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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넴 여인이 받은 은혜 (왕하 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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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넴 여인이 받은 은혜 (왕하 4:8-17)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 주도 열왕기 4장 말씀을 계속 묵상하게 됩니다. 

열왕기하 4장은 기적의 장으로 불려 집니다. 4장에는 4개의 기적의 사건이 소개됩니다. 우린 지난주일 열왕기하 4장 1절부터 7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한 선지자 생도의 아내가 엘리사에게 와서 호소하는 내용을 묵상을 했습니다. 남편은 선지학교 학생이었는데 많은 빚을 남겨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여인은 빚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두 아들이 급기야는 채주에게 종으로 끌려갈 처지가 되어서 엘리사에게 와서 하소연하며 부탁을 합니다. 

엘리사는 네 집에 남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한 병 기름 외에는 없습니다. 그릇을 빌려라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려라 그래서 그릇을 빌려다 놓고 문을 닫고 들어가서 아들들과 함께 그 병에 기름을 들고 그릇 마다 채울 때 그릇들 마다가득 채워졌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기름이 멈췄어요. 

왜 멈췄어요? 그릇이 다 찼기 때문에. 아마 그릇을 더 많이 준비했더라면 그릇마다 더 많이 채워졌을거예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릇이 부족해서 멈췄다는 것이지요. 참 아름다운 이야기지요.

자 오늘 우리가 두 번째 본문으로 읽은 이 4장 8절부터 원래는 37절까지인데 너무 본문이 길어서 일부만 읽었습니다. 수넴 여인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여인은 과부 여인이었고 한 여인은 수넴 여인이다 이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여인에 대해서 우리는 좋은 비교를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생각해보았던 선지 학교 생도의 부인은 가난한 여인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수넴 여인은 반대로 부유한 여인이었어요. 더더욱 또한 가난한 여인은 남편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수넴 여인은 남편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지난주에 생각했던 이 가난한 과부 여인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여인이었어요. 너무너무 절박했어요. 

그런데 오늘 읽은 수넴 여인은 자신이 넉넉해서 남을 위해서 도울 수 있는 그런 여인이었어요. 선지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또 한 가지 비교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생각했던 가난한 여인은 아들이 둘씩이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수넴 여인은 아들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은 공평하시죠. 이 집은 가난하지만 아들이 둘이나 있고 이 집은 부유하지만 자식이 없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 두 가정을 위해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위해서나 부유한 자를 위해서나 존재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가난한 여인도 하나님의 종 엘리사에게 와서 기도함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이 수넴 여인은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는 여인이기 때문에 선지자를 대접하면서 아들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은 가난한자나 부유한자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분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어떤 계급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런 시각도 있습니다. 민중 신학이나 우리가 말하는 해방신학이나 그렇게 보면 예수님은 꼭 가난한 사람만을 위해서 온 것처럼 보여요. 부자는 다 나쁜 놈이고 가난한 사람만을 위해서 왔다. 그것도 그런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다 보니 부자는 천국에도 못 가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유한 자를 위해서도 주님은 오셨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도 주님은 오셨습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할 때 그는 구원 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수넴 여인은 수넴이 이름이 아니고 동네 이름이 수넴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 술람이라는 마을을 그 당시에는 수넴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갈멜산 근처에 있는 한 동네였습니다. 자 그런데 오늘 이 여인이 아주 귀한 여인으로 불려지죠. 

우리 8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죠.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강권했다!! 간절히 권했다는 것이죠. 음식을 먹도록 말입니다. 아름다운 것이죠. 그 당시 양식이 귀할 때 이렇게 간절히 권한다는 것은 사랑이 많다는 것이죠. 

그러나 요즘은 웬만하면 굶지는 않죠. 너무 심방 갔을 때 너무 간곡히 권하지는 마세요. 어느 날은 토요일에 심방을 했는데 토요일 저녁에 얼마나 대접을 잘 받았는지 배가 불러서 잠을 못자요. 그래서 적당히 먹게 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워낙 먹는 게 귀하기 때문에 간곡히 권하는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지금은 적절하게 먹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죠. 그런데 그 당시에는 양식이 부족했으니까 이 여인은 엘리사에게 간곡히 권해서 음식을 먹게 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엘리사는 그리로 지나 갈 때마다 이 여인의 집에서 아주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아름다운 여인이지요. 

