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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 사람들(1)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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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 사람들 (히 11:13-16) 

“누군가가 약속만 해 줄 수 있다면 이 모든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한 달 동안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 그곳은 미국도 아니고 어떤 바닷가도 아니다. 백설이 뒤덮인 알프스가 있는 스위스도 아니다. 열 살 전후의 소년기로 돌아가 옛날 고향으로 돌아가 뛰어다녀보고 싶다.” 김형석씨의 [운명의 별빛 아래서] 수필집 중에서..

누구에게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특별히 먼 타국에 나가 있으면 더욱 더 생각나는 곳이 고향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고향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들이 고향을 포기한 이유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 까닭”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 사람들”이라고 붙여 보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이며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1. 이 사람들..

13절에서,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족장이라고 불리우던 3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1) 믿음을 따라 죽었다.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다.”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다라는 말은 완벽하게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장애물 앞에서 넘어지고, 타협하고, 실패하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았다. 끝이 중요하다. 예)데마(딤후 4:7)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어떻게 하면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는가? 

히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 약속을 받지 못했으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

그렇다면 본문 13절에서 “약속”은 무엇인가? 창 12:2의 말씀이다.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2 말씀의 성취는 갈 3:14의 말씀이다.
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당대에 큰 민족을 이루지 못했다. 3대 동안 70명의 씨족을 이뤘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될 것을 바라보고 환영했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것을 믿음으로 본 것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살았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나그네로 살았다. 그 의식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창 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창 28: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나그네는 목적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나그네는 짐이 무겁지 않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2. 그렇게 살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았고, 멀리고 보고 환영하였고, 나그네로 살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1)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

진짜 고향을 찾는 자임을 보여 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살았지만 이 땅에서의 삶이 궁극적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믿음으로 살았고, 약속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고, 나그네로 살았다는 것이다. 

2)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함

15절, 나온바 본향 - 갈대아 우르, 아브라함의 고향. 마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 꿈 속에서도 그려보는 고향. 그러나 돌아갈 마음을 접었다. 이유는 하늘에 있는 것을 육신의 고향보다 더 사모했기 때문이었다. 

예)복음성가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새웠네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 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 곳 주 복음 전하리

아득한 나의 갈길 다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빈들이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주시리


3.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히 11:16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됨
자식이 제 구실 잘 감당하면, 부모가 기쁨이 된다. 그러나 제 구실 못하면 부끄럼이 된다. 세상에 묶이지 않고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천국을 향해 있을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

2) 한 성을 예비하심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사람의 머리를 하늘로 향하게 한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는가?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이 땅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보니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땅의 욕심이 많은 바훔이라는 농부가 있었다. 어느 날 한 나그네로부터 바슈키르족의 초원에 관한 얘기를 듣는다. 바슈키르족장에게 1000루블만 주면 하루 종일 걸은 만큼의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 동안 무제한 땅을 소유하는 데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만약 하루 안에 출발점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그건 무효가 된다는 것이다. 동이 트자 그는 한치의 땅이라도 더 소유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더 빨리 걷기 위해 장화도 벗었다. 시간이 아까워, 걸으면서 물과 빵도 먹었다. 장화를 벗은 발은 찢기고 베어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는 쉴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지려고 해서 출발지로 빨리 되돌아가기 위해 그는 장화도 물통도 조끼도 모자도 버려둔 채 뛰고 또 뛰었다. 가까스로 출발지로 돌아왔지만 너무 힘을 소진하는 바람에 그는 쓰러졌고, 입에서 피를 쏟으며 죽고 말았다. 땅을 조금이라도 많이 소유하기 위해 쉬지 않고 걸었지만 결국 그에게 필요한 땅은 자신이 묻힐 한 평 정도의 땅이었다. 

이 단편소설은 인간의 땅에 대한 욕심을 볼 수 있는데, 톨스토이는 단지 땅만을 말한 것이 아니다. 보이는 재물의 대표적인 것이 땅이기에 땅을 말한 것뿐이지, 실상은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심을 말한다. 황금만능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예수님의 사역의 첫 번째 메시지는 천국이었다(마 4:17). 그리고 공생애 사역 중의 가르침의 중심 주제 역시 천국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제자들과의 만찬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사랑하는 제자들과 다시 만날 곳은 이 땅이 아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곳, 하늘의 처소에서 만나기를 기대하고 계신 것이다. 그곳은 바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리고 이삭과 야곱에 사모했던 곳이다. 사도 바울 역시 주님 계신 그곳을 사모했다.

빌 1:23 내가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다. 그 소망은 이 땅에서의 모든 욕심을 극복하게 해 주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신령한 능력을 공급해 준다. 

우리가 가야 할 본향을 잊을 정도로 땅에서의 삶에 집착하지 않기 바란다. 장차 우리가 가게 될 본향, 주님 계신 곳, 보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한 주간의 삶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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