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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신도 선교사 (행 8: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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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선교사 (행 8:26-40)

 
내 용 

오늘 성경말씀에는 두 사람의 만남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에디오피아 사람이고 한 사람은 유대나라 초대교회 집사입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성령이 시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9절에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라고 나와 있습니다. 두 사람의 형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 최초의 일곱 집사가 생겼는데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12사도들이 교회 봉사자 집사님 일곱을 선택했는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를 집사로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예루살렘에 생겼습니다. 기독교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8장을 읽었는데 7장에서 이미 스데반 집사는 순교 당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도 매우 위태한 삶을 쫓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비해서 에디오피아 사람은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권력자라고 했습니다. 한 나라의 재무장입니다. 당시 에디오피아는 세계에서 아주 잘 나가던 나라입니다. 

옛날 솔로몬 시절에 남방의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온 일이 성경에 있는데 바로 그 남방의 나라가 에디오피아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재무장관이라는 대표자 한 사람과 빌립 집사 이렇게 두 사람이 만난 것같이 보이지만 에디오피아 재무장관의 수행원은 성경 연구가들이 약 70명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강대국의 재무장관이 외국 여행을 하는데 혼자서 절대 할 수가 없습니다. 에디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비행시간이 제트 비행기로 3시간 걸립니다. 

서울에서 일본보다도 먼 나라입니다. 그 도중의 길은 다 사막입니다. 물과 식량, 이동수단 철저하게 준비해야 예루살렘까지 올 수 있고 또 갈 수 있습니다. 마차를 타고 갔다 오니까 말이 먹어야 되는 식량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야 됩니다. 절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집단적 외국 여행입니다. 시간도 얼마나 많이 걸렸는지 경비도 엄청 납니다. 

재무장관이라서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대단위의 외국 여행의 목적이 오늘 성경말씀에 나와 있는데 27절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갔다가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것은 국제간에 정치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외국 관광 여행을 온 것도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본 고장 성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 한번 드리기 위해서 왔다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재무장관의 신앙이 얼마나 컸던 사람인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그의 열정을 보고 성령께서 지금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역사적 배경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솔로몬을 찾아왔던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자식을 출산했습니다. 어쨌든 솔로몬은 그 방면에는 재주가 많은 실력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에디오피아 사람들은 본래 흑인 인종입니다. 솔로몬 후손은 백인 모습입니다. 전통 유대인이니까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에디오피아에서는 솔로몬의 후예들이 모두 권력자들이 된 것입니다. 일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에디오피아의 국왕 하일레 셀라시에도 영락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 자신이 솔로몬의 후손이라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그 후손들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이 내시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권력을 가졌고 그래서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성지순례를 왔다 가는 중입니다. 지금 우리들도 성지순례를 많이 떠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사셨던 본 고장을 한번쯤은 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중요시 할 것을 성경은 늘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그리고 너희는 모이기를 힘쓰라.” 초대교회는 주일날만 예배당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왔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성전을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노력해야 내 믿음이 좋아질 것인가? “교회가 정한 예배 모임을 열정으로 참여하라”입니다. 예배 시간에는 성령님이 역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20성도도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을 체험했고 고넬료 집안에 성령이 임한 것은 베드로가 심방 와서 설교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있던 바울과 실라가 풀려난 것도 기도하고 찬송 부르다가 된 일입니다. 아벨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야곱도 모두 단을 쌓고 열정의 예배를 드렸고 모세, 엘리야, 사무엘 모두 똑같이 나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나가는 이유를 설명할 때 “왜 너희들은 여기서 나가고자 하느냐?” 했을 때 “우리가 광야를 사흘길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해 주소서.” 대답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가 곧 예배였습니다. 여러분! 내 믿음이 떨어지는 일종의 영적 신호가 있습니다. 예배가 싫어지면 위험신호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에디오피아 내시는 에디오피아에서 마차를 타고 수많은 수행원과 경비를 들여서 행한 일이 예배의 본 고장에 와서 한번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왔다 가는 중입니다. 