그런데 이 여인을 부르는 이름이 ‘한 귀한 여인이 있었다.’ 이 귀하다는 말은 성경에서 재산이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 지체나 신분이 높은 사람을 가리킬 때 ‘귀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여인은 참으로 귀한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물질적으로도 풍요하지만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귀하다는 말은 꼭 부자만을 향해 쓰는 말이 아닙니다. 때로는 인격이 훌륭하고 그의 삶이 풍성한 사람을 향해서도 귀한 사람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자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돈은 많지만 사람이 천할 수도 있습니다. 귀하다의 반대말은 천하다죠. 물질은 부유하지만 인격은 천할 수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그의 인격이 너무 훌륭하고 고귀할 수있다는 것이죠. 아마 이 여인은 물질적으로도 풍성했지만 인격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아주 마음씨가 고운 여인이었을 것이다. 우린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 같은 냉정한 시대에 이런 사랑이 많은 귀한 여인이 우리 주위에 많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바로 그런 귀한 분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의 사람에게 인사합시다. ‘우리 귀한 사람이 됩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귀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남에게 나눌 줄도 알고 또 아주 고운 마음씨를 가진 그런 사람이 바로 귀한 사람이다. 

자 이 여인은 어떻게 이렇게 귀한 사람으로 불림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 수넴 여인에게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째 이 여인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영적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우리 성경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 집 앞을 지나서 갈멜산을 늘 왕래하는 이분을 뵈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 내가 알겠습니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가끔 초청해서 자기 집에서 점심도 대접하며 선대하는데 이 분은 아주 거룩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얘기는 이 사람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분별한다는 뜻입니다.이것이 바로 영적인 통찰력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와 진정한 선지자를 분별할 줄 알았습니다. 특별히 엘리사의 스승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 때에 갈멜산에 올라가서 거짓 선지자와 싸우는데 엘리야는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는 850명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요즘 말로 하면 목사님은 한 사람인데 이단의 선지자들이 850명과 싸우는 것이죠. 그러니 그 당시 얼마나 우상이 팽배하고 거짓된 종교가 많았는가 알 수 있지요. 그렇게 많은 거짓 선지자 중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구분해 낼 줄 안다는 것은 이 여인이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영적 통찰력이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이 시대에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너무너무 이단이 많아서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해요. 잘못 미혹 되어 끌려갔다가는 부부가 이혼하고 가정이 파탄 나고 아이들은 길거리로 쫓겨나고 이런 일들이 너무너무 이 시대에 많아요. 참 비극적입니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 어찌 보면 모든 사회적으로 윤리가 타락한 이 시대일수록 이단이 극성을 부리는 거예요. 

며칠 전 신문을 읽어보니까 이선영씨라는 41세 여인이 2003년 집에 가만히 있는데 누가 설문 조사하러 왔다는 거예요. 가까운 교회 설문 조사하는데 한 일분이면 된다길래 마음이 착한 이선영씨는 시간을 내주었답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하는데 성탄절이 정말 예수님의 생일이 맞느냐는 이런 질문을 하더랍니다. 

요즘 쓰나미나 지진이 많이 나는 것은 종교와 관련이 있다하면서 이것에 대해 알고 싶으면 우리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하자고 일주일에 한번씩!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인상이 좋아 보여서 그렇게 하자고 약속을 했더라는 것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는데 두 사람이 와서 한 사람이 두 살의 아이를 얼마나 잘 봐주는지 몰라요. 성경 공부 할 동안에 아이를 업고 다니고 먹여주고 또 바쁠 때는 청소도 해주고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그런데 뭔가 성경공부를 하다보니까 이것이 뭔가 잘못된 구원론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이단에 들어간 것을 알게 되고 남편이 만류를 하는데 부인이 이미 빠져서 나오기가 어렵죠. 남편이 나중에 술을 먹고 들어와 주정을 하고 부인을 폭행한 적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한데 나간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분들이 와가지고 그런 것 사진 찍어놓고 진단서를 떼어 놓라 하는 것입니다. 그럼 나중에 이혼 할 때 유리할 것이라고 코치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문제가 되고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고 가정이 파탄 날 지경이 되어서 조금씩 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시누이가 와서 그랬어요. ‘네가 다니는 그 종교 계속 나가려면 상담을 받아보자. 그래서 옳으면 인정해주겠다.’그래서 기독교 상담소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니까 ‘아 이것이 이단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에요. 자기가 다니던 그 교회가 어떤 교회냐? 하나님의 교회 세계 복음 선교 협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이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옛날에 안상홍 증인회입니다. 이제는 안상홍이라는 이름을 쏙 빼버리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니까 그것이 무슨 교회인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렵게 그 이단에서 가까스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 큰일 날 뻔 했죠. 

