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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 뜨기를 원합니다 (마 20: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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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기를 원합니다 (마 20:29-34)

한국의 문화는 보는 문화입니다. 사무를 보았다, 먹어 보았다에도 "보았다"라고 말합니다. 촉각도 만져보며 맛 보았다, 음식 맛이 있는가도 맛 보았다고 합니다. 시험도 보았다, 물건 사러 시장 갔다 오는 것도 시장보고 왔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보아야 할 사람이 보지 못하게 된 맹인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가 여리고 도상이 되고, 우리 모두는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복된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맹인으로 있을 때에는 불행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보게 됨으로 행복을 찾았습니다. 맹인이기에 자신이 답답하였습니다. 장애인 중에 제일 불쌍한 장애인은 시각장애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으나 볼 수 없습니다. 소경이기에 거지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다른 장애는 일 할 수 있겠으나 시각장애야 말로 마음대로 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맹인이 눈을 뜨게 되고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데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었습니다. 


첫째, 기회를 포착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지나가십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는 중에 여리고를 지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맹인이 이 기회를 붙잡은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에서 52절에 바디매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맹인이 보게 되었나?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할 때에 별로 관심도 없이 지나쳤더라면 일생동안 눈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비참한 인생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포착한 것입니다.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는 사람이 성공자가 됩니다. 

예수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실패하였을 때, 낭패를 당하였을 때입니다.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을 보게 되면 한결같이 주어진 기회를 붙잡았거나 기회를 포착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순결을 지키고 한국교회사에 길이 빛나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왜경에 구속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나온 일이 있었답니다. 그때 그 내용을 모르던 사모 오정모 여사는 주목사님에게 "여보, 당신이 혹시 항복하고 나온 것이 아니에요." "아니야 병보석이야" "정말입니까?" 여기에 하나 덧붙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순교의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즉 죽을 기회도 놓치지 말자고 하였다는데, 우리는 어찌하다가 충성할 기회를 잊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 믿을 수 있는 기회에 예수님을 영접하셔야 합니다. 

미국의 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사형수가 신문 한 장을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신문 머리기사는 "미국 제22대 대통령 클리브랜드 취임" 이었습니다. 간수가 하염없이 울고 있는 죄수에게 왜 그리 슬피우느냐 라고 물었답니다. 그는 고개를 떨구면서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클리브랜드와 나는 대학 동창입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둘은 교회의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클리브랜드는 나에게 교회에 가보세 라고 말하였는데, 나는 거절하고 클리브랜드는 교회에 갔습니다. 나는 술집으로 갔습니다. 그 이후 우리의 운명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한 사람은 대통령으로, 한 사람은 술집에서 주지육림에 빠져 들어간다는 이런 운명이 된 것입니다."라고. 

베드로는 회개할 기회를 포착하였고, 가룟 유다는 기회를 놓침으로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공자가 됩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기회를 붙잡음으로 눈이 밝아지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기회를 붙잡으세요. 기회를 붙잡으세요. 


둘째, 불타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주여 우리가 눈뜨기를 원하나이다"(33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소원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불타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소원이 있어야 성취함도 있습니다. 간구가 있어야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응답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꿈이 있어야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눈을 감아도 그 소원이 있어야 하고, 잠꼬대를 하여도 그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소원은 아들이었고, 야곱의 소원은 축복이었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회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도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시장에 가니 나도 간다는 것은 시간 낭비요, 다른 사람이 그 물건 사니까 나도 산다는 것은 물질 낭비입니다. 필요해서 하는 것같이 필요(need)가 무엇이냐 이것이 결정된 다음에 행동하는 것이 정석일 것입니다. 기도도 불타는 소원을 갖고 해야 응답이 있습니다. 길가에 앉아 있어도 그들에게는 아직도 눈을 떠야 하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에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 불변의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도 눈을 뜨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자신도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하였기에 희망을 버렸음직 한데도 이들은 눈을 뜨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단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이름도 없는 사람입니다.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맹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소망이나 바램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나도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좋은 목적으로 시작하였는데, 절망에 빠지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나요? 어려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포기하고 절망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희망을 가집시다. 희망은 삶에 이르는 빛이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보면, 지옥 입구에 "여기서부터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라고 써 있더랍니다. 천국과 지옥은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희망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은 절망에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다립시다. 애절한 희망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으로 외쳐보세요. 나는 희망이 있습니다. 항상 소망이 넘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광명을 볼 수 있는 날이 있습니다. 


넷째,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소리가 나야 합니다. 그의 부르짖음은 체면 불구하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태평양 한복판에서 뗏목을 타고 표류하다가 20여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에디 리컨벡커(Eddi Rickenbacker)선장과 젊고 경험이 적은 다른 선원은 불같은 태양열과 탈수와 기갈 때문에 몇 일만에 거의 죽을 지경에 달했습니다. 어떻게 긴 어려움 속에서 공포와 역경을 견딜 수가 있었는가? 질문했을 때, 그들의 대답은 한 마디였습니다. 기도한 것이 전부입니다. 기도하며 가보니 갈매기가 선장의 머리 위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갈매기를 잡아 요기를 했고, 그것을 미끼로 고기를 잡아먹게 되었고, 기도하다 보니 얼마 후에 처음으로 비가 쏟아져 불볕더위를 식혀 주었습니다. 