그 다음에 그의 마음은 대단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막을 여행하면서 지금 이사야 성경을 읽으면서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비행기 여행을 많이 하실 텐데 저도 많이 하는 사람으로서 요즘 비행기는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편안합니다. 비행기가 가는 건지 마는 건지 가만히 있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조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비행기 여행 중에서 성경 읽는 사람은 절대 많지 않습니다. 제가 비행기 여행을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성경 읽는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이 시골길 마차는 흔들려서 글을 읽기가 불편하고 멀미가 납니다. 글을 잘 읽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내시는 대단한 열정의 신앙인임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이 권력가는 빌립이라고 하는 남모르는 사람이 별안간 그 일행에 뛰어든 것을 보고 겸손하게 맞아들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공통점이 있어서 대화가 된 것입니다. 빌립 집사는 그가 읽고 있는 이사야 성경에 대한 주석을 설명해 줄 수가 있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설교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이사야 성경은 예언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의 성취가 지금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고서 일장 설교를 해주었더니 이 내시는 그 자리에서 은혜를 받고 빌립에게 요청했습니다. “나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기회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래서 집사가 이 사람에게 길가 개울물에 가서 세례를 주는 모습이 오늘 성경에 나온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에디오피아로 돌아간 이 내시는 그 나라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평신도 선교사가 됨으로 지금 에디오피아는 기독교 국가가 그때부터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이 왜 빌립을 쓰시고 또 이렇게 에디오피아 내시를 쓰셨는가? 선교의 아주 중요한 대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빌립을 쓰신 이유 중에 제일 큰 것이 빌립은 헬라파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 혈통으로 태어났지만 헬라 문화권에서 탄생하고 거기서 성장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가? 당시는 세계적 공통어가 헬라어였습니다. 우리 신약 성경도 다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영어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영어만 잘하면 세계 어디를 가나 답답하지 않습니다. 영어를 공용으로 쓰는 나라만 해도 40여 개국이 됩니다. 당시는 헬라어가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이 빌립은 세계 공통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에디오피아 권력자와 아무 어려움 없이 지금 언어가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이 바울을 어떻게 그렇게 크게 쓰셨는가에 대해서 살펴볼 수가 있는데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바울도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해서 헬라 문화권에서 철학과 학문에 능통한 기초를 가지고 율법을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당시에 어디를 가도 언어에 아무 지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는,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당시는 로마 시민권이 출세의 기본 요소였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함부로 대하면 큰일 납니다. 바울도 써먹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빌립보 감옥에서 나올 때 “로마 사람인 나를 아무 죄도 없이 감옥에 가두고 때리고 그냥 가라 할 수 있느냐?” 했더니 거기 간수들이 벌벌 떨면서 “당신 로마 시민권자냐?” “그렇다.” 그래서 “두려워하여 권하여 데리고 나갔다” 이런 대우를 받았습니다. 

