경험을 통해 선하고 악함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노인들도 실수하고 욕심과 고집도 있어 정말 중요한 결정에 기회를 놓치는 일도 많지만, 어른 말씀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처럼 어른들의 지혜는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보물이니 그 명철을 존중하면 복됩니다. 

잠언은 ‘젊은이의 자랑은 힘이요 노인의 영광은 백발이라’(잠20:29)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아버지의 신하들이 당부한 지혜를 따랐으면 악으로 치우치지 않았을 것인데 그것을 가볍게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자기 명철을 자랑하지 말라 했는데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의 어리석은 충고를 듣고 노인들의 지혜를 버렸다가 자기 꾀에 빠졌습니다.   나라는 두 조각이 나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더욱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노인의 지혜보다 뛰어납니다.   그 말씀에 선과 악의 길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고 사람의 도리가 있으며 창조주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풍부한 경험이 지혜를 가져다 준다고 하여 좋은지 나쁜지 실제로 다 겪어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귀담아 듣는 간접 경험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지혜를 얻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어른들의 말씀을 경청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나의 발을 금하여 악한 길로 가지 않는 것이야말로 노인의 지혜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 명철을 나의 것으로 삼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목사를 아들로 두신 제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달 전까지 예수를 믿지 않았던 분이셨습니다.   사범학교에 가서 선생이 되라 했더니 난데없이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로 간 아들이 못마땅하여 부자지간 사이가 틀어지셨고 믿음으로 살려 애쓰신 우리 할머니에게 꽤나 심통을 부리셨다고 합니다.   

서울에 계시던 분이 지방에 있는 아들네 집을 방문하시면 그래도 아들 목사 얼굴 세워주신다고 주일 아침에 하얀 두루마기를 갈아입고 예배당에 오시기는 했지만 맨 앞자리에 앉아 에헴 하며 내는 헛기침 소리에 예배 인도하던 아들 목사는 신경이 참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분이 말년에 간경화로 투병하시며 병석에 누워 거동하실 수 없으실 때 비로소 당신의 불신앙과 고집스런 행동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그때로부터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에 꼭 붙들려 하루 종일 성경을 읽어주시고 찬송을 불러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참 좋다’를 연발하시며 따라 부르시고 고통을 견뎌내셨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아구가 아프고 기운이 딸려 더 이상 성경을 못읽고 찬송소리가 그치면 애기처럼 보채시며 계속해달라 하셔 할머니와 아버지가 교대로 찬송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어주셨답니다.  

저도 조금은 기억이 나지만 그때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저도 큰손자로서 가끔은 할아버지를 위한 사역병으로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1월 눈이 무지 많이 내리던 겨울 아버지가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온 이른 아침 시간에 가족들의 찬송소리와 기도소리를 들으시며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은 온 동네 잔치가 되었고 예수 안 믿던 목사 아버지의 행적을 잘 알던 다른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평생 자기 주장과 고집을 앞세우시던 완고한 어른이 질병으로 연약해지고 쓰러졌을 때 두 손을 들고 자신의 지혜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붙들 것이 오직 하나님 말씀 하나 뿐임을 뒤늦게 깨닫고 숨이 거두시는 순간까지 그 말씀을 사모하셨습니다.   

소학교 문 앞에도 못가보신 할머니는 예수 믿고 성경을 읽으며 한글을 터득하셨고 찬송가를 찾으시면서 숫자를 익히셨습니다.  한글은 일찍부터 읽으셨는데 문제는 연세가 많으실 때까지 숫자를 읽으실 줄 몰라 불편해 하셨습니다.  숫자를 모르시니 가정예배를 드릴 때 손주들에게 찬송가를 내미시며 찾아달라 하셨습니다.  그때는 많은 어른들이 그랬습니다.  예배당에서도 옆사람에게 찬송곡을 찾아달라 부탁하셔야 하고 그럴 형편이 안되면 찬송가 없이 가사를 외운대로 따라 불러야 했습니다.   