또 한 사람의 예가 신문에 소개가 되었더라구요. 김연경씨라고 하는 53세의 여자인데 서울의 한 기도원에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원에 가서 옆에서 은혜 받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친해지고 점심도 같이 먹고 대화하다 보니까 간증이 너무 많은 거예요. 한 분은 50대 한 분은 60대라는 거예요. 그래서 얘기하다보니까 마음이 통하는 거예요. 자식 얘기도 하고 남편 얘기도 하다 보니까 신앙의 삶이 통하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연락하고 만나서 식사도 하고 그랬다는 거예요. 

자기 오빠가 어느 교회 장로라고 하고 또 어느 선교원을 소개 했는데 그 곳에 가면 성경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같이 가보자고! 그래서 믿고 따라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2층 상가에 조그만 교회가 있는데 그곳에 올라가는데 프랭카드를 붙여 놓았다고 하는데 ‘이단을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붙여 놓았대요. ‘아 이것은 정통인가보다. 이단 출입 금지라고 써놨으니!’ 그래서 올라가서 봤더니 30대 여자가 강의를 하는데 말만 끝나면 ‘아멘! 아멘!’하는데 이것은 자기가 아는 교회와는 다르다는 거예요. 그러나 거기 끌려서 다녔다는 거에요. 

그런데 자기가 어느 날 CBS 프로그램을 보다 보니까 자기가 속한 그 성경 공부 배우는데 하고 너무 흡사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상해서 자기가 아는 권사님께 말하고 목사님과 상담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까 신천지라는거예요.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방법을 통해서 교인들을 꼬득이고 미혹의 길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목회자 외에는 누구하고도 성경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다 위험한거예요. 또 우리 교회 사실 이 예배실 안에도 아마 한 두 분 씩은 와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신천지에서 오신 분들이 아마 있을거예요. 이 주위에 있는 교회들 다 신천지가 들어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 분별력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이단에 끌려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부부가 꼭 이혼하게 되고 그리고 아이들이 가정이 파탄 나니까 큰 고통을 당합니다. 오늘 이 수넴 여인은 영적 분별력을 가진 여인이었어요. 오늘 여러분들 영적 분별력, 영적 지혜를 가진 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합니다.

두 번째로 이 여인은 어떤 여인이었느냐 이 여인은 섬길 줄 아는 여인이었어요. 어떤 여인이었다구요? 섬길 줄 아는 여인이었어요. 자 오늘 우리 성경 8절 말씀을 한 번 더 읽죠. 8절입니다. 시작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 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아멘

이 여인이 대접을 참 잘하는 여인이었어요. 처음에는 지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인 줄 알고 모셔서 자기 집에 점심을 대접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아예 엘리사가 이제 편하니까 지나가다가 문 두드려. “어 내가 왔습니다.” “아이구 어서 들어오세요.” 해서 점심을 대접하는 그렇게 막역한 사이가 된 거죠. 이 여인은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섬길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특별히 하나님의 종을 잘 섬겼어요. 또 그것만 아니예요. 

자 우리 오늘 성경 10절 말씀, 10절입니다. 시작 “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 아멘 가만히 보니까 우리 엘리사 하나님의 종이 갈멜산을 왔다 갔다 하는데 때로는 늦어서 피곤할 때도 있는 것 같애. 그러니까 우리 집에 다락방을 하나 만들고 그리고 이 안방을 통하지 않고 밖에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 우리 선지자님을 모십시다. 그래서 피곤할 때 쉬었다 가시기도 하고 거기서 말씀도 묵상하고 기도도 할 수 있는 방을 하나 만들어 드립시다. 그래서 거기다 책상과 침대와 촛대상도 놓고 이렇게 했답니다. 이거 얼마나 아름다운 거예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종을 섬길 줄 아는 그런 여인이었다. 

여러분 이것은 꼭 하나님의 목회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이웃을 섬기고 같은 구역식구를 섬기고 또 교회를 섬기는 것 너무 귀한거예요. 하튼 섬김이라는 것이 뭐예요. 우리 신앙을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거예요. 우리 영신교회 교구들은 잘 섬기는 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섬긴다는 말은 서비스인데 이는 예배한다는 말도 의미되어 있지만 남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 친절을 베푸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 그게 다 섬기는 거예요. 