“마리아 마리아” 연극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로마 대장이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와서 말하지 않습니까? “네가 만약 예수를 데리고 잠을 자서 예수의 권위를 실추시키면 로마 시민권을 주겠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에게 접근시키는 거 아닙니까? 저는 그 연극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빌립 집사는 헬라파 유대인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그것이 선교에 지금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사람은 사도의 직함이 아니고 평신도였기 때문에 오히려 유리합니다. 지금 핍박시대 사도들은 활동 금지 당합니다. 그런데 평신도들은 조금 자유스러움이 있지 않습니까? 가까운 중국도 어떤 사람이 중국은 기독교 박해 국가라고 하는데 공산당이 지배할 때 박해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예배를 활발하게 잘 드리고 있습니까? 그러나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선교사는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녕성 종교 국장과 제가 친합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준 통계가 “목사님! 중국을 자꾸 핍박 국가라고 하는데 중국의 5대 종교 가운데 가장 숫자가 많은 게 기독교입니다. 이 중국에서 어디든지 목사님이 예배에 참석하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수천 명씩 1~4부로 예배를 드리는데 무슨 이 나라가 기독교 핍박 국가입니까?” 나한테 오히려 반박합니다. “다만 중국이 싫어하는 것은 선교사입니다. 우리끼리 알아서 할 테니 선교사가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중국에 가는 선교사들은 거의 평신도들이 들어갑니다. 영어 강사로, 기술 보급 교사로 들어가서 그동안 많이 활동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평신도 사역자들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를 소래교회라고도 하고, 송천교회라고도 하는데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아닙니까? 이 최초의 교회는 목사가 세운 것이 아닙니다. 선교사가 세운 것도 아닙니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중국으로 갔던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서 예수를 믿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평신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로서 대한민국 최초의 교회가 바로 평신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지금 빌립은 자신도 평신도이면서 또한 평신도인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를 해서 이 내시가 에디오피아에 돌아가서 교회를 세움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복음이 에디오피아에 이렇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에디오피아는 기독교 국가입니다. 빌립은 아프리카 선교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여행자 한 사람을 전도함으로 아프리카에 기독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아프리카 선교사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와 같이 교회 일을 하던 전도사 한 분이 “목사님! 나 사이판에 선교사로 파송해 주십시오.” 그래서 선교사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공장들이 많이 있는데 중국에서 단기 비자를 가지고 돈을 벌러 오는 20대 청년들이 와글와글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상대로 전도를 했는데 얼마나 전도가 잘되는지 지금은 그 사이판에 돈을 벌러 왔다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청년들이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산되는 게 평신도들입니다. 88올림픽 때 한국교회는 대대적으로 선교 전략을 행사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오는 선수와 여행객을 상대로 선교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행 중에 예수를 믿게 되어서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는 모두가 선교사가 되어서 돌아갈 수 있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성공해서 아주 큰 효과가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들이 너무나도 깜짝 놀라는 것이 한국 교회의 성장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선수들은 거의 다 찾아가서 예배 한번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88올림픽 때 최고의 이름을 날린 사람이 4관왕 육상 선수 칼 루이스 아닙니까? 칼 루이스도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간단히 간증했는데 그가 미국에 돌아가서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국 교회가 진짜 교회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진짜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도 “한국에 가보십시오.” 그래서 그 당시에 웬만한 사람을 다 교회로 인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4관왕 칼 루이스까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돌아가서 다 한국교회를 말하니 얼마나 훌륭하게 되었습니까?
그 다음에 이 내시를 만난 것은 국가의 큰 권력 실세 아닙니까? 힘 있는 자에 대한 선교 전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에디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라고 했으니까 한 나라의 재무 장관 수행원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도 고종황제는 마지막에 선교사들이 만들어주는 음식만 드셨습니다. 아무도 믿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꾸만 독살하려는 계획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에 대한 신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절대로 선교사 활동을 방해하지 말라.” 그래서 고종황제 때 우리나라에 복음의 확산이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고종황제는 별안간 의문의 죽음을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이승만 대통령 때문에 기독교가 큰 영향을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성경을 쓴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목적이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데오빌로 각하라고 하는 최고의 통치자가 예수를 믿게 되면 그 나머지는 자연히 이루어지니까 그런 선교 전략으로 그 성경을 쓴 것입니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이리안자야에 가면 선교 전략이 반드시 그 마을의 추장을 전도해야 합니다. 선물을 갖다 주고 온갖 편의를 다 주면서 추장만 전도되면 그 마을은 전체가 금방 복음화 되는 선교 전략인데 수행원을 거느린 이 재무 장관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니까 돌아가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그 열정을 가지고 거기다 기초를 놔준 사람이 된 것입니다. 평신도 선교사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인을 통한 세계 선교는 바람직한 몇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증거가 됩니다. 먼저 이 나라가 다인종 문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결혼해서 오는 숫자만 1년에 2만 명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많은 퍼센트가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게 되는데 아주 많습니다. 도시보다도 시골이 더 많습니다. 거의 농촌 청년들이 그렇게 결혼하지 않습니까? 시골 교회 부흥회를 가보면 언제나 외국인 교인들이 다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국에 와서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소원이 있습니다. 자기의 고국에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이 아주 큰 영향력이 있는데 지금 이것이 굉장히 확산되어 나가고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한국의 기업인들의 평신도 선교사 지망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 문제가 모두 끝났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업적으로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면 나의 남은 인생은 어디에 내 몸과 마음을 투자할 것인가 생각했을 때 믿음 좋은 기업인들이 ‘아! 내가 선교사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내 인생을 끝내자.’ 이 퍼센트가 굉장히 늘어가고 있습니다. 돈은 벌어놓았습니다. 크게 성취했습니다. 이제 자녀들 해줄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 선교사로 활동하자.’ 그래서 이 사람들은 자비량 선교사입니다. 어디 가서 선교비 달라고 요청할 필요도 없고 선교 보고서를 낼 필요도 없고 자기 돈 가지고 자기가 가서 자기 마음대로 선교 활동을 하는데 외국에 나가 있는 파송 선교사들은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아주 희망하고 있습니다. 와서 동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많이 나타납니다. 우리 갈보리교회에도 많이 계십니다. 