아무리 손자들이 귀여워도 매번 부탁하셔야 하는 어른의 자존심이 얼마나 견디기 힘드시고 불편하셨을까요?   어느날 저에게 숫자 읽는 법을 가르쳐 달라 하시더니 금방 익히셨습니다.  이렇게 쉽고 편한데 진작 배웠으면 될걸 하시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할머니께서  그후로는 원하는 찬송곡을 맘껏 찾아 부르셨습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찬송가를 찾아 부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 시간이 기쁘고 행복한 것은 물론이고 글과 숫자도 깨우쳐 생활하시는데 편리함도 얻으셨으니 일거양득입니다.  이만하면 말씀이 주시는 지혜가 할머니께는 정말 실용적이지 않습니까?   

성경말씀 속에 구절구절 인생의 참 목표와 지혜가 담겼으니 옛 어른들은 이 말씀을 늘 곁에 두고 묵상하시던 복된 분들입니다.  성경책 말고는 집안에 읽을거리가 별로 없어 읽은 책 읽고 또 읽곤 했던 시절에 성경책은 그야말로 매일 곁에 두고 사랑하며 읽히던 지혜와 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루 일 마치면 어두운 방에 등잔불, 호야등 밝히고 성경을 읽으시던 어른들은 인터넷과 수만가지 종류의 읽을거리로 넘치는 정보세상에서 성경말씀을 읽을 틈이 없이 바쁜 현대인들보다 훨씬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셨던 분들이 아닐까요?   

눈이 침침하여 잘 보이지 않으실 때는 손자를 불러 곁에 앉히고 여기 좀 읽어다오 하시고는 눈을 지긋이 감고 손자가 읽어드리는 말씀을 들으시며 아멘 하며 고개를 끄덕이시던 어른들은 그렇게 하심으로 사랑하는 손주들의 신앙교육도 덤으로 시켜주셨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는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이런 찬송 가사를 오늘날도 공감하며 부를 수 있습니까?      

언젠가 제가 손주를 보는 날이 온다면 우리 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느끼는 감사의 마음을 사랑하는 손주들도 함께 느껴볼 수 있도록 도란도란 성경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세상이 앞으로 얼마나 더 복잡해지고 사람들이 얼마나 더 분주하게 살는지 알 수 없습니다.   현대인들의 마음이 온통 물질세계에 쏠려 있습니다.   눈을 뜨면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세상을 살며 더 좋은 아이팟, 스마트폰에 눈독을 들이는데 더 좋은 하나님 말씀에도 그렇게 깊은 관심을 두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쁜 세상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과 한가하게 앉아 성경책 함께 읽을 기회를 지금보다 더 많이 빼앗아 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떼어놓고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는 목자의 삶, Shepherd’s Life라는 교재를 가지고 교우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할 계획입니다.   총 6권으로 된 교재인데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 목자와 주가 되신 예수님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평신도 신학연구 과정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모여 약 1시간 반 정도 소그룹 모임을 꾸준히 가지면 총63주, 중간에 방학을 포함하면 약 1년 반 정도 기간이 필요한 성경신학 훈련과정입니다.   이것을 위해 먼저 저와 함께 몇 분이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1시간반 정도 인도자 과정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인도자 준비가 어느 정도 되면 교우들에게 광고하여 학생을 모집하고 1차 인원이 차면 금년 내로 제1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 평신도 리더, 안수집사나 권사 혹은 장로로 섬기게 될 일군들은 필수적으로 이 과정을 수료해야 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교회 성도들의 신앙훈련에 중요한 과정으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봉사하게 될 일군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사람이어야 하고 모든 일을 할 때 그 기초가 하나님의 말씀이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과 예배와 섬김의 능력이 그 말씀으로부터 나오고 청지기의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쁜 마음으로 신청하여 등록하고 함께 주의 말씀을 배우며 믿음이 성장하는 기회로 삼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했으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했는데 육신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그분이 곧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가까이 한다는 것은 곧 육신으로 우리에게 오신 말씀, 다시 말하면 그 말씀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말씀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소홀히 대하는 것입니다.   말씀 사랑 예수 사랑, 그 사랑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더욱 풍성하고 강건하며 죄와 모든 악을 물리치는 지혜와 명철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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