여러분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라고 주님이 말씀하셔요. 하물며 하나님의 종 위대한 엘리사를 섬겼다함은 그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이 있겠냐는 것이지요. 저도 가끔 보면 지난 금요일이었나요. 우리 교회에 식당하시는 분, 영신식당이라고 새 신자가 한분 있어요. 근데 꼭 오라고 말해요. 그 뭐 좋은 거 준비해놨데. 그 식당은 분식점이예요. 라면도 팔고 이런 분식점 하시는데 그 마음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오늘 1부 예배 나와서 그땐 얘기 안했는데 오라고 그래서 우리 목사님들 이제 한 몇 분이 갔어요. 이제 심야기도 전이니까 저녁을 먹어야 되서 갔더니 난 거기가면 주로 청국장이 많아서 청국장 한 그릇 먹고 와야 되겠다. 그러고 갔죠. 아 그랬더니 어디서 등심을 그렇게 많이 사다 놓은 거예요. 꽃 등심을. 아 그래가지고 그냥 대접을 너무 잘 받고 왔어요. 근데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내가 보니 그 식당은 정말 보잘 것 없고 작은 뭐 그런 자기 건물도 아니고 아주 그런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새신자인데 대접하는 걸 기뻐하는 거예요. 그저 아무 부담 없이 식사를 하고 돌아가시더라. 참 마음이 너무너무 흐뭇해요. 아 저분이 참 저렇게 대접 할 줄 아는 분이구나. 새신자이기 때문에 말씀드리는거예요. 또 평신도니까. 누가 부담가질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 거예요. 정말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 특별히 선교사님들이 오시면 잘 대접하는 거 이거 아름다운 거예요. 

근데 한 가지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우리가 대접할 때 어떤 대가를 바라고 대접하면 안돼요. 근데 이 수넴 여인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섬김 이예요. 자 뭘 보면 알 수 있느냐? 우리가 한 가지 뛰어넘은 데에요. 

자 13절 말씀, 13절 말씀 13절입니다. 시작 “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 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아멘 그랬습니다. 

자 이게 엘리사가 너무 고마운거예요. 그래가지고 어~ 종 게하시를 통해서 이 여인을 불렀어요. 내가 당신에게 뭘좀 해줄까? 내가 당신을 위해 뭘좀 해줬으면 좋겠습니까? 내가 왕도 잘 알고 내가 군대 대장도 잘 압니다. 뭐 좀 부탁할거 있으면 나한테 말씀하세요. 그랬더니 이 여인이 뭐라 그래요? 한마디 딱 합니다.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이 얘기는 나는 우리 백성들과 함께 평범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난 특별한 것 원치 않습니다. 

이거 바꿔 말하면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합니다. 그래요. 더 이상 욕심이 없어요. 그런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면서 이렇게 하나님의 종 선지자를 대접하고 이것이 내게 기쁨입니다. 나는 더 큰 것 바라지 않습니다. 그 여인은 대가를 바라는 섬김이 아니예요. 우리가 혹 어떤 사람한테 섬김은 뭐 대가를 바래요. 내가 이렇게 해주면 나에게도 뭘 좀 해줘야지. 내가 이렇게 관심을 써주면 나에게도 또 뭘 좀 써줘야지. 이거는 순수하지 못한 섬김이지요. 

그래서 이런 순수하지 못한 섬김을 하다보면 어떻게 해요? 시험 들기 쉬워요. 내가 이 교회에 와서 이렇게 헌금을 많이 했는데 왜 날 인정 안 해줘? 내가 이렇게 많이 봉사하는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이러면 시험이 드는거예요. 그러나 이 여인은 대가를 바라지 않아요. 나는 그저 섬기는 그 기쁨으로 족한 거예요. 그래서 이 여인은 정말 섬김의 좋은 모델이 되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영신교회에도 이런 섬김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종종 미안하지만 시험 드는 분들은 그냥 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는 분들이 시험 들었다는 얘길 내가 못 들었어요. 그냥. 혹시 뭐 설교가 자기에게 부담이 될 경우는 있지만 거의 시험 든 일이 없어요. 바빠서 못나오지. 그러나 시험 드는 분들은 대개 열심히 하던 분들이에요. 열심히 하면 돈을 들이고 물질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그러는데 왜? 나를 인정해 주지 못하니까~ 그 그럴 수 있어요. 