그들은 용기를 얻었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2주일 만에 육지에서 수 백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던 것입니다. 기도만 했습니다. 기도한 것이 전부입니다. 소경들이 기도하였습니다. 소리 질렀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1. 장애를 극복하는 기도였습니다. 

신령한 일, 좋은 일에는 반드시 장애가 있습니다. 반대가 있습니다. 반대가 있고, 장애물이 있다고 멈추거나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봐야 한다는 집념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기도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뭐라 한다고 중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충성하려고 하면 장애가 있고, 남보다 더 봉사하려고 하여도 장애가 있습니다. 그래도 해야합니다. 기도하지 못 하게 무리가 꾸짖었습니다. 그래도 계속하여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와 나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려고 하여도 그럴 수는 없 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2. 열심 있는 기도였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이루려고 하면 열정이 있어 야 합니다. 열심 있는 사람을 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한 번 해본 것이 아닙니다. 예수 만나고 그분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기적이 있고 소경인 내가 눈을 뜨게 된다는 확신이 서 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 이던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왜 낙심하게 되나요? 왜 포기하게 되나요? 믿음의 문제입니다. 

웰즈(Herbert George Wells 1886-1946)라는 이가 쓴 단편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대주교의 죽음』이라는 제목 인데, 대주교가 날마다 습관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언제나 기도의 시작은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라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한밤중에 기도하는 데 "오 아버지시여" 그때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냐(yes, what is it)"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대주교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다는 이 야기입니다. 이것은 날카로운 풍자입니다. 평생 기도하지만, 기도가 정말 응답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응답이 있게 되자 쓰러져 죽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4.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기도였습니다. 

32절에서 "머물러 서서"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들으셨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여도 소경들은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그 기도에 의하여 주께서는 지나가시다가 멈추신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데 주님이 가시던 발길을 멈추고,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시는데, 어두운 눈을 밝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나인성의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도 그 여인이 슬피우는 것을 보시고 자리에 서신 다음 "청년아 일어나라"하시면서 살려주셨습니다. 성도님들이여!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우리 주님이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기적을 일으켜 주십니다. 


5.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너희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주여 우리가 눈뜨기를 원하나이다"(33절) 당연한 것을 구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아니할 수가 있습니다. 내게 80평 짜리 아파트나 한 채주세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일생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뜨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를, 어떤 사람은 권력을 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 인기, 명예 등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소원이던지 있다는데 나쁘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적으로 살아갑니다. 신앙생활도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분주해도 "주일은 성수하겠나이다" 그래야 이것이 가능합니다. 영적인 삶을 위하여 하루 시작은 기도로 하겠다는 삶의 목표, 영적인 계획이 분명해야 합니다. 아무리 분주해도 하루에 성경을 5장 이상 읽고 일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보다는 성경 한 장이라도 읽은 다음에 신문을 보리라 그런 목표를 세워보세요. 영적으로 새로워질 것 입니다. 성공적이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위하여 분명한 목표를 세우십시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예화/ 시골 농부의 밭갈기 목표)

영적인 삶을 위하여 목표도 분명해야 합니다.

다니엘서 1:8절을 보면 다니엘이 성공적으로 산 것은 그가 바 로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이 목표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는 성공자가 된 것입니다. 삶에도 신앙에도 뜻을 정하세요.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첫째, 물질이 좋다하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범죄할 수 없다는 뜻을 정했습니다. 

둘째, 다니엘은 뜻을 정했습니다. 국법보다는 하나님의 법을 우선으로 존중하겠다는 뜻 목표를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 중심이면 신본주의 신앙의 사람입니다. 내가 먼저이면 인본주의이지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선, 주일을 지키고 세상일을 하겠다라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사람을 좋게 하라, 다 좋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할 때에 사람도 좋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목표를 정하십시요. 강철 왕 카네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금 통장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였고,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모든 시민들에게 발에 바퀴를 달아주는 것이 목표였기에 자동차를 만들게 되었고, 노동자들에게도 부를 안겨 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기적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려고 한다면 분명한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주여! 이것만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지난날에 기적을 행하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1. 항상 주어진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충성할 수 있는 기회는 오늘입니다. 금년입니다. 미루지 맙시다. 내일은 내 날이 아닙니다. 지금 오늘 금년을 붙잡고 반드시 승리하고 축복 받아야 하겠습니다. 

2. 마음에 불타는 소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십니다. 

3. 그 소원 때문에 간절하게 중심으로 기도합니다. 기도처럼 소중하고 값진 것은 없습니다. 

4. 무엇을 원하느냐 자신이 마음속에 분명한 목표를 갖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추구하여 기적을 체험하고 어두움의 세력에서 해방 받으시고 밝고 축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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