여러분도 그런 일을 한번 계획해 보십시오. ‘남은 생애를 내가 성취는 했고, 자녀들은 다 자랐고 무엇을 할 것이냐?’ 이런 평신도 선교사들의 숫자가 날마다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 하나도 선교 전략입니다. 그 다음에는 기업 선교가 많이 늘어갑니다. 사장이 크리스천이라서 기업이 교회화 되어가는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도 목사들이 가서 예배드리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저도 강남의 한 호텔에서 대한민국의 사장들만 모이는 CBMC 아침 모임에 3년 동안이나 설교했었고, 분당 CBMC도 제가 3년 반이나 설교했습니다. 기업의 사장들이 모여서 아주 열심히 자기 기업을 교회화 하는 일을 신경을 쓰고 열심히 하는데 이처럼 “나는 선교사는 아니지만 내 기업에 와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 숫자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대한민국 크리스천 기업들은 다 교회화 되어가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한국이 세계 선교에 주역이 되는데 필요한 인프라가 세계에 지금 마련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한국 기업의 제품은 이제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애플과 삼성이 싸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아닙니까? 이제는 한국 제품이 세계 어디에서나 인정을 받기 때문에 그런 인프라가 깔려 있는 것은 한국 선교사가 가서 일을 하기에 너무나도 영향을 많이 주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기업 제품들을 다 사고 싶어 하고, 다 갖고 싶어 하는 인프라가 깔리니까 선교하기 너무나도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게 한국을 쓰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손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한국의 한류 열풍을 보십시오.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한다고 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열광을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요새 싸이의 말춤을 보십시오. 야구장에서 5만 명이 다함께 싸이의 말춤을 추었다고 미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춤을 보니까 누구나 할 수 있고 기술이 필요 없는 거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하는 것은 다 좋아하는 인프라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제는 한국인을 들어서 세계 선교를 하시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5년 후에는 한국 선교사에 세계에서 제일 많아질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이런 인프라가 이렇게 나니까 이제 21세기는 한국 아니면 세계 선교는 안 될 것입니다. 미국은 선교사가 점점 주는데 우리나라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평신도들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평신도 선교사 활동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선교는 성경에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유대 나라를 찾아왔던 두 여행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구원 역사입니다. 하나는 솔로몬 왕 때 유대 나라를 방문했던 남방의 시바 여왕이요 또 하나는 오늘 말씀 에디오피아 재무 장관입니다. 다 권력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복음이 잘 확산된 것입니다. 이 재무 장관의 내용을 살피면 이 사람은 실제 안타까울 것이 없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한 국가의 재정을 자기 의사대로 지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디스아바바에서 예루살렘까지 그 많은 경비와 수행원을 거느리고 마차 행렬을 앞세워서 예루살렘을 왔다가 지금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는 전통적 예루살렘 예배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 거 같습니다. 영적인 자기의 요청이 채워지지 아니한 상태로 답답하게 돌아가다가 빌립 집사를 만나서 이 집사님의 설교를 듣고 길가에서 빨리 세례를 달라고 내가 고국에 가서 이 복음을 전하겠다고 요청해서 길가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빌립을 보고 “당신이 누구냐? 왜 나한테 접근하는 것이냐?” 묻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가 전하는 예수의 메시야성에 대한 예언 설교만 듣고 감동이 된 것입니다. 권력과 종교를 초월하는 두 사람의 만남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을 성령이 그렇게 했다고 오늘 말씀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평신도 활동의 시대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주변에 누군가는 부모님이 되었든지 친구가 되었든지 누군가는 여러분에게 선교했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 나가라고 해서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받은 자는 주어야 되는 기독교 진리의 책임입니다. “갈보리 교회 성도 여러분”이라고 말할 때 내가 그 “성도”를 “선교사”로 바꾸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갈보리 교인들은 선교의 열정이 깊어져서 “갈보리 교회 선교사 여러분!”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평신도들이 다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모두 평신도 선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옛날 에디오피아는 두 사람의 방문객에 의해서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든 평신도들이 평신도 선교사로 빌립과 같이 이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와 같은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고 다른 나라에 전하고 이런 선교사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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