우리가 진정한 섬김이라는 것은 뭐냐 순수한 섬김은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하는 섬김이다. 자 그러면 하나님이 정말 대가를 주시지 않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반드시 보상하신다는 거죠. 그래서 오늘 이 여인에게 어떤 보상이 임합니까? 엘리사가 그래요. 뭘 좀 해주고 싶은데 이게 뭘 좀 해줄 방법이 없나? 그랬더니 게하시가 그래요. 선지자님 저 여인은요 아들이 없습니다.

남편은 이미 너무 나이가 많고 그래서 아들을 낳을 수가 없어요. 아 잘됐다. 그래서 이 여인을 불러서 내년 이맘때쯤 네게 아들이 생길 것이다. 그랬어요. 아 그랬더니 이 여인이 무슨 그런 농담을 하느냐고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무슨 애를 낳겠느냐고 그러나 선지자가 공표했어요.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했어요. 1년 후에 아들을 낳은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참 놀라운 일이었어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위해 봉사하면 주님은 그것을 반드시 갚아 주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내가 은혜를 베풀어도 못 갚을 수 있어요. 그러나 내가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듯이 하나님의 종들을 섬기고 교회를 섬길 때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 주신다. 하나님 앞에 공짜가 없어요. 그것이 바로 덤으로 주신 은혜이지요. 

여러분 솔로몬 보세요.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드렸잖아요. 하나님이 물어요. 내가 너에게 뭘 줄까? 이에 이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릴수 있도록 저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다른 것 구하지 않습니다. 돈 많이 주세요. 큰 나라 되게 해주세요. 권력 있는 왕 그런 거 안 구합니다. 지혜를 주세요. 하나님이 너무 기특하고 마음에 감동을 받으셔서 네가 오히려 나를 위해 지혜를 구하는구나. 네가 구하지 않은 부유함과 장수와 모든 축복을 내게 너에게 주겠다. 그렇지요.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때로는 구해도 주시지만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덤으로 주실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잘 섬기는 마음 순수한 섬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또 이 여인에게 배울 것이 한 가지 더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 여인은 절망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절망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 자 선지자가 이제 이렇게 선포했고 1년 후에 이 여인에게 아들이 생겼어요. 그래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들로 인해서 온 가족이 웃음꽃이 피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아들이 어느 날 추수하는 밭에 나가 놀다가 너무 햇빛을 많이 쬈는지 그만 머리가 아프다고 그러면서 쓰러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 여인에게 종들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눕혀놨어요. 뭐 안 됐지요. 그래서 얼마 후에 아이가 그만 숨을 거뒀어요. 그래서 이 여인은 자기의 무릎 팍에 아이를 안습니다. 요즘 그 김기덕 감독이라는 분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피에타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그것이 세계 베니스영화제에서 1위를 했지요? 황금사자상을 받은 얘기. 

그런데 그 피에타라는 제목이 재미있어요. 제가 그 얘기 하려는 것이 그 영화는 못 봤는데 그 피에타라는게 뭐냐? 주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런 뜻이 있어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죽은 예수님을 자기 품에 끌어안고 있는 그 조각, 그것이 바로 피에타상이예요. 피에타상. 그래서 이 영화 내용에도 그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고 그래요. 방탕한 아들을 엄마가 찾아와서 다시 화해하는 그런 내용이라고 신문에서 많이 읽었습니다만은. 

여러분 어찌 보면 이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것은 꼭 피에타상과 똑같아요. 이 여인은 그 아들을 한 5살쯤 되는 아들을 엘리사가 거주하던 그 방에 뉘여 놓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리고 종들을 불러서 말을 타고 갈멜산에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남편이 너 어디가느냐고 부인에게 묻습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하고 숨겨요. 왜 숨기느냐 이유가 있어요. 이 여인은 절망하지 않았다는거예요. 왜? 하나님이 주신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반드시 살릴 줄로 믿었다는거예요. 이 여인의 믿음이예요. 우리 한번 성경 있는 분들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보죠. 

20절부터 22절까지입니다. 20절부터 22절. 같이 읽죠. 시작
“ 곧 어머니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머님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은지라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아멘 달려갔다가 내가 돌아오리이다 남편이 물어요. 아니 초하루도 아니고 월삭도 아닌데 안식일도 아닌데 왜 가느냐고 제가 좀 볼일이 있습니다. 그리곤 이 여인은 말을 타고 달려갑니다. 

아이는 거기 눕혀놓은 채. 그리고 엘리사에게 가서 그는 그 상황을 이야기 하죠, 자 우리 건너뛰어서 30절 말씀 30절 말씀을 한번 읽겠습니다. 성경있는 분들 시작. “ 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따라가니라.” 아멘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이 무슨 얘기에요? 당신이 나와 함께 가서 내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까지는 나는 당신을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여인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선지자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 여인의 마음속에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선지자가 엘리사가 나의 아이를 일으킬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결국 엘리사는 이 여인과 함께 그 집으로 수넴이라는 동네에 가서 결국 아이를 위해 기도하죠. 성경에 보면 그 아이 위에 자기의 몸을 눕혀서 온기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기도했는데 그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사도 죽은 아이를 살리고 또 그의 스승인 엘리야도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그를 기도해 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우리 인생의 어떤 문제인들 해결하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일생에 절망적인 일이 찾아올지라도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누구 앞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는 길이 있고 하나님께는 방법이 있고 하나님께는 지혜가 있다는 거예요. 오늘 이 여인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니 내게 왜 이런 재앙을 주느냐고,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느냐고 자식을 괜히 주더니 또 사랑할만하니까 또 뺏어가느냐고 못된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종 선지자를 찾아가서 부탁을 하게 되고 그리고 선지자가 와서 그를 위해 기도할 때 이 아이가 회복되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수넴 여인의 신앙이 너무너무 아름답죠. 저도 여러분들이 이런 아름다운 신앙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절망하지 않는 신앙,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확신 있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어떤 부흥 강사님이 저 시골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대요. 그런데 그 교회는 마침 건축을 하고 나서 5천 만원 빚이 아직 남아 있는 교회예요. 그래서 상황을 물어봤더니 담임 목사님이 그래요. ‘우리가 아직 건축하고 5천만원 빚이 있는데 이번 부흥회 때 작정을 할 것이라고 부흥 강사님이 도와 달라고’ 그래서 그렇게 해서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전하고 ‘우리 건축 빚을 위해서 우리 작정을 합시다.’ 그랬더니 교인들이 워낙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워서 작정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마지막 날 저녁에 한 40대 중반의 여인이 신문지에 뭘 이렇게 싸서 강단에 올려놨어요. 두툼한 것을. 그래서 봤더니 500만원이라는 거액을 거기다 직접 헌금을 했어요. 건축 헌금으로. 그런데 이 담임 목사님이 갑자기 뛰쳐나오더니 ‘부흥 강사님 이것은 받으면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저 집사님은 남편하고 어떤 불편한 일이 있어서 이혼한지 얼마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위자료로 받은 그 돈이 500만원 그게 전부라는 거예요. 그것만은 헌금이 안 됩니다. 이 여자는 그것이 전 재산인데 생활을 해야지 그것을 헌금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래서 정말 상황이 그래서 불러서 돌려주려고 ‘집사님 이것은 안 됩니다. 그것은 집사님이 꼭 필요한 것이니까 헌금 받은 것으로 하고 이 돈은 가져가십시오.’ 이랬더니 이 집사님은 절대 자기는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에요. 

‘내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내 마지막 얻은 이 돈 가지고 하나님 앞에 헌금하고 내가 건강하니까 얼마든지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다.’고 그는 양보를 안 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헌금을 받기로 했어요. 교인들이 감동을 받고 여기저기서 헌금을 해서 그 5천만원 빚을 다 갚았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 부흥 강사님이 또 2년 후에 어느 지방에 가서 소도시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오전 집회를 끝내고 점심을 먹는데 목사님이 그래요. 한 장로님을 소개하면서 ‘목사님 이 장로님 부인 권사님이 2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혼자 사시는데 재력도 있고 참 훌륭한 장로님인데 좋은 분 있으면 중매 좀 서십쇼.’라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하니까 2년 전에 그 시골의 여 집사님이 생각이 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연락을 취했더니 부흥회가 끝나고 한 달 후에 서울로 돈 벌러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소문을 해 보라 했더니 연락이 닿아서 연락을 해 여 집사님을 찾았어요. 그리고 그 여 집사님을 모시고 와서 이 장로님하고 선을 봤어요. 두 분이 첫 눈에 반했어요. 왜요? 이 여 집사님이 너무 마음이 고우니까. 그래서 두 분이 결혼을 했는데 이 장로님이 얼마나 인격이 훌륭한지, 또 얼마나 재력이 좋은 지 이 여 집사님이 고생을 안하고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 이 아름다운 여인의 헌신은 하나님이 꼭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이렇게 수넴 여인과 같은 귀한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섬기는 마음,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지혜,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신앙 이것이 귀한 거예요. 여러분에게 오늘 이런 아름다운 가정들이 많이 일어